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74)
검은 머리 영국 의사-474화(474/505)
474화 심장에서의 진보 [3]
수동이긴 해도 나름 진보된 형태의 톱이 마련되어 있다 보니 가슴을 여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리스턴이 있으면 그냥 슥슥 칼질만 해도 열렸을 테니 훨씬 빠르긴 했겠지만…….
리스턴은 나름 바쁜 몸이다.
사실 나도 바쁜데 시간 내서 이 짓 하는 거다.
죽은 시신의 가슴을 여는 게 취미일 리는 없으니 정말로 인류에 대한 봉사다, 이건.
가가가각.
가가가가각.
그에 반해 내 제자들은 아직 실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열심히 배워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나 리스턴, 블런델 그리고 원장님 감독하에 거의 매주 하루 이틀은 해부를 진행하고 있다.
해부학 교수를 할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겠냐는 말은 접어 두기 바란다.
21세기 의과 대학에서도 해부학을 1년간 하니까.
그것도 학기당 6학점이다.
물론 의대에서 6학점은 주에 6시간짜리가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긴 시간 시행하게 된다.
실습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나.
‘아이구, 잘 여네.’
그렇다 보니 애들이 이제 많이 늘었다.
엄청 잘 열게 되었다, 이 말이다.
가슴뼈가 이게 보통 단단한 게 아닌데 수동 톱으로 갈아 내고 여는 데 걸리는 시간이 불과 10분도 채 안 됐다.
아, 리스턴하고는 비교하면 안 된다.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니까.
“후…….”
“흐…….”
보통 해부라고 하면 대단한 고뇌의 산물로 여겨지겠지만, 그건 아주 일부 부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대개는 막노동에 가깝다.
사람의 몸을 해체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나.
게다가 원래 어떻게 생겼는지 알기 위해 내부를 원형 그대로 남기면서 여는 건 더더욱 힘든 일이다.
기구라도 잘 마련되어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19세기는 그렇지도 않다 보니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 할 수 있다.
‘원래 힘들면 딴생각이 안 들지.’
시신 해부가 물리적으로만 힘들 리는 없는 일이다.
정신적으로도 당연히 힘든 일이다.
사람이 사람의 시신에 칼을 대고 톱을 대고 핀셋을 대는 행위가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겠나?
이 숭고한 행위 자체에만 너무 집중한다면, 진짜 어려운 일이 될 거다.
하지만 저렇게 육체가 힘들면 종종 숭고한 행위가 일이 되곤 한다.
그리고 원래 일이라는 건 생각 없이 하게 될 때가 많다.
“교수님, 여기!”
더 기다리고 있으려니 조지프가 먼저 손을 들었다.
손재주가 비상한 놈은 아니다.
하지만…….
꼼꼼한 데 더해 힘이 세다 보니 해부학에도 특출난 재능을 보이고 있다.
뭐 안과같이 작은 부위를 수술하는 게 훨씬 성격에 맞는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어디 봐.”
“여기.”
“옳지 잘 찾았네.”
심장에서 위로 솟아 나오는 대동맥에서 삐죽 튀어나온 혈관을 가리키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오른쪽, 왼쪽 해서 두 개였다.
다 이렇게 생긴 건 아니다.
해부에는 베리에이션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게 여러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데, 특히 수술할 때 골 때리는 경우가 있다.
예상했던 부위와 다른 곳에서 혈관이 나오는데 그 혈관이 또 이상하게 갈라지고…….
나야 뭐 외상외과였으니 혈관 자체를 다룰 일은 거의 없었지만 흉부외과에서는 사실상 관상동맥이 제일 중요하지 않나.
-시발. 왜 몸이 이따위냐고.
종종 수술 끝내고 탈의실에서 샤워하다 보면 욕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외과 계열 의사를 하다 보면 욕 나오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나도 아예 안 한 건 아니라서 뭐라 하긴 어렵지만, 빈도 수를 따지면 흉부외과와 신경외과가 압도적으로 높았던 거 같다.
공교롭게도 수술이 어렵고, 응급 수술이 많은 곳 순이었더랬다.
아무튼, 이 환자의 경우에는 이렇게 생겼다는 걸 확인한 나는 메스와 핀셋을 들었다.
“잘 봐.”
“네.”
나는 주변에 있던 다른 학생들을 불러 모은 후, 핀셋으로 먼저 좌측 관상동맥을 집었다.
좌측이니 당연히 좌심방, 좌심실로 가는 혈관이고, 좌심실이 대동맥을 통해 전신으로 피를 보내는 부위이니만큼 심장에 있어서 메인 혈관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걸 이렇게 푹 잡으면 21세기에선 의대생들도 움찔하기 마련이다.
뇌혈관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혈관이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용맹무쌍한 19세기 학생들은 그저 평온할 뿐이었다.
애초에 멘털부터가 훨씬 강할 수밖에 없긴 하다.
‘얘네들이 시신 구해 온 거 아니야…….’
유가족 만나서 돈 주고 시신 사서 리어카로 직접 끌고 와서 해부 실습대 위에 세팅했다, 얘네들이.
그런 애들이 21세기와 같이 말랑한 시대 애들하고 같으리란 생각을 한다는 거부터가 희한한 거긴 하다.
게다가 이 시대의 해부는 더럽기만 한 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잖아?
지금이야 적어도 우리 학교는 의무적으로 아주 단단한 장갑을, 그것도 팔목까지 오는 장갑을 쓰게 하니 안전해졌지만 당장 방금 심장을 찾고 좋아하고 있는 앨프리드도 해부하다가 뒤질 뻔했다.
‘하지만 이 혈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가 더 클 거야.’
나도 좀 이상하다 싶긴 하다.
기껏 심장으로 이렇게 큰 혈관을 통해 혈액이 마음껏 들어오는데 그냥 안쪽에서 혈액 공급하면 안 되나?
왜 굳이 관상동맥이라는 얇은 혈관을 통해서 심장에 피를 주는 거야?
그래서 심근경색이라는 몹쓸 병이 있는 거 아닌가?
만약 19세기 사람들의 믿음처럼 심장 내부에서 혈액 공급이 되었다면 적어도 심근경색은 없었을 거 같다.
‘근데 어쩌라고.’
의학에서 중요한 건 벌어진 현상이지, 이해 가능하냐 아니냐의 영역이 아니지 않나.
법학은 논리에 기반한 학문이지만 의학은 관찰에 기반한 학문이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의학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냥 인간이 그렇게 생겨 먹어서 생기는 일을 배우고 익힐 뿐이다.
지익.
하여간 나는 그 중요한 혈관을 심장으로부터 분리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어디 심어져 있는 게 아니라 그 위를 지나는 것일 뿐이니까.
게다가 완전체로 분리할 필요도 없이 혈관 벽만 온전한 상태면 되는 거라 별 부담도 없었다.
이건 수술이 아니라 해부잖아.
툭.
그럼에도 불구하고 혈관이 꽤 길고 복잡하게 생겨서 완전히 분리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사이 앨프리드나 콜린 등도 관상동맥을 찾아내서 일단 천천히 분리하고 있으라고 지시해 두었다.
여기서 바로 틀어막힌 혈관이 나오면 좋겠지만 아닐 수도 있어서 그랬다.
일단 가슴 아파하면서 죽었다는 게 아주 정확한 진술이겠나?
그럴 리가 없다.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칼.”
“네.”
하여간 나는 그렇게 분리해 낸 혈관을 1인치를 기준으로 해서 툭툭 잘랐다.
그러곤 단면을 확인했다.
다행이 있었다.
플라크가.
“여기 보이냐?”
“아, 네.”
정확히 말하면 석회화된 병변이다.
안에 기름 같은 것이 끼고 또 염증이 끼다가 단단해진 병변이라고 보면 된다.
예방하기 위해서는 혈관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질환인 당뇨와 고혈압 치료를 열심히 받고, 또 고지혈증 치료도 받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당뇨 치료뿐인데…….
그마저도 용량이니 뭐니 하나도 정확한 것이 없다.
심지어 돈 많은 사람 아니, 아주 아주 많은 사람이 아니면 받을 수 없는 치료다.
‘어쩌겠나.’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욕심을 내는 건 무용한 짓이다.
오히려 무리하다가 환자에게 안 좋은 짓을 할 수도 있어.
실제로 내가 고혈압이 병이라고 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나?
그놈의 사혈이 더 유행이 됐다.
자칭 티에피영 경의 제자라는 것들이 이곳 영국에서뿐만 아니라 저 바다 건너 유럽 본토에서도 활약하고 있다고 들었다.
언제 한번 싹 쓸어야 되는데, 아무튼, 이런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
“이게 뭘 말하는 걸까? 이 환자들은 죽기 전에 가슴이 아팠잖아?”
지금 나는 의료의 진보를 이룩하려는 참이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그 산증인이 될 거다.
제자들도 있긴 한데…….
-걔네들은 네 수족이잖나…….
-막말로 자네가 죽으라고 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 애들이 하는 말이 의미가 있겠나?
제자들만 가지고는 이따위 말이나 들을 게 분명했다.
해서 학생들을 동원한 거다.
너무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은 의미가 없다.
‘대’티에피영 경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애들이 지천에 깔려 있으니.
“역시 이 혈관은 쓰임새가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네. 그래서 막힌 거 같습니다.”
“확실히…… 네, 그게 맞는 거 같습니다!”
가르침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놈들이니만큼 다른 놈들에 비해 상당히 우수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 착각이었다.
망할 놈들.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지금.
“이게…… 좀 조심스럽긴 한데요.”
그때 존 스노가 입을 열었다.
그래, 이 똘똘이는 뭔가 좀 다를 것이 분명했다.
해서 나는 그가 말을 이어 나갈 수 있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동시에 다른 놈들을 위압적인 눈으로 돌아봄으로써, 혼자 말할 수 있게 판을 깔았다.
“이게…… 그 빠게뜨 놈들의 의견입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프랑스에서 한 건 했나 보다.
하긴 내가 존경하는 원장님도 프랑스계 영국인이지 않나.
생각해 보면 인구도 더 많고, 애초에 본토에 있는 애들이 연구하기 더 좋기는 할 거다.
인성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긴 한데…….
이론에 뭐가 죄가 있겠나.
사람이 잘못이지.
“그래도 괜찮아. 해 봐. 나 꽉 막힌 사람 아니야.”
“역시 교수님…….”
리스턴이라면 무턱대고 지랄했을 거다.
그 인간은 빠게뜨라고 하면 일단 죽일 생각부터 하는 사람이라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보단 아무래도 훨씬 나은 사람이지 않나.
“그…… 장바티스트 피에르 앙투안 슈발리에 드 모네 드 라마르크라는 사람이 주장한 건데.”
“이름이 기네. 높은 사람인가 봐?”
“높은 사람이었다가 혁명 후에는 뭐, 가난하게 살았다고 들었습니다.”
“프랑스가 그렇지. 좋은 사람일수록 고생을 해요.”
근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라부아지에는 아예 혁명 때 목이 잘려 죽었잖아.
내가 ‘쯔쯔’ 하고 있으려니 그에 용기를 더 얻은 존 스노가 신나서 더 떠들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주장했던 것이 용불용설이 있습니다.”
“용불용설?”
들어 본 기억이 있다.
딱히 의미가 있었던 거 같진 않다.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전하고 안 쓰는 기관은 퇴화한다는 내용이죠.”
“아.”
이게, 언뜻 보면 되게 맞는 소리 같다.
실제로 운동을 대입하면 맞는 소리가 되기도 한다.
자주 쓰는 근육은 발전하고 아닌 건 퇴화하잖아.
깁스 몇 달만 해도 확 얇아지는 거 여러 차례 봤을 거다.
“이 형질이 유전된다는 건데…… 이게 그런 거 아닐까요?”
“아.”
자꾸 탄식이 나온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탄식과 탄성은 헷갈린다는 점이다.
“이야…….”
“역시 존 스노 선생님!”
“나이도 어린데 대단합니다!”
거기에 더해 내가 존 스노한테는 맨날 탄성만 내질렀다는 게 문제가 되었다.
이 자식들…….
아니다.
아니라고!
‘안 되겠어. 관상동맥이 막히면 죽는다는 걸 눈앞에서 보여 줘야지…….’
내 잘못이 아니다.
시대가 나를 기어코 여기까지 내몬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