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75)
검은 머리 영국 의사-475화(475/505)
475화 심장에서의 진보 [4]
‘죄수?’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 죄수였다.
그냥저냥 한 놈들 말고 사형수 있잖아.
사형을 꼭 교수형으로 해야 한다는 법이 있을까?
관상동맥을 딱 묶어서 사형시키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이거…… 드럽게 아프잖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심근경색이 주는 통증은 어마어마하다.
요로결석 같은 질환에 비해 통증 면에서 덜 알려진 건, 요로결석은 떠들 만한 사람들이 많은데 반해 심근경색은 생존자가 없어서 그런 것뿐이다.
설령 살아났다고 해도 인터넷에 올릴 만한 사람도 별로 없다.
애초에 주로 발병하는 연령대가 달라서 그렇다.
하지만 의사로서 단언하건대 이게 더 아프다.
‘근데…… 그래도 되나?’
나쁜 놈은 아파야 한다.
이건 뭐 부정할 만한 놈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장을 열고 관상동맥을 잡아도 되나?
이건 그놈만이 아니라 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법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뭐 이런 얘기는 아니다.
이미 나는 적어도 런던에서는 초법적인 존재가 된 지 오래이니까.
‘내 멘탈이 괜찮을까?’
나쁜 놈이라고 해도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나.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냐’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속에 든 건 악마 그 자체이겠지만…….
뭐가 되었건 사람처럼 보이는 게 문제다.
그걸 내 손으로 심장을 열고 죽여도 되나?
‘안 될 거 같지.’
그래, 이건 좀 너무 나간 거 같다.
애초에 런던 경찰청에서도 슬슬 요란한 사형 대신 얌전한 사형으로 가는 게 어떻겠냐는 말도 나오고 있잖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이제 19세기잖아.
조선에서야 여전히 중세와 얼추 비슷한 생활 양식을 이어 나가고 있겠지만 여긴 아니다.
바다에서는 증기선이 떠다니고, 땅에서는 증기 기관차가 오가는 그런 시대란 말이다.
근데 사형은 아직도 중세처럼 교수형을 한다는 거부터가 이상한 일 아니겠나.
-우리는 저기 저 프랑스 야만인들하고는 다르니까요. 독약부터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티에피영 경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뭐, 좋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심지어 거기에 우리 연구소가 입찰하려고 준비 중이기도 하다.
카니발리즘도 아니고 굳이 우리끼리 경쟁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 이건 접는 게 좋을 거 같다.
“경찰서 말고…… 연구소로 갑시다.”
“네, 나리.”
해서 나는 마차를 돌려 연구소로 향했다.
학생들은 어쩌고 나 혼자 다니고 있냐고?
용불용설 이 지랄 하는 새끼들하고 뭘 하겠나.
가장 큰 비극은 결국엔 그 새끼들하고 뭔가 해야 한다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나 근거를 보여 줘야 한다.
‘이렇게 근거 좋아하는 새끼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내내 근거 하나 없는 치료를 잘만 해 왔을까?’
근거중심의학이 완전히 메인스트림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90년대의 일이다.
물론 그 전부터 꾸준히 그러한 분위기는 있었지만, 마침내 전문가 의견 위에 근거가 선 것은 그때쯤이라고 본다.
다른 것보다는 아무래도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세계화의 영향이 있었다고 본다.
누군가의 30년 경험, 40년 경험이 그전까지는 참 대단해 보였을 거다.
허나 세계화 이후에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의사들이 한데 모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그 앞에서 개인의 경험이 뭔 의미가 있었겠어.
‘이거 혹시 인종 차별 아닌가?’
이 시대의 전문가…….
최고 전문가가 난데 왜 자꾸 내 말은 안 믿지?
과한 걱정은 아닌 거 같다.
21세기에도 동양인에 대한 차별은 존재하잖아.
그나마 덜하다는 미국에서도 NPC 취급이 만연한데 유럽은 어떻겠나.
진짜 대놓고 식당 구석 자리 주고 식은 음식 주고 그런다.
그렇다면 19세기는……?
“이봐.”
“네, 나리.”
“너도 내가 노란 원숭이라 무시하고 싶나?”
“네? 아이고…… 살려 주십시오, 나리. 저는 추호도…… 추호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요!”
갑자기 궁금해져서 마부한테 물어봤더니 반응이 상당히 뜨거웠다.
거의 뭐 사시나무 떨 듯하고 있다.
잘못한 게 없으면 이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흠.”
“아이고! 진짭니다!”
그렇잖아.
내가 비록 국문에 친히 나서 본 적은 없지만, 사극은 꽤 봤거든.
그거 보면 죄지은 놈도 억울하다고 하더라고.
엄청 당당하게.
헌데 이놈은 누가 봐도 유죄…… 아닐까?
“뭐…… 하나?”
해서 고민하고 있으려니 반대편에서 오던 마차가 천천히 멈추어 섰다.
누구인가 하고 보니까 원장님이었다.
이쪽으로 가면 우리 같은 사람이 갈 만한 곳은 연구소밖에 없는데…….
아무리 봐도 마차엔 원장님밖에 없는 거 같은데 마차가 덜그럭거리는 게 뭔가 무거운 거라도 실은 거 같았다.
‘굳이 묻진 말아야지…….’
알 거 같았다.
우리 원장님…….
요새 돈깨나 만지는 거 같거든.
100% 코카인 사업이다, 이건.
그걸 다 보고 있냐고 하면, 다 보고 있다.
나름 수출 역군이잖아.
내가 하도 지랄을 해 놔서 적어도 우리 연구소에서 생산한 코카인은 공식적으로는 런던 내에 유통이 불가능하거든.
“아…… 혹시 인종 차별을 하나 해서.”
“인종 차별……? 아아. 하하 그게 왜 없겠나.”
해서 묻는 말에나 답했다.
그랬더니 원장님이 껄껄 웃으면 설명을 시작했다.
“인간은 누굴 차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존재들이라네. 내 선조들의 조국 프랑스를 보게나.”
“하긴…… 그렇긴 해요.”
“그 지랄을 해 놓고서 지금은 또 잘만 귀족님네들 모시고 살고 있지 않나. 자유, 평등, 박애? 웃기지도 않지.”
“제가 화낼 일은 아닌 건가요?”
“잉?”
그러던 원장님은 내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잠시가 아니라 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아니, 길 막고, 뭐…… 왜.”
“피영시인일세.”
“아? 아아.”
런던 시내 도로 폭이라고 해 봐야 뻔한데 거기 마차 두 대가 나란히 서 있으니 당연히 길이 꽉 막혔다.
연구소에서 하는 연구라는 것들이 좀 이상한 것들이 많다 보니 이스트엔드 쪽에 자리하고 있긴 하지만, 뭐가 되었건 마차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허나 아무도 뭐라 하지 못했다.
나 때문이다.
저주받으면 어쩐단 말인가.
“자네를 인종 차별 하는 사람이 있다고?”
“네, 그런 거 같은데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연유가 있나?”
원장님은 직접 저주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주변 눈치를 살피다가 다들 영국인들답지 않게 겁먹은 얼굴로 주춤거리고 있는 걸 확인한 후, 말을 이었다.
나는 그 말에 아까 있었던 일을 대강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원장님이 ‘음’ 하고 신음을 토했다.
“그러니까…… 관상동맥? 그게 막히면 사람이 죽을 거라는 게 자네 생각이란 말이지?”
“제 생각이 아니라 그게 맞다니까요.”
“그걸 안 들어 준다고 인종 차별이 아닌가 싶다고?”
“원래 권위 있는 사람이 말하면 다 듣잖아요. 내가 권위가 없나?”
“있으니까…… 그따위 말을 하고도 지금 멀쩡히 나다닐 수 있는 거 아닌가?”
“네?”
“말이 되나? 그 혈관은 쓸데없이 있는 거라고 이미 결론이 난 혈관 아닌가. 비슷한 예로는 그래, 지혜의 이빨이 있지.”
“음.”
듣고 보니 또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긴, 찰스 다윈이 괜히 이맘때 진화론을 발표하게 된 게 아니긴 하다.
흔적 기관이라는 개념이 슬슬 유행하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거든.
여러 분야에서 ‘사람이라는 게 하나님이 만든 게 아니고 원숭이가 진화되어서 된 존재인 거 아니야?’ 하는 시대란 얘기다.
‘하지만…… 이 시기에 주장했던 흔적 기관이 21세기에도 인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
관상동맥도 흔적 기관에 속한다, 이 시기에는.
기능을 모르겠으면 이거 다 흔적 기관이라도 하던 시기니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실제로 얘네가 떠드는 흔적 기관 다 합치면 거의 90개다.
뭐…… 존 스노가 말했던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실재한다고 믿는 시대니 무리도 아니긴 하다.
기린의 긴 목이 살아남기 위해 점점 목이 길어진 애들이 그 형질을 유전시켜서 그렇게 된 거라고 하잖아?
21세기에 유행하기 시작한 후생 유전학하고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음. 그럼 제가 너무 과하게 생각한 걸까요?”
“당연하지. 뭐 자네를 잘 모르는 놈들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적어도 병원 내에서는 없을걸? 그리고 마부라니! 이 사람은 자네가 사람을 어찌 죽이는지 다 아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그런가?”
“그런가는 뭔 놈의 그런가. 주변을 보게나.”
나는 원장님을 따라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잔뜩 움츠러든 채 나를 보고 있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쟤네들이 나를 과연 차별할 수 있을까?
할 수는 있는데 보통 생각하는 그런 차별하고는 차이가 있을 거 같다.
두려움……의 대상 아니겠어?
“하긴, 그렇네요.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래, 그래. 아이고, 참. 별소리를 다 듣겠네.”
내가 납득하자 원장님은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코카인을 잔뜩 싣고 항구로 향했다.
생각해 보면 마약 딜러 말을 듣고 안심한다는 게 참 이상하다 싶긴 하지만…….
저 양반이 19세기 런던에서는 참지식인 취급을 받는 사람이 아닌가.
프랑스에서 핍박을 받다 온 사람이니만큼 찐 지식인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게 어떻게 기준이 되냐고 할 수 있을 텐데…….
프랑스가 원래 그렇다.
잔 다르크, 나폴레옹, 라부아지에, 조르주 당통, 니콜라 뤼크네르,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등등 훌륭한 애들은 죄다 지들 손으로 처단했다.
다시 말해 프랑스에서 핍박을 받는 사람들은 대개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다시 가죠.”
“네네. 아이고…… 살려 주십쇼.”
“그래, 안 했죠?”
“안 합니다!”
“그래요. 흠.”
그래, 사람은 죽이지 말자.
지금도 이렇게 무서워하는데 여기서 가슴을 열고 사람을 고통스럽게 죽이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
후에 되다 만 의사 출신 작가가 하는 의학의 역사 단골이 되기는 싫다.
-오늘도 김태평이 인체 실험을 합니다!
-아.
-아오.
아무것도 아닌 놈들에게 그따위 말을 듣는 건 안 될 일이다.
“개라도 죽여야겠구만.”
해서 개로 선회하기로 했다.
아, 내가 뭐 개를 미워해서 이러는 건 아니다.
나도 나름 애견인이다.
개보다 못한 사람도 있다고 생각할 정도다.
하지만 사람 죽이는 거보다는 개 죽이는 게 낫잖아?
“히익.”
내 말에 어쩐지 마부 아저씨의 어깨가 움츠러드는 게 보였는데, 생각해 보니까 개 죽인다고 하는 타이밍이 좀 그랬던 거 같았다.
“내 말은 사람 대신 개를 죽인다는 거예요.”
“히익.”
해서 해명을 하려 했지만 이게 쉽지가 않았다.
아저씨는 점점 벌벌 떨기만 할 뿐이었다.
편견이 이렇게 무섭다.
아무튼, 연구소에서 나는 개 몇 마리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혹 이런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명목하에 늘 준비해 두고 있던 덕이었다.
“다시 학생들 앞으로 갑시다. 가서 죽…… 실험하게.”
“히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