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76)
검은 머리 영국 의사-476화(476/505)
476화 심장에서의 진보 [5]
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이제 막 수술 마치고 쉬고 있던 리스턴과 블런델까지 다 불러 모았다.
블런델은 또 산모가 죽었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산부인과도 전반적인 개선을 해야 하는데…….
사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다 보니까 자꾸 미루게 된다.
‘학생 때도 제일 어려웠지…… 산부인과…….’
남자랑 여자는 다르다.
일단 해부학적인 구조부터 그렇다.
그 때문에 외상 처치할 때도 약간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그 때는 왜 다르게 생겨가지고 내가 이것까지 공부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여기 와 보니 이게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다.
적어도 해부만큼은 따로 공부할 필요가 거의 없어서 그렇다.
‘뭐…… 여기는 처참하지.’
지금은 많이 개선이 되긴 했는데, 중세 시절 유럽의 여성 해부는 처참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사람들이 중세는 암흑기였다고 하는 게 왜 그런지 이해가 안 갔거든?
내가 또 약간 삐딱선 타는 편이라 꼭 영상도 ‘중세가 암흑기였다는 착각’ 이딴 것만 봤단 말이지.
근데 와 보니까, 암흑기 맞다.
일단 중세가 기독교에 너무 지나친 지배를 받았다는 거부터가 문제다.
-응? 여자 의사는 없냐고?
-자네 뭐 잘못 먹었나?
-하하…… 조선에도 그런 예는 없거늘. 이보게, 평. 여자는 근본적으로 남자보다 열등하다네.
-히스테리 모르나?
언젠가 했던 질문에 대한 리스턴과 블런델의 답이다.
둘은 참고로 19세기 지식인 중에서는 상당히 열려 있는 사람들이다.
헌데 인식이 저렇다.
중세 때는 이보다 더했다.
그때는 아예 여자는 부정한 존재라고 봤거든.
공부하는 것도 남자의 전유물이었고, 그중에서도 수도승들이 주로 했다.
의학에 대한 연구 또한 수도승이 했는데 수도승은 기본적으로 여자를 모르잖아? 몰라야 하고.
‘와, 내가 그 해부도 보고 진짜 어이가 없어서.’
여자 해부도랍시고 그려 놓은 걸 보면 그냥 남자 성기 거꾸로 몸 안에 집어넣은 게 다다.
그러고는 ‘이렇게 불균형한 존재인 것을 보면 여자가 부정한 존재라는 걸 알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응? 왜 그렇게 보나.”
“아뇨. 이번 일 끝나면 나랑 일 하나 같이 합시다.”
“어…… 그래, 그러지. 근데 그렇게 좋은 일 같지가 않은데…….”
“제가 뭐 하자고 해서 상황이 악화된 적이 있어요?”
“없긴 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블런델을 보고 있었더니, 블런델이 상당히 떨떠름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래서 어깨를 쳐 주면서 나중에 보자고 했다.
옛날 같았으면 몰라도 블런델에게는 이젠 더 이상 나랑 같이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억울하면 너도 귀족이 되시든가?
아니면 저주라도 걸어보든지.
“자, 다 모였나?”
“네, 교수님!”
하여간, 나는 시연용 강단 위에 섰다.
이것이 무엇인고 하면 수술이나 해부 또는 실험을 남들 앞에서 보여 주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보다 쉽게 말하면 그냥 극장이다, 극장.
흔해 빠진 연극 공연 대신 뭔가 다른 특별한 짓을 하는 극장이다.
‘많기도 하네.’
런던 의과 대학은 원래도 썩 괜찮은 곳이긴 하다.
하지만 1등이냐고 하면 그건 결코 아니었다.
애초에 그랬으면 나나 조지프가 못 들어오지.
아니, 들어오긴 하는데 더 많은 돈을 냈어야지.
아무튼, 엎치락뒤치락하는 대학이 꽤 있었는데 지금은 여기가 그냥 1등이다.
저기 유럽 본토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런던에서는 여기가 1황이다.
‘인기가 확실히 많이 올라갔어.’
물론 그중 태반은 내과 지망이다.
히포크라테스가 기본적으로 내과였던 탓이다.
아니, 그 이후 천년도 넘게 외과는 아예 의사 취급을 못 받았다.
루이 14세의 치질을 수술한 공으로 간신히 의과 대학 안으로 다시 편입된 게 외과란 말이다.
최대한 고상하게 말한 게 이거고, 천박하게 말하면 왕 똥구멍 후벼 주고 의사 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런가……?’
학회에서 들은 건데, 영국은 21세기에도 내과는 닥터고 외과는 미스터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하여간 21세기에도 여전히 신분제 유지하는 놈들답다.
‘Your grace’라는 말이 사극이 아니라 현실에서 튀어나온다니까?
아, 지금은 나도 그들의 일원이자 Grace이기도 하니 더는 비난하지 말자.
게다가 지금 내 앞에 몰려든 애들이 다 외과 지망인데, 이쯤 되면 내과랑 비슷할 정도로 많은 거 아닌가?
‘은사님 보고 계십니까……? 외과가 천대받지 않는 세상이 여기 있습니다.’
이건 21세기 대한민국에서조차 이루지 못했던 과업이다.
사실 외과가 내과보다 인기 있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내과는 머리 돌리고 입 터는 과지만 우리는 실제로 손을 써야 하잖아?
이렇게 말하면 내과는 인기과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손에 손잡고 같이 기피 과로 전락하고 있기는 했다.
외과가 훨씬 빨라서 그렇지 내과도 슬슬 가고 있다, 이 말이다.
“자, 데려와.”
“네!”
그러나 여긴 아예 다른 세상이다.
의사라고 하면 내과, 외과밖에 안 떠오르는 세상이다, 이 말이다.
의사라고 하기엔 사람 잡는 백정 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그렇다.
“낑낑.”
내 말에 조수들이 개 두 마리를 끌고 왔다.
이스트엔드에 버려져 있던 애들이라고 들었다.
내가 하도 개 실험을 많이 해서 그런가 꼭 개장수 앞에선 개들처럼 벌벌 떨었다.
사실 아까 마차에서는 오줌도 쌌다.
‘거참.’
말 못 하는 애들 죽이는 것보단 사람 죽이는 게 나은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이고 개는 개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인체 실험은 좀 줄여야 된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역사가 그렇게 흘러가진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인체 실험이라는 게 딱히 731부대(마루타), 아우슈비츠에서만 있었던 것도 아니거든.
20세기 자유의 수호자라 자부했던, 실제로도 여러 부분에서 그렇게 보였던 미국조차 자국민을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꽤 여러 차례 했다.
‘그래…… 그렇게 되는 건 막아야지.’
마음을 다잡았지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여러모로 의학의 역사는 피 위에 피를 쌓는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21세기에 사는 사람들은 필히 감사하고 살아야 된다.
그네들이 당연히 여기는 치료 모두 누군가의 희생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니까.
“마취하지.”
“네.”
내 말에 앨프리드가 가스 밸브를 돌렸다.
개 전용으로 만든 마스크를 뒤집어씌우고서였다.
개는 운명을 직감한 듯 발버둥 쳤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애초에 깨어날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용량이 높았기 때문이다.
“낑…….”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아 개는 조용해졌다.
그러자 앨프리드의 지도하에 다른 학생들 몇몇이 개를 시연용 강단에 마련된 수술대 위에 사지를 묶어 고정시켰다.
뭐…… 딱히 고정을 안 해도 움직일 일은 없어 보였다.
살짝 새는 것만 맡아도 정신이 나갈 거 같았으니까.
“칼.”
“네.”
하여간, 나는 콜린과 함께 개의 가슴을 열었다.
아무래도 개 뼈가 사람 뼈보다는 얇아서 수월하게 열렸다.
그래 봐야 리스턴이 나서는 거에 비하면 한참 못하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게 열린 가슴 속을 헤집어 심장을 찾았다.
이렇게 열 때마다 참 신기한 게 포유류는 생긴 게 거기서 거기 같다는 점이다.
심장 있고 좌우로 폐 있고.
심장 위로 대동맥이 나오고, 그 대동맥에서 관상동맥이 나오고.
“자, 이게 관상동맥입니다. 다들 아시죠? 안 보이면 가까이 와서 봐도 됩니다.”
보통 대한민국에서는 이렇게 말해도 맨 앞에 있는 애들 몇 명이 얼쩡거리다가 만다.
허나 대영제국의 열정적인 애들은 그냥 다 나온다고 보면 된다.
금세 단상 위는 도떼기시장이 되었다.
“나는 이 혈관이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라고 봐요.”
“에?”
“에이…….”
“아까 존이 용불용설을 말하는 거 보니까 아닌 거 같던데요.”
그중에는 어린 새끼들도 많다.
그 왜 다윈만 해도 15살에 에든버러 의과 대학에 갔다지 않나.
청소년이 대학을 가도 되나 싶겠지만, 평균 수명이 40대에 불과한 시대에는 그렇게 하는 게 옳긴 하다.
21세기 대한민국처럼 사회 진출을 서른 넘어서 하잖아? 그럼 ‘와, 이제 사회생활 뭔지 알겠다’ 싶을 때쯤 가야 된다.
뭐, 그래 봐야 어린 나이에 어른이 될 순 없는 법이다.
문화고 관습이고 지랄이고 호르몬이 사람을 그렇게 냅두지 않아요.
“용불용설이 성립하려면 실제로 쓰이는지 안 쓰이는지부터 증명해야지. 잘 보라고.”
나는 개의 관상동맥을 툭 하고 끊었다.
일부러 방금 물어본 학생의 얼굴을 향하게 하고서였다.
“읍, 우웁!”
개는 건강했기 때문에 혈압이 꽤 적당했다.
게다가 관상동맥은 퍽 얇아서 멀리까지 피가 날아갔다.
녀석의 얼굴이 피범벅이 되었다, 이 말이다.
아마 대한민국 같았다면 폭행 같은 걸로 고소당하거나 했을 거다.
하지만…….
“하하하!”
“까불더니!”
“여기 병신이야!”
여기서는 그냥 박장대소 한판 하고 만다.
피 맞은 놈도 하하하고 있었다.
“자, 피는 멎게 하고…….”
하여간, 지금 이 쇼의 목적이 녀석의 얼굴에 피 뿌리는 데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해서 나는 부리나케 혈관을 묶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이게 이 개는 심장이 멎어서 죽을 거야.”
“아니…….”
“심장으로는 피가 통하잖아요?”
“일단 봐.”
“으음.”
“으음…….”
참고로 지금 내가 묶은 건 좌측 관상동맥이다.
메인 가지라 이 말인데, 여기로 피가 안 가잖아?
그러면 사람이고 개고 죽는 데 몇 분 안 걸린다.
“어어어.”
그리고 순간 어마어마한 통증이 엄습한다.
마취 가스가 새어 나오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개가 잠시 부르르 떨었다.
다른 사람보다 리스턴이 제일 크게 놀랐다.
수술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보니 마취 중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뭔지 잘 알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
“통증이……?”
다리가 썩거나 팔이 썩어서 절단할 때 자칫 실수해서 띵띵 부은 부위에 칼을 잘못 대거나 하면 이럴 수 있을 거다.
그거 정말 아프거든.
물론 리스턴이야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한들 그대로 잡고 내려칠 수 있겠지만, 어설픈 초보들은 그대로 패닉에 빠져서 환자가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많을 거다.
마취라고 해 봐야 마취 가스와 에테르 정도가 다인 시대의 한계라고 보면 된다.
“어…….”
“심장이…….”
개가 그렇게 부르르 떨고 나서 얼마간은 심장이 뛰었다.
제대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뛰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바르르 떠는 수준에 머물다가 이내 멈춰 버렸다.
그러니까 개가 죽었단 얘기다.
“정말로……?”
“관상동맥이 막히면 사람이 죽는다고?”
“허어…….”
학생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리스턴이 입을 열었다.
“아니, 잠깐만.”
우매한 소리를 하기 위함은 아닐 거다.
“평, 자네도 알다시피 학회는 보수적이야.”
“네, 그렇죠.”
“개를 그래서 두 마리 데려온 거 같은데…… 맞나?”
“네, 맞아요. 저 개는 관상동맥을 건들지 않겠습니다. 대신 똑같은 용량으로 가스 마취를 하고 가슴도 열어 보죠.”
“그래, 그렇게 해도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 자네의 증인이 되어 줄 걸세.”
오히려 이 시대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조언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