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77)
검은 머리 영국 의사-477화(477/505)
477화 심장에서의 진보 [6]
또 다시 학회에 서게 되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리스턴과 앨프리드와 함께였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강연자고 이 둘은 보조 역할을 맡았다.
앨프리드야 뭐 아무것도 아니지만, 리스턴은 이제 대가라는 말도 모자랄 정도로 드높은 명성을 가진 사람인데도 보조를 맡은 상황이다 보니 모여든 모두가 귀를 기울이고 있다.
“여러분, 흉통을 호소하다가 갑자기 또는 수일, 수개월 내에 사망하는 경우를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나는 그들 앞에서 강연을 이어 나갔다.
19세기가 지옥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대보다는 나은 지옥이기는 해서 가능한 강연이었다.
지난 수천 년간 쌓여 온 기록들 중 쓸모 있는 것들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얘기다.
“잘 알고 있지.”
“협심증 말하는 거 아닌가?”
“무서운 질환이지…….”
심지어 이미 협심증이라는 말도 있다.
18세기의 어떤 영국 의사가 가슴 아파하다가 마침내 세상을 떠나는 질환이 있다고 기술한 덕이다.
실제로 William Heberden이라는 이름의 그 의사는 제법 많은 흉통 환자를 진료하고 또 연구했더랬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건 그러한 증상이 있을 때 어떤 경과를 밟다가 죽는지까지는 밝혀 냈던 반면 왜 그렇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밝혀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뭐…….
원래 세상이라는 게 그렇다.
특출한 개인이 탁탁 진보시킬 수는 없다는 얘기다.
‘난 예외지.’
학문의 발전이란 마치 이인삼각 같아서 한 분야만 미친 듯이 발전하는 게 불가능해서 그렇다.
내가 한 걸음 나가면 옆에서 또 한 걸음 나와 줘야 나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 않겠나?
그런데 세상에는 학문이 2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십, 수백 가지가 넘게 있다.
이걸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진보시킬 수 있을까?
사람이라면 불가능하다.
나처럼 정답을 알고 있다면 또 모르겠는데…….
사실 나조차도 다른 분야만큼은 발걸음을 떼줄 수 없다.
“그 협심증의 원인으로는 다양한 것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주로 움직임과 연관이 되어 있죠.”
해서 의학적인 설명만 하는 거다.
화학이나 물리 같은 건 잘 모르거든.
수능 공부 수준에서 멈추었는데 여기서 뭘 어떻게 하겠어.
심지어 사람의 기억력은 휘발되기 마련이지 않던가?
지금 수능을 보라고 하면 아마 국어랑 영어 말고는 다 조질 거다.
“William Heberden은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강력하고 특이한 증상이 나타나는 가슴 장애가 있는데, 그 증상은 그에 속한 위험에 비해 상당하며 극도로 드물지는 않다. 이 장애는 더 길게 언급할 가치가 있다. 가슴이 조이는 듯한 느낌, 그에 수반되는 불안감으로 인해 협심증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 겁니다.”
강연을 위해 뒤진 자료에서 나온 이름이다.
나름 한 반세기 전에 이름을 날렸던 영국 의사다 보니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걷거나, 특히 언덕을 오르거나 식사를 한 직후에 가슴에 고통스럽고 불쾌한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가만히 서서 쉬면 증상이 사라지죠.”
“그렇지.”
“그게 협심증 치료지.”
“설마 이 당연한 소리를 하려고 우리를 불렀나……?”
그는 제법 관찰을 잘했더랬다.
실제로 협심증이 딱 이렇거든.
문제가 있다면 서서 쉬는 게 치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애초에 협심증은 관상동맥이 점점 막히면서 발생하는 질환이거든.
그래서 평소보다 심장이 조금만 더 뛰어도, 그러니까 일을 더 하게 되어도 그에 필요한 혈액 공급을 못 하게 되니 통증이 생기는 거다.
서면 다시 혈액 필요량이 감소하니 잠시나마 괜찮아지지만 그런다고 혈관이 넓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점점 좁아질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더 좁아져서 아예 혈액이 흐르지 못할 지경이 되면, 쾅 하고 심근 경색이 생기는 거다.
“왜 이 증상이 생기는 걸까요?”
나는 이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또 웅성거림이 시작되었다.
“평소 조급해하던 사람들이 잘 생기는 거 같던데?”
“그렇지. 그리고 심약한 사람들도 잘 생기고…….”
“다윈? 그 인간이 그렇다고 하던데?”
놀랍게도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위험인자는 어느 정도 밝혀져 있었다.
특히 Type A에 해당하는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 협심증에 더 잘 걸릴 수 있다는 건 19세기에도 상식이었다.
물론 아직 Type A라는 말은 없지만.
아, 이거 혈액형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얘기다.
그냥 성격의 종류를 구분한 것일 뿐이다.
“조급하거나 심약한 사람의 특징은 뭐가 있죠?”
“음…….”
“뭐…… 인기가 없나?”
“일…… 일은 잘하던 사람이 그렇기도 하던데.”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제대로 답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이 사람들이 멍청해서라기보다는 시대의 한계가 여기까지라서 일 거다.
“주로 두근거릴 겁니다, 심장이. 저는 여기에 주목했습니다. 설령 성격이 느긋한 사람이라고 해도 처음으로 이렇게 청중 앞에 서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래, 거기. 일어나서 나와 보시죠.”
같은 이유로 친절하게 예를 들어 설명하게 되면 잘만 알아들을 거란 믿음이 있다.
실제로 리스턴은 상당히 여러 부분에서 현대화되지 않았나.
아마 20세기 초의 일반적인 의사보다는 더 나을 거다.
해서 나는 구경 하던 의사 하나를 불렀다.
“어…… 네.”
이제 더 이상 런던에는 내 말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된다.
왕조차 내 말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일반인이 어떻게 거스를 수 있겠나.
의사는 하릴없이 튀어나왔다.
나는 그를 리스턴 옆에 세웠다.
그러곤 마취 천재 앨프리드에게 그의 손목, 정확히 말하면 노동맥을 짚게 했다.
“얼마지?”
“한 80?”
“빠르네?”
“네.”
“더 빠르게 만들어 볼까. 잘 잴 수 있지?”
“네, 물론입니다.”
앨프리드는 그간 혹사당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이나 열심히 마취에 종사했다.
그 결과 심박동, 호흡수 심지어 혈압까지도 엄청나게 잘 재게 되었다.
동시에 리스턴은 협박의 달인이다.
“제가 생각할 때 심장 통증, 즉 협심증은 이러한 성격 때문에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훨씬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할 겁니다.”
“어, 어?”
내 말에 리스턴이 차고 있던 칼을 뽑았다.
영국의 지엄한 법은 당연하게도 일반인이 무기를 차고 시내를 활보하는 것을 금하고 있지만, 리스턴은 당당히 허가를 받은 상황이었다.
이건 무기가 아니라 수술 도구라는 이유를 대서였다.
“대동맥에서 심장으로 들어가는 혈관이 있다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아…… 관상동맥?”
“그거 흔적 기관 아닌가.”
“라마르크가 주장했던 용불용설에 의해서 말이지?”
이따위 소리 하는 게 한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관상동맥이 있다는 걸 아는 게 어딘가.
사실 대단한 거다, 이거.
거슬러 올라가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나오는데, 그 양반은 진짜 천재 맞는 거 같다.
솔직히 중세 시대 천재라는 사람들 보면 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해서 대단해 보이잖아?
근데 막상 그 사람들이 썼다는 책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천재라기보다는 그냥 좀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 같단 생각이 든다.
이것도 대단히 부드럽게 표현한 거고 솔직히 망상증 환자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의학서니 자연 과학서니 뭐니 썼다는 거 보면 가관이거든.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의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해부학만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다.
‘땡큐, 레오.’
관상동맥도 그가 처음 기술했다는 썰이 있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제대로’ 기술했다는 말은 아마 맞을 거다.
그림 봤는데 아주 잘 그렸더라고.
아무튼, 나는 말을 이었다.
“저는 협심증이 그 혈관, 즉 관상동맥이 좁아지면서 심장으로 가는 혈류가 부족해지면서 발생하는 증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에헤이…….”
“그럴 리가 있는가.”
“적어도 심장은 혈액 때문에 뭔가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기관이 아니거늘…….”
“설마하니 피영시인이 심장이 뛰어야 피가 돈다는 걸 부정하는 건가?”
당연하게도 반응은 뜨거웠다.
이럴 때면 나는 갑자기 내 후예가 북녘땅의 왕…… 위대한 수령 동지 김일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일 목소리 큰 놈 잡아다가 곡사포로 분해해 버리고 싶어지거든.
‘말 그대로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기억이 있는 데다가 이곳 영국도 기본적으로는 의회 정치 제도를 따르고 있다.
해서 나는 곡사포를 꺼내는 대신, 리스턴으로 하여금 칼로 방금 끌려 나와 있던 의사의 옷을 자르게 했다.
“으아!”
“어때?”
“110회요.”
“으아아아.”
“이야 대범하네.”
“120회.”
그러자 그 의사의 심장 박동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리스턴 같은 놈이 검을 자기한테 휘둘렀는데 어찌 멀쩡할 수 있겠어.
“가슴 아파?”
“네?”
“가슴 아파? 더 뛰게 해 줄까?”
“아, 아니. 아니! 안 아픕니다!”
당연하게도 나는 괜히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이건 인체 실험도 뭣도 아니니 별 뜻 없이 해도 될 거 같긴 하지만…….
아무튼, 이로써 모든 사람이 심장이 더 뛴다고 해서 흉통이 발생하는 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좋아. 더 지원하실 분?”
증명했다는 게 나만의 생각일 수 있긴 하지 않겠나.
해서 혹 아직 이해가 안 간 사람들이 있는지 찾아 보았다.
‘음……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구만.’
단상이 좀 높기도 하고 사람들이랑 거리도 있다 보니 저게 고개를 끄덕이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눈을 피하는 것인지 헷갈리는데…….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다들 이해하셨군그래. 좋아. 역시 똑똑한 사람들이라 얘기가 빨라.”
나는 껄껄 웃으면서 잠시 우리를 도와줬던 의사를 놓아주었다.
의사는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힉힉’거리면서 자리로 돌아갔다.
가던 중에 다리가 자꾸 풀려서 학생 중 하나가 부축을 해 주었다.
혹시 몰라서,
“가슴 아프진 않지?”
“네, 네!”
한 번 더 확인하는 세심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혹시 아프다고 하면 바로 가슴을 열…… 아니 아질산 아밀을 먹이고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 주려 했는데 약간 아쉬웠다.
“자…… 이제 옛날 이론이 틀렸다는 걸 증명했으니, 제 이론이 맞다는 걸 증명하죠. 리스턴 박사님?”
“아, 리스턴입니다.”
리스턴은 어느새 칼을 다시 칼집, 아니 수술 기구함에 넣은 후였다.
핏자국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피 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하다.
지금까지 리스턴이 자른 팔다리가 대체 몇이란 말인가.
만약 이 세상에 피를 마시는 마검이 있고 그게 저 검이었다면 세상은 천마가 아니라 억마를 마주했을 거다.
“개의 관상동맥을 묶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가 심장 마비로 사망하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지금 런던에 감히 제 말을 의심할 만큼 우매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조선 말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죠. 내 백 마디 말보단 보여 주는 게 나을 테니…… 데려와.”
“네!”
리스턴은 억마에 걸맞은 위엄을 보이면서 실험을 준비했다.
확실히 같은 편일 땐 저 형만큼 든든한 사람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