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8)
검은 머리 영국 의사-48화(48/505)
48화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냐…… [1]
블런델은 수다쟁이였다.
아니,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하아.”
하여간 나는 덕분에 밤을 새워야만 했다.
환자 때문도 아니고, 놀다가 그런 것도 아니고, 아저씨랑 대화하다가 밤을 새우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한숨을 여러 번 내쉰 참이었다.
그게 어떤 사인으로 보인 탓일까.
“왜…… 왜요. 저…… 죽어요?”
말 그대로 죽다 살아난 환자가 눈을 끔뻑이며 나를 보고 있었다.
진짜로 불안해 보였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정말 험악했던 하루가 아니겠나.
아니, 하루는 지났나?
하여간 머리 아파서 왔다가 피 뽑히고, 실신했더니만 관짝에 가두고.
이제야 겨우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참이니 이런 얼굴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 아뇨. 고비는 넘겼습니다. 환자분, 이제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 아닌 다른 놈이 있었다면 또 이상한 소리나 했을 거 같기는 한데.
내가 누군가.
나름 친절한 의사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 말이지.
심지어 칭찬 게시판에 오른 적도 있다고.
‘의사라면 당연히 친절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 그때 레지던트였다.
이름처럼 병원에 살아야 할 만큼 뒈지게 바쁜 상황에서 친절하기까지 했다는 건, 어찌 보면 내 인성에 대한 입증 같은 거 아닐까.
“아…… 감사합니다.”
“그래요. 그, 맞다. 혹시라도 닥터 제멜 보게 되면 머리 아픈 건 이제 나았다고 하세요.”
“네? 아, 네네.”
“근데 뭐…… 아프진 않아요? 아직?”
당연하겠지만 단순히 친절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우리 병원이 나름 또 국내 제일이었단 말이지.
한국에서 제일이었단 말은, 대충 임상적 능력만 놓고 보면 세계 최고라 봐도 무방하다는 뜻이고.
해서 어떻게 했나.
내가 진료하는 걸 찍어서 보여 주면서 피드백을 주더라고.
공개처형을 당하는 느낌이긴 했는데, 하여간, 그러고 나서 늘기는 늘었다.
“아…… 좀 아프긴 한데…….”
“네, 그래도 제멜한테는 비밀입니다. 또 죽어요.”
“네네.”
환자는 진짜 말 그대로 몸서리를 쳤다.
눈에 잠시 공포가 스쳐 지나갔는데, 이거 이대로 괜찮나 싶었다.
‘PTSD…… 올 만하지.’
올 수밖에 없지 않겠나?
세상에…… 산 채로 관짝에 갇혀서 묻힐 뻔하다니.
진짜 나 아니었으면 그대로 흙을 덮어 버렸을 텐데…….
안에 갇혀 있을 때 후두둑 모래 날아드는 소리까지 들렸어 봐라.
진짜 사람 미쳐 버리지.
“두통에 대해서도 일단은 저랑 봅시다. 피 같은 건 안 뽑을 테니까, 걱정은 마시고요.”
“네.”
그건 그렇다 치고, 확실히 환자는 어제보다 나아 보였다.
이러다 또 감염이 진행되면 어떻게 될지 모르긴 할 텐데…….
그래도 뭐…….
어제보다는 낫다는 게 중요했다.
핏기도 좀 돌고, 그랬다.
젊은 사람이라 그런가, 골수 기능이 아주 좋은 모양이었다.
“일단 식사도 잘하셔야 해요. 당장 너무 무겁게 먹는 건 그러니까, 수프라도 해 오라고 일러두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먹는 건 잘 먹어야 했다.
피 만드는 데 드는 열량이 또 장난이 아닐 거거든.
게다가 내가 아무리 신경을 썼다손 쳐도 균이 한두 마리 들어간 건 아니었을 테고.
제멜 놈이 밀어 넣은 균이야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일 테니 싸울 준비도 해야 했다.
영양이 중요하다, 이 말이었다.
괜히 엄마들이 잘 먹어야 낫는다고 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이따 다시 올 테니까 쉬고 계셔요. 일단 그 뭐야. 제멜만 조심합시다.”
“네네.”
계속 있는 게 안전하긴 할 텐데, 그렇다고 계속 있을 수는 없지 않겠나.
해서 병실에서 나와 강의실로 향했다.
진짜로 날밤을 새웠더니 살짝 어지러웠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난 이 시대 평균에 비해 영양 상태가 아주 좋은 축에 속한다는 점이었다.
동양인이면서 런던 평균 체격보다 더 큰 것도 그 덕일 터였다.
게다가 30대를 훌쩍 넘어가던 전생에 비하면 지금의 내가 훨씬 어리지 않나.
역시 의학적으로는 나이가 깡패였다.
“응?”
그렇게 비몽사몽간에 강의실에 닿으니 안이 좀 소란스러웠다.
시계를 보니, 수업 시작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도 그랬다.
“뭐야?”
“어. 콜린이 안 왔대.”
이럴 땐 물어보면 될 일 아니겠나.
해서 나는 조지프, 앨프리드에게 물었다.
둘 다 어제 아주 꿀잠 잤는지 뺀질뺀질한 얼굴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학생에게 의사의 마음을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원래 환자를 좀 봐야 환자 생각하는 마음이 생기는 법이거든.
“수업 시작은 아니잖아. 안 올 수 있는 거 아냐?”
“어…… 그게 어제 집에 안 들어갔대.”
“잉……? 진짜로? 걔 귀족 아니야?”
“높은 귀족은 아니지만, 돈 많은 귀족이지.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고.”
“허.”
하여간 그렇게 반쯤 포기하고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아니, 아주 의외는 아니었다.
사실 어제 그 새끼 눈깔이 좀 그랬거든.
기껏해야 나한테 시비 걸고 말 거라고 여겼는데, 대신 술이나 풀러 갔나 싶었다.
그랬으면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착하단 얘기였다.
‘인종차별은 하지만 심성은 곱다 이건가?’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이 시대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선량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라는 말은 21세기에도 있지 않던가.
“블런델 교수님이 방금 묘지에서 온 연락 받으셨어.”
“응? 죽었대?”
상처받아서 자살이라도 한 건가?
그럼 아무리 인종차별주의자라 해도 미안한데?
“아니, 죽기는 왜 죽어. 그…… 아무래도 우리 따라 하려고…… 묘지 발굴하러 간 거 같은데…….”
“아…… 자기도 죽은 사람 살려 보겠다고? 아니, 그게 어느 묘에 죽지 않은 사람이 있는 줄 알고.”
“그러니까 말이야.”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사실 뱁새랑 황새도 아니지 않나.
자랑이 아니라, 내게는 인류가 수백 년을 쌓아 올린 지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쌓이는 속도가 수백 배 늘었고, 그 정확도야 비교할 것도 없었다.
‘불쌍한 새끼.’
쯔쯔 하고 혀를 차고 있으려니, 누군가 다가왔다.
아주 친근한 어투였다.
로버트 리스턴은 아니었다.
의외로, 블런델이었다.
“닥터 피영.”
심지어 닥터라고 부르고 있었다.
하긴, 어제 둘이 나눈 대화가 어마어마하긴 했더랬다.
주로 내가 가르치는 느낌이었는데, 아마 그렇게까지 느끼진 못했을 것 같고…….
천재와의 대화가 도움이 너무 크게 되었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하여간, 그래서 그런가 블런델은 자기도 밤을 새운 주제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같이 가지 않겠나? 그럴 이유는 없긴 한데, 가면서 따로 할 이야기가 있네.”
“아…… 네. 그럼 이렇게 둘도 같이 가도 될까요?”
둘이 그렇게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으려니, 콜린의 똘마니들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로버트 리스턴 하나만 해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블런델까지 이러니 똥줄 좀 타지 않겠나.
이건 솔직히 완전 얻어걸린 건데, 블런델이 로버트 리스턴한테 밀려서 그렇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름 산부인과의 대가란 말이지.
지금 시대에는 사람 죽이는 대가라는 말과 거의 비슷하긴 한데…….
그래도 영향력이 있다, 이 말씀이었다.
“어, 그러지. 어려울 게 있겠나. 그러고 보니 이 둘도 어제 같이 있던 사람들이구만.”
“네, 교수님.”
“그럼 가세.”
그런 사람이 따로 부르는 것도 모자라, 긴히 할 얘기까지 있다고 하니 마음이 어떻겠나.
꿀꺽.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그럴 만도 했다.
콜린이야 라인을 타건 못 타건 쭉쭉 갈 만한 배경이 있다지만, 옆에 있는 놈들까지 데리고 갈까?
쟤들 그냥 옆에서 아부 떠는 놈들인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라인을 바꿔?
그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나야 인류를 위하는 마음에서 열려 있겠지만, 지들 스스로가 어렵다는 얘기였다.
다그닥.
하여간, 우리는 마차에 탔다.
앨프리드 선배네 아버지가 준비해 주는 마차랑은 아무래도 좀 차이가 있었다.
크기는 더 큰데 뭐랄까…….
후지다고 해야 하나?
말하다가 자칫하면 혀 물리게 생긴 수준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탄 게 이게 마차인지 말인지 모르겠다, 이 말이었다.
“그래, 긴히 할 얘기란 게 말이야.”
블런델은 그럼에도 별 어려움 없이 말을 꺼냈다.
이런 걸 맨날 타는 모양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수많은 주의를 거듭해야만 했다.
“네.”
“사실…… 이번에 그 환자 같은 일이…… 꽤 있을 거란 의견이 있네.”
“아…… 네.”
앨프리드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같은 말도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하니까 살짝 느낌이 달랐다.
뭐랄까.
더 신빙성이 있달까.
물론 그 전부터 그럴 거란 생각은 하고 있었다.
세상에 별다른 검증도 없이 그냥 묻다니.
“얼마 전에…… 런던 근교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조사가 있었어. 극비리에 진행된 건데…….”
게다가 극비 운운하니까 더 흥미가 동했다.
나뿐만 아니라 나머지도 싹 다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무연고 시신이 담긴 관을 보니, 긁어 놓은 흔적이 많더군.”
“밖에서요?”
“아니, 안에서.”
“아.”
안에서 긁었다.
이게 무엇을 말하는 걸까.
산채로 묻혀서 꺼내 달라고 발버둥을 쳤단 말밖에 더 되겠나?
“게다가 시신들의 손톱은 다 빠져 있었고, 손가락도 죄다 부러져 있는 경우가 많았네.”
“아…….”
“그래서 대책을 세웠는데, 그게 러스트 벨이란 것일세.”
“러스트 벨……?”
그게 뭐야?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블런델을 보고 있자니, 당연하게도 말을 이었다.
“쉽게 생각하게. 그냥 종을 달아 두는 거야.”
“종을요……?”
“종에 달린 끈을 관 안에 같이 넣는 거지. 만약 안에서 깨어나면 흔들라는 용도로…… 아주 최근에 만들었어.”
“아…… 좋은데요?”
그래.
관 그거 쥐어뜯고 하는 것보다는 종 치는 게 낫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블런델이 한숨을 쉬었다.
무언가 생각대로 되지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겠나.
“지금 그거 때문에…… 하아.”
블런델은 차마 말도 잇지 못하더니만, 마차 밖을 가리켰다.
하도 싸구려 마차다 보니 유리창도 없었다.
그냥 뻥 뚫려 있다 이 말이었는데, 그래서 오히려 밖을 내다보기엔 더 나았다.
아무리 좋은 유리도 이 시기에는 불순물 때문인지 뭔지 살짝 뿌연 기가 있었다.
“가서 보지. 콜린이 정말로 많이 놀란 모양이야.”
“놀라요?”
“그래. 종소리가 들려서 끌어 올려 봤는데…….”
“음.”
당장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산 사람이 있었다는 거 아닌가.
그럼 소원대로 된 거 아닌가.
근데 왜 놀라?
병신이야?
하면서 발걸음을 놀리고 있으려니, 역시나 역한 냄새가 풍겨 왔다.
어제보다 훨씬 더했다.
“어후.”
무덤지기조차 한숨을 쉬고 있을 지경이었다.
저런 인간이 저럴 정도니 지금 냄새가 일상적이지 않을 거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하긴, 이런 게 일상적이면 안 되긴 할 것 같았다.
그건 지옥이잖아.
“으. 으.”
더 가까이 가서 보니, 주저앉아 떨고 있는 콜린이 보였다.
블런델은 잠시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 주더니 무덤지기에게 물었다.
“그 관, 어디에 있나.”
“아, 저기…… 빨리 다시 묻으면 안 될까요?”
“그럴 때가 아닐세. 문제가 생긴 거 아닌가!”
“네네. 죄송합니다.”
분위기가 심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