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80)
검은 머리 영국 의사-480화(480/505)
480화 먼 길 가기 전에 [1]
일본은 멀다.
21세기에도 영국에서 일본은 꽤 멀다.
비행기 타도 거의 14시간 정도 걸릴 정도니까 뭐…… 말 다 한 셈이다.
19세기 배 타고 가면 얼마나 걸릴까?
‘중국보다도 더 먼데…… 심지어 이번엔 상선이라고 했지?’
그나마 아편 전쟁 아니, 아니!
영청 전쟁 때는 군함이었다.
군함이나 상선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속도가 아예 다르다.
군함 쪽은 싣고 가는 게 진짜 딱 우리 먹을 거밖에 없었잖아.
심지어 탄약도 인도에서 실어서 거기까지 갈 때는 거의 배가 날아가나? 싶을 정도로 빨랐다.
하지만 상선은…….
“이야…… 이번에 가면 거의 내년에나 보겠는데?”
앨프리드의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아니 이 선배의 말이야말로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상단 운영하는 집안 놈 말인데 믿어야지 별수 있나?
“가기 전에 싹 정리하고 가야겠네.”
“그래야지. 일단 마취도 좀 더 알려 줘.”
“음…… 마취는 솔직히 더 알려 줄 것도 없을 거 같은데.”
“그 고무로 된 관을 만들면 훨씬 나을 거 같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긴 한데. 그건 약쟁이 아니, 화학자 아저씨가 힘을 낼 일이지 내 일은 아니잖아. 당장 다음 달이면 갈 텐데 그 아저씨 능력으로 되나, 그게.”
내 말에 앨프리드의 표정이 좀 묘해졌다.
뜻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단 뜻이다.
내가 되었건, 이놈이 되었건.
“아니, 그게 아니라…… 고무로 된 관이 나온다고 해서 바로 환자한테 쓸 수는 없잖아.”
“그렇지. 그걸 어떻게 써. 어떨지 누가 아나.”
21세기에 삽관할 땐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삽관하는 관 자체에는 신경 쓴 적이 없다.
아, 신체 사이즈 별로 기도 너비가 다르기 때문에 크기나 굵기는 신경을 썼지만 소재니 뭐니 하는 건 아예 한 번도 쳐다본 적도 없다.
그냥 있어서 썼다.
공기처럼 당연히 병원 가면 있는 그런 물건이었다.
‘내가 잘해서 쑥쑥 들어가는 줄 알았지.’
심지어 21세기는 그 끝에 렌즈도 달 수 있다.
그럼 안을 내시경처럼 훤히 들여다보면서 집어넣을 수 있다.
괜히 21세기 대학병원에서 예방 가능한 죽음 비율이 뚝뚝 떨어지는 게 아니란 얘기다.
그냥 불 비추면서 반쯤은 감으로 넣던 시절이랑 직접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면서 넣는 시절이 어떻게 같겠어?
‘근데 그게 아니네.’
당연했던 물건이 없어지니 이게 참 끔찍하다.
철로 된 관은 아무리 주의를 한다 한들 일정 확률로 이가 깨진다.
이전보다 잘 보이지도 않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고무관이 나온다면 그걸 온전히 믿을 수 있을까?
중간에 끊어져서 기도 안에 남기라도 하면 어쩌나?
구멍 나서 가스랑 산소가 다 새면?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앨프리드가 말을 이었다.
이미 나와 같은 생각을 했었는지 상당히 진중했다.
“신뢰도가 떨어지잖아, 고무관은. 튼튼하지 못할 테니까.”
“그렇지.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지.”
“당연히…… 실험부터 해야 되지 않겠어?”
“아…….”
이제야 알았다.
앨프리드가 뭔 얘기를 하고 싶은지.
“경찰한테 얘기를 좀 해 줘. 우리끼리 가서 부탁하는 건 아무래도 좀 무리가 있잖아.”
“그러니까…… 죄수 상대로 먼저 고무관을 찔러 넣고 싶다?”
“그렇지.”
“죽더라도?”
“죽여 마땅한 놈들을 대상으로 해야지.”
“으음…… 뭐, 어쩔 수 없긴 한데…… 그걸 납득을 하려나.”
나나 리스턴의 위치는 적어도 런던에서만큼은 상당히 특별하다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는 실험은 실험이 아니라 징벌로 여겨질 정도니 말 다 한 셈이다.
하지만 앨프리드는…….
아무리 학회 데뷔를 했다고 해도 듣보잡이다.
“납득을 시켜 줘.”
“어떻게?”
“그…… 주술로?”
“주술? 음.”
예전 같았으면 주술 얘기하는 순간 한숨부터 쉬었을 거다.
아니, 의사도 과학자인데 주술이라니?
말이 되냐?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뭐가 되었건 가용한 자원은 모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주술이라…….’
해서 나는 최근에 주술사가 지금까지 해 온 일을 정리한 바 있다.
아, 그 주술사가 나는 아니고 그냥 역사적으로 주술사라고 분류된 사람들이 한 일이다.
당연히 치료도 있다.
애초에 옛날엔 병을 하늘이 내리는 병이나 귀신이 들려서 생기는 것이라 믿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모든 문화에서 그랬잖아?
‘하지만…… 제갈량을 보면……?’
내가 지향하는 바는 약간 제갈량과 같은 이미지라고 보면 된다.
부두니 뭐니 하는 것들은 좀 그렇잖아.
내가 그래도 학자인데 제갈량 정도는 되어야지 않겠나.
괜히 학회나 이런 데서 탕 끓여서 팔 때 갓 쓰고 두루마리 두르고 하는 게 아니다.
심지어 최근엔 아프리카에서 구해 왔다는 진귀한 타조의 깃털로 만든 부채도 마련했다.
‘예언을 하지.’
그래, 주술사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게 어찌 보면 예언 아니겠나?
예언 그거 다 사기 아닌가 할 수도 있는데…….
이게 또 실제로 이루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SF 영화 보면 리X알가입!도 거짓 예언이었으되 실제 예언이 되잖아?
나나 거기 나오는 주술사들인 베니 X서리트나 다를 게 뭔가.
아니, 내가 낫다.
난 실제로 미래를 봤어.
“좋아. 그건 내가 해결 가능할 거 같아.”
“오…… 역시…….”
“이럴 게 아니라 다 모이라고 해.”
“어, 어어. 알았어.”
해서 다들 모이라고 했다.
왜냐?
내가 없을 때 마취 쪽에만 진보가 있을 거 같진 않아서 그렇다.
뭐…… 아무 진보도 없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희망을 품고 싶다.
“조지프는 뭐 하고 싶냐. 나 없을 때?”
“일단 안과 수술.”
“음…… 안과 수술…….”
끔찍한 광경만 떠오른다.
간신히 품고 있던 희망이 산산조각 나는 거 같아.
하지만 나는 이미 약쟁이 아저씨에게 의뢰해 놓은 게 있다.
바로 눈알에 박아도 안전한 렌즈에 대한 의뢰다.
불가능할 거 같긴 하다.
그거…… 2차 세계 대전 때 나왔거든.
“그거 말고는 없나?”
“소독. 결코 소독.”
“아, 소독.”
그에 비해 소독은 나올 법도 하다.
솔직히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소독약들…….
이거 말이 좋아 소독약이지 사실상 피부에 바르는 독약이잖아.
어떻게든 개선을 하긴 해야 한다.
“그래, 좋아. 너도 그럼 하도록 하고. 콜린은?”
“저는 매독 치료제요. 비소를 어떻게 하면 나올 거 같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아, 왜? 너 걸렸냐?”
“아, 아뇨. 저희 형님들이…….”
“아.”
콜린.
얜 충신이다, 이제.
그런 놈이 부탁하는데 들어줘야지 않겠나?
게다가 내 기억에 비소 기반으로 해서 살바르산이라고 하는 치료제가 나왔었던 거 같다.
비소 기반이다 보니 당연히 독성이 꽤 세서 사람이 죽어 나가긴 했지만…….
페니실린이 완전히 상용화되기 전까지 수십년간 매독을 위한 유일한 치료제로 쓰였다.
“그래, 그거야 뭐…… 나오는 거 같다고 하면 콜린이 죄수들 모아서 계속 실험해.”
“네! 감사합니다!”
달리 말하면 사람 죽이라고 한 거나 마찬가진데 이렇게 좋아한다.
참, 여기가 런던이라 다행이다.
완전히 슬럼화되어서 죄수가 많을 수밖에 없잖아?
‘뭐…… 슬슬 죽일 놈이 모자라면 수입이라도 해야지.’
다행히 가까운 곳에 우리보다 더 슬럼화된 곳이 하나 있다.
파리라고…….
거긴 진짜 지옥이다.
센강은 템스강보다 훨씬 작거든.
거기는 자연적으로 부양 가능한 인구가 아무리 높이 쳐줘도 50만도 안 될 거다.
근데 인구가 수백만이다 보니 살기가 어떻겠어?
지랄 같다 보니 범죄자들도 엄청 많다.
심지어 다스리는 놈들도, 다스림을 받는 놈들도 누구다?
빠게뜨다.
‘잘하겠냐, 걔네가.’
기왕 경찰서 가서 쇼하는 김에 빠게뜨 관련 예언도 하긴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블런델 교수님은요?”
“나? 나야 늘 산모만 생각하지. 어떻게 하면…… 응? 더 안전하게 아이들을 분만할 수 있을까. 이것만 생각한다네.”
“또 있다면?”
산과는 솔직히 자신 없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다.
뭐…… 겸자니 뭐니 하는 도구는 알지만 솔직히, 산부인과는 해당 과 수련받은 전문의가 아니면 거의 문외한일 수밖에 없다.
“유방암?”
“아, 유방암.”
다행히 블런델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질환을 말했다.
마침 프랑스에 있을 때 수술 했던 환자에게 얼마 전 편지가 오기도 했더랬다.
거기 의사들 말로는 이미 죽었을 몸인데 여전히 살아남아 기쁘단 내용이었다.
뭐, 기적이긴 하다.
19세기에 암 환자가 살아남았다는 건…… 어떻게 봐도 재림 예수 수준 아닌가?
‘그나마 암 중에 유방암이 건드리기 만만하긴 하지…….’
다른 조직에 생기는 암은 일단 영상 검사가 없이는 미리 알기도 어렵다.
안에 숨어 있으니까.
물론 혀 같은 곳은 보이는 곳에 있긴 하지만, 이건 잘라 내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이다.
재건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그에 비해 유방은 발견하기도 쉽고 절제하기도 쉽다.
재건하는 거야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재건이 죽고 사는 데 영향을 끼치진 않잖아.
“유방암은 뭐…… 죄수 상대로 하긴 그렇잖아요?”
“의학이라는 게 무조건 실험을 통해 발전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건 그렇죠.”
“하지만 많이 해 봐야 늘긴 하겠지.”
“그거야 당연한…… 아, 환자가 안 와요?”
“어차피 죽을 거라 생각하니까, 잘 안 오지.”
아프면 병원에 간다.
이 당연한 명제가 진리로 자리하게 된 건 20세기 중후반의 일이다.
그전까지 병원은 정말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야 가는 곳이었다.
19세기 런던은 거의 뭐 전생에 죽을죄를 지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공간이다.
그나마 우리 병원은 악명을 많이 씻어 내고 있지만, 말끔해지기엔 지난 세월 동안 쌓은 업보가 너무 크다.
그렇다 보니 큰 병에 걸렸다 싶으면 그냥 조용히 삶을 마감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이건 제가 어떻게 해 드릴 수 있을 거 같네요.”
“그래? 여자 환자들도 부를 수 있나?”
“하하…….”
내가 맡고 있는 역할이 주술사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난 쇼닥이기도 하다.
그것도 제법 인기 있는 쇼닥이다.
특히 상류층 여성에게 그런데, 차기 여왕이신 빅토리아 공주께서 내 해부 쇼를 좋아해서 그렇다.
“걱정 마시죠.”
유방암 검진…….
참 중요한 건데 잊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의 위시 리스트를 정리한 나는 마지막으로 똘똘이 존 스노를 돌아보았다.
녀석은 다 안다는 듯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통계로 싹 정리해 놓겠습니다. 이 모든 실험들이 헛되지 않게요.”
“녀석…….”
참으로 대견하지 않은가.
확실히 이놈 하나가 다른 의사 100명보다도 나은 느낌이다.
임상 쪽으로는 모르겠지만 연구 쪽으로는 확실히 그렇다.
그렇게 병원 쪽 일을 마친 나는 부모님을 찾아뵀다.
이렇게 말하니까 거의 같이 살다시피 하면서 오랜만에 부모 만나는 호로 쌍놈 같은데, 거의 매일 본다.
조선 시대 양반처럼 매일 문안 인사는 못 드려도 한 끼는 보통 같이 먹는다.
허나 오늘처럼 의사의 눈으로 딱 바라보는 건 퍽 오랜만이었다.
“두 분 다 늙으셨군요.”
“한다는 소리 하곤…….”
“빨리 가라는 게냐?”
어째 우리 부모님은 날 호로 쌍놈으로만 보는 거 같아 아쉽긴 하다.
하지만 난 호로 쌍놈이 아니기 때문에 얼른 풀어 드리기 위해 입을 털었다.
“제가 먼 길을 떠나게 되어 그사이에 별일 없으실지 좀 보려고 합니다.”
“뭘 봐.”
“아니…… 그런 거 하지 마라. 난 네가 뭐 하겠다고 하면 이제 너무 불…… 어어. 이놈들! 무엄하다! 어딜 감히!”
애들도 풀었다.
‘검진’을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