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81)
검은 머리 영국 의사-481화(481/505)
481화 먼 길 가기 전에 [2]
사람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
일단 그렇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21세기 사람들은 너무 많은 건강 상식을 알고 있어 탈이지만, 여긴 그렇지가 않다.
가령 ‘감기에 걸리면 물 많이 먹고 쉬어야 합니다’라고 하면 21세기에서는 뻔한 소리에 지겨워하는 반면에(근데 이게 맞다) 여기서는 ‘와, 그래요?’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이쪽이 아무래도 더 좋을 거 같지만 대체 어디서부터 모르는지 알 수가 없으니 모든 것을 짚어 줘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 안다니까?”
“짜게 먹지 마라…… 맵게 먹지 마라…… 달게 먹지 마라…… 그럼 너는 네 어미더러 영국 음식이나 처먹고 살라는 거냐?”
게다가 당연한 소리를 해도 받아들이는 태도도 다르다.
21세기는 지겨워는 할지언정 ‘이 새끼가 결국은 정론을 얘기하는구나’ 하는 데 반해 여기서는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물론 합당한 이유를 대기도 한다.
“아니…… 영국 음식만 먹으라는 얘기는 아니죠. 얘네는 맛도 없고, 그렇게 건강하지도 않아요.”
“그럼 뭐 먹으라고.”
“그냥 소금 간을 조금만 줄이라니까요?”
“이 녀석이 이거 돈 아끼려고 이러는 거 아니야?”
“아니…… 아버지. 제가 버는 돈이 얼만데 아낍니까. 이게 건강할 수 있는 방법이라니까요? 그리고 어머니. 제발 그…… 색깔 이쁜 디저트 좀 먹지 말라니까?”
영국 음식만 먹어라.
이건…… 사실상 식고문에 해당하는 일이다.
간혹 깨어 있는 척하는 사람이 ‘영국 음식에 대한 악평은 과장된 것이다!’라고 하는데…….
시발 와서 먹어 봐.
먹어 봐!
고급 요리랍시고 오이 샌드위치 들이미는데 진짜 내가 열 뻗쳐서…….
“니들 잘 봐. 갔다 왔는데 우리 부모님, 특히 어머님한테서 중금속 중독 티가 난다? 그럼 바로 삽관 실험이야.”
“힉.”
“네, 네!”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뭐, 그건 그렇다고 쳐도 음식 교정을 하긴 해야 한다.
특히 어머니가 최근에 푹 빠진 저놈의 디저트는 다 없애야 되는데…….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해롭다고 말해도 들어 처먹질 않아서 그렇다.
조금만 먹으면 오히려 건강할 수 있다는 둥 하는데…….
상식적으로 비소랑 납이랑 수은이 어떻게 건강에 좋을 수가 있겠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계이긴 하지.’
심지어 비소는 그걸로 실험까지 해서 사형수들이 죽어 나가기까지 했는데도 비소 벽지만 좀 줄이는 데 성공했을 뿐 여전히 약으로도 쓰이고 있을 지경이다.
이럴 때 보면 나 이렇게 만든 놈이 신이 아니라 그냥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인가 싶기도 하다.
말이 안 되잖아.
진짜 사람들이라면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운동도 강제로 시키고.”
“네!”
하여간 먹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건강하게 조금만 먹고, 움직이는 게 필요하다.
가장 좋은 운동은 당연히 적당한 근육 운동과 달리기다.
몸에 좋은 약이 쓰다는 말이 있듯, 사실 이 두 개가 제일 힘들다.
“평아…… 왜 그러니. 이제 네 아비, 어미도 늙었어! 편하게 살다 가야지!”
“편하게 살다 가라고 시키는 거예요. 왕께서도 똑같이 하십니다.”
“하아…….”
“그리고…….”
“뭐가 또 있어?”
“그러니까 병원에 왔죠.”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은 물론 건강하게 사는 데 있어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은 생길 수 있다.
인생은 운빨X망겜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지 않겠나?
저렇게 사는 건 단지 내 돌림판에 건강의 면적을 늘리는 데 불과하다.
운명이 되었든지 신이 되었든지 간에 그네들이 던진 다트가 질병에 꽂히면 그냥 그대로 아프게 되는 거다.
“검진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검진……?”
“뭔 소리야, 또.”
다행히 방법은 여전히 있다.
아무리 치명적인 병이라 해도 대개는 조기 발견하면 치료가 되거든.
물론 그러기 어려운 질환들이 있다.
가령 폐암 같은 건 21세기에서도 조기 발견이 어렵다.
증상이 없다는 게 아니라 미리 검진을 했는데도 발견이 안 되는 수가 있다는 얘기다.
‘그런 걸 지금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고…….’
21세기에도 안 되는 걸 19세기에 하려고 드는 건 진짜 주술사나 할 법한 짓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주류 의학이 포기한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고 덤벼드는(주로 큰돈을 받고) 놈들이 있는데 걔네가 하는 짓이 대개 그렇다.
사기란 거다.
내가 설마하니 부모한테 사기를 치겠나?
방법이 있는 것만 하려고 한다.
이미 검증도 됐다.
“일단 어머님은 여기 나이팅게일 간호사와 잠시 면담을 좀 하세요.”
“으응……?”
아, 참고삼아 말하는데 우리 어머니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다.
19세기 조선에서 태어나 머나먼 타향 영국에 와서 살아 냈는데 만만한 사람이면 그게 더 이상하다.
하지만 어머니도 나이팅게일을 보자 뭔가 깨달음이 있었던 거 같다.
“이쪽으로 오시죠.”
“어…… 그래요.”
원래 하룻강아지나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부는 법이다.
강자들끼리는 서로 알아본다는 얘기다.
상대적 약자가 된 어머니는 나이팅게일을 따라 옆에 마련된 방으로 향했다.
거기서 유방암 검진도 받고, 자궁경부암 검진도 받게 될 거다.
자궁경부암 검진이 되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건 그냥 거친 솔로 조직 채취한 후에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되는 일이다.
내가 비록 현미경으로 세포 들여다본 게 학생 때가 마지막이긴 하지만 적어도 암세포와 정상 세포는 구분할 수 있다.
-어어, 이 사람이 지금…….
-가만히 있어요!
나름 방음이 되어 있는 방이었지만 저렇게 대놓고 소리를 지르면 별 소용이 없는 법이다.
아버지는 그쪽에서 들려온 소음과 함께 불안감이 엄습했는지 나를 바라보았다.
동그래진 눈을 하고서였다.
그래 봐야 동양인이라 그렇게 커지지도 않았다.
허구한 날 양놈들이랑 부대껴 사는 내게는 딱히 임팩트가 없었다는 얘기다.
“자, 그럼 아버지. 저기 손 짚고 서 봐요.”
“이 벽에……?”
“네.”
“왜?”
“검진하려고요. 좀 불편할 수 있어요.”
“네가 나한테 한 짓치고 안 불편한 게 없는데…….”
하여간, 부모님들이 제일 문제다.
이건 딱히 19세기만의 일이 아니다.
21세기에서도 친구들이 맨날 불평했던 것이 부모님들이 너무 말을 안 듣는다는 점이었다.
그걸 꼭 부모 없는 내 앞에서 해야 했나 하는 의문이 들긴 했지만…….
직접 겪어 보니 그럴 만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 좀 가만히 있어요.”
“어어.”
그놈들과 나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감히 부모님들에게도 강제성을 띨 수 있다는 거다.
일단 난 귀족인데 우리 부모님은 아니거든.
귀족이 명하는데 감히 상놈이 어딜 뻣데고 있나?
여기 와서 양반이었다고 구라는 쳐 놨지만, 아무리 봐도 상놈 집안이었을 거 같다.
“가만히 있어!”
“으.”
이렇게 명령하면 딱 말을 듣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김씨’라는 성도 아마 바다 건너오면서 생겼을 거야.
상놈 핏줄이라는 게 마냥 나쁜 건 아니다.
아무래도 육체노동을 견뎌야 했던 핏줄이니만큼 건강할 수밖에 없다.
아마 내가 진짜 양반님네 자식이었으면 런던 오자마자 폐병 걸려서 시름시름 앓았을 거야.
“음…….”
“아이고. 이놈이. 아비에게 이런 수치를.”
“수치는 무슨. 양반이나 그런 거 느끼는 거예요.”
“아이고…… 아들이 아비에게 상놈이라고…….”
“아무튼, 괜찮네.”
나는 빠르게 고환암 여부를 확인한 후, 전립선까지 괜찮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아버지를 놓아주었다.
그래 봐야 벽에서 수술대 위로 옮겨 눕힌 정도에 불과할 뿐이었다.
보통 자리에 눕게 되면 편안해지는 법이지만 아버지는 아닌지, 떨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또.”
“일단 한숨 푹 주무셔요.”
“아니…… 이놈…… 이놈! 너 모르는 얼굴도…….”
내 말에 앨프리드가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가스 밸브를 틀었다.
아버지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조지프와 더불어 앨프리드까지 나서는데 뭐 어쩔 건가.
맨정신이라면 모를까 가스까지 돌아가는데 뭘 할 수 있겠나.
그냥 자야지.
“흐음.”
“평아. 그거…… 괜찮은 거 맞냐?”
그렇게 아버지 재우는 데 한몫한 조지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진짜 걱정은 아닐 터였다.
그랬으면 애초에 재우지도 않았을 거 아닌가?
무엇보다 밖에 자기 아버지 불러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괜찮지. 수도 없이 해 봤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아, 안 할 거야?”
“해, 해야지.”
나는 기다란 쇳덩이를 조심스럽게 우리 아버지 목구멍에 넣기 시작했다.
기도가 아니라 식도를 향해서였다.
근이완제까지 쓴 건 아니었기 때문에, 숨은 스스로 쉬고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식도로 쑤셔 넣는 게 처음부터 쉬웠던 건 당연히 아니었다.
‘생각보다 이비인후과 친구가 도움이 많이 되네.’
무수한 연습이 있었더랬다.
그전에 친구가 알려 주었던 것이 컸다.
같이 당직을 서던 사이다 보니 나란히 응급 수술 들어갈 때가 많았거든.
우리야 외상이니 한번 들어가면 몇 시간이고 있어야 하지만, 이비인후과 쪽 응급은 좀 짧게 끝날 때가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식도 내 이물 제거였다.
그게 말이 되나 싶을 수도 있는데 술 먹으면서 닭 먹다가 뼈째로 삼키는 바람에 식도에 끼어서 오는 환자가…… 거의 매달 있었다.
지이익.
그땐 아니, 왜 그런 짓을 해서 쓸데없이 고생을 하시나 싶었다.
이제 와 보니 그런 분들이 있어서 내가 이렇게 원시적인 내시경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하여간, 그때 본 방법을 이용해 나는 식도를 통해 천천히 관을 밀어 넣었다.
더럽게 깜깜했지만, 그래도 빛을 비추니 뭐라도 보이긴 했다.
‘아마 조기 위암은 안 보일 거야.’
진행한 암 정도면 보일 터였다.
어떻게 아냐면 벌써 그런 식으로 몇 번 진단도 하고 수술도 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한계로 인해 전체 위절제술밖에는 못 하지만, 그렇게 새 삶을 얻게 된 죄수가 한둘이 아니다.
‘음, 괜찮네.’
너무 오래 했다가는 쇳덩이에 의한 압력으로 인해 식도나 위에 손상이 있을 수 있다.
나도 굳이 알고 싶진 않았던 사실이다.
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우리가 무언가 실제로 행하기 전에 실험부터 해야 하는 이유다.
“좋아, 끝. 이도 나름 괜찮고…… 나 없는 동안 괜찮겠어.”
기왕 자리를 편 거 어머니 말고도 업턴에서 먼 발걸음을 해 주신 조지프의 부모님에 대해서도 검진을 시행했다.
딱히 좋은 말을 듣지는 못했다.
괜찮았다.
원래 인자는 핍박받는 법이니까.
그냥 예수님 살 듯이 살기로 했다.
언젠가는 진정한 태평교가 자리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 태평 천국이 도래하게 될 것이니까.
“아.”
그렇게 검진을 진행하던 가운데, 나이팅게일의 보고가 있었다.
원장님의 부인, 즉 사모님의 왼쪽 가슴에서 작은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것이었다.
“빨리 보세.”
원장님은 의사이기에 낙담하는 대신 내게 정식으로 진료를 의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