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83)
검은 머리 영국 의사-483화(483/505)
483화 유방암 [1]
원래는 블런델에게 수술을 시켜 볼까도 했다.
사실 블런델 이 양반이 아예 안 해 본 건 또 아니거든.
애초에…… 프랑스에서 나랑 같이 수술에 들어가기도 했거니와 그 후로도 주구장창 부인과 질환도 보고 있는 사람이지 않나.
나나 리스턴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름 유명해지기도 해서 환자도 많았다.
일단 우리 팀 중에서는 여자 환자는 압도적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죽을 걸 알면서도 수술을 부탁하는 사람도 많았던 거 같다.
-근데 딱히 살린 사람은 없는 거 같아.
예후는…….
썩 좋지 못했던 모양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예후라는 게 웃기는 거지.’
대한민국에서는 딱히 의사 개개인 별로 예후를 평가하는 외부 기관은 없다.
병원 내에서는 나름 조사하긴 하는데…….
이게 주니어 레벨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시니어급으로 올라가면 의미가 없다.
분과별로 따지기 시작하면 아예 싸움이나 벌어질 뿐이다.
왜?
안 좋은 환자 보면 예후는 당연히 안 좋아질 수밖에 없거든.
예컨대 같은 유방암 환자를 보는 의사라도 어떤 사람은 주로 1기를 보고 어떤 사람은 3기 이상을 본다고 하면 3기 보는 사람의 예후가 훨씬 안 좋게 보인다는 얘기다.
‘명의가 돌팔이처럼 보이기 십상인 시스템이지, 예후는.’
대표적인 통계의 오류라는 뜻이다.
제대로 된 지성인이라면 이걸 고쳐야 하는데…….
나는 딱히 그럴 생각이 없다.
오히려 이용할 거다.
“뭐…… 제가 하죠.”
“그래. 자네는 100%의 성공률을 가지고 있는 사람 아닌가!”
“하하, 아직까지는 그렇죠.”
“우리끼리 얘기지만 블런델은……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이 하나뿐이라더구만…….”
원장님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블런델이 건드렸던 환자들 전원이 피부에까지 이미 암이 번져 있던 상황이었다는 사실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뭐 하러 해?
나는 아직까지 런던 의료계의 1황으로 남아 있을 필요가 있잖아?
시대의 위버멘시로서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뛰어나게 될 필요도 있겠지만 남의 실력을 깎아내리는 것이 더 쉽지 않겠어?
“뭐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부분절제술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허어…… 역시.”
“물론 인명은 재천이라…… 주님께 달려 있긴 합니다. 기도 열심히 하시죠.”
“내 그렇지 않아도 요새 매일 기도한다네.”
나는 이럴 때만 주님의 종이 되는 원장님을 잠시 바라보았다.
딱히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사람이 원래 그렇거든.
저러다 또 사모님 좋아지잖아?
그럼 최근 들어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는 진화론 공부할걸?
아무래도 신은 없는 거 아니냐고 하면서.
“아무튼, 사모님을 좀 보죠.”
“어어, 그래. 안 그래도 곧 수술이라…….”
“옆에 가족들 있죠?”
“물론이지. 애들 다 와 있네.”
“수술하고 당장은 직접 못 보니까, 지금 많이 보라고 하세요.”
“그래야지. 물론일세.”
나는 어떠냐고?
원래 계획을 세울 때는 신이 없는 것처럼 준비하고, 일을 행할 때는 아무것도 준비 안 한 것처럼 신에게 매달리라는 말도 있지 않나.
누가 한 말인지 상당히 그럴싸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인터넷 똥글일 가능성이 높은데 아무튼.
지금 당장은 무신론자처럼 움직이고 있다.
기적에 기대는 대신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일단…… 소독은 조지프가 총괄하고 있어요.”
“병동의 악마 조지프라. 믿을 만하지.”
조지프.
악명이라고 해야 할지 명성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녀석의 소독에 대한 강박은 이미 유명하다.
덕분에 원장님도 만족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조잘거리는 걸 멈추진 않았다.
이 점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다름 아닌 셀프 체킹이라 그랬다.
“우선 수술 후에 지내실 병실 전체를 다 깨끗이 소독했어요.”
“좋군그래.”
“수술 기구나 이런 거야 뭐…… 당연히 철저히 감독할 거고요.”
“믿고 있네.”
“무엇보다 수술방이 특이할 겁니다. 천장과 벽을 구리로 마감했어요.”
“납이 아니라? 구리는 너무 비싸잖아.”
목조 건물에서 수술하는 건…….
아무래도 좀 불안한 일이다.
나무가 건설 자재로써 거의 사기에 가까운 물건이라고는 하지만, 위생에 있어서도 그렇냐고 하면 아무래도 좀 부족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런던처럼 습한 곳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뭐…… 벽지나 페인트칠을 해서 마감을 하고 있긴 한데…….’
벽지는 비소를 포함한 각종 중금속 이슈가 있다.
페인트?
말할 것도 없이 납 페인트다.
물론 세균보다는 납에 노출이 되는 게 수술받을 환자에게는 더 나을 테지만, 이 김태평 타협을 모르는 사내다.
해서 구리로 마감했다.
“그렇긴 한데, 구리가 더 이쁘잖아요.”
“아…… 뭐 그렇긴 하지. 잘만 관리하면 금색 같지. 그럼 차라리 금으로 하지 그랬나?”
정정한다.
타협해서 구리로 한 거다.
금이나 은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무리다.
원장님도 반쯤 농이었는지 더 왈가왈부하진 않았다.
“출혈이 많을 거 같진 않습니다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라 수혈할 사람도 모아 놨습니다.”
“모아……?”
“네, 유태인 애들로.”
“아…… 주의하게. 요새 자네에 대해 도는 소문 중에 이상한 게 있어.”
나는 따로 마련된 놀이방을 가리켰다.
안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10대 유태인 애들이 모여 있었다.
책도 보고 내가 주문해 만들어 둔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김태평이 유태인들의 피를 빤다더라!
쟤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매독과 같은 성병이 아예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긴 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없을 가능성이 다른 놈들보다는 훨씬 높지 않겠나?
그러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사용하는 방법일 뿐이다.
내가 뭐 샤일록처럼 악덕 계약을 한 것도 아니다.
상당한 보상을 준다.
심지어 런던 유태인들은 내 보장 아래 안전한 삶을 영유하고 있다.
“소문 따위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잖아요?”
“그…… 그래.”
내 통달한 말에 원장님도 감히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바람직한 일이었다.
아직 말이 남았으니.
“그리고 조명이 중요하죠.”
“그래, 뭐가 잘 보여야 하지.”
“수술방을 보시죠.”
“어우.”
수술방은 방금 내가 말했듯 구리로 도금을 해 둔 상태였다.
원래는 바닥까지 싹 다 할까도 생각을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21세기 수술방도 허리 밑은 오염된 상태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냥 두었다.
오히려 그렇게 둔 덕에 보기는 더 좋았다.
원장님은 그렇게 번쩍이는 구리를 보다가 이내 이게 왜 이렇게 번쩍이는지 알아차렸다.
“가스등…… 이거 엄청 비싼데……?”
“그래도 잘 봐야죠. 그렇지 않아도 설치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사모님 수술하는 김에 싹 설치하게 했습니다.”
“당장 다음 주면 떠날 사람인데 너무 신경 쓰게 만든 거 아닌가 싶구만그래.”
“하하……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입니까. 이 정도는 당연하죠.”
원장님보다 내가 더 윈데 딸랑거려 뭐 하나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조선 말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지 않나.
또 율곡 이이 선생은 소년등과, 즉 초년 성공에 대해 경고한 바 있는데…….
지금 내가 딱 그런 상황이다 보니 일부러라도 조심하고 있다.
“자네…… 정말 고맙네.”
“그런 말씀은 사모님 좋아지고 나서 하시죠.”
“아니, 아닐세. 이미 감사하네.”
“아, 그리고…… 이건 원장님께만 말씀드리는 건데요.”
“어, 말하게.”
“일단 성공회 신부님하고 청교도들의 목사님이 대기 중입니다. 수술 시작 전부터 저 밖에 예배실에서 기도 배틀, 아니 기도회를 이끌 예정이에요.”
이게 뭔가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이 시기에는 목사님 신부님이 아예 수술장에 들어오는 경우도 흔하다.
심지어 안수 기도도 한다.
얼굴에 손을 얹는다는 건데, 성직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말을 잘 안 들어서 손도 잘 안 닦는다.
하나님 말씀 말고는 누구의 말도 안 들으려고 성직자가 된 건가 싶을 때가 있는데…….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싹 밖으로 몰아내고 진행 중이지만, 환자나 보호자의 마음은 그렇지가 못해서 아예 예배실을 따로 만들어 두었다.
“나는 따지고 보면 개신교 신자이긴 한데…….”
“그럼 신부님은 보낼까요?”
“기도야 많이 하면 할수록 좋겠지.”
“그렇죠?”
영국의 지배 종교는 현재 성공회다.
하지만 원장님은 16세기에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위그노(개신교도)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온 이의 후손이니만큼 여전히 개신교를 섬기고 있다.
그리고 우리 영국은 미개한 프랑스랑은 달라서 종파 좀 다르다고 사람 죽이거나 하진 않는다.
뒤에서 꼽을 주거나 은근히 먹이는 건 수시로 있지만 그런 거야 뭐…….
억울하면 개종하면 되잖아?
‘역시 급하면…… 미신이라도 부여잡게 되어 있지.’
17세기 개신교도들인 청교도인들 중 일부는 아예 종교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갔잖아?
그렇게 투철하신 분들도 바다가 너무 거치니까 선원들이 들고 다니는 부적 한두 개쯤은 챙겼다더라고.
그에 비하면 성공회 신부님은 양반이다.
“그리고 이건…… 안 하셔도 되는데, 이 위층에 말입니다.”
“위층? 아…… 리스턱 연구실 말인가?”
“네. 거기에 스님이 계세요.”
“스님……?”
원장님의 표정이 묘해졌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모르는 얘기를 하면 다 이렇게 되기 마련이다.
‘사실 무당도 있는 거 같던데…….’
얼마 전 나는 기어코 리스턴의 저택을 급습했더랬다.
갇혀 있는 조선인들을 구출하기 위함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 실패였다.
저택이 거의 요새화되어 있어서 그랬다.
게다가 안도 완전히 미로여서, 고용인들이 마음먹고 돌리니까 안으로 못 들어가겠더라고.
하여간, 중간에 닭 피인지 뭔지 모를 끔찍한 액체로 한자 비슷한 것이 그려진 문이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무당이다, 그건.
“조선에서 믿는 신을 보시는 분들인데…… 가끔 리스턴 형님이 불러요.”
“거참…… 별짓을 다 하네.”
“역시 돌려보내는 게 좋겠죠?”
“아니, 잠만.”
“네, 보내…… 네?”
혹시 부정을 타면 어쩌나.
생각보다 하나님이…… 잘 삐진단 말이야.
언젠가 한 번은 세상을 글쎄 홍수로 멸망시킬 뻔한 적도 있다니까?
해서 좋게 보내려고 했는데 원장님이 나를 잡았다.
“그, 이런 말 하는 게 그런데. 자네는 조선 사람이지 않나.”
“영국 귀족입니다만.”
“그 소식이 저 위에도 벌써 전해졌을까?”
“무슨…… 소리인지.”
“혹시 그쪽 신은 여전히 자네를 보살필는지도 모르지 않나. 알다시피 수술은 집도의가 절대적이고.”
“아…….”
하긴, 원장님하고 사모님 내외가 유독 금실이 좋긴 하다.
문란하다 못해 엉망진창인 19세기 런던 상류층 사이에서 답답한 부부로 소문이 났을 정도니 말 다 한 셈이다.
정말 이 수술에 모든 걸 걸고 싶은 모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다 된 거 같으니까 사모님 뵙고, 곧 수술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그래.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