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84)
검은 머리 영국 의사-484화(484/505)
484화 유방암 [2]
유방암 수술이 완전히 정립된 건 사실상 20세기 초 또는 19세기 말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시대상 그렇게 될 수 없는 시대인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한 천재 덕분이라고 보면 된다.
외과 의사라면 대개 알고 있는 이름이고, 미국의 외과 의사라면 알아야 하는 이름인데…….
미국 외과 의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할스테드라는 양반이 있다.
성질은 더러웠다고 들었다.
‘그거야 뭐…… 천재 특이지.’
슬픈 얘긴데, 난 인성이 참 좋은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천재는 아닌 거 같다.
사실 뭐…….
실제로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름 공부도 잘했고, 수술도 잘했지만 그 정도로 천재 소리를 들으려고 드는 건 좀 지나친 욕심 아니겠나?
수재 정도였다고 본다.
“다 됐나? 어? 마지막까지 보라고!”
“네, 네!”
“이 자식들…… 빠져 가지고. 오늘 무슨 날인지 몰라?”
“아, 압니다!”
“근데 이럴래? 어? 열심히 해야 할 거 아니야!”
“죄, 죄송합니다.”
그에 비해 저기서 지랄하고 있는 리스턴은 천재 맞다.
지랄해서 ‘아이구 천재 납셨네’ 하고 비꼬는 게 아니라, 진짜 그렇다.
실제로 뭔가 가르쳤을 때 빨아들이는 능력이 장난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 시대상에 맞게, 유연하게 고쳐 나가는 것도 좋다.
“저, 형님?”
“응?”
“오늘 수술 메인은 블런델 형님이니까 너무 그렇게 하진 마시죠.”
“네가 자꾸 그러니까 이 새끼들이 빠지는 거 아니냐. 내가 이번 수술을 위해서 어떤 짓까지 했는지 아냐?”
안다.
닭도 잡았다.
차마 원장님한테는 말 못 했는데…….
무당도 와 있는 걸 확인했다.
‘그런 말을 괜히 꺼냈다가는…… 좀 이상해지겠지?’
리스턴은 지금 중심이 흔들린 상황이다.
스스로는 여전히 대단히 엄중한 기독교인이라고 여기고 있겠지만 세상에 접신 운운하는 기독교인이 어디 있냐?
세상은 넓으니 어디 가면 있을 수도 있긴 한데, 아마 없을 거다.
“그, 아는데. 그래도 좀.”
“알았어. 집중에 방해되진 않게 하겠네. 대신이라고 하긴 뭐 한데, 절차가 있지 않나. 그건 막힘없이 흘러갈 수 있게 해 주겠어.”
“그럼 너무 좋죠. 특히 수혈 알죠?”
“알지. 이미 봐 둔 애가 있네.”
“뭘 봐 둬요. 아…… 저기 애들 중에?”
“응. 유독 피가 건강할 거 같은 애가 있던데?”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아니, 어떻게 안다고 생각하는 걸까?
물어보면 괜히 내 마음만 다칠 거 같아서 굳이 입을 열진 않았다.
그에 비해 리스턴은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 보였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드륵.
이내 사모님이 들어오셨다.
옆에는 원장님과 다른 가족들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수술이라는 게 원래 그렇거든.
크든 작든 오만 걱정이 다 될 수밖에 없다.
그 이비인후과 친구 녀석의 아주 절친이 머리를 심은 적이 있는데…….
머리를 심는다고 하면 아무것도 아닐 거 같겠지만 이것도 보통 수술은 아니지 않나.
그렇다 보니 상황에 따라서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수술이 길어질 때가 있는데, 그때 그래서 녀석이 엄청 노심초사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고작 머리 심기 수술을 보는 의사도 그러할진대, 유방암을 앞둔 일반인 본인은 어떻겠나.
“사모님.”
“어…… 네.”
분명 어제도 가서 한참 얼굴 보고 떠들었는데 단 하루 만에 얼굴이 가 버리셨다.
아주 그냥 아파서 죽을 거 같은 얼굴이야.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암 때문인가요?”
사실…… 아니다.
초기 암은 그렇게까지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거든.
오히려 그래서 암이 무서운 거다.
조용히 있다가 나중에 가서야 증상이 생기는데, 21세기면 몰라도 19세기 수준에서는 아예 방법이 없다고 보면 된다.
‘암성 통증…… 그렇게 되면 나는 그냥 형님한테 단칼에 보내 달라고 해야지.’
다른 것보다도 통증이 문제다.
암세포한테 산 채로 뜯어 먹히는 상태가 된다고 보면 되는데…….
당연하게도 어지간한 진통제로는 효과가 아예 없다.
그래서 말기인데, 더 살 가망성이 없다는 데도 항암제를 쓰는 경우가 생기는 거다.
암의 활동이라도 좀 억제해서 통증을 억제하는 건데…….
호스피스 병동에서 하는 완화치료가 그런 거라고 보면 된다.
“그럴 겁니다. 암이 아주 무서운 놈이죠.”
속으론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암을 탓했다.
이럴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온 거 아니겠나 하면서였다.
솔직히 그 유명한 이수혁이나 백강혁이 왔어 봐.
걔들은 이런 구라 못 칠걸?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의사가 아니잖아.
“아이구…….”
“수술하고 나면 싹 나을 테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나중에 하세요. 다 낫고.”
나는 그렇게 사모님의 마음부터 고쳐 준 후, 수술대 위로 옮겼다.
신호를 보내자 앨프리드가 앞으로 나섰다.
선배는 이제 완연한 마취과 의사라 할 수 있었다.
일단 본인부터가 그렇게 여기고 있게 된 것이 중요했다.
보통 ‘이게 내 업이구나’ 하게 되면 최선을 다하게 되는 법이거든.
“자, 숨 깊이 들이쉬시고.”
“네.”
“대답은 안 하셔도 됩니다. 숨만 생각하세요. 네, 숨만.”
청진기 들고 설치는 모습이 제법 그럴싸하지 않나?
지금 모습만 보면 진짜 21세기 마취과 의사라고 해도 믿겠다.
-숨은 왜 들이쉬어?
불과 며칠 전에 이 지랄 했던 놈인 걸 감안하면 참 고집이 없는 놈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뭐 아주 그럴싸한 답을 해 준 것도 아니란 것을 감안하면 유연한 사고가 제일 커다란 재능인가 싶기도 하고.
-선배가 그걸로 아무리 불어 넣어도 원래 숨 쉬는 만큼 들어가겠어? 그 전에 폐를 쫙 펴면 좋지.
-폐를 펴?
아, 아니네.
생각해 보니까 보여 주긴 했다.
리스턴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 것을 기억한 덕이다.
내가 이렇다.
타산지석을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아무튼, 해서 시신 해부한 다음 앰부 짜서 폐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 주었다.
-오…… 다 안 펴지네?
사실…… 아주 정확한 실험은 아니긴 했다.
사람이 죽으면 폐도 당연히 썩지 않겠나?
아니, 사실 제일 빨리 썩는다고 보면 된다.
그럼 구멍이 나서 저절로 숨을 쉰다고 해도 다 안 펴진다.
시신이 스스로 숨을 쉰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상당히 심각한 일이긴 한데, 아무튼.
끼리릭.
아무튼, 사모님이 숨을 쉬는 데 집중한 사이 앨프리드가 이전보다 아무래도 더 부드러워진 밸브를 슥 돌렸다.
그렇게 가스가 흘러나오자 곧 사모님의 정신이 흐려졌다.
그와 함께 조지프가 달려왔다.
소독을 위해서였다.
애초에 사모님이 입고 있던 옷이 우리가 따로 만든 환자용 옷이었기 때문에 줄만 당겨도 훌렁이었다.
슥슥.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환부를 조지프가 기계적으로 닦았다.
아직까지는 보다 연한 소독약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독한 소독약으로 닦아야 했다.
순식간에 사모님의 피부가 벌겋게 변했다.
그 꼴을 더는 못 보겠는지, 원장님은 고개를 돌리고 밖으로 나갔다.
어차피 가족들은 다 나가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다들 나가게 되었다.
아들 한 놈이 버티려고 했지만 리스턴이 있는데 뭔 수로 버티겠나.
가족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수술방에서는 무조건 의사 말을 들어야 하는 법이었다.
“좋아.”
나는 순식간에 소독을 마친 조지프를 밀어내고 블런델과 함께 환자 앞에 섰다.
그러곤 잉크로 찍어 두었던, 이제는 소독약 때문에 거의 지워진 부위에 손을 가져갔다.
여전히 주변과 잘 경계 지어지지 않는, 그러나 작은 종양 하나가 만져졌다.
완전히 피부와 연해 있는 건 아니긴 한데…….
“계획했던 대로 갑니다.”
“아, 그러지. 피부도 살짝 포함해서 절개하자는 거지?”
“네. 그게 안전할 겁니다.”
“하지만 모양은 그렇게 되면 좀…….”
“모양 고려할 병이 아니잖아요.”
“그거야 그렇지. 그래, 미리 계획한 대로 가세.”
항암제도 방사선도 없는 시대이지 않나.
믿을 거라고는 오직 하나, 집도의가 든 메스밖에 없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텐데, 결국, 많이 잘라 내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무턱대고 다 자르겠다는 건 물론 아니다.
유방 전절제술은 사실 좀…… 집도의나 환자 입장에서 최대한 지양하고 싶은 수술일 수밖에 없거든.
지이익.
아무튼, 나는 절개선을 넣었다.
블런델을 제1 보조의, 콜린을 제2 보조의로 둔 채였다.
조지프가 살짝 섭섭해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안과 쪽으로 마음을 굳힌 건지 딱히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확실히…… 얘는 센스가 있어.’
절개선을 제대로 넣기 위해서는 피부를 양쪽으로 벌려 줘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절개선의 수직이 되는 방향으로 당겨야 한다.
그래야 넣으려고 하는 부위에 절개선을 넣을 수 있을뿐더러 수직으로 뚫고 들어갈 수 있어서 나중에 봉합할 때도 똑바로 하게 된다.
콜린은 그것만 하는 게 아니라, 흘러나오는 피 또한 거즈로 말끔히 닦아 내고 있었다.
그럼 블런델은 노냐?
당연히 아니다.
치익.
그는 옆에 마련된 미니 화로로 달군 작은 핀셋을 이용해서 피가 많이 나오는 부위를 지지고 있었다.
피부에 닿으면 피부가 울게 되고 또, 너무 많은 부위를 지지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큰 손상이 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닌데…….
이걸 이렇게 익숙하게 할 수 있다는 거부터가 블런델이 교수가 되기에 충분한 역량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뭐 이미 수술 경력이 대단하니 당연한 일이긴 하다.
“좋아…… 이 안으로 느껴져요?”
“어, 느껴지네.”
“네. 느껴집니다.”
하여간, 피부를 무사히 절개하고 들어가자, 지방이 주가 되는 유방 조직이 모습을 보였다.
다행히 사모님이 가슴의 볼륨이 있는 편이라 걷어 낼 조직의 양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남는 가슴 역시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피가 좀 날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네.”
그냥 장기 하나를 절제하거나, 충수돌기를 절제하는 건 사실 그렇게까지 피가 날 일이 없다고 보면 된다.
해부학적으로 구분된 구획을 따라 칼을 넣을 것이고, 또 그리로 향하는 혈관도 미리 잡을 거니까.
하지만 유방암 절제술은 얘기가 좀 다르다.
어쩔 수 없이 유방이라는 장기 안 쪽을 해부학적인 구획과 무관하게 잘라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안을 오가는 크고 작은 혈관이 툭툭 끊길 수밖에 없다.
21세기라면 애초에 이런 부위는 칼이 아니라 하모닉 스칼펠과 같은 초음파 칼이나 하다못해 보비(전기칼)라도 쓰겠지만 지금은 다 개소리인 시대이지 않은가.
왈칵.
피가 아무래도 많이 날 수밖에 없었다.
치직.
블런델이 그만큼 바빠지고 있었지만 자르면서 동시에 지혈하는 것과 일단 잘라 놓고 나는 피를 지혈하는 건 난이도가 아예 다르다고 봐야 했다.
피는 그 자체로 시야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콜린 또한 거즈로 부리나케 닦고, 또 때때론 생체 석션 기기가 되어 열일하고 있었지만…….
‘미리 피 제물 준비하길 잘했네.’
이쯤되면 한 번은 수혈을 하긴 해야겠다 싶을 정도로 피가 나고 있었다.
뒤를 보니 다행히 리스턴의 지휘 아래 유태인 아이들이 줄줄이 검사를 받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