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88)
검은 머리 영국 의사-488화(488/505)
488화 일본 [1]
“흐하하하 김태평도 없는데 화끈하게 즐겨 보자고!”
“네, 폐하!”
“쭉, 쭉쭉쭉 소불알이 들어간다!”
“여기에 이 가루까지 타면 최고의 자양 강장제입니다!”
“하하하! 과연, 과연! 30년은 젊어지는 거 같…… 윽.”
“폐하! 폐하!”
“후, 후회는 없네…… 갈 때도 예술로 가고 싶었어.”
“폐하! 으, 윽!”
“자네도? 하하…… 외롭지 않아 좋구만.”
“모, 모시게 되어 영광…….”
으…….
으아…….
“이보게, 평?”
“흐아.”
“뭔 꿈을 그렇게 꾸나. 에구머니나. 침대까지 땀으로 다 젖었네.”
“꾸, 꿈이죠? 이게…… 이게 현실인 거지?”
“거참 지독한 악몽을 꾼 모양이로구만. 갑판에서 바람이라도 좀 쐬게나. 자네 때문에 나도 잠 다 달아났어. 옆방까지 다 들릴 정도로 비명을 지르다니. 거참…….”
“허어…….”
리스턴은 나를 깨우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다시 방을 빠져나갔다.
그의 발자국 소리 사이로 철썩대는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선실에 난 작은 창을 통해 본 밖은 그저 시커멀 뿐이었다.
좀 이상한 말이지만,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래, 난 배에 있다.
일본으로 향하는 배.
‘거…… 진짜 개같은 꿈일세.’
아닌 게 아니라 리스턴의 말마따나 침대가 다 젖었다.
그 때문에 다시 누우려니 찝찝하기도 하고 꿈 때문에 기분이 X같기도 하고 해서 방 밖으로 나섰다.
여전히 배는 이리저리 치는 파도에 따라 기우뚱거리고 있었지만, 풍랑도 아니고 이런 일상적인 흔들림에는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심지어 우리가 탄 배는 군함이 아닌 상선이다 보니 드럽게 무거워서 일부 거친 해협을 제외하면 대개 잔잔한 편이었다.
자다 깬 상태에서도 바로 걸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개같은 꿈일세……?’
벌써 영국 땅을 떠나온 지도 어언 두 달째다.
그렇다고 바다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중간중간 식민지가 많기도 많아서 기항할 데가 넘쳤거든.
그래 봐야 임무를 띤 상선이다 보니 오래 머무르지는 못했지만…….
하여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애초에 선장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데 힘들다고 하면 이상한 일 아니겠나.
감자 한 조각에 마른 육포 씹으면서 중간중간 괴혈병 예방하라고 라임 주스나 던져 주는 선원들과는 비할 수도 없다.
‘근데 왜 이런 꿈을 갑자기……?’
이전 같았으면 꿈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을 거다.
그렇잖아.
꿈이 뭐라고.
허나 나는 이제 조선 주술사가 된 몸이다.
내가 스스로 선언하진 않았지만 다들 그렇게 믿고 있다.
심지어 내가 하는 말이 몇 개는 막 이루어지기도 하고…….
일단 21세기에서 여기로 돌아왔다는 거 자체가 내게 뭔가 있다는 뜻 아니겠어?
‘허어…… 이거…….’
영국 국왕과 공작이 소불알에 코카인 타서 먹고 마시고 찔러 넣다가 한날한시에 심장마비로 인생 하직하는 꿈이라니…….
세상에 이런 X같은 꿈이 또 있을까?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개꿈이 원래 그렇지 하겠지만.
윌리엄 4세나 대미언 경이나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라는 게 크나큰 문제다.
나라는 억제기가 있으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없잖아.
원장님과 블런델을 남겨 두고 오긴 했지만 그 둘은 아직 귀족도 뭣도 아닌 데다가 19세기인이다 보니 항간에 떠도는 말에 혹하기가 쉬울 거다.
‘어…… 그러고 보니까 저주를 안 내리고 왔네.’
이럴 수가.
천려일실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다른 거 다 챙기느라 딱 하나를 빼 먹었는데 그게 제일 중요한 거였다.
국왕한테 걸 저주를 까먹다니.
아직 앞길 창창한 스무 살인데 벌써 이렇게 정신이 없나?
생각보다 런던 스모그가 내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고 있는 모양이다.
아니, 실제로 배를 타고 있는데 몸이 좋아지는 거 같다니까?
나만 그런 것도 아니다.
리스턴 저 양반은…….
-어딜 또 갔다 왔어요?
-런던의 리스턴이라고 하면 이제 전 세계에서 통하지.
-그러니까 어디서 어떻게 통하냐고.
-내 우수한 피를 이으려는 사람들이 참 많아.
원래도 뻗치던 기운이 아예 통제가 안 되는 지경에 이른 거 같다.
기항하는 곳마다 여자를 꼬셔서 자고 온다.
아니, 자고 온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거 같다.
그냥 하고만 올 때가 훨씬 많았으니까.
-그러다 매독 또 걸려!
-콘돔 가지고 왔네.
-뭘 얼마나 들고 왔길래.
-짜잔.
-힉.
수천 개가 있다.
이게 21세기처럼 이쁘게 말려서 네모난 곳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니다 보니 굉장히…….
굉장히 노골적이고 동시에 흉측한 꼴을 하고 있다.
어쩐지 가방을 여러 개 챙긴다 싶더니 아예 하나 전체가 그걸로 가득 차 있을 줄은 몰랐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건 두 가지다.
런던의 공기가 배 타는 것을 상쇄하거나 오히려 더 위에 있을 만큼이나 안 좋다는 거.
또 하나는 우리 국왕이 나 없이 어떤 지랄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거.
‘기항하면 바로 뭐라도 보내야겠네.’
보내 봐야 별 소용은 없을 거 같다.
군함이나 연락선이 정기적으로 뜨는 구간도 아니지 않나.
특히 일본은…….
아직 우리 영국과 정식으로 수교를 트지도 않은 상황이다.
생각해 보면 다 같은 섬나라끼리 왜 아직도 내외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는 짓도 약간 비슷하지 않나?
사이즈가 달라서 그렇지…….
어디 상륙해서 약탈하고, 대륙에 개기고, 문화 전달해 준 나라를 제일 미워하고.
‘아, 아니야. 하마터면 바게뜨 놈들처럼 생각할 뻔했잖아?’
프랑스 놈들이 뭐…….
좀 멋들어지게 사는 건 맞다.
그런데 그게 놈들이 잘나서는 결코 아니다.
우리 영국인들이 프랑스 땅 차지했잖아?
아우…….
인류 문명 벌써 달도 가고 했다, 진짜로.
농담 하는 게 아니라 걔네는 주기적으로 문명을 리셋하거든.
그런 거 보면 또 동아시아 어딘가에 있는 큰 나라랑 되게 닮았어.
“티에피영 경. 뭐 하십니까? 날도 찬데.”
“아…… 찰스 대위. 그러는 대위는 안 자고 뭐 합니까?”
그렇게 뱃머리에 기댄 채(밧줄은 잡고 있다) 궁상 아닌 궁상을 떨고 있으려니 찰스 대위가 다가왔다.
말이 대위지 그 위상은 일반적인 대위보다 훨씬 위라고 보면 된다.
지금 이 배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엘긴 백작, 제임스 브루스의 직속 부하니까.
그래서 그런가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두려움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인 내게도 스스럼없이 다가오곤 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제 슬슬 도착 아닙니까. 걱정이 좀 되어서 그렇죠.”
“걱정……?”
“포르투갈 애들한테 들어 보니, 일본 사람들이 보통 호전적인 게 아니라고 하더군요. 뭐라더라…… 하…… 할부?”
“아, 할부도 무서운 거긴 한데, 할복입니다.”
“아, 하르부옥.”
“뭐…… 아무튼. 그렇긴 하죠, 그놈들이.”
원래 배에서는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
그냥 권고 사항이 아니다.
만약 선원이 담배 피우다 걸렸다?
그럼 채찍 맞는다.
이게 뭐 은유 같은 게 아니라 진짜로 그렇다.
너네 영국이고 지금 19세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뭐 어쩌라고’로 답하겠다.
“후…….”
배는 나무이지 않나.
다들 알다시피 나무는 불에 잘 탄다.
배가 타면 우리 다 뒈진다.
그래서 패는 건데…….
언제나 그렇듯 지위가 높으면 적용되는 법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특히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영제국은 그러한 전통을 아주 열심히 따르고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랄…….
너무 안 하니까 그런 말도 나오고 하는 거다.
오죽하면 별명이 강간 대장인 귀족이 있겠냐고.
“갔는데 만약에…… 백작 각하께서 칼에 맞는다? 그럼 저는 살아서 돌아가긴 어려울 겁니다.”
“하하, 설마 그럴라고요.”
“포르투갈 놈들 중에는 그렇게 간 사람도 있긴 있던데요?”
“그거야 포르투갈이니까요. 오죽 못났으면 주님께서 대지진으로 벌을 주셨겠습니까.”
“아…… 그걸 또 그렇게 해석하시는군요.”
“좋은 게 좋은 거죠. 덕분에 영국의 힘이 더 강해진 거 아닙니까?”
사실 포르투갈은 리스본 대지진이 있기 전에도 이미 한물간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제법 매서운 함대를 끌고 있었는데, 지진이 모든 것을 바꿔 버렸다.
포르투갈이라고 하면 ‘아, 걔네? 한물간 애들?’이라는 말만 나올 정도다.
거기에 더해 나는 약간의 미래를 알고 있다.
내가 이래 봬도 수능 꽤 잘 봤거든.
그렇다고 일본사를 공부한 건 아니지만, 중국이나 일본은 국사만 공부해도 대강 파악이 되지 않던가.
‘영일 동맹이 사실상 유럽 국가와 아시아 국가 간 최초의 동맹인데…… 그게 가능했다는 건 둘 사이가 제법 좋았다는 거겠지?’
상식적으로 둘이 치고받고 싸웠으면 동맹을 하겠어?
적어도 영국에게 있어 일본이 동북아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파트너였다는 얘기이지 않겠나.
뭐 그래 봐야 러시아가 남하하려고 지랄하지 않았다면 딱히 동맹을 맺진 않았겠지만.
중요한 건 러시아가 지랄하고 있다는 것이고, 아마도 미래가 그렇게 흘러가게 될 것이라는 거다.
“그건 그렇죠. 헌데…… 조선과는 정말 조약을 맺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우리의 찰스 대위가 내게 물었다.
맥락을 모르고 들으면 이 새끼가 미쳤나? 싶을 소리다.
근데 영국을 알면 이게 진심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얘네는…….
그러니까 대영제국은 전 세계의 숱한 열등한 종족들을 백인의 영도 정신을 발휘해 바른길로 이끌고 있다고 믿고 있거든.
그 와중에 왜 불평등한 조항들이 들어가냐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애초에 같은 인간이 아닌데 평등할 이유가 있겠나?
‘뭐…… 이 새끼들은 아일랜드인들도 같은 인간으로 안 보니까.’
어쩌면 진정한 인종 차별주의자이다 보니 오히려 평등주의자에 가까운 놈들이 아닌가 싶다.
그래, 빠게뜨 놈들보단 낫다.
걔네는…….
일단 앞에서는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면서 뒤에서는 ‘어? 너는 아닌데? 우리끼리만 자유, 평등, 박애 할 건데?’ 하는 애들이잖아.
그거보다는 오히려 겉과 속이 같아서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우리 영길리인들이 훨씬 낫지 않을까.
“아…… 조선은 뭐, 제 개인적인 용무로만 가 보기로 하죠.”
“으음…… 그래도 도움을 많이 줄 수 있을 텐데요.”
“하하, 제가 그러기엔 좀 많이 부족합니다.”
“세계 최고의 의사이신데요?”
“의사…….”
조선에서 의사는 중인이다.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지금 조선의 임금님은 헌종이다.
헌종…….
조선 후기 임금이다 보니, 또 뒤로 철종, 고종, 순종이라는 너무 불행한 임금들이 많다 보니 조명을 잘 못 받는 감이 있는데, 이때부터가 사실상 안동 김씨가 본격적으로 나라를 개판 치던 시기라고 보면 된다.
아마 나이도 어릴 거다. 이제 기껏해야 13, 14살일걸?
이미 고생하고 있는 임금에게 영국을 끼얹고 싶진 않다.
“뭐, 그렇긴 한데, 그냥 방문만 하고 말려고요.”
“그렇습니까? 하긴 다 생각이 있으시겠죠.”
“그리고 지금은 일본만 생각합시다.”
“든든합니다. 경께서 일본 전문가이시니…….”
“뭐, 그렇죠.”
무엇보다 그것보다 일본 가서 깽판 치는 게 더 재밌을 거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