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9)
검은 머리 영국 의사-49화(49/505)
49화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냐…… [2]
“아.”
왜 심각했을까.
아니, 그걸 왜 궁금해했을까.
나는 잠시 나를 자책했다.
“으.”
의식하지 못한 신음이 흘러나올 정도로, 무덤지기가 보여 준 관짝은 끔찍했다.
“우웩.”
“우웨에에엑!”
해부 실습실에서 이미 이러한 광경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조지프와 앨프리드 둘도 나자빠질 지경이었다.
“읍.”
블런델도 오만상을 쓰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짝 안을 뒤적이고 있었다.
“이게 다 이렇게 되나?”
그러면서도 심지어 입을 열고 있었다.
저 안으로 들어간 공기도 냄새가 장난이 아닐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무덤지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뒤로 돌아서 있어서 그랬다.
그저 흔들리는 어깨와 상황으로 어림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네네.”
“아…… 그럼 이게 별 의미가 없다는 건데……?”
“네. 사실…… 이게 좀 죄송스러운데, 그렇습니다.”
블런델은 거의 무슨 나라 잃은 표정으로, 부패가 진행되어 부풀어 오른 관짝 안에 있는 시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안에는 혹시 살아 있으면 잡아 흔들라는 목적으로 넣어 둔 줄이 있었는데, 시신이 부풀면서 그걸 흔들어 댄 모양이었다.
블런델의 시선이 이동하는 것을 따라갔더니 그 끝에 종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종이 엄청 많이 달려 있었다.
딸랑딸랑!
마침 하나가 또 울려 대기 시작했다.
“에이.”
무덤지기는 정말 내키지 않는단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확률은 적지만, 안에 산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당장 어제도 나 때문에 생매장한 사람을 보기도 했을 테고.
그렇다 보니, 무덤지기는 천지사방에 걸쳐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삽을 집어 들었다.
푹! 푹!
그러곤 흙을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블런델은 콜린에게 다가갔다.
녀석 또한 나라 잃은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블런델도 그렇고, 아주 웃기는 놈들이었다.
나라 한번 잃어 본 적도 없으면서 응? 이런 표정을 지어?
니들은 빼앗은 적만 있지 않아?
지금도 대영제국이니 뭐니 하면서 실시간으로 남의 나라 수탈하고 있지 않나?
“이보게, 콜린 군. 괜찮나?”
하여간 콜린은 진짜로 넋이 나가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저놈 저거, 깝죽거리고 있긴 해도 어린놈이잖아.
종소리가 나니까 산 사람이 들어 있을 줄 알고 신나서 열었는데, 이런…… 이런 시신을 마주했다면 혼백이 나가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터였다.
‘쟤도 PTSD 오겠네.’
너무 어린 나이에 이런 상처를 받게 되면, 의사를 더 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었다.
고쳐 줄 수도 없었다.
사람의 몸에는 칼을 수도 없이 대봤지만, 마음에는 감히 대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니.
이제 와서 건드릴 생각도 없었다.
선무당이 될 생각은 없었으니까.
특히 이 시대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죄다 선무당인데 나까지?
시대의 희망이 저무는 느낌 아니겠나.
“괜찮나?”
“네? 아…… 교수님. 그.”
“실언을 했군, 그래. 괜찮을 리가 없는데.”
“아니…….”
“놀랐겠지. 미안하네. 흠…… 이걸 런던에도 도입하자고 한 게 난데…… 이런 문제가 있을 줄은 몰랐네.”
블런델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으아아!”
그 사이 흙을 다 퍼내고, 관짝을 열었던 무덤지기의 비명이 들려 왔다.
이번에도 꽝이었던 모양이었다.
꽝이라는 말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 것도 같지만…….
하여간, 지금 당장은 머리가 잘 돌지 않았다.
끔찍한 냄새에 무서운 시신까지.
흡사 부동명왕을 연상케 하는 얼굴이지 않나.
부패가 진행되면서 가스가 차올라 저렇게 되었을 거란 건 짧은 법의학지식으로나마 유추가 가능했는데, 세상엔 원인을 안다고 해도 해결되지 못할 감정도 있는 법이었다.
본능적인 공포가 내게도 엄습하고 있었다.
‘흐…… 하긴 이때 시신이 어찌 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겠지.’
시신을 두면 어떻게 되는지, 아마 두고 본 사람도 있기는 할 터였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걸 의학적으로 엮을 생각을 해 봤을까?
그러한 시도는 퍽 어려운 일이었다.
원래 발상의 전환이라는 건 자체가 그런 법이지 않나.
한 번만 생각을 바꾸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지만, 결국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래, 러스트 벨이라는 게…… 그런 거였구만.’
나는 시신에게서 잠시 떨어져 무덤지기가 당직을 서는 공간으로 향했다.
수많은 종들이 달려 있었는데, 각각의 종들엔 줄이 달려 있었다.
그 줄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묘에 끼어 들어가 있는 듯했다.
생매장이 되었다고 하면, 이 장치가 꽤 도움이 될 것 같긴 했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그렇게 도움이 될까 싶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관 속은 무척 깜깜할 것이기에 그랬다.
‘이걸 흔들려면 끈을 찾아야 하는데 찾을 수 있을까?’
불행한 희생자는 하염없이 어둠 속을 더듬다 끝내 사망하고, 죽고 나서야 부푸는 몸으로 끈을 흔들어 댔을지도 몰랐다.
왜 이런 생각을 했냐?
저기 열린 관 뚜껑 안쪽으론 무언가 긁힌 흔적이 있었다.
시신의 손톱도 죄다 빠져 있었고.
물론 부패의 과정 중에서도 손톱이야 빠질 수 있는 것이라지만…… 글쎄.
‘이것보다는 훨씬 정밀한 방법이 필요해.’
일단 묻고 나서 묻힌 사람에게 알아서 뭘 하라는 식의 주문은 좀 너무하지 않나?
사람이 양심이 있으면 말이야 응? 묻기 전에 진짜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를 확인해야 할 거 아닌가.
‘그러고 보니까…… 이 사람들은 장례식도 안 하나.’
의문이 고개를 쳐들었다가, 다시 수그러들었다.
누구도 살고 싶어 하지 않을 무덤 주변에조차 빈민들의 집들은 꽉꽉 들어차 있었다.
21세기에도 묘지 보이는 곳은 조상복합이라는 말로 기피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 아직 온갖 미신이 떠도는 데다가 심지어 종종 이런 꼴까지 봐야 하는 묘지 근처임에도 그랬다.
이들의 삶은 죽고 나서도 척박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인권이니 뭐니 하는 개념이 자리하지 못했으니.
‘그럴 여유가 없겠지. 하긴…… 귀족들은 아마 할 거야. 그러고 보니까…… 그거 자체가 생매장에 대한 공포 때문에 생긴 거 같기도…… 하고?’
전생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대한민국에 있었던 시절 장례식을 치렀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3일장이었는데…….
3일이면 어지간한 원인으로 인해 내려진 잘못된 사망 진단은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일 터였다.
게다가 우리 감각 중 가장 오래 남아 있고, 또 지속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는 청각 또한 3일 내내 자극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상주들이 가만히 있질 않잖아.
심지어 예스러운 상 중에는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소리도 내고…….
‘염이라는 것도 결국, 시신을 만져서 촉각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 흠…… 현실적으로는 이게 꽤 확실한 생매장 예방법이 되긴 할 텐데…….’
‘장례식을 다 치르게 해 주자!’라는 말은 쉽겠지만, 실행하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였다.
런던은 거대한 빈민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임신했다는 소식에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산모들도 있는 곳이니 말 다 한 셈이지 않나.
이 망할 도시에서 방금 내가 떠올린 방안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이었다.
세상에, 사람이 죽으면 장례식을 해야 한다는 말이 사치라니.
대영제국이란 말이 부끄럽지도 않냐!
“자네, 생각이 많아 보이는구만그래.”
한참 영국 욕을 시작하려는데 영국인이 찾아왔다.
교수님이었기에 나는 금세 웃음을 띠며 답했다.
“네, 그럴 수밖에 없군요. 러스트 벨…… 이거 확실히 좋은 방법이었던 거 같은데…… 흐음.”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했네. 이런 일이 전에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은 것 같네. 역시 이건 좀 부족한 방법이야.”
블런델은 퍽 고통스러워 보였다.
의사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산 채로 묻다니?
그것도 의사가 죽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된다고?
아마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터였다.
-나도 혹시 그런 짓을 저질러 버린 건 아닐까?
거의 100% 그러긴 했을 터였다.
나도 지금 와서야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본 건데…….
‘사망 진단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을 것 같아.’
특히 지금의 런던처럼 시신을 어디 시간을 두고 안치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곳이라면 더더욱 어려울 것 같았다.
결국, 죽었다는 걸 확인하는 과정도 의학적인 거잖아?
의학이 절대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는 사망 진단조차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역시 최선은, 묻기 전에 확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아.”
“흐음…… 죽음의 징후를 확인하는 것이 어렵다는 말씀이시죠?”
“그래! 그렇다네. 아, 이 얘기를 하면 우리 병원 교수들은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만 해서 말이야.”
“네? 실제로 생매장이 되고 있다면…… 이건 진짜 중요한 일 아닙니까?”
“그래, 그렇지! 하지만 말이야. 대부분의 교수들은 그렇게 깨어나 봐야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별 의미가 없다고 얘기한다네.”
“아니…….”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오래 못 살 거라는 전제도 좀 황당하긴 했다.
질환에 따라 그럴 수도 있기는 한데,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왜 죽어라 심폐소생술을 하겠나.
생각보다 사람은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만 해결해 주면, 다시 살아나서 꽤 오래도록 잘 사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설령 그렇다 해도 생매장당하는 고통을 사람에게 주는 것이 온당하겠나?
“자네라면 날 이해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네.”
그런 생각 때문에 입을 쩍 하고 벌리고 있으려니, 블런델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이 양반…….
시신 만지고 손은 씻었나?
아니었던 거 같은데…….
“그래서 말일세. 이런저런 방법을 좀 고안해 봤어. 실제로 이미 쓰이고 있는 방법들도 있네.”
티를 내지는 않았다.
하여간에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 도중이지 않나.
게다가 내 기준에서, 이제 블런델은 꽤 훌륭한 의사였다.
마음이 이쁘지 않나.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이 마음가짐.
심지어 이를 위해서 나 같은 하급자에게, 심지어 같은 나라 사람도 아닌데 도움을 청하는 마음가짐은 현시대에서 정말 귀한 편이었다.
“아…… 어떤 게 있죠?”
“일단 뭐 마늘이나 이런 걸로 코를 간지럽히는 거지.”
“아…… 냄새로 깨워 본다, 이거죠?”
그래, 마늘 냄새 독하지.
한국에서 살 때는 몰랐는데, 여기 와서 맡으니까 꽤 독하긴 했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라고 해야 할까?
효과가 아주 없진 않을 터였다.
문제는, 그걸로 깨어날 것 같으면 높은 확률로 관으로 옮기는 도중에 깨어날 거란 점이었다.
“근데 그걸로는 아무래도 부족하겠지. 그래서…… 뭐 소변을 입에 흘리기도 한다고 하더군?”
“네? 그건 분풀이 같은 거 아닌가요? 원수가 아니고서야…….”
“아닐세. 꽤 저명한 사람이 그렇게 알려 줬어.”
“그…… 그래요?”
잠깐 훈훈했는데, 역시…… 안 되겠다.
여기 지구 아닌 거 같아.
신이 있다면 지금 답해라.
여기 이세계지? 그런 거지?
어서 답해.
내 조상들이 이런 짓을 하진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