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96)
검은 머리 영국 의사-496화(496/505)
496화 대기근 [6]
조선에 대해서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지금 단계에서 우리 대영제국이 조선에 들어가게 되면 벌어질 일들이 대강이나마 예측이 되었기에 그렇다.
유학의 나라 조선…….
그나마 중국은 명이 망하고 만주팔기, 즉 오랑캐인 청이 들어서는 바람에 그전보다는 훨씬 열린 마음을 갖게 되지 않았겠나.
뭐…… 결국엔 한족 융화 정책을 펴면서 강희제부터 본격적으로 유학을 들이파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학의 묘리가 많이 뒤섞여 있다고 봐야 했다.
‘뭐…… 원래 문명이라는 게 딱 어디 한군데 틀어박혀 있는 건 아니긴 하지.’
우리가 암흑기라고 규정하는 중세조차 시대가 흐르면서 점차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긴 하지 않았나.
애초에 안 그랬으면 대양 항해가 어떻게 가능했겠어.
조선 600년도 마찬가지다.
19세기 아니라 18세기부터 이미 어느 정도 실학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열하일기로 유명한 박지원도 그렇고, 홍대용도 그렇고, 정약용도 그렇고.
아, 정약용은 얼마 전에 돌아가셨겠네, 아무튼.
‘하지만 조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쇄적인 길로 가는 걸 선택했어.’
무엇이 한 문명의 발전을 억제하는가.
단순히 사람의 지능인가?
아니다.
사람의 인식 변화가 느린 것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보통 인식 변화가 느린 사람들은 그 사회에서 힘을 지닌 사람들이다.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고 좋은데 뭐 하러 세상을 뒤엎겠나?
‘어찌 보면 유럽은 흑사병이니 뭐니 지랄병 난 게 약이 된 걸지도 몰라.’
그들이 흔들려야 비로소 세상도 변하게 된다.
그 변화가 반드시 좋은 방향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서구 문명은 뭐가 되었건 전근대 문명에 비해 훨씬 강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대영제국이 조선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것도 나 때문에?
-희대의 악인, 김태평 시리즈 10편 드디어 나라까지 팔아먹다.
보인다, 미래가.
대영제국이 나와의 의리를 지켜서 조선을 지켜 줄 거라 믿는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우리 대영제국은 가장 가까운 나라인 아일랜드조차 식민지 삼아 약탈하는 대단한 나라다.
이제 곧 국토까지 후루룩 짭짭하실 작정이지 않나.
이런 말을 듣고도 ‘에이 설마’ 싶다면 대영 박물관을 떠올려 보면 된다.
거기 가 보면 일단 우리 엘긴 백작님의 선조께서 같은 유럽 국가인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다 온 유적부터 해서 온갖 나라에서 약탈해 온 유물들로 가득하다.
정말이지…….
바이킹의 후손다운 놈들이라 할 수 있다.
아니, 아마 먼 옛날 바이킹들이 지금의 대영제국을 본다면 ‘하하 우리 후손 놈들 제법이잖아?’라고 할 거다.
‘난리 나겠지…… 일단 개항부터 시킬 거고…… 인삼에 홍삼에 도자기에 싹 다 수탈하면서…… 면직물 팔고 그걸로 손해날 거 같으면 언제든지 아편도 팔 놈들이야.’
뻔하다.
-전에 보니까 우리 티에피영 경이 아편이라고 하면 환장하던데요?
-하하, 그렇다면 우리가 힘 좀 써야지. 양질의 아편을 팔게. 그게 우리가 티에피영 경에게 보답하는 길이지.
-생각보다 의술은 그렇게까지 발전하진 못한 거 같더군요.
-잘 찾아보게나. 뭐라도 있을 거야, 가져올 만한 게!
진짜 지랄 날 거다.
근대화에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겠냐고?
조선의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나라를 떠올려 보면 된다.
일본 말이다.
그런 식의 근대화가…… 과연 도움인가?
‘뭐…… 희망 회로 잔뜩 돌려서 메이지 유신 같은 걸 우리가 먼저, 그래 갑오개혁 같은 거 말이야. 그런 걸 해볼 수도 있을 거 같지만……?’
말이 개혁이고 혁명이지, 그거 까딱하면 목이 달아나는 일이다.
기존에 잡혀 있는 체제가 있고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이 있는데 이걸 뒤엎어?
그게 쉽겠나?
그게 일본에서 가능했던 건 결코 일본이 청이나 조선에 비해 우수해서가 아니다.
역설적으로 완전한 통치가 안 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봐야 한다.
흔히 19세기 조선하면 망국의 이미지가 떠오를 테지만 사실 일본은 그보다 더하다.
여긴 계속되는 기근에 기존에 존재하던 무사 계급의 난을 더해 우리와 같은 흑선의 존재로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그렇기에 혁명이 성공한 거다.
‘그래…… 조선은 잊자. 나는 인류를 위해 일하는 거야.’
사실 여기 오는 몇 개월 동안에도 계속 고민을 하긴 했더랬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전생에는 대한민국 사람이었고 지금도 조선인의 후손인데 조선의 멸망을 뻔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냥 두고 보는 건 좀 그래서 그랬다.
하지만 괜히 건드렸다가 더 망가뜨릴 수도 있는 게 역사란 생각도 들었다.
나는 김유진 같은 괴물이 아니지 않나.
“이보게, 평. 무슨 꿈을 꾸길래 밤새 낑낑댔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어서 그런가 나로서는 드물게 식은땀까지 줄줄 흘리면서 잤다.
보아하니 뒤척거리기도 한 모양이었다.
이불은 아예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뭐 기억은 안 납니다.”
나는 조선 얘기를 굳이 하고 싶지 않아 대강 얼버무렸다.
리스턴도 진짜 궁금했던 건 아니었는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아침밥으로 나온 음식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나저나 이게 뭔지 아나?”
“아…… 이건 장아찌로군요.”
“장아찌……? 냄새가 역한데.”
2024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미슐랭 3스타 받은 음식점이 가장 많은 도시가 어딘 줄 아나?
런던을 떠올린 사람은 정신 좀 차리기 바란다.
영국인들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쌓고 있는 업보에 대한 벌로 미각을 잃었으니까.
파리를 떠올린 사람은 그보단 낫지만 정답은 아니다.
놀랍게도 도쿄가 제일 많은 미슐랭 3스타 음식점을 보유한 도시다.
내가 뭐 이쪽으로 공부를 했던 건 아니고, 그냥 자주 보는 너튜브 중에 더X리라고 음식 리뷰 너튜버가 있는데 거기서 나왔다.
대단히 맛있어 보이고 비싼 음식점에 가는 데다가 먹기도 엄청 잘 먹어서 대리 만족에는 최강의 채널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그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근데 이게 단가……?”
“다라고 하더구만. 놀랍게도 말이야.”
“아니…… 사람이 어떻게 풀만 먹고 살지?”
“그러게나 말이야. 근데…… 어제도 느끼지 않았나. 다들 엄청 말랐다네. 꼭 인도인들 같이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혹시 이쪽도 채식을 하나?”
리스턴은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고는 몸을 흠칫 떨었다.
인도에서 기항해 있던 며칠간 고기를 거의 구경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뭐 영국인이라고 해서 매일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긴 하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끼니를 감자로 때우고 있다.
하지만 나나 리스턴과 같은 상류층은 소고기도 심심하면 먹을 수 있는 정도였는데 인도는…….
-소요? 하하…… 반란 일어납니다.
-내가 분명 인도인 중에 고기 먹는 사람을 봤는데요?
-아…… 브라만 계급이요? 걔들은 먹어도 됩니다.
-근데 왜 우린 안 돼?
-안 되는 건 아닙니다만…… 대놓고 먹는 건 현명한 일은 아니죠. 대신 닭은 먹어도 됩니다. 이것도 뭐 흔한 건 아니지만요.
-아우.
이해가 안 가는 곳이었다.
특히 누군 되고 누군 안 되는 게 신기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카스트였나 싶었는데, 아쉽게도 본격적인 구경을 하기 전에 떠나오게 되었더랬다.
애초에 우리가 있던 곳은 군사 기지에 가까운 곳이었다 보니 일반적인 인도인들하고 유리되어 있었으니 상관없을 거 같기도 했다.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근데 왜 고기가 없어.”
“모르죠. 그나마 거긴 카레가 먹을 만했는데…….”
“그게? 나는…… 영…….”
영국인 주제에 남의 나라 음식에 불평불만 갖는 꼴이라니.
리스턴만 아니었으면 바로 대가리 부수는 건데 그럴 수가 없어서 아쉽다.
“그나저나 내내 이렇게 주는 건가?”
“어제는 그래도 생선 요리가 있긴 했는데.”
“아, 그건 먹을 만했네.”
“여기가 항구니까요. 낚아서 바로 구우면 맛있지.”
“근데 왜 아침에는 이렇게 주지.”
“모르겠네요. 이것도 설마 푸대접인가?”
물론 지금 나온 반찬 꼬라지를 보면 영국뿐 아니라 영국 할아비라 해도 불만이 생길 만하긴 했다.
진짜 장아찌랑 밥밖에 없다.
내가 아는 일본은 이런 나라가 아니다 보니 슬슬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통역사가 왔다.
“기침하셨습니까.”
어제 우리의 위력을 보았기 때문에 그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공손했다.
아무리 봐도 음식으로 뒤통수칠 거 같진 않다는 얘기였는데,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라 일단 물어는 봤다.
“이봐.”
“네.”
“아침을 원래 이렇게 먹나?”
“네? 아…… 아뇨. 이렇게 화려하게 먹진 않습니다.”
“화려?”
얘가 일본인이라 영어를 잘못 배웠나 싶었다.
장아찌 다섯 개에 밥 한 공기 준 게 다인데 뭐가 화려하단 말인가.
“색색으로 꾸미지 않았습니까. 본래 이렇게 섞어 먹는 게 아니라 하나씩 보고 음미하는 음식입니다.”
“섞어? 아, 우리 형.”
자꾸 모르겠는 소리를 한다 싶어서 리스턴을 보니, 우리 영국인 친구는 전생에 무림 개방 거지라도 되었던 건지 뭔지 다 섞어 놓고 있었다.
아까도 볼품없는 식단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음식물 쓰레기 같았다.
“이렇게 먹으니까 그나마 더 나은데.”
통역사는 그런 리스턴을 보면서 최대한 무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고개를 돌렸다는 얘기다.
“네, 좋군요. 아무튼, 어제 약조 드린 대로 오늘은 보다 먼 동네로 가 볼 요량입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린가?”
“네? 걸어가야죠. 말을 탈 만큼 멀리 가진 않습니다.”
“아, 그런가.”
하여간 우리는 형편없는 조식을 입에 털어놓고는 통역사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어제 봤던 사무라이들 중 몇몇이 수행원을 자처하고 있었다.
상당히 진심으로 보였는데 당연한 일이긴 했다.
사람 팔다리를 두부 자르듯 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쩌겠나.
“이쪽으로 가시죠.”
“그래. 그러지.”
물론 이제 공식 행차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 측 군인들도 몇 동행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레드 코트는 너무 눈에 띄기 때문에 나까지 포함해서 전부 일본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러자 리스턴이 나를 보면 놀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입으니 영락없는 일본인이로구만그래. 조선말로 하면 왜구인가?”
“아니…… 그건 해적을 뜻하는 말이에요.”
“자네 정도면 훌륭한 해적이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수탈했나. 왜구.”
“그리고 그 말…… 아마 다들 알아들을걸요?”
“아, 그래?”
리스턴은 주변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린 후에도 딱히 멈추지 않았다.
멈추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 그랬다.
약간 부러웠다.
“저쪽이 아무래도 좀 분위기가 다를 겁니다.”
통역사는 애써 리스턴의 말을 못 알아들은 척하면서 안내를 지속했다.
그렇게 닿은 곳은 확실히 우리가 있던 곳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우선 거리에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왜 이렇지?”
“모르겠습니다, 습격이라도 받았나?”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데?”
빈 마을은 아니란 뜻이었다.
리스턴의 지적이 있고 나서야 통역사는 짚이는 것이 있는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를 도적 떼인 줄 안 모양입니다. 촌장부터 목을 벨까요?”
순한 놈인 줄 알았는데 전형적인 강약약강이었던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