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499)
검은 머리 영국 의사-499화(499/505)
499화 역병 [2]
“주께서 말씀하신다…….”
물론 아예 개소리만 늘어놓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야 그냥 쌩 사기꾼이지 않나.
이 김태평.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게 살아왔다.
선의의 거짓에, 한 번의 예외 없이 사실을 섞어 왔다는 얘기다.
사실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보다 잘 속게 된다.
아예 다 구라면 그걸 사람들이 믿겠어?
아니, 이게 아니고.
‘뭐냐…… 어떤 병이지?’
나는 계속 기도문을 주절거리면서 마을을 돌아다녔다.
아까 성급하게 시신 만졌던 놈은 혼자 둔 채였다.
손은 닦게 했지만 글쎄.
그걸로 감염을 막을 수 있을까 싶다.
‘콜레라였으면 벌써 똥 냄새가 엄청 나야만 했어.’
일단 파리에서의 경험을 되짚어 보건대 냄새부터 다르다, 콜레라는.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계속 싸는데 냄새가 나지.
그 생각을 하고 보니 역시나 콜레라는 전혀 아닌 거 같단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콜레라가 보다 쉽게 번지려면 이것보다는 더 사람이 많아야 해. 그리고…… 아무래도 식수원을 다 같이 공유해야 할 텐데 우물만 벌써 세 개에…… 가까이에 개울도 있구만그래.’
물이 많은 동네다 이건데,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이나 여기나 벼농사를 하는 곳이니 생존에 있어서 물이 제일 중요하지 않겠나?
역시…….
영국이나 프랑스가 좀 미개하기는 하다.
세상에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물을 그렇게 대충대충 하니까 콜레라로 몇만 명씩 죽어 나가는 거 아니야.
“어, 여기 생존자가 있습니다!”
“함부로 다가가지 마라. 여기…… 여기 악령이 심상치가 않아.”
“네, 네!”
“내 영역 안에 있어라.”
“네!”
용맹한 레드 코트 중 하나가 마스크를 낀 채, 손이 아닌 총으로 문을 열어 안을 확인하다가 드디어 생존자를 찾아냈다.
소독이나 감염에 대한 개념이 아무래도 부족할 수밖에 없는 일반인들은 내 뒤로 있게 했다.
그걸 다 뭐 의학적으로 풀어서 설명하기엔 시간도 부족하거니와 딱히 지금 중요한 것도 아닌 거 같아서 대강 말하고 있다.
말하다 보니 의외로 잘 먹히기도 하고 나도 좀 재밌어서 앞으로는 그냥 내내 이렇게 할까 싶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비의료인들을 뒤로 뺀 후 앞으로 나섰다.
‘호흡기 질환은 아닌 거 같아.’
기침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물론 기침을 안 한다고 해서 공기 전염이 안 되는 병이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호흡기 증상이 없어도 공기 중에 균이나 바이러스가 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허나 아무래도 그 농도가 적을 거다.
그리고 적은 농도의 병원균은 정상적인 면역 체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에볼라 같은 거면 또 모르겠지만…… 동아시아에서 19세기에 에볼라?’
에볼라일 리는 없다.
아프리카에서 기인한 병이니까.
그 치사율 때문에 실험실에서 나온 병 아니냔 말도 있는데 뭐가 되었건 지금 여기 있을 병은 아니다.
‘그래…… 괜찮을 거야.’
나는 문간 앞에 선 채 스스로를 안심시킨 후에야 다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당연히 기도는 멈췄다.
쓸데없이 입 놀렸다가 거기로 균 들어가서 뭐라도 걸리면 진짜 세상 멍청한 일이잖아.
명색이 의사라는 놈이 주술사 놀이를 하다가 병에 걸려?
그건 진짜 안 될 일이다.
“형님.”
“말하지 말라며.”
나뿐만 아니라 리스턴에게도 주의하라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둘 다 수화를 못 한다는 게 문제였다.
해서 나는 하는 수없이 리스턴을 향해 입을 열었다.
들어 오기 전에 마스크를 몇 겹 더 끼긴 했는데 얼마나 소용이 있을까 걱정하면서였다.
“저 사람 몸을 봐야겠는데, 칼로 옷만 벨 수 있어요?”
“응.”
리스턴은 치사하게 단답형으로만 답하곤 칼로 상대의 옷을 베었다.
뒤에 있던 사무라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금까지 양민을 이렇게 대하냐고 뭐라고 해 놓곤 지는 단칼에 베어 버리냐’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우리의 리스턴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찾아보기 힘들 만큼 훌륭한 검객이기에 노린 것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진짜로 옷만 베었다.
“어허…….”
환자도 놀랐다.
아파서 누워 있는데 갑자기 칼로 옷을 벴으니 당연한 일이다.
아무튼, 그렇게 베인 옷자락이 스르륵 좌우로 펼쳐지는 사이 나와 리스턴은 환자의 몸뚱어리를 멀찍이 서서 살폈다.
본 적이 있는 병변이었다.
전생이 아니라, 현생에서였다.
업턴에 있을 적이었는데, 사람이 아니라 소에게서 나타난 걸 봤다.
리스턴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천연두…….”
“망할.”
너나 할 거 없이 우리는 일단 방에서 뛰쳐나왔다.
의사라고 해서 뭐 감염에 면역이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 새끼…… 이런 느낌이었나?’
몇 번 말했던 적이 있던 거 같은데, 이비인후과 하다가 웹소설 작가 된 놈…….
걔가 어쭙잖게 바이탈과에 부채 의식이 있다고 했었잖아?
그거 때문인지 코로나 유행하기 시작할 때 봉사도 갔었더랬다.
보호 장구 다 하고 가는 거라 별생각이 없었는데, 이제 보니 치료법이 명확지 않은 질환을 마주하는 건 식은땀 나는 일이었다.
“형님 어쩌죠?”
“어쩌긴, 고쳐 봐야지.”
“고쳐요?”
“그래, 고쳐야지.”
뭐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면 또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난 대영제국의 귀족이고 또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다.
이런 데서 죽는 건 아무래도 좀 멍청한 일이지 않겠나?
나뿐만 아니라 리스턴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 굳게 믿고 물었다.
허나 돌아오는 답은 내 입장에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고친다고요? 방법이 있나?”
“방법은 이제부터 찾아봐야지. 뭐…… 여러 가지 방법이 있긴 하네.”
“방법이 있어요?”
“일단 사혈부터 해 볼까. 몸에 발진이 돋고 열이 나는 건 피가 너무 많아서가 아니겠나.”
“아니…… 이 양반이 내가 지금까지 가르쳐 준 게 얼만데.”
“근데 방법이 마땅치가 않지 않나. 설마하니 콜레라 때처럼 물이나 먹이면 된다는 건가?”
그렇게 나았으면 천연두가 그렇게 무서운 병이었겠냐?
애초에 조선에서는 마마라고 불렀잖아.
궁에서 쓰는 마마랑 같은 말이다.
그만큼 민간에서 천연두를 정말로 두려워했다는 얘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환자를 봐도 두려워할 만한 질환이긴 하다.
온몸에 발진이…… 저렇게 끔찍하게 돋아나는 병이 어디 있어.
“안 되죠. 그건 안 되고…… 다른 수를 내야죠.”
“다른 수가 있나?”
치료제는…… 없다.
19세기라서 없는 게 아니라 21세기에도 없다.
물론 항바이러스 중에 쓸 수 있는 게 있긴 한데…….
그 효용성이라고 해 봐야 코로나 19에 쓰이는 항바이러스 수준에 불과하다.
괜히 생화학 테러 용도로 여러 국가와 단체에서 천연두를 보유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거다.
21세기도 그 지경인데 19세기가 뭐가 되겠어, 이거?
‘예방과 동시에 치료를 꾀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한데…….’
물론 아무 방법이 없냐, 그건 아니다.
우두법이라는 게 있지 않나.
심지어 이게 엄청 새롭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긴 하다.
이미 영국에서는 에드워드 제너가 종두법을 개발한 후다.
그러니까 우리 리스턴 박사님과 레드 코트들은 그 방법을 알고 있다는 거다.
“설마 제너의 종두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아니겠지?”
“왜요. 그거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검증된 방법이지 않습니까?”
“그거…… 맞고 애가 소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네.”
“어…… 형님 설마 안 맞았어요?”
“안 맞았네. 자네는 맞았어?”
“맞았죠.”
맞았지만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대로 생산된 백신이 아니라 그냥 우두에서 추출한 고름을 먹은 게 다거든.
그러고 며칠 설사도 하긴 했는데 심리적인 것인지 실제로 감염이 일어나서 면역이 형성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튀려고 했던 건데…….
“아니…….”
리스턴 마저 종두법을 거부하고 있다면, 이건 좀 큰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뭐 아예 최신 치료기법이면 또 모르겠는데 에드워드 제너 그 양반 벌써 돌아가신 지 오래다.
“애가 소가 된다니요.”
심지어 그럴싸한 음모론도 아니고 소라니.
대체 이게 뭔 개소린가 싶어서 물으니, 찰스 대위가 거들었다.
내가 아니라 리스턴을 거들었다.
미친 새끼들.
“어릴 때 본 그림인데…… 그거 보니까 주사 맞은 애가 막…… 머리에 뿔이 나고 그러던데요?”
“아니…… 그런 사람이 어딨어, 세상에.”
“부모가 부끄러워서 죽였겠죠.”
“그게 말이 돼?”
“애가 그럼 소가 됐는데 살려 둡니까?”
“이런 시발.”
말이 안 통한다.
정말이지…….
19세기 새끼들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안 되겠구만…….’
나름 지성인이라는 것들도 사람이 소가 된다고 믿고 있는데 이걸 그냥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그렇지 않아도 슬슬 백신 개념을 좀 잡아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니 잘되었다 싶기도 했다.
“오오…… 주여!”
“깜짝이야.”
“뭐야 갑자기.”
해서 나는 팔을 위로 들고 주를 찾았다.
21세기 대한민국 서울에서 이 지랄 하면 경찰이 오거나 119가 올 수도 있지만 여기선 괜찮다.
아무나 다 괜찮은 거 아니고 나라서 괜찮은 거긴 하다.
혹여라도 19세기 유럽으로 회귀했는데 갑자기 이 지랄 하면 큰일 나니까 유념하기를 바란다.
“제물이 필요하군요! 소, 소! 건강한 소가 아닌, 죽어 가는 소를 찾아라! 빨리!”
나는 일부러 미친 척을 하면서 소리를 질러 댔다.
리스턴이나 찰스 대위는 여전히 당황한 상태 그대로였지만 나머지 놈들은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레드 코트 중 하나가 통역사에게 무섭게 을러댔기 때문에 통역사도 사무라이들에게 소를 찾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주술사로서의 내 면모에 이미 심취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다들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야 아프면 집 안에 가지만 소는 그럴 집이 없지 않나.
특히 이 시기 일본 농민들은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했기 때문에 외양간이라고 해 봐야 진짜 비나 가릴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다.
“여기! 찾았습니다!”
“죽은 건 안 된다! 불경하다!”
“여기 살아 있습니다!”
“으음…… 그래, 흐으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소가 몇 마리 없어서였다.
하긴, 뭐…….
심심하면 기근이고 대기근도 드물지 않게 오는 시대에 소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일본에서는 심지어 인육도 먹었다고 하지 않던가.
‘일본만 아니라 조선도 경신 대기근 때는 그랬겠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법이다.
아무튼, 그렇게 한 마리 겨우 찾았으니 내 심정이 어땠겠나.
당연히 감동했다.
연기하기에 좋은 상태다, 이 말이다.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 소의 고름이야말로 주님이 우리를 보고 아파하시는 증거이니, 이것을 먹고 마시면 우리에게 구원이 있을 것이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그런 나를 리스턴은 딱 ‘지랄한다’라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머지는 그럴 수가 없었다.
주술의 힘이라는 게 그렇게 녹록지가 않아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