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50)
검은 머리 영국 의사-50화(50/505)
50화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냐…… [3]
‘여기는 이세계…… 평행우주…….’
나는 최대한 멀쩡해 보이는 표정을 지은 채 속으로는 자기 암시를 걸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얘기를 듣다 보니까 입에 소변 흘려 주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거든.
미친놈들…….
진짜 광기…….
“하지만 말일세. 소변이라는 것도 소변이라는 걸 인지해야 자극이 되지 않겠나? 그냥 입에 흘리면 이게 뭐 데운 물이지.”
“그…… 그렇죠. 근데 유족들은 뭐라고 안 합니까?”
“생매장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나? 생각해 보게.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생매장했다고. 그 죄책감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나.”
“아…… 그런가.”
하여간 이 새끼들은 무려 소변은 별거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듣다 보니 별거 아니었다.
차라리 소변을 부으라고 외치고 싶어졌달까.
“뜨겁게 달군 부지깽이로 예민한 곳을 건드려 본 의사도 있네. 나도 해 볼까 했는데…… 부지깽이를 달구려면 설비가 만만치가 않더군.”
“그, 그런 문제로 하지 않으신 겁니까?”
나는 이제 무덤가에서 흘러나오는 냄새조차 다 잊고 있었다.
달군 부지깽이라니.
그거 고문할 때나 쓰던 거 아니냐?
“그걸로 항문을 지졌더니 살아났다는 사람이 있네.”
“아니…… 그게 산 건가요?”
“다시 죽었지. 하지만 적어도 생매장당하지는 않았네.”
심지어 항문을 지졌어?
미친놈이.
그럼 변도 못 싸고 죽었을 거 아냐.
우리는 그걸 흉악 범죄 중에서도 살해라고 부릅니다, 선생님.
“그…… 그렇군요.”
생매장보다는…… 그게 나은가?
둘 다 사실 비교해 볼 만한 일이 아니다 보니,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아니, 사실 그런 쪽으로 감을 잡고 싶지도 않았다.
망할.
“근데 그건 아무래도 좀…… 설비를 갖추는 것도 어렵고, 보기도 안 좋지 않겠나. 유족들의 항의가 이어졌네.”
“그…… 그렇죠. 아무래도.”
생매장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상상하기 싫을 만큼 가족을 사랑하는 유족들에게 항문 지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을 리가 있나.
미친놈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이 새끼들아.
그래도 생각을 고쳐먹었다니 다행이다 싶었다.
항의를 듣기는 하는구나, 싶기도 했고.
“그래서 말인데. 나도 이걸 쓸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블런델이 불쑥 무언가를 꺼냈다.
아무리 봐도 위험해 보이는 물건이었다.
바늘?
아니, 저건 칼이었다.
그중에서도 누구 하나 쑤시기 좋은 용도의…….
아, 그래.
날카롭게 벼린 형태의 송곳으로도 보였다.
“이게…… 이게 대체.”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다면 말로 해 주십시오 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
마친 조지프와 앨프리드는 넋이 나간 지 오래란 말이지.
블런델이 송곳으로 날 찌르면 말리지도 못할 거다, 이 말이었다.
그만큼 아까 목도했던 시신은 끔찍했고, 그다음에 무덤지기가 빼낸 시신 또한 끔찍했다.
부패가 진행되어 부풀어 오른 시신이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아, 이걸로 심장을 찌르는 걸세.”
“네?”
나는 잠시 이 사람하고 대화 도중에 내가 정신이라도 잃었었나 싶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자, 뭐 이런 대화를 하고 있었던 거 아닌가?
근데 갑자기 심장을 찔러?
무슨 브라더후드야?
블런델 당신, 어쌔신 크리드야?
이제 보니까 칼 쥐는 손이 예사롭지가…….
“생각해 보게. 살아 있었다면 찌르는 순간 피가 튈걸세.”
“아니…… 근데 그러면 바로 죽잖아요?”
“생매장은 피하지 않나.”
“아니…… 그게.”
“그걸 위해서 이런 각고의 노력을 하는 걸세.”
“네?”
이 새끼 이거 사람 살릴 생각이 없는 거였어?
설마 저기 무덤지기가 삽 계속 들고 있는 것도, 정말 시신이었던 사람이 살아나는 즉시 머리 후두려 까서 죽일 생각이었나?
무서운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다행히 블런델은 기함하는 내 얼굴을 보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겼네. 아까 말했듯, 나는 부지깽이로 항문 지지는 것도 안 했어.”
설비가 없어서 못 한 걸 안 했다고 하지는 않지 않나, 보통?
내 얼굴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생각을 바꾸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하여간 블런델은 돌연 그런 몰지각한 의사들을 비난하는 느낌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것도 자네 말이 맞지 않겠나. 단지 생매장을 막기 위해서라면 완벽한 방법이기는 하네. 무조건 죽이는 거니까. 하지만 어제 그 환자…… 아직 살아 있지?”
“네. 아마 살 것도 같습니다.”
감염과 두통의 원인 질환 등등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도 아닐뿐더러 높기도 높았지만, 하여간 살 수도 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그게 꽤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심폐소생술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는 시대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죽음이 결정되었던 사람이 다시 살 수 있다니.
상상도 못 했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심장을 푹 찔러서 확인한다는 발상이 이해가 되는…….
‘아니, 아니지. 오염되지 말자! 절대로 안 돼, 이건.’
그렇다고 지금 이 시점에서 고개를 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뭔가 죽을 거 같다는 사인이 될 거 같잖아.
간신히 고쳐먹은 마음을 다시 되돌릴 수도 있을 거 같고.
“애초에 나는 이 조기 매장에 대해 걱정이 많아. 나조차 그렇게 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 보게…… 눈을 감았다 떴는데 관 속이라니. 그것도 흙이 덮여 있다니.”
“저 러스트 벨을 흔들면…… 안 될까요?”
아까까지만 해도 러스트 벨인지 뭔지가 참 쓰잘데기없어 보였지만.
항문에 심장 얘기를 듣다 보니 저것이야말로 시대의 등불이요, 희망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것도 꽤 심각한 것으로.
이곳은 19세기 런던이니까.
“그게 말이야. 납품업자들이…… 불량을 납품하는 경우가 더러 있어. 나중에 파보니 줄이 끊어져 있더군. 생각해 보게. 덮인 흙을 이겨 내고 줄을 흔들어야 하는 건데…… 이게 뭐 실험을 해 볼 수도 없는 거 아닌가.”
“아…….”
일단 장인 정신을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그야말로 배금주의의 시대라서 그랬다.
돈이 무엇보다 우선되는 시대에서, 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니 종을 좀 만들어 달라고 하면 제대로 만들겠나.
당장 살아 숨 쉬는 노동자들의 삶조차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데.
“그 와중에 불량이 있으니…… 이게 참. 될 리가 없지.”
“그렇군요. 그렇네요. 아.”
“그래서 말인데, 역시 의사가 확인을 해야 하네. 이런 비극이 계속되게 둘 수는 없어.”
“음…….”
그중에 블런델 같은 사람이 있는 건 정말이지 다행이라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저변에는 본인이 생매장당하기 싫은 마음이 주로 자리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의도와 목적, 그리고 결과가 다 선한 경우가 대체 얼마가 되던가.
뭐가 되었건 결과만 좋으면 됐다.
특히 지금처럼 망할 세상에는 더더욱 그랬다.
“좋은 방법 없겠나?”
“글쎄요…… 당장은…… 흠.”
청진기는 있나?
심전도는 없는 게 확실했다.
그 비슷한 것조차 보지 못했거든.
게다가 그런 게 있었다면 조기 매장이니 지랄이니…… 어? 있었겠어?
심전도야말로 정말 정확한 기기란 말이지.
‘호흡, 순환…… 사실 이게 제일 중요한데. 그게 안 된단 말이지? 시간 두고 보는 건…… 런던 일반 노동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고.’
무덤조차 없어서 암매장하는 경우까지 있다지 않나.
무덤지기가 괜히 여길 지키고 선 게 아니란 얘기였다.
러스트 벨 때문만이 아니라, 그렇게 남의 묫자리에 엎어서 묻는 인간들이 많다고 했다.
근데 시신 안치실?
그건 어려운 일이었다.
장례식도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이야기고.
“제가 생각을 한번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좋아. 너무 리스턴 교수만 돕지는 말게. 자네의 천재적인 발상은 말일세, 어느 한 방면에 국한해 두기엔 아까워.”
“그…… 알겠습니다.”
한 방면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라.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확실히 지금은 19세기라는 게 실감이 났다.
그전에는 안 그랬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학문적으로도 그렇다는 얘기였다.
21세기에는 각 분야가 너무 발달해 와서, 어느 한 방면에서조차 티끌만 한 부분을 찾아 집중하지 않으면 소위 ‘전문가’가 되기 어려웠다.
전문가에 대한 존중은 오히려 지금이 더 극단적인 거 같아 보여서 어이가 없긴 한데…….
하여간 이 시기의 과학은 축적한 지식이 너무 적어서 천재적인 한 사람의 존재가 아주 컸다.
“자, 그럼…… 일단 저기. 콜린 군을 챙겨서 가세. 충격이 큰가 봐.”
“네, 심약하네요.”
“음. 그러니까 말일세. 사실 시신이야 맨날 보는 거 아닌가?”
“그…… 그렇죠.”
굳이 따지자면 이 시기 의사들은 지나칠 정도로 시신을 많이 보는 편이긴 한데.
하여간 뭐, 그거 하나 봤다고 정신 놓고 저러고 있는 게 의사의 자질만 놓고 봤을 때 좋은 건 아니었다.
무덤지기는 오히려 자기 할 일 잘하고 있지 않나?
“자자, 일어나게. 엄살 부리지 말고.”
“어…….”
“그만해. 이게 뭐 별일이라고. 자네, 설마 귀족 출신이라고 시위하는 건가? 의대에 들어온 이상 그런 특별 대우는 기대하지 말게. 애초에 물려받을 걸 다 받았으면 이런 일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을 거 아닌가.”
아, 그렇다고 또 저렇게까지 막말할 건 없을 것 같긴 했다.
하여간 이 시기의 아저씨들은 마초 그 자체였다.
어려워?
참아.
견뎌.
이겨 내.
이런 게 약간…… 미덕? 뭐 이런 느낌이었다.
“자, 일어나! 궁상떨지 말고.”
“네, 네.”
통하긴 했다.
속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콜린은 애써 일어나 마차로 향했다.
그래 봐야 다리는 떨리고, 얼굴도 정상이 아니긴 했지만.
‘뭐…… 조지프나 앨프리드가 저러지 않는 게 어디냐.’
다행히 둘은 멀쩡해 보였다.
“하여간 같이 와 줘서 고맙네. 이걸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될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네.”
“아…….”
“혼자만 하지 말고, 조지프나 앨프리드 군과도 고민해 보게. 혹시 아나. 우연히 뭐라도 생각해 낼 수 있을지?”
소 뒷걸음질 치다가 개구리 잡는 걸 기대한다, 이건데.
내가 볼 땐 차라리 개구리한테 돌 던져서 잡는 게 훨씬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우연도 뭘 아는 게 있어야 생겨나는 법이거든.
내가 친구를 무시하는 개새끼라서 이런 생각하는 건 아니고, 진짜로 그렇잖아.
결국, 고민은 내 몫이라는 얘기였다.
그냥 넘어갈 문제도 아니었다.
생매장이라니.
엉망진창인 사망 선고라니.
이건 반드시 고쳐야만 했다.
‘흠…… 어쩐다?’
나는 흐릿한 창에 기댄 채, 덜덜 떨리는 마차를 타고 고민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말이 없었다.
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건 아닐 터였다.
그래도 심각하긴 했다.
그만큼 무덤에서 본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그렇게만 생각해서는 안 됐는데.’
며칠 후, 나는 블런델의 만행 아닌 만행을 마주한 채, 마차에서 있었던 시간을 떠올렸다.
이 시기 의사들은 진짜 물가에 내놓은 애들 같아서 한시라도 눈을 떼선 안 되었다.
혼자만 죽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남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