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53)
검은 머리 영국 의사-53화(53/505)
53화 수혈 [3]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수혈 아닌 수혈이 효과를 본 건 단지 몇 분에 불과했다.
잘못된 수혈로 인한 급성용혈수혈반응은 환자를 속절없이 죽이고 있었다.
다른 적절한 말이 있다면 좋겠는데.
내 짧은 식견으로는 찾아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환자는 정말 실시간으로 죽어 가고 있었다.
“이거야 원.”
급하게 환자를 처리하고 온 블런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처리’라는 단어를 쓴 건, 이 새끼가 살리고 온 건지 아니면 죽이고 온 건지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어서 그랬다.
높은 확률로 죽이고 오지 않았을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태가 나을 거 같아서 그랬다.
내가 묻지 않는다면 환자는 살았을 수도 있고, 죽었을 수도 있다.
“대체 왜 혈뇨를 본단 말인가.”
하여간 블런델은 묻어 나온 소변을 보며 탄식했다.
여러모로 그가 지금껏 보아 온 여러 죽음과는 양상이 다를 테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으음…… 거참…… 이거 방법이 없단 말인가?”
환자의 의식이 다시 소실된 것도 이미 한참 되었다.
혈압?
맥도 잘 잡히지 않았다.
경험상 이제 50에서 60 정도일 터였다.
이완기 얘기는 아니었다.
수축기가 그 정도일 거란 얘기였다.
“이보게, 닥터 피영, 물 붓는 거라도 하면 안 되겠나?”
피를 더 주려다, 이미 바늘이 막혔단 사실에 절망한 블런델이 내게 물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 몸이 너무 붓는 것 같아서요.”
“아. 물 붓는 것과 연관이 있겠나?”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거 같습니다.”
“거참. 사람 몸이라는 건 봐도 봐도 잘 모를 때가 있단 말이지. 이제는 다 알 때도 한참 지난 거 같은데…….”
그런 나를 보며 블런델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다 알 때가 되었다니.
21세기 의사들도 그런 광오한 말은 안 하겠다.
‘뭐…… 아는 게 없으니 그럴 수도 있긴 한데.’
나는 블런델을 비난하는 대신, 환자를 돌아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런 건 처음 봤다.
뭐 이렇게 말하기엔 이미 너무 괴상한 꼴을 여기 와서 많이 보긴 했는데…….
하여간 급성용혈수혈반응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교과서로 배우기만 했던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는 일은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신장이 다 망가져 버렸어. 투석이라도 돌릴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투석?
수혈도 제대로 못 하는 곳에서 투석이라니.
아마 신장이 대관절 무슨 기능을 하는 장기인지도 모르고 있을 게 뻔했다.
그걸 알아내려면 생리학의 발전, 그리고 미세해부학의 발전도 어마어마하게 이루어져야 할 테니까.
다시 말하면 기대할 수 없는 일이란 얘기였다.
“저 잠시 어제 봤던 환자 좀 보고 와도 될까요?”
“응? 아, 그러게. 어차피…… 이 환자는 내 환자지 않나. 거참.”
살릴 수 없는 환자였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이미 지척에 서 있었다.
새삼스럽게 아까 의식이 잠시나마 있을 때, 보호자와 짧게나마 얘기 나눌 수 있게 조치했던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그거라도 하지 않았다면, 환자는 마지막 인사조차 하지 못하지 않았겠나?
아니, 그보단 남겨질 사람의 고통이 큰 문제였다.
애도 있는데…….
그래도 살 사람은 살아야 했다.
‘뭐…… 이제 와서 뭘 더 한다고 해도, 더 고통을 줄 수도 없어.’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이 환자의 곁을 떠나는 건 아니었다.
환자는 의식을 잃은 것을 넘어 이미 혼수상태였다.
통증에 반응할 수도 없는 상황이란 얘기였다.
우리 블런델이 뭘 해도 환자가 더 아파할 가능성은 없다는 얘기였다.
물론 블런델의 멘탈이 좀 터져서, 뭘 할 거 같지 않기도 했다.
하긴, 수혈이라는 회심의 일격을 날렸는데 속절없이 환자가 죽어 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수혈의 개념을 알려 주려면…… 대체 뭐부터 해야 할까.’
나는 잠시 그 생각을 하다가, 일단 물 주는 것이라도 좀 자주 하게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면 어제 내가 발굴해 온 환자를 살려야만 했다.
그래야 그걸 근거로 이걸 더 하자고 주장할 수 있을 테니.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수혈도 할 수 있겠지.
“좀 어떠세요?”
나는 조지프, 앨프리드를 대동한 채,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어떠냐는 말을 하기도 전에 일단 안심부터 했다.
확실히 환자는 아까보다도 더 나아져 있었다.
“아…… 훨씬 나아요.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일단 부리나케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하건 불가능하건 간에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아, 아직요.”
물론 나는 말렸다.
아직 낙상에 대한 개념이 없는 곳이지 않나.
환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간호사나 의사들 같은 의료진 또한 쇠약해진 상태에서 넘어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아니, 쇠약해진 상태의 사람이 얼마나 쉽게 넘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었다.
일단 침대에 난간이 없었다.
‘하아.’
산 넘어 산이란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어, 진짜.
“일단은 누워 계세요. 그보다…… 소변은 보셨습니까?”
“네? 아, 네. 그…… 자리에서…… 근데 이거 이래야 합니까?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요…….”
환자는 내가 아까 주고 갔던 그릇을 가리켰다.
어렵게 구해 온 것인데, 안에 농축된 소변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샛노란 오줌을 생명수 보듯 바라보았다.
옆에서 보기엔 진짜로 이상하겠지만, 내 심정은 그랬다.
“잘됐군요. 꽤 많이 보셨네요?”
“네? 아니…… 제가 하루 넘게 못 쌌는데 그 정도면.”
“아뇨. 이 정도면 괜찮은 겁니다. 아주 좋아요. 천천히 일어나 보죠.”
소변이 나온다는 건, 신장에 갈 피가 있다는 얘기 아닌가.
더 나아가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수분도 있다는 얘기고.
다시 말하면 이 환자가 처해 있던 저혈량 쇼크에서 벗어났다는 얘기가 되었다.
헤모글로빈, 즉 적혈구 수치는 별개이긴 하지만…….
하여간, 적어도 출혈 그 자체 때문에 당장 어떻게 될 일은 없었다.
“아니, 아니. 천천히요.”
“어…… 머리가.”
“띵했죠?”
“네. 아우. 눈앞이…….”
“시커메졌죠?”
“네. 아니, 그걸 어떻게…….”
“괜히 의사겠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시라고요.”
“네네.”
물론 여전히 급히 몸을 일으키려고 하면 기립성 저혈압은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피를 준 게 아니라 물만 줬으니까.
“자, 걸어 보죠. 넘어질 수도 있으니까. 천천히. 뒤에 두 명 더 있으니까 괜찮아요.”
조지프와 앨프리드는 내 말에 따라 환자 뒤로 가서 섰다.
그러곤 비틀비틀 걷는 환자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걸을수록 걸음걸이가 더 나아지고 있었다.
당연했다.
걷다 보면 혈압이 오르거든.
심장이 평소보다 지나치게만 뛰지 않는다면 괜찮았다.
나는 그걸 미리 방지할 수 있도록, 적어도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손목을 짚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노동맥을 짚어서 맥을 세고 있었다.
‘살짝 튀기는 하는데…….’
분당 100회 정도는 될 것 같았다.
걷는 것만으로 여기까지 오르고 있었으니 좋은 사인은 아니긴 했지만.
하여간 걷는 것까지는 괜찮다는 사인이기도 해서, 나는 일단 만족하기로 했다.
“자, 일단 이 정도로 하고…… 괜찮으세요?”
“살짝 숨이 차네요. 걷기만 했는데…….”
“그건 차차 좋아질 겁니다. 이제 상처를 좀 보죠.”
“상처요? 저 다친 곳은 없는데.”
병실을 두 바퀴가량 돌고, 환자를 침대에 앉혔다.
환자는 상처라는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병원에서 한 건 치료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상처라는 말이 영 어색하긴 할 터였다.
“여기 발이랑, 팔이랑…… 이마요…….”
“아.”
허나 발, 팔, 이마를 가리키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거기엔 훌륭한 상처들이 줄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발등에 난 상처에는 살짝 염증도 생긴 마당이었다.
뭐라도 좀 닦고 찔렀어야 했는데 그럴 리가 없었을 테니, 당연한 일이긴 했다.
‘그나마…… 건강해서 그런가…… 다른 데는 크게 문제가 없네.’
염증 유무를 검사도 아니고 육안으로 확인하는 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원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지 않나.
게다가 한국 사람은 그중에서도 생존 본능이 남다른 사람들이었다.
한강의 기적이 괜히 나온 게 아니란 얘기.
‘그럼 두통이 문제가 될 텐데.’
보통 두통은 아닐 것이라는 게 내 결론이었다.
생각해 봐라.
눈앞에서 계속 아프면 칼로 쨀 거라면서 인간 백정이 설치는데도 계속 아프다고 했으면, 그건 진짜 아픈 거라고 봐야 하지 않겠나.
이 사람이 무슨 대한 독립 만세를 위해 뛰는 것도 아니고…….
“머리 아픈 것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죠.”
해서 일단 물었다.
문진은 기본이고, 뭐 따로 기술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이 시기에서는 또 예외거든.
아프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냅다 칼부터 들이미는 놈들이 있으니까…….
꼴에 또 본인이 과학자라고 굳게 믿고 있다 보니, 그렇게 사고를 쳐 놓고도 당당했다.
별로 고칠 생각도 안 하고 있고.
“아…… 어떤……?”
“머리 아픈 지 얼마나 됐죠?”
“아…… 그게. 꽤 됐습니다.”
아마 이런 속 터지는 답 때문에도 그렇게 되긴 했을 터였다.
이런 답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걸 모르고 있을 테니, 뭐.
물론 나는 남들과는 달리 베테랑 의사기 때문에 참을성 있게 물었다.
“그게 정확히 얼마나 되었을까요? 한 달 이상 되었어요?”
“네? 아…… 한 달은 훨씬 넘었습니다.”
대개의 질환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은 만성과 급성을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 환자는 만성이라는 얘기였고, 다시 말하면 쉽지 않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군요. 그럼 반년이 넘었을까요?”
“음…… 사실 이게 되게 오래됐는데…….”
“그렇군요. 음. 그럼 이 두통이 더 심해졌나요? 아니면 그때랑 같나요?”
“더 아파지니까 왔죠.”
“하긴.”
이 시기의 병원이라면, 어지간한 각오로 올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산부인과처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은 이상, 얼씬도 안 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도 왔다는 건 되게 아팠다는 뜻이리라.
“주로 어디가 아픈가요?”
“머리요.”
“아니, 머리에서 정확히 어느 부위가.”
“아…… 음. 으음…… 여기……?”
환자가 가리킨 곳은 머리 가운데쯤에서부터 이마 쪽이었다.
딱히 위치로 뭘 평가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원래 머리 아프면 대개 저기가 아프잖아?
“어떨 때 더 심해지나요?”
하여간 나는 질문을 이어 나갔다.
긴장성 두통 같은 거면 좋겠단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환자의 답은 그렇지가 않았다.
“고개 숙이거나 하면…… 더 아파요.”
“잉.”
“네? 왜요?”
“아니, 어…… 혹시 콧물 나요?”
“콧물은 나죠.”
“누런?”
“새카맣기도 하고요. 근데 보통 누렇죠.”
축농증이었다.
하, 그거 수술 어려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