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56)
검은 머리 영국 의사-56화(56/505)
56화 축농증 수술이…… 어떻게 하더라? [3]
나는 우선 수술이 필요할 거 같은 환자 분류부터 했다.
이게 뭐 맹장이나 이런 거면 솔직히 말해서 다 떼 줬을 터였다.
안 떼면 아주 높은 확률로 잘못될 수 있고, 무엇보다 내가 진짜 잘하는 수술이지 않나.
하지만 이건 좀 얘기가 달랐다.
수술 안 한다고 죽나?
물론 죽을 수도 있긴 했다.
‘항생제 치료하지 않고 그냥 두고 보면…… 뭐, 그럴 수도 있지.’
모든 병이 사실 그렇지 않나.
숙주가 약해진 상황에서는 축농증도 얼마든지 사신의 낫을 휘두를 수 있었다.
특히 항생제와 같이 숙주를 결정적으로 도울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한 시대라면 더더욱 그랬다.
허나, 그 확률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내 수술을 내가 못 믿겠는데.’
부비동 내시경 수술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 뭐 배우려는 마음가짐으로 본 건 아니긴 했지만, 3주 동안 실습 돌면서 질리도록 보긴 했다.
성격상 저렇게 비좁은 부위를 저렇게까지 성질내면서 수술하고 싶지는 않아서, 진로에서 이비인후과를 완전히 배제하게 된 3주긴 했지만.
적어도 그 결정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돌 때는 열심히 돌았다.
‘그럼 뭐 해. 내시경이 없잖아.’
아니, 말을 잘못했다.
세상에 내시경이라니?
그런 게 있는 시대면…….
“평아. 뭐 해?”
“아.”
날 상념에서 깨운 건, 조지프였다.
그래, 이미 분류는 끝냈다.
진짜 이 사람은 수술을 해야겠다 싶은 사람 단둘.
두 명을 제외하고는 좀 효과가 미진하다 싶어서 일단은 무지성 세척으로만 일관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은 뭐 하냐고?
연습이다, 연습.
“그래. 음…… 여기 좀 당겨 봐.”
“당기고 있어.”
“선배는 머리통 좀 잡고요.”
“어. 나, 근데 너무 무서워.”
뭘 가지고 연습을 하냐.
당연히 시신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산 사람 가지고 연습할 수는 없잖아.
그건 이미 범죄의 영역이잖아.
물론 이 시대에는 수많은 의사들이 그런 짓을 하고 있긴 했다.
딱히 누가 한다고 꼭 집어서 말하기도 어려운 게, 다들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렇다고 나까지 그럴 수는 없지.’
그래.
나까지 그러는 건 진짜 선을 넘어도 한참 넘는 거다.
난 최소한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배웠으니까.
후우.
“무섭긴 뭐가 무서워요.”
“그럼 네가 시신 머리 잡고 있어 볼래?”
“아뇨. 그럼 누가 수술을 보여 주나.”
“하아.”
현시대의 의학에 대한 분노를 애꿎은 앨프리드에게 푼 다음, 나는 다시 정을 집어 들었다.
수술용 정 따위는 먹고 죽으려 해도 없어서 진짜 정을 들고 왔다.
“하하하. 이제 우리 평이도 의사 다 됐네.”
험악한 기구를 사용할 수 있을수록 명의로 취급받는 시대이지 않나.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리스턴 박사는 껄껄 웃으며 박수를 쳐 주었다.
사람 얼굴을 정으로 내리치려는데 저런 박수라니.
하여간 나는 앨프리드에게는 머리 고정을, 조지프에게는 입술을 젖혀 시야를 확보하게 한 채로 수술을 이어 나갔다.
이미 칼로 우측 잇몸 끝부분은 짼 참이었다.
그걸로도 시야가 잘 안 나서 칼로 좀 더 박리를 했는데, 하면서도 이래도 되나 싶기는 했다.
‘상처를 낼 수는 없으니…… 이렇게 하는데……’
제일 쉬운 건 아마도 그냥 코 옆 선을 따라 째고 살을 옆으로 젖힌 다음, 드러난 광대뼈를 부수고 안에 들어찬 염증을 제거하는 것이긴 할 터였다.
와.
생각만 해도 속이 다 시원하네.
하지만 고작해야 축농증 수술을 한다고 얼굴에다가 큼지막한 칼집을 박아 넣을 수는 없잖아.
게다가 지금은 봉합사도 후져서 흉터가 더 남는다고.
나일론 어떻게 만드는 거냐.
누가 제발 좀 만들어 줘.
“오. 진짜로 뼈가 보이네?”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조지프와 앨프리드 그리고 리스턴에게는 경이로운 광경일 뿐이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에 해부학적인 지식을 더해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하고 시작한 수술이었지만, 일단 굉장히 그럴싸하지 않나.
진짜 내가 천재로만 보이긴 할 터였다.
미안합니다.
이름 모를 수술의 창시자여…….
“이제 정으로 이걸 부술 거야.”
“뼈를 어떻게 부숴?”
“옆에 비어 있는 뼈라는 거, 확인했잖아.”
그렇다고 처음부터 구라를 세게 칠 수는 없어서, 일단 전에 한 구로 연습을 시전했다.
사실 나도 그때서야 부비동이라는 게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분포해 있는지 처음 확인했다.
내 생각대로 냅다 했으면 눈이 내려앉을 뻔했더라고.
하여간 지금은 나름 체계를 갖춘 참이었다.
다는 정을 뼈에 갖다 댄 다음, 망치로 정의 끝을 톡톡 내리쳤다.
그렇게까지 셀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주먹에도 깨지는 곳이잖아?
콰직!
아니나 다를까, 몇 번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뼈가 깨져 나갔다.
조각 중 일부가 안으로 들어간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뭐 어쩌겠나.
뭐가 되었건 간에 뼈 안쪽 공간, 즉 부비동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와…….”
“안에 뭐가 차 있는데?”
하여간 이 시신의 부비동에도 농이 차 있었다.
어마어마한 양은 아니긴 했지만, 부비동염 진단 정도는 내릴 수 있을 정도였다.
확실히 공기가 더렵다는 게 인간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석…….”
“응?”
“아니, 이거…… 이거 일단 닦아 내자.”
습관처럼 석션 좀 달라고 하려다 말았다.
와…….
21세기 의사들은 진짜 복 받은 거다.
석션도 있잖아.
불도 밝고.
지금은…….
“언제…… 언제까지 이거 들고 있어야 해요?”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나는 옆에 끌려온 콜린을 돌아보았다.
녀석은 러스트 벨 사건을 겪고 난 후로 어딘가 모르게 의기소침해져 있었는데, 보다 못한 리스턴이 불 드는 일을 시켰을 정도였다.
그나마 뭐에 집중이라도 하면 낫다나 뭐라나.
정작 끌려온 콜린의 생각은 좀 다른 거 같았지만.
나는 그 고통스러운 얼굴에서 이내 수술 부위로 고개를 돌렸다.
어설프게 준비한 거즈로 안쪽을 닦아 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공간이 꽤 컸다.
그에 반해 이 부비동에서 코 안쪽으로 연결되는 부위는 꽉 막혀 있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이러니…… 세척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지.’
더 절망스러운 건 이 부비동, 그러니까 상악동이 제일 접근하기 쉽다는 점이었다.
이 뒤로 있는 사골동은 더 어려웠고, 맨 뒤에 위치한 접형골동은 진짜 도전 정신을 불러일으킬 지경이었다.
문제는 대개의 부비동염에서 두통을 일으키는 곳이 접형골이라는 점이었다.
“자아, 이제부터 어려울 거 같은데. 더 잘 당겨 봐. 선배도 이제 그만 잡고 와서 당겨요.”
“어? 어어. 머리는 안 봐도 돼?”
사고 칠 가능성이 아주 컸다.
접형골동은 말이 부비동이지, 사실상 머리 한가운데 있거든.
21세기에도, 그러니까 고해상도 내시경 수술이 가능하게 된 시절에도 심심하면 사고가 났을 지경이었다.
친구 중에 의사면서 변호사인 애가 하나 있어서 간혹 감수를 봐줬는데, 사고가 많이 나기는 하더라고.
“그것도 봐야지. 이거 당기면서 자주 봐.”
“어…… 아, 나 너무 무서운데.”
해서 나는 내가 사고를 치고 있는지 여부를 두 눈으로 확인하길 원했다.
이 시신의 두개골을 미리 따서, 뇌가 드러나게 해 두었다는 얘기였다.
코의 천장은 결국 머리의 바닥이니, 내가 사고를 친다면 저쪽에서 뭔가 조짐이 보이지 않겠나.
그러니 앨프리드가 자꾸 무섭다고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무섭긴 뭐가 무섭나! 이제 마취도 되니까 신경계통 수술도 슬슬 시작해야 할 텐데!”
리스턴은 그런 앨프리드를 나무랐다.
무서워하지 말라면서였는데,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이제는 내가 무서워졌다.
‘아니야, 하지 마…… 큰일 나…….’
리스턴의 손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마취도 없던 시절부터 혹독하게 단련해 온 그의 실력은 분명 대단할 것이다.
문제는 개념이었다.
머리에 대한 개념이 없이 머리를 수술한다…….
와…….
“평아?”
“어어.”
잠시 날아가 버린 내 정신을 붙들어 준 이는 아까와 같이 조지프였다.
고맙다.
“펜치 줘 봐요.”
“어어.”
그렇게 정신을 차린 나는 역시나 변변한 도구가 없어서 대신 들고 온 펜치로 상악동 뒤로 자리한 사골동을 부숴 나갔다.
아마 원래는 원칙이 있기는 할 터였다.
또각. 또각.
뼈라고 하기엔 너무 얇아서 펜치로 집을 때마다 부서지긴 하지만…….
부수기 쉽다고 해서 부수라고 만들어진 조직은 아닐 거잖아?
애초에 우리 몸에 딱히 쓸모없다고 여겨질 만한 조직이 거의 없으니 아마 조심하는 게 맞을 텐데.
지금은 별 의미가 없었다.
‘그나마…… 아래로 통하는 구멍만 있으면 된다고 했었잖아, 여기는.’
이 생각만 떠올리고 있었다.
유튜브 하던 이비인후과 친구가 알려 준 건데, 꿀팁이라고 했다.
꿀팁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비인후과적인 내용인 데다가 적용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과격하긴 했지만.
하여간 나는 녀석의 조언을 따라 최대한 사골동으로 보이는 조직만 부숴 나갔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 평평해 보이는 뼈가 보이기 시작했다.
‘접형골인가……?’
이게 배였으면 진짜 쉬웠을 텐데.
응?
내가 진짜 배 쪽은 명의라고.
‘아무도 알아주질 않으니 원.’
팔자에도 없는 코 수술이라니.
통탄을 금할 길이 없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여기는 소독이 큰 의미가 없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생각해 봐라.
콧구멍 안을 닦아 낼 수는 없잖아?
게다가 부비동이라는 게 뼈 안에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밖이랑 통해 있는 곳이라고 봐도 무방한 곳이었다.
“이게 펜치로는 안 되네. 송곳 줘 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평평해 보이는 곳을 송곳으로 뚫었다.
주르륵.
그러자 안에 고여 있던 농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와.”
“와우.”
이게 대체 얼마나 오래된 농일까.
진득한 게 진짜…….
나는 왜 사람들이 간혹 유튜브에서 피지 짜는 영상이나 편도 결석 빼는 영상을 보곤 하는지 실감했다.
진짜 속이 다 시원해.
한 가지 한이 있다면, 불이 약해서 잘 안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시원한데 잘 보이면 얼마나 좋겠어.
‘더 파 볼까.’
욕심이 날 지경이었다.
해서 나는 핀셋으로 거즈를 집어 들고는 방금 낸 구멍을 펜치로 넓히면서 동시에 안에 있던 것을 막 들이팠다.
그러다 보니까 또 하얀 농이 막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이거지.
이거야.
“와…… 이 사람 머리 안 아팠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농이 많았다.
정말로…….
아니, 근데 너무 많은데?
정형골동이 이렇게 크다구?
살짝 의문이 들려는 찰나, 앨프리드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후.’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수술하는 집도의의 어깨를 두드리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권위의 문제가 아니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이런 짓은 하면 안 되었다.
“야야.”
“왜요.”
해서 나는 짜증 섞인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얼굴이 살짝 질려 있어서 이상하다 싶었다.
자세히 보니 환자의 머리를 가리키고 있어서, 나도 거기를 봤다.
“아.”
“뇌가 줄었어……. 네가 판 거 뇌인가 봐.”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