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57)
검은 머리 영국 의사-57화(57/505)
57화 축농증 수술이…… 어떻게 하더라? [4]
와…….
나는 손을 멈추고 일단 환자 머리 쪽으로 올라갔다.
앨프리드가 가리키고 있는 곳을 바라보니, 과연 좀먹은 것처럼 뇌가 일부분 허물어져 있었다.
이런 건 진짜 처음 봤다.
‘이비인후과 수술 우습게 보지 말라고 하더니만…… 진짜로 그렇네.’
우리는 배 열고 하는데, 기껏해야 코나 쑤시는 놈들이 하는 말이라 무시하려고 했더니만 뇌가 있었다.
와…….
뇌를 팠네.
그걸 농이라고 생각하고 후볐어.
‘시야가 안 좋으면 역시 사고를 치게 되는구만…….’
하긴 시야야말로 수술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뭐가 보여야 째든지 뭘 하든지 하는 법이었다.
당길 수 없는 곳이란 생각에 그냥 했는데, 이건 명백한 내 과오였다.
“욕심내면 안 되겠네, 역시.”
“응?”
“아니, 구멍만 뚫어 줘야겠어. 괜히 안에 후비다가 뇌를 후빌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난 내 선별 과정에서 살아남은 아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결정된 두 환자를 떠올렸다.
그 둘은 진짜 별짓을 다 해도 두통이 너무 심한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세척을 시도했더니 중이염이 생겼다.
그것도 어떻게 해 줘야 하는데…….
일단 코를 열어 주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단 생각만 들었다.
‘귓구멍은 더 좁은데 내가 무슨 수로 수술을 하겠냐.’
머리 아파 왔다가, 귀도 아파진 환자 둘.
머리로는 어떻게 하면 되겠다 뭐 이런 계획이 있긴 했다.
중이염에서 귀가 아픈 건 결국, 안에서 발생한 염증이 고막을 누르기 때문 아닌가.
제일 좋은 건 당연히 안에 염증을 가라앉히거나 제거하는 것이겠지만, 항생제도 소염제도 없는 지금 시대에서는 고막을 째 주는 것이 효과적일 터였다.
그럼 안에 있던 염증이 밖으로 새어 나올 테니까.
물론 고막에 구멍이 나기야 하겠지만…… 잘 막힌다고 들었다.
문제가 있다면, 나는 도저히 이 좁은 귓구멍을 통해 고막에 구멍을 낼 자신이 없다는 점이었다.
‘일단 그럴 만한 도구도 없어.’
어떻게 생긴 도구를 썼는지만 알아도 좀 나을 텐데.
이비인후과는 마이너한 과다 보니 학점도 0.5점이라, 실습 때만 좀 보고 공부는 족보만 봤더랬다.
과거의 나 새끼…….
좀 폭넓게 공부하지 그랬냐.
그랬으면 죽고 19세기로 왔을 때 덜 고생을 했을 텐데…….
“일단…… 다음 카데바로 해 볼까.”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저 멀리 치워 버리고, 다음 시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곤 얼굴에 씌워 놨던 종이를 치웠다.
그러자 또다시 젊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 망할 놈의 런던은 왜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매일 같이 죽어 나가고, 또 해부실에 팔려 오는 걸까.
‘이게 언제 해결되더라?’
너무 끔찍한 상황이다 보니 고민되기도 했지만, 아는 것도 없이 고민하는 건 무용한 일이었다.
뼛속까지 이과고 또 그렇게 훈련받은 난 고개를 털어 버리곤, 조지프를 돌아보았다.
“어…… 응.”
조지프는 아직도 환자의 머리와 코, 그리고 입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잘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무리도 아니었다.
아직 해부학적 지식이 일천한 상황이지 않나.
나야 눈 감고도 머리 쪽이 대강 어떻게 생겼는지, 뼈를 하나씩 붙여 가며 3D로 그려 낼 수 있지만, 이 시대에 그런 능력자를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아마 어디가 어떻게 이어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알지 못할 터였다.
지이익.
하여간 조지프는 아까 했던 것처럼 시신의 윗입술을 위로 당겨 잇몸을 노출시켰다.
나는 그곳을 나름 작게 디자인해 낸 칼로 절개창을 내었다.
그러곤 끌개 비슷한 거로 잇몸 조직과 뼈 사이 틈을 긁어 냈다.
그러자 툭툭 소리가 나면서 안쪽에 뼈가 점점 더 넓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난다고 여기서 바로 뼈를 뚫어서는 안 되었다.
‘전에 그러다…… 윗니 뿌리를 봤지.’
세상에…….
그땐 이를 세 개나 뽑았다.
본의 아니게.
리스턴 박사나 앨프리드, 조지프 등 19세기의 야만인들은 수술하다 턱도 부서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세 개가 뭐 대수냐고, 왜 호들갑을 떠냐고 하긴 했다.
‘휩쓸리면 안 돼…….’
그런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어서 진짜 놀랐다.
안 돼.
안 된다.
나는 이놈들하고는 다르다고.
“정 줘 봐.”
21세기에, 그것도 가장 진보된 의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나 전문의도 모자라 펠로우 과정에 임상 조교수를 거쳐 전임 조교수까지 되었던 내가 이놈들처럼 환자 생각을 안 해서야 되겠나.
해서 난 보다 위로, 충분히 위로 박리를 진행한 후에야 정으로 뼈에 구멍을 뚫었다.
깡! 콱!
이것도 하다 보니까 실시간으로 늘고 있었다.
뭐라고 해야 되나?
뼈에 정을 갖다 대니까 느낌이 온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안에 공동을 치는 느낌을 받는 즉시 힘을 더 줘서 망치를 휘둘렀더니, 뼈가 부서지면서 동시에 안쪽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음.”
안은 역시나 정상이 아니었다.
“원래 이렇게 생긴 건가?”
입술을 당겨 주고 있던 조지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열었던 세 구의 시신 모두 상악동에 염증이 차 있다 보니, 이런 오해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였다.
“아니, 아닐 거 같은데.”
“그래? 근데 왜 다 이래?”
“그만큼…… 음.”
나는 런던의 공기가 문제라는 얘기를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 당시 과학자들은, 그런 새끼들한테 과학자란 말을 해 주는 것조차 짜증 나기는 하는데, 그들은 공기에 딱히 관심이 없었다.
기체라는 개념이 없어서 그런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이 새끼들…… 놀랍게도 산소라는 것도 알고 있더라고.
하여간 공기 오염도 잘 모르는 놈들이다 보니,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분명 이상해 보일 터였다.
“뭔가 코를 자극하는 게 있나 보지. 런던에.”
그렇다고 해서 나중에까지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어서 애매하게 말했다.
당연하게도 내 말을 들은 우리 19세기 분들은 딱히 생각이 없었다.
“하여간 다 긁어내 보게. 보다 보니까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군그래.”
수술덕후 리스턴은 그저 손가락만 꿈지럭거리고 있었다.
머릿속으론 이미 코 몇 개를 아작 내고도 남았을 터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앨프리드도, 조지프도 다 마찬가지였다.
누가 외과 의사 지망생 아니랄까 봐 손이 근질거리는 모양이었다.
‘뭐…… 원래 보다 보면 다 쉬워 보이고,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아 보이긴 하지…….’
정형화된 수술이란 건 그런 함정이 있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술식은…….
아마 찬찬히 들여다보면 정확히 같지는 않겠지만, 정식으로 이름이 있는 놈이었다.
콜드웰-뤼크(Caldwell-Luc) 수술이라고 했던가?
지금이야 내시경이 있으니 많이 하진 않겠지만, 옛날엔 부비동 수술을 이렇게 했다고 들었다.
옛날이라고 해 봐야 20세기 후반을 말하는 것이고, 그 전에 어마어마한 시행착오를 거쳐 탄생한 술식이었다.
즉 내시경이 없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수술 중에는 이보다 나은 수술이 없다는 뜻이고, 딱딱 틀에 박혀 돌아갈 수 있는 수술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근데 막상 니들이 하면…… 엄청 어려울걸.’
내가 막 하고 있는 거 같아 보일 수도 있었다.
“오케이…… 좋아. 나왔고.”
하지만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면 너무 억울하고 분할 거 같을 정도로,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우선 이 상악동의 천장이 눈의 바닥이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그게 뭔 상관이냐는 말이 튀어나올 수도 있는데…….
주먹으로 눈 맞아서 온 환자 본 적 없으면 그런 말은 하면 안 될 일이었다.
생각보다 눈의 외측과 천장 쪽 뼈는 단단하지만, 아래와 내측은 엄청 얇아서 잘 깨지는 편이었다.
그 말은 곧 이렇게 긁는 것만으로도 깨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눈이 아래로 주저앉을 수 있다 이 말인데…… 그렇게 되면 양쪽 눈의 시야가 달라지게 되면서 물건이 두 개로 보이게 되었다.
“그럼 이제 안으로 가 볼까. 더 당겨 줘.”
“어어.”
“선배도 이제 머리 잡는 건 됐으니까, 여기 당겨요.”
“어어. 근데 이번에도 머릿속까지 파진 않을 거지?”
“그렇게 안 할 거니까…… 잡기나 해 줘요.”
“응.”
지금 들어가는 부위, 사골동은 더 위험했다.
여기서부터 바깥쪽은 곧 눈의 안쪽이었다.
뼈가 어찌나 얇은지 이름부터가 파피라세층(Lamina Papyracea)인데, 파피루스가 종이지 않나.
그만큼 얇다는 뜻이었다.
툭 하면 부러져 가지고 눈이 안쪽으로 돌 수가 있었다.
“후…….”
그뿐만 아니라, 사골동의 천장은 머리의 바닥이었다.
망할 상황인 게, 여기도 뼈가 그리 두껍지가 못해서 아차 하면 부서질 수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야도 좋지 못했다.
똑. 또각.
펜치로 조심스레 부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이 말이었다.
답답하다고 송곳 같은 걸로 쑤셨다가는 진짜 훌륭한 살인범이 되고 말 터였다.
이 새끼들 혹시 수술에 진보를 일으키네 어쩌네 하면서 설치면 빼앗아야지.
“후…….”
그렇게 참을성 있게 펜치질을 하다 보니, 드디어 살짝 매끈한 뼈가 보였다.
아까는 그대로 뚫었지만, 사고를 친 마당이다 보니 아무래도 좀 조심스러웠다.
해서 통통 두드려 보았다.
‘음…… 별 의미는 없구만.’
접형골동이면 안이 비었을 테니, 뭔가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 싶어서였는데.
염증 때문인지 뭔지 의미가 없었다.
차이가 없달까.
해서 일단 뚫었다.
지금은 연습 중이잖아?
누워 있는 사람이 포르말린 처리도 안 받은 만큼 진짜 산 사람 같아 보이긴 하지만, 사실은 아니란 얘기였다.
폭.
해서 뚫었더니, 안에서 농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이 양반도 누구 못지않게 머리가 아팠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치료를 받지 못했던 건…….
‘죽기 싫어서였겠지.’
우리 제멜 같은 의사가 너무 많지 않나.
로버트도 문제였다.
피가 차서 머리가 아프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있는 놈들 천지인데, 생각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그런 놈들한테 가겠냐.
“더 안 파나?”
하여간 나는 구멍만 뚫어 놓고 그냥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랬더니 리스턴 박사가 답답한지 입을 열었다.
손에 벌써 송곳을 들고 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어떻게 봐도 위험해 보이는 물건을 시기적절하게 집어 들지 않나.
“아뇨. 아까 사고 쳤으니까요. 생각해 보니까 일단 농만 제거해도 될 거 같아서요.”
“여기. 상악동에는 벽에도 염증이 많았잖아?”
“아…… 여기는 잘 보이는데, 안쪽에는 보이는 게 없어요.”
“감으로 하는 거지.”
“아…….”
아니야.
수술을 감으로 하면 안 돼…….
배처럼 시야 좋은 곳도 감 좋다고 깝치면 환자 죽어…….
“저는 자신이 없어서요.”
“자네는 다 좋은데 용기가 부족하구만, 아직. 내게 좀 배우게.”
아니야…….
의사가 너무 용감하면 환자들이 죽어…….
뭐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감히 리스턴 앞에서 고개를 흔들 수는 없어서, 그냥 있었다.
어차피 내 환자는 내 마음대로 볼 생각이니 당분간은 괜찮을 터였다.
리스턴이 말은 저리해도 나름 ‘닥터’ 자를 붙일 땐 그 호칭에 대한 존중도 할 줄 아는 사람이라 그랬다.
“자…… 그럼 누우시죠.”
그렇게 몇 구의 시신으로 연습을 더 해 본 나는 드디어 실제 환자를 대면할 수 있었다.
환자는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팔다리 자르는 것도 겁날 텐데, 이 양반은 코를 수술받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