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58)
검은 머리 영국 의사-58화(58/505)
58화 수술 갑니다 [1]
그래, 환자는 불안해할 수 있다.
21세기에도 수술 전에는 이 말 저 말 다 하지 않나?
심지어 집도의에게 너 수술 잘하는 거 맞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게 되게 무례할 수 있는 말이라는 걸 충분히 알 만한 사람들도 그랬다.
그 말은 선을 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안 돼. 안 돼! 내 코를 자를 수는 없어!”
저건 뭐라고 해야 할까.
“안 돼! 살려 줘!”
좀 선을 넘은 느낌 아닌가?
그 누구도, 응?
코를 자른다고 하진 않았잖아.
칼이 있기는 한데…….
작잖아.
이걸로는 잇몸이나 가르지, 코는 못 자른다고…….
“동네 사람들! 이 새끼들이 코를!”
하여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될 거 같았다.
일단 저 바로 옆에 당장 수술받아야 할 사람이 있단 말이지.
정확히 같은 수술인데…….
옆에서 저 지랄하고 있으면 받고 싶겠어?”
“어…….”
저 봐.
벌써 공포에 물들고 있잖아.
이렇게 둬서는 절대 안 될 것 같았다.
해서 내가 나섰다.
“환자분, 말을 이상하게 하시는데 코를 자르는 게 아닙니다.”
“그, 그럼 저 칼은 뭡니까.”
“잇몸을 좀 째는 거라니까요?”
“입을 잘라?”
“아니, 그게…….”
별 소용은 없었다.
생각을 해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상이긴 했다.
이 인간들이 본 수술이라는 게…….
죄다 어? 그런 거잖아.
팔다리 자르고.
전에 보니까 턱도 잘랐더라고, 우리 리스턴 박사님이…….
환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에 관한 얘기도 없고.
“내게 맡기게. 역시 자네 같은 천재도 경험 없이는 대처가 안 되는구만그래.”
뭘 어찌해야 하나 싶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수술해야 한다고 하면 대개는 고개를 끄덕이고, 동의서에 사인도 해 주잖아.
물론 동의서에 적힌 수술 과정이 좀 끔찍한 경우도 있고, 또 합병증이 그런 경우는 많다 보니 이런저런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이런 경우는 없었거든.
해서 어버버하기 시작하려는데, 리스턴 박사님이 나섰다.
“아, 네.”
그래, 이 양반이라면 어떻게든 해 줄 것 같았다.
“가스 틀어.”
“네?”
그 ‘어떻게든’이란 게 이런 건 아니었는데…….
리스턴 박사는 애초에 말로 뭘 설득할 생각은 없었는지, 뒤에 들고 와 있던 웃음 가스를 틀었다.
아니, 틀라고 했다.
나야 그런 요구가 이해조차 되지 않았지만 리스턴 박사님과 다니는 친구들에게는 숨 쉬듯 당연한 일인지, 금세 가스를 틀고 발버둥 치는 환자의 이마와 어깨를 누른 채 마취시켜 버렸다.
‘와…… 이 미친.’
이게 무슨 병원이냐.
납치지, 납치.
아니, 납치도 아니고…….
뭔가를 집행하는 느낌이었다.
“됐지?”
이럴 때 이러면 안 된다고 해야 할 텐데.
나는 내 머리가 미처 돌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네.”
“좋아. 가지.”
그렇게 환자는 진실의 방으로 아니, 수술방으로 향하게 되었다.
‘수술방이 아니지…….’
사실 수술방은 아니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수술 광장?
무균 시술이 원칙이 되어야 할 수술에 광장이 웬 말인가 싶었지만, 이 시대에는 또 이 시대만의 상식이 있는 법이라 입도 뻥끗 못 했다.
-제가 근데 너무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실수할 거 같습니다…….
그나마 이런 말은 했는데, 다행히 리스턴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우리가 향한 곳은 광장이 아니라 강의실이었다.
수술방에 비하면야 광장이나 강의실이나 도긴개긴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는데.
그래도 여기는 야외는 아니었다.
모인 사람들도 20명 정도밖에 없고.
물론 이놈들, 아무도 마스크도 안 끼고 응?
개판이긴 했지만…….
“자, 올려놓지.”
“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우리는 강의실에 도착했다.
리스턴의 지시에 따라 환자는 단상 위에 놓인 책상…….
침대가 아니라 책상 몇 개를 걸쳐 둔 곳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도 나중에 반드시 개선해야겠네.’
마취가 없을 땐, 이래도 된다.
어차피 환자가 움직일 테니까.
아니, 발버둥 치는 게 문제였잖아?
하지만 마취가 된 인간은 자의로는 움직일 수가 없는 법이었다.
가만히 누워 있게 된다, 이 말인데…….
‘욕창 생긴다, 이 새끼들아!’
부드러운 곳이 아니라 누가 봐도 불편해 보이는 곳에 누워도 가만히 있는 게 문제였다.
그렇다 보니, 긴 수술을 하고 나와서 수술받은 부위가 아니라 다른 곳을 불편해하는 경우가 생겨 버렸다.
경험적으로 알게 된 사실인데, 다행히 현대 의학은 이걸 이미 인지하고 개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집도의에게 편한 자세만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환자가 다치지 않고 지속 가능할 수 있는 자세를 만들었다 이 말이었다.
물론 초창기에도 그랬을 리는 없었다.
무조건 의사에게 편한 자세를 썼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겠네.’
다행이라고 한다면, 이 수술은 오래 하려고 해도 오래 할 수 없는 수술이란 점이었다.
게다가 마취 기술도 떨어져서, 욕창이 생길 만큼 오래 하면 아마 그 전에 환자가 죽을 터였다.
호흡이 억제될 테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 조지프. 앨프리드.”
“어.”
“응.”
나는 심호흡을 한 후 조수, 그러니까 조지프와 앨프리드를 위치시켰다.
녀석들은 나와 벌써 여러 번 손발을 맞춰 시신에 대고 연습을 했던 만큼, 처음 겪는 실전임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하던 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나뿐이었다.
내가 잘해야 했다.
“후우우…….”
한 번 더 심호흡을 했다.
김태평이 아니라, 주혁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래, 내가 실전 수술을 대체 몇 번이나 했냐.
이 몸으로는 처음이지만, 내 영혼은 벌써 수백 번 이상 겪었단 말씀이다.
“칼.”
순식간에 정제된 기분으로 돌아온 나는 손을 내밀었다.
또 하나의 보조로 나선 이는 콜린이었다.
연습하는 내내 내가 왜 이런 놈의 보조냐고 엄청 툴툴댔었지만, 지금 눈앞에 두고 있는 건 시신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살아 숨 쉬는 인간.
그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는 놈은 의사 자격이 없다고 봐야 했다.
“네.”
콜린도 그 정도로 망나니는 아니었는지, 칼을 건네었다.
나름 이날을 위해 따로 만든 칼이었다.
메스만 한 칼인데, 날은 블레이드를 갈아끼는 형식을 취하기엔 지금 야금술이 그닥이라 매번 갈아 쓰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지이익.
확실히, 손에 딱 맞는 느낌이었다.
-이런 게 칼이라고? 이런 걸로 사람 살을 어찌 가른단 말인가!
리스턴은 조막만 한 칼이라고 하면서 기함했지만.
내게는 딱이었다.
확실히 이전보다 훨씬 정교한 절개가 이루어졌다.
수술 종류가 달랐다면, 더 써먹을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오늘 칼 쓸 일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밀 거.”
“네.”
절개창을 위로 끌어 올리기 위해, 다시 말해 뼈와 잇몸 사이를 분리하기 위해 끝이 넓적한 기구로 틈새를 벌렸다.
끼기기긱.
그러곤 뼈를 따라 위로 밀었다.
그러자 잇몸과 뼈가 점점 분리되어 처음 내가 넣었던 절개창에 비해 훨씬 넓은 공간이 만들어졌다.
애초에 이것보다 위에다 절개를 넣으면 어떻겠냐는 리스턴의 의견이 있었지만, 내가 시신에 대고 그은 것을 보고는 단념했다.
여기서 애초에 절개창을 더 위로 내면 의도하지 않았던 피해, 즉 입술이라든지 하는 곳에 손상을 줄 수 있었다.
“좋아. 이제 조지프, 여기로 걸어 줘.”
“응.”
조지프는 숙련된 조교답게 내 주문에 맞추어서 박리된 틈새를 훅 하고 당겨 주었다.
확실히 체격이 괜찮은 편이다 보니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그래 봐야 전생의 나보단 작았지만.
뭐…… 시대를 감안하면 저 정도면 장사라 해도 될 터였다.
“정 주고.”
“네.”
“망치.”
“네.”
나는 그렇게 벌어진 틈새에 정을 찔러 넣고는 망치로 정의 끝을 두드렸다.
퉁. 퉁.
아무래도 산 사람이다 보니 뼈가 좀 더 단단했다.
죽은 사람하고 비교한다는 거 자체가 이상한 일이긴 했다.
콱.
물론, 내가 실습에 이용했던 시신들은 죄다 죽은 지 얼마 안 되었던 이들뿐이었기 때문에 크게 다르진 않았다.
다행이었다.
내 예상과 흡사한 시점에서 뼈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불.”
“네.”
콜린은 불을 집어 들고, 좁은 틈새를 밝혀 주었다.
솔직히 잘 보이진 않았다.
머리에 등을 달아야 할 수술을 그냥 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기로 이건 등을 달기 전에 나온 수술인데, 그때는 대체 어떻게 했을까 싶을 정도로 캄캄했다.
‘해부학적인 지식이 없이는 진짜 사람 다 죽는다, 이거.’
이 말은 곧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낼 수술이란 얘기였다.
그럼에도 강의실에서나마 수술을 진행하는 건 여러 의도 때문이었다.
우선 나라는 사람의 능력을 각인시키는 것.
또 하나는 앞으로의 수술은, 전부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전보다는 확실히 세밀해질 것이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거즈.”
“네.”
상악동 내부는 너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농만 있는 게 아니라, 워낙 오래된 염증 탓에 내부에 있는 점막까지 온통 곪아 있어서 그랬다.
여기저기 부은 것으로도 모자라 거의 무슨 종양처럼 보이는 곳도 있었다.
때문에 손을 댈 때마다 피가 나왔는데, 다행인 것은 혈관이 터진 것처럼 피가 나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손대면 스며 나오는 정도?
“교체해 줘.”
“네.”
그럼에도 닦고 나온 거즈는 색이 엉망이었다.
노랗고 빨갛고.
거의 뭐 지옥에서 나온 느낌?
냄새도 역했다.
“우웃.”
“읍.”
강의실 내에 순식간에 번져 나갈 지경이었다.
좋은 일이었다.
이 친구들, 냄새나는 피를 진짜 좋아하거든.
“펜치.”
“네.”
나는 그렇게 거즈 서너 개를 소모해서 안에 들어차 있던 염증을 제거하고는 펜치를 넘겨받았다.
말이 펜치지, 원래 쓰는 물건보다는 더 얇았다.
메스랑은 달리 딱 이 수술에 말고는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보이는 물건인데, 그럼에도 만든 건 어쩐지 한동안은 이런 수술이 내 밥줄이 될 거 같아서 그랬다.
딱. 딱.
펜치를 들고 사골동을 넓혀 나갔다.
아무래도 시신과는 달라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연습하길 잘했지…….’
안 그래도 시야가 별로였는데 피까지 나오니까 진짜 감으로 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욕심부리면 안 되겠는데?’
이러다 아차 하면 뇌 또는 눈이 망가질 터였다.
망할.
밥줄이 될 거라는 건 취소다.
너무 후달려.
역시 난 배를 열어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자니, 마침내 펜치 끝이 접형골에 닿았다.
엄밀히 말하면 벽이라고 해야 할 터였다.
원래 같으면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구멍을 넓혀야겠지만.
뭐가 보이지도 않는 데다가, 애초에 내가 이비인후과 전문의도 아닌데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있나.
‘어설프게 아는 걸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사고가 나지.’
나는 이비인후과뿐만 아니라 외과계에서도 금언이라 할 수 있는 말을 떠올리면서, 송곳을 넘겨받아 뼈를 푹 찔렀다.
염증에 절어서 그런가, 살짝 찔렀는데도 잘 뚫렸다.
동시에 안에 들어차 있던 농이 마구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음…….’
그러고 나서야 피가 눈에 들어왔다.
시신 수술을 할 때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부분인데…….
‘아. 이거 지혈을 해야 수술이 끝나겠는데……?’
나도 모르게 시발이라고 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