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59)
검은 머리 영국 의사-59화(59/505)
59화 수술 갑니다 [2]
“당황……한 거 같은데?”
“어, 진짜로. 내가 이제 평이 얼굴은 알아보지.”
집도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 것이 미덕이거늘…….
이 새끼들은 배움이 부족해서 그런가, 아니면 유교의 세례를 받지 못해서 그런가 버릇이 없어.
응?
당황한 사람한테 당황했다고 하면 더 당황하는 거 모르나?
“시끄럽고! 거즈 들고 와!”
물론 난 예외였다.
버럭 화를 냈더니, 까불던 놈들의 어깨가 쭈뼛 서는 게 보였다.
“어, 얼마나?”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게, 지금 환자 코에서 피가 막 나오고 있었다.
심지어 이것도 내가 예상을 해야 했는데 못 한 거였다.
코랑 입은 연결되어 있지 않나?
피가 입으로도 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이런 망할! 거즈 갖고 와! 그냥 다 갖고 와!”
“어, 어!”
그 말은 곧 입 뒤에 이어지는 공간, 즉 기도가 막힐 공산이 있다 이 말이었다.
그나마 마취를 안 했다면 기침이라도 할 텐데, 지금은 마취를 해 놔서 그것도 안 되었다.
‘최악의 경우…… 기관 절개술이라도 해야 해.’
산소포화도라도 보이면 좋을 텐데…….
그런 게 있을 턱이 있나?
그냥 눈대중으로 확인하는 게 다였다.
문제는 내가 눈대중으로 환자 산소포화도를 확인하는 훈련을 아예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모르겠어.
하여간 대충 머리를 굴려 봤을 때 그나마 확실한 건 입술이지 않겠나?
‘저거 파래지기 시작하면 바로…… 바로 긋는다.’
너 이거 어케 했냐!
내지는, 감히 사람 목을 갈라!
이 지랄을 할 게 눈에 선하긴 한데…….
적어도 내 손을 이렇게까지 탄 환자가, 심지어 내 실수로 죽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불! 불 대, 이 새꺄!”
“어, 어어. 어…….”
마음이 급하다 보니 욕이 막 나왔다.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한때 또 수술방 독불장군으로 유명했거든.
지금 생각하면 좀 미안한데…… 그때 난 교수가 될지 말지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맨날 뒤치다꺼리만 밤새 하느라 너무 지쳐 있었다고.
하여간 그때 성질내던 가락이 어디 간 건 아니어서, 내 일행이 아닌 콜린마저도 잔뜩 쫄아서 불을 부리나케 들이댔다.
“잘하네, 우리 평이.”
로버트 박사님은 그런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엄지를 추켜세웠다.
이럴 때가 아닌데, 이 양반.
피를 하도 많이 내는 수술을 많이 해서 그런가, 마음이 아주 대범했다.
그만큼 실력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는 않아서 전혀 위안은 되지 않았다.
“옳지. 거즈!”
하여간, 내 지랄에 채찍질당한 콜린은 환자와 내가 거의 화상이라도 입을 만큼 가까이 불을 들이댔고, 나는 덕분에 환자 코의 뒤쪽 벽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는 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부다닥.
확인함과 동시에 거즈를 그 위로 쑤셔 박았다.
투박한 거즈다 보니 오히려 상처를 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불현듯 들었지만, 그래도 뭐 어쩌겠나.
저게 목 뒤로 넘어가면 숨 막혀 죽을 텐데.
다행인 것은 아직 환자가 숨을 쉬고 있다는 점이었다.
코가 막혀서 살짝 힘겨워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입으로는 쉬고 있었다.
“후.”
한시름 놓았다.
정말로…….
시벌…….
나도 모르게 욕을 한 사발 할 뻔했다고…….
“뭘 그렇게 서둘러?”
“피가 그렇게 많이 난 것도 아닌데.”
“그래도 화내니까 나름 카리스마 있어 보이고 좋았네, 아우.”
이 새끼들 때문에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주 급한 건 나밖에 없지?
응?
‘이 자식들…… 기도의 중요성을 잘 모르나? 아니면 코 뒤로 피 나면 넘어갈 수 있다는 걸 몰라서 이러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모르는 게 이유일 터였다.
하여간에 제대로 아는 게 없는 시대지 않나.
망할 놈들…….
그런 주제에 다 아는 척하는 게 더 문제였다.
지금도 봐라.
나를 탓하는 듯한 얼굴을 하고…….
피가 이렇게까지 철철 흘러나오는데 괜찮다는 말만 하고.
“거즈. 거즈 내놔.”
“어, 응.”
그나마 말을 듣는 게 다행이었다.
덕분에 나는 여전히 투박하기 그지없는 거즈를 환자의 코에 박아 넣을 수 있었다.
원래는 반대편도 수술하려고 했는데, 거즈를 박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쏙 사라졌다.
‘이런 거즈를 양쪽 코에 쑤셔 박으면…… 환자 죽을 거 같은데.’
원래도 이런가 싶을 정도로 거즈가 두꺼웠다.
인턴 때 가끔 이비인후과 병동을 들여다볼 일이 있었는데, 패킹 아웃이라고 해서 코 수술한 환자를 거즈 빼는 날에는 곡소리가 좀 나긴 했더랬다.
코안에서 거즈가 어찌나 많이 나오던지…….
그걸 봐 놓고도 지금껏 생각을 못 한 게 참 실책이었다.
하여간, 한쪽만 하기로 했다.
어차피 접형골이 중요했던 거잖아?
혹시 증상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고 하면, 그때 가서 반대편을 하지 뭐.
이런 식으로 합리화 회로가 엄청 빠르게 돌아갔다.
“후.”
물론 나는 천재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거즈를 쑤셔 박는 건 빈틈 없이 해냈다.
이렇게나 많이 들어가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아까 급한 마음에 입 쪽으로 쑤셔 박았던 거즈를 뺐다.
“줘 봐, 인마.”
“어, 네.”
그러곤 콜린에게서 불을 뺏어다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목 뒤로 넘어가는 피가 당장 보이진 않았다.
피만 멈추면 될 거란 얘기였다.
‘패킹 아웃을…… 대충 언제 하더라?’
머리를 굴려 보니, 이틀이라는 답이 나왔다.
‘근데 그건 수술 잘하는 사람 얘기니까…… 나는 3일 뒤에 할까? 아니지. 이거 거즈도 결국 이물질인데…… 소독이 되어 있을 리도 없고…….’
이를테면, 상처 낸 곳에 더러운 면으로 된 무언가를 쑤셔 박은 상황이었다.
코야 워낙에 더러운 곳이기도 하고 그만큼 면역 세포가 활성화되어 있는 곳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감염 위험을 감수하기는 싫었다.
그건 안 돼.
다른 환자도 아니고 내 환자도 코가 썩어서 죽는 건 안 돼…….
‘이틀 뒤에 빼고, 피가 나면 다른 거로 다시 박자.’
그래.
이렇게 하자.
결정을 내린 나는 고개를 들어, 수술이 끝났음을 알렸다.
“잘 끝낸 것 같군요.”
확신은 없었지만 말은 이렇게 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여기 있는 누가 해도 이렇게는 못 할 거 아냐?
“오…… 그래, 아까 나온 거 보니까 정말 나쁜 걸 많이 빼낸 것 같더구만.”
로버트 리스턴은 내 말에 십분 동의한다는 얼굴로 박수를 쳤다.
그걸 신호로 해서 나머지 사람들도 박수를 쳤다.
심지어 콜린도 그랬다.
녀석은 완전히 쫄아서 그랬다.
하긴, 칼 들고 화내는 사람은 처음 봤겠지.
게다가 그 대상이 자신이 된 것은 정말 처음이겠지.
괜히 수술과 교수님들이 무서운 게 아니라고.
“아무튼, 다음 환자 하죠.”
“괜찮겠나?”
“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음 환자를 부르려 했다.
그때 리스턴이 물어 왔다.
내 등 뒤를 가리키면서였다.
왜 그러나 하고 뒤를 돌아보니, 와…….
식은땀이 시벌…….
‘하긴…… 아까 진짜 식겁하긴 했어.’
당연한 일이긴 했다.
응.
진짜 환자 죽을 뻔했잖아.
의사가 환자 죽을 뻔했는데 너무 멀쩡해도 안 되는 법이었다.
게다가 난 이런 수술도 처음이었다고…….
“그…… 괜찮습니다. 지금 감 잃기 전에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 것과는 별개로 체력은 남아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수술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고작 2시간도 안 걸린 수술로 지치겠어.
“역시…… 난 아우가 좋아. 바로 부르지!”
“아, 네. 근데 이거 좀 닦고요.”
“그게 다 연륜이고 경험인데 뭐 하러 닦는단 말인가!”
“냄새가 나서…….”
“그 냄새를 견딜 수 있어야 의사가 되는 법일세.”
“그…….”
오히려 날 더 지치게 하는 건 이 새끼들이었다.
리스턴 박사님이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일 뿐이고, 나머지도 다 나를 의아하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아까운 피고름을 왜 닦냐, 뭐 이런 얼굴이라고나 해야 할까.
‘미친놈들아…….’
안 된다고.
이거 안 닦고 그냥 수술하면 큰일 나!
육안으로도 이렇게 더러운데 여기 균이 얼마나 많겠냐.
아예 염증이 있는 부위를 수술한 거잖아.
“에…… 저는 근데 냄새가 나면 집중력이 좀 흐트러지는 느낌이라.”
“해부 실습실에서도 수술 잘만 하면서 뭘.”
“그. 그래도…….”
“그래, 뭐. 나이가 어리니 벌써부터 저런 칼 들고 다니면 오히려 반감을 살 수도 있지. 나는 아우님을 존중하니, 아우님의 취향도 존중하겠네.”
다행인 것은, 뭐가 되었건 간에 우리 리스턴 박사님이 날 존중한다는 점이었다.
그 덕에 나는 끓는 물에 방금 수술할 때 썼던 도구를 담가서 닦아 내고, 또 술도 부어다가 소독까지 마칠 수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염화석회도 부어 보고 싶었는데, 그게 쇠를 부식시키는지 어쩌는지 알 수가 없어서 말았다.
어렵게 만든 거라구, 이거.
‘앨프리드 선배에게 삥 뜯기가 아주 쉽지만은 않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다음 환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사, 살려 주세요!”
아니, 끌려오고 있다고 해야 할까?
“가스 틀어.”
슈우욱 소리도 들리고.
어쩐지 너무 나쁜 사람이 해야 할 것 같은 대사도 들리고…….
“흐으으.”
하여간 그렇게 내 앞에 끌려온 환자는 얌전해져 있었다.
웃음 가스를 마취가 될 정도로 맞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찌나 세게 틀었는지, 리스턴 박사님의 충직한 조수 하나도 눈이 맛탱이가 가 있었을 지경이었다.
“넘어지면 다치시겠는데, 저기 누워 있어요.”
“하하하하.”
해서 나는 그 양반을 끌어다 강의실 앞자리에 눕히고, 다시 환자를 강단 책상 위로 올려다 놓았다.
혹시 좀 나을까 싶어서 면직물을 밑에 대기는 했는데…….
아마 소용없을 터였다.
저걸로 뭐가 되겠어?
그저 내 마음의 위안이 될 수 있을 뿐이었다.
“자아…… 그럼 시작할까.”
나는 아까와 비슷한 어조로 두 조수와 콜린, 그리고 나머지 인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조지프와 앨프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보다는 좀 더 긴장한 기색이 엿보였다.
내가 성질을 하도 내서 그럴 터였다.
미안하다…….
지이익.
하여간, 방금 소독을 마쳐서 적어도 육안으로 보기에는 깔끔해진 메스로 잇몸을 째고, 끌개로 틈새를 넓히고, 뼈에 정으로 구멍도 냈다.
아까와 차이가 있다면 미리 코 바닥 쪽으로 얇게 저민 거즈를 밀어 넣어 놨다는 점이었다.
이렇게만 해 둬도 피가 저 밑으로 흘러내려 가는 일은 없으리라.
똑. 또각.
마음이 한결 편해진 나는 펜치로 사골동을 날리고.
푹.
송곳으로 접형골에 구멍을 낸 다음, 싯누런 고름을 대거 제거했다.
확실히 한번 제대로 해 봤다고, 실력이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다음 수술할 때 진짜 조심해야겠구만…….’
어설프게 잘한다 싶을 때 사고 치는 법이라는 것을.
게다가 이 시대 수술은 정말로 수술방에서만 끝낼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지금부터 아주 잘 지켜봐야 할 터였다.
이 환자들의 증상이 해결되는지도 봐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역시 죽지 않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