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6)
검은 머리 영국 의사-6화(6/505)
6화 의대 입학 [2]
살짝 무너진 칠판 위에 쓰여지는 해부학은 의외로…….
이거 진짜 의외인데, 꽤 그럴싸했다.
녀석 제법이잖아? 싶을 지경이랄까?
‘특히…… 사지에 대한 지식은 꽤 대단한데?’
맨날 잘라서 그런가.
팔의 해부학과 다리의 해부학은 수준급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사지의 해부가 제일 쉽긴 했다.
이쪽에는 장기가 없으니까.
그냥 근육과 뼈, 그리고 인대로 이루어진 조직이니까.
하지만 여태 본 것들이 너무 충격적이었던 내겐, 교수란 사람이 이만큼의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퍽 놀랍게만 느껴졌다.
“자, 오늘은 일단 훑듯이 가르쳤다. 이제 해부 실습실로 가자.”
“네! 교수님!”
거의 두 시간 정도를 휴식 시간도 없이 떠들어 대던 로버트 리스턴 박사는 곧장 해부 실습실로 향했다.
‘21세기로 치면 우리…… 예과생 아닌가?’
예과생이 해부 실습이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진도 속도란 말인가.
‘잘된 일이지.’
불만이 생길 틈은 없었다.
당연했다.
나는 빨리 의사가 되어서 이 미개한 시대를 계몽해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선민의식 때문은 아니었다.
그냥 이 시대의 의술은 글러 먹어서 그랬다.
“자, 들어와라.”
“읍.”
“우웁.”
일단 해부 실습실부터가 그랬다.
미친놈도 아니고, 입던 옷을 그대로 입고 해부 실습실에 들어가게 하는 놈들이 어디 있냐고.
이렇게 냄새가 나는데.
그냥 상식선에서조차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건가, 이놈들은?
“넌 뭐 해?”
“아, 네.”
물론 이런 말을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회 분위기가 이렇고, 무엇보다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이 존나 무섭거든.
안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뒤지지 않을까?
‘아냐…… 아냐. 이거 맨손으로 하면…… 우리도 뒤진다.’
그런 생각을 하며 리스턴 박사님과 우리보다 1, 2년 정도 먼저 들어온 의대생들의 뒤로 다가갔을 때, 난 직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방치된 시신에서는 무슨 균이건 자랄 수 있고, 그 균에 감염되면 죽을 거라고.
항생제는커녕 소독도 하지 않는 시대이지 않나.
지금까지 이 사람들이 살아남은 건.
그중에서도 특히 저 리스턴 박사님이 살아남은 건 순전히 운이 좋아서라고 봐야 했다.
“너희들은 일단 잘 봐라. 시신에 칼 한번 대는 것도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야.”
일단 다행인 것은, 우리가 오늘 당장 저 몸에 손을 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자, 이게 다리다. 우리가 제일 많이 수술하게 될 부위지. 아까 봤지? 이 허벅지를 이렇게 자르게 될 거야.”
선배 의대생들도 오늘은 손을 댈 기회가 없었다.
리스턴이 수술할 때처럼 한 손으로는 허벅지를 꽉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칼을 휘둘러 단박에 살과 근육을 찢어 버려서 그랬다.
미친.
저게 아무리 시신이라지만 그래도 마냥 흐물거리는 조직은 아닐 텐데.
“나는 살아 있는 사람도 30초면 자를 수 있다. 너희도, 아무리 길어도 5분을 넘기면 안 돼. 그럼 환자가 죽게…….”
주변을 보니 다른 놈들은 리스턴 박사의 신들린 듯한 칼질에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지프는 또다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며 중얼거리고 있었고.
나만 좀 다른 부분에서 놀란 상태였는데, 문이 끼익 하고 열렸다.
장소가 장소다 보니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교수님, 환자입니다.”
허나 들어선 이는 낯익은 사람이었다.
이름은 모르겠는데, 하여간 리스턴 박사의 조수였다.
“그래? 그럼 갈까.”
환자가 있다는 말에 리스턴 박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방금 사용한 칼을 들고, 조수를 따라나섰다.
-그거 좀 씻어라!
이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리스턴 박사가 너무 컸고, 무엇보다 칼을 들고 있었다.
저 칼로 다른 사람을 슥삭 하는 것도 보기 두려운 일이겠으나 날 슥삭 하는 것만 하겠나.
‘어떻게든 내가 영향력 있는 의사가 되어서…… 이 전체를 변화시키는 수밖에 없어.’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무슨 지체 높은 귀족이라도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기껏해야 동양에서 온 이상한 놈 아닌가.
그나마 리스터 집안의 배려와 리스턴 박사의 이상한 관용 덕에 여기 들어와 있는데 심기를 거슬러?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니들 뭐 해? 다 따라와!”
그런 생각을 곱씹고 있으려니, 조수가 우리를 향해 윽박질렀다.
‘아…… 그냥 우리도 가는 거구나?’
예과만 없는 게 아니라 그냥 바로 실습도 돌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듣자 하니 의과 대학이라는 게 생긴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했으니, 제대로 된 학제가 있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실제로 업턴에서는 의사도 아닌, 어딘가 이상한 사람들이 사람들을 치료하겠다며 설치기도 했다.
아무리 시골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도 런던이 코앞인 곳에서조차 그러했는데 다른 곳은 어떨까.
아마 영국 전역에 환자를 보는 이들 중 의과 대학을 다녀 보기라도 한 사람의 비중은 한 줌도 안 될 게 뻔했다.
“와…….”
“아, 너네는 처음 오지?”
하여간에 따라가다 보니 금세 병원이었다.
의과 대학과 병원이 거의 한 건물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딱 붙어 있어서 그랬다.
“아, 네. 그렇습니다.”
조수가 조지프에게 친근하게 말을 붙였다.
보아하니 우리 조지프가 좀 사는 집안이라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하긴, 모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돈을 엄청 내고 들어왔거든.
“런던에는 환자가 하도 많아서…… 병상이 늘 꽉 차 있어. 환자들은 힘들어도 우리에겐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널리고 널려 있는 셈이지.”
“아…….”
조수는 눈을 빛내며 병원 이곳저곳을 가리켰다.
병실마다 환자가 적어도 열 명에서 스무 명은 들어가 있었다.
6인실도 부대끼다 보면 괴로운 법인데, 하나의 방에 환자만 스물이 넘다니.
‘어…….’
그렇게 지나가는데, 딱 봐도 배가 몹시 아파 보이는 환자가 눈에 띄었다.
아직 별다른 검사를 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저 환자는 수술이 필요할 터였다.
외과 의사의 직감?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눈이 있으면 알 수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
“저기, 교수님.”
“난 교수님이 아니라 조수야. 리스턴 박사님 밑에 있지.”
해서 일단 조수를 불렀다.
교수 아닌 거 아는데, 일부러 교수라고 해 줬다.
더 높게 봐 줘서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는 법이거든.
특히 남 밑에서 조수 노릇 할 때가 제일 그랬다.
나도 펠로우 때 누가 교수라고 부르면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
‘웃는다.’
아니나 다를까, 조수의 입가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드러나고 있었다.
“네, 조수님. 저기 저분…… 너무 아파하는데 괜찮을까요?”
“응? 어디. 아, 저기. 저기는 뭐, 수술 필요한 사람 있는 데가 아닌데?”
“아……?”
수술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굽쇼?
지금 배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데요……?
저거 저러다 진짜 바로 죽겠는데?
얼굴에 드러난 감정을 읽었는지 어쨌는지, 조수는 평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이따 치료할 거야. 너네 둘이 외과 지망이기는 해도…… 뭐 여기 학생이니까, 관찰하는 거 가지고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거야.”
“아…….”
“가서 한번 봐 봐. 파리에서 오신 제멜 교수님이 담당이실 테니까. 제대로 배우신 분 중 하나지.”
“아, 네. 파리…….”
파리라.
런던도 이 모양인데 파리는 또 어떨까.
이름도 하필 파리라 그런가, 어쩐지 그리 깨끗할 것 같진 않았다.
아무튼, 전혀 기대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나는 리스턴 박사님을 따라 병원 앞 광장으로 나갔다.
목적지가 광장인 줄 알고 나간 건 아니었다.
그냥 나가다 보니 광장이었다.
‘아 또.’
당황한 나를 보며 조수가 말을 이었다.
조지프는 부자고 난 교수라고 불러 줘서 그런가, 나름 잘해 주는 느낌이었다.
“너희는 운이 좋아. 원래 이런 절단 수술이 자주 있는 게 아닌데…… 아, 너희 둘은 알겠네. 전에 너희가 봤던 그 환자 있지?”
죽었을 사람 얘기는 하지 맙시다.
나 또 우울해질 것 같아.
사람 살리고 싶어서 의사가 된 사람이라고, 나.
그중에서도 더 많이 살리고 싶어서 교수까지 됐고.
“아주 잘 살아 계셔서, 그 후로 환자가 확 몰리고 있어.”
“네? 살았어요?”
“어. 살았어. 잘된 일이지.”
살았다고?
그렇게 술을 처먹이고.
그렇게 더러운 칼을 휘둘러서 다리를 잘랐는데?
“어디…… 어디 있어요?”
“어디? 집에 있겠지. 이 근처 어딘데. 왜?”
“한번 찾아가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대체 인간이 얼마나 강하길래 그걸 견디고 살아남았을까.
‘이 시대에 절단 수술을 한 환자들은 어떻게 사는 거지?’
여러 의문이 마구잡이로 떠올랐다.
그걸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남의 집에 찾아가는 수고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아까 강의를 통해서 알게 된 게 하나 있거든.
예상은 했지만.
여기서 내가 배울 만한 건 하나도 없었다.
부족한 것이 있다면 현장감인데, 그건 배워서 채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좋아할 거야. 의대생이 찾아가는 거니까. 이따가 주소 알려 줄게.”
“아, 네.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나는 일단 잡으러 간다.”
“잡…… 아, 네.”
조수는 내게 그렇게 말하곤 리스턴 박사님에게 갔다.
“으아아아아! 살려 줘!”
전처럼 죄수는 아니, 환자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눈이 벌게져 가지고, 진짜 진심으로 살려 달라 외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리스턴 박사님처럼 기골이 장대한 사람이 칼을 든 채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지 않나.
“술.”
리스턴 박사님은 그렇게 환자 앞에 서서 망나니처럼 술을 달라고 한 후, 환자의 입에 꽂았다.
“마셔. 그럼 덜 아프니까.”
“나, 나 퀘이커 교도야!”
그러나 환자는 입을 꾹 다물고는 이렇게 외쳤다.
나는 나도 모르게 조지프를 돌아보았고, 조지프는 눈을 감은 채 기도를 올렸다.
퀘이커 교도들은 술을 먹지 않는다.
리스터 집안은 무려 술을 팔지만.
대부분의 퀘이커 교도들은 앞뒤 꽉 막힌 원칙주의자들이었다.
“아. 아프겠네, 오늘은.”
리스턴 박사도 퀘이커라는 말에 더 고집을 부리지 않고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만 아픈 건 아니지 않습니까……?’
뻔뻔한 말을 해 대면서였다.
“그럼 그냥 참게.”
“읍.”
아니, 뻔뻔보다는 무서운 말인가?
칼로 다리를 자르는데 그냥 참으라니.
그게 의사가 할 말이오?
붕-
내 생각과는 별개로 리스턴 박사님은 검을 아니, 수술용 칼을 휘둘러 환자의 다리를 슥삭 했다.
“으아아아아악!”
비명이 뒤따랐고, 리스턴 박사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혈관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그때, 아까 지나온 방향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내가 봤던 환자가 퍼뜩 생각났다.
어쩐지 그일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고 있으려니, 조지프가 말했다.
“가 볼래?”
“지금 가면 리스턴 박사님이 가만둘까?”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환자 보러 가는 거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뭘 안다고 환자를 보러 갔냐고 하지 않을까?
이런 말을 해 봤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래도, 궁금하지 않아?”
하긴.
이 새끼는 그날 그 수술을 보고 의사를 꿈꾸게 된 놈이었다.
보통 미친놈이 아니란 소리였다.
나?
나도 만만치는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병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