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60)
검은 머리 영국 의사-60화(60/505)
60화 환상통 [1]
수술이 끝나고, 환자들은 모두 병동으로 옮겨졌다.
블런델이 주로 있는 산부인과 병동이 아니라, 로버트 리스턴 박사가 주로 머무는 병동으로 옮겼다.
“으아아…….”
“흐어어어…….”
다른 말로 하면 지옥이었다.
내가 진짜 과장하는 게 아니라…….
여기는 지옥이다.
‘팔다리를 진짜 엄청 자르는구나…….’
마취제의 발견이 분명 수술의 진보를 가져온 것은 사실일 터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배웠던 수술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하지만 그 진보가 막 팍팍 일어났을까?
그럴 거 같진 않았다.
내가 이 시대에 살아 보니까…… 응, 알 거 같아.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렇게까지 막 똑똑한 거 같진 않아.
‘하긴. 사람이 바뀌는 게 진짜 쉬운 일은 아니지.’
무엇보다 원래 그렇게 살던 사람들이 뭐 하나 바뀐다고 해서 스위치에 불이 들어오듯 딱딱 변하는 일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우리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은 많이 나은 편이었다.
이 양반은 지가 절단 수술의 대가 아니, 고수 아니, 달인이면서도 이제 절단술에서 보다 섬세한 수술로 넘어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하지만 내가 코 수술하는 거 하나 두고서도 시신을 두고 엄청 연습하는 것이 어떤 자극이 되었는지 어쨌는지 신중해졌다.
일단은 원장의 바람대로 절단술만 하기로 했다, 이 말이었다.
무엇보다도 로버트 리스턴의 제자 수준에 있다가 원장의 계책으로 집도의로 끌어올려진 이들이 문제였다.
“자, 또 들어옵니다! 비켜요, 비켜!”
“으아아아아아아아!”
이해는 갔다.
맨날 로버트 리스턴, 그러니까 스승님이 팔다리 시원하게 자르는 걸 코앞에서 보고만 있다가 자기가 자르게 되지 않았나?
절차는 문제가 안 되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읊을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었으니까.
생각해 봐라, 스승이 로버트 리스턴이다.
잊어 먹겠어?
“크어어어어!”
문제가 있다면 리스턴 박사만큼 빠르게 자를 수 있냐 없냐였을 텐데, 이제는 그 시간이 훅 늘어나 버렸다.
누구 때문에?
나 때문에.
심지어 환자들도 용기가 늘었다.
팔다리 자르는 거야 마취가 되건 말건 무서운 일인 게 맞는데,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지 않나.
안 자르면 죽는 걸 알지만 저렇게 아파하느니 차라리 죽겠단 심정으로 버티던 이들이, 이제는 마취제 덕에 마구마구 잘라 내고 있었다.
“아니, 이게.”
“너무 무섭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절단 병동.
시발…… 말해 놓고도 어이가 없네.
병동이 이름이 어떻게 절단 병동이냐.
하여간, 이곳은 붐비고 있었다.
누구로?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 대고 있는 사람들로.
“그게…….”
이걸 예상해야 했다.
나는 한결 어두워진 얼굴로 사방을 돌아보았다.
어딜 봐도 팔다리 중 하나씩, 심지어 두 개가 없는 사람도 있었는데 다들 아파 보였다.
‘아…… 내가 진짜…… 이게 당연한 건데.’
난 마취제를 발견한 것이지, 아직 진통소염제를 발견한 것이 아니지 않나.
하다못해 타이레놀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상식적으로 그게 있으면 머리 아플 때 그걸 먹지 피를 뽑겠냐.
들어 보니까 어떤 병원은 전기의자에 앉히기도 한다던데.
진짜 미친놈들…….
‘이거 어쩌지…….’
하여간 환자들은 잘릴 때의 고통, 그러니까 진짜 최악의 고통은 마취제 덕에 느끼지 않아도 되었지만, 자르고 난 후의 고통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비록 어디 잘려 본 적은 없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아파 보이지 않나.
십분 이해가 갔다.
“일단은…… 여기밖에 자리가 없어서요.”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미친 사람도 미쳐 버릴 것 같은데요?”
“제가 다른 데 찾아보겠습니다. 그때까지는…… 그래, 옳지.”
나는 이해가 가지만 환자들도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사람들도 보기에 멀쩡해 보여서 그렇지, 방금 코 쑤시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제대로 된 마취제도 아니고 웃음 가스 하나에 의지해서.
처음 수술받은 사람은 심지어 피도 많이 났다.
“이걸로 귀 막고 계시고. 제가 최대한 빨리 조치하겠습니다.”
“네네. 그…… 제발.”
“여기 두고 가지 마세요.”
해서 나는 지옥에 떨어진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어미 새에게 버림받기 직전의 얼굴을 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뭉친 천 조각을 건네는 동시에 다른 병동을 알아보러 떠났다.
정 없으면 강의실에서라도 자려고 할 생각이었다.
여긴…….
와…….
여기선 안 될 것 같았다.
그와 함께 리스턴 교수와 논의를 해 봐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이거 이대로 둬서 되겠어?
응?
“아, 블런델 교수님. 혹시 남자 환자 둘 좀 받아 줄 수 있어요?”
“될 거 같나?”
“아뇨.”
“그래, 아무리 자네 부탁이라고 해도 그건 안 될 얘기야. 남편들한테 그 환자들 맞아 뒈질 수도 있어.”
블런델을 만남 김에 물어나 봤는데 영 살벌한 답이 돌아왔다.
딱히 이 시대라서 그런 거 같진 않았다.
하긴…….
진짜 뒈지겠지.
“근데 거기 가 보셨어요?”
“어디. 아, 절단 병동?”
“그…… 네. 거기 지금 비명 소리가…….”
“팔이랑 다리 자르는데 아프지, 그럼.”
아니……,
의사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
그래, 백번 양보해서 자르면 아픈 건 맞는데…….
그렇게 냉정하면 안 된다고.
“너무 심해서 거기 제 환자는 못 두겠어요.”
“왜? 설마 다른 환자들이 다리 좀 달라고 할 거 같은가? 그럴 일은 없네.”
“아니, 그게 아니라. 저기 있으면 트라우마가…….”
“트라우마……?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하여간,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는 비로소 시대적 배경을 하나 더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인간들 정신적인 고통에 대해서는 진짜 1도 관심이 없었다.
하긴…….
그러니까 노동자들을 그런 곳으로 내몰지.
내가 진짜…….
아니, 겨드랑이가 쓸려서 온 환자들이 유독 많은 날이 있길래 이거 어쩌다 다쳤냐고 하니까, 공장에서 마련해 준 숙소 얘기를 했더랬다.
‘숙소라면서 밧줄 걸어 놓고 거기에 기대서 자라고 하는…… 그런 게 숙소였지?’
심지어 아침이 되면 밧줄을 끊는다던데…….
이런 세상에서 정신적 트라우마를 논해?
지금처럼 미쳤냐는 소리나 안 나오면 다행이었다.
“아니…… 하여간 좀 푹 쉬어야죠. 시끄러우니까.”
“시끄러우면 잠은 안 오긴 하지.”
“피도 많이 흘렸고요.”
“들어 보니까 그렇게 많진 않았다던데? 막말로 배도 아니고 코에서 피가 나면 얼마나 난다고.”
이비인후과 친구들아! 힘을 줘!
코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는 걸…… 이 새끼들이 알게 해 줘!
“그…… 그래도 저한테는 첫 수술이고, 또 첫 환자 아닙니까. 기분이 이게…….”
“아…… 하긴, 그게 또 그렇게 되나.”
물론 응답은 없었고, 난 계속해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했다.
하아.
내가 옳은데 이러고 있어야 한다니.
어쩌겠어.
난 아직 을인데.
나중에 갑 되는 순간 두고 보자.
다 죽일 거다…….
“내가 알아보지. 자네 요청이라면야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나.”
“네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응, 얼마든지 말하게.”
“리스턴 박사님 어디 계시는지 아세요?”
“아, 알지. 아까 자네 수술에 감명받았는지 칼 들고 가던데?”
“칼을…… 들어요?”
그 인간은 명색이 의사라면서 왜 감명을 받으면 칼을 들고 설칠까.
대체 왜 그러는 거야.
“그래, 광장으로 갔을 거야.”
“아…….”
그리고 왜 남의 팔다리를 자르는 거야.
탄식과 함께 나는 일단 달렸다.
아마 급하게 일정을 잡았을 테니 런던 중앙 광장은 아닐 터였다.
그 말은 병원 앞에 있는 이상한 광장에 있을 거란 얘기였는데, 거기는 진짜 지척이었다.
“오, 평아. 너도 광장 가?”
그렇게 부리나케 달리고 있으려니, 수술 끝나고 잠깐 헤어져 정리를 맡았던 조지프와 앨프리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놈들도 진짜 열심히 하긴 했다.
나야 집도를 한 데다가,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하긴 뭐해도 여하간에 책임감이 있어 빨빨거리고 돌아다닌다 쳐도, 이 둘은 그냥 열정 하나로 다니는 거 아닌가.
나 레지던트 때 생각해 보면, 어떻게 하면 들키지 않고 짱박혀 있을까를 제일 많이 고민했던 것 같은데…….
“응, 가려고. 상의드릴 내용도 있고 해서.”
“야…… 진짜 보기 좋다. 형제처럼 지내고.”
“그…… 뭐, 그렇지.”
하여간 난 대견한 둘과 함께 광장에 갔다.
마침 리스턴 박사님은 본인의 트레이드마크인 칼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런던치고는 정말 드물게 해가 난 날이라 번뜩이는 빛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저건 마치…….
‘아서왕?’
왕 같았다.
진짜로.
바이킹들도 썰고 다녔을 거 같아…….
“자, 갑니다!”
그러나 실제로 자르는 건 환자의 다리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으려다가, 어라? 하는 얼굴로 다시 수술 장면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다 자리를 비켜 주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제 나와 리스턴과의 유착 관계는 적어도 병원 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긴 했다.
‘좀…… 다른데?’
하여간 뭔가 달라져 있었다.
시간적 여유가 생겼으니 느리게 해도 된다, 뭐 이런 수준이 아니었다.
뭐라고 해야 되지…….
푹.
그가가각!
전체적인 술기가 달라진 건 아니었다.
우선 살가죽과 근육을 한 방에…….
엄연히 다른 레이어에 싸여 있는, 다른 밀도의 조직을 한 방에 자르는 저 단순무식하면서도 호쾌한 자르기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뭔가 더 세밀해져 있었다.
‘아…… 그래, 그렇군.’
한 번 더 돌고 있었다.
전에는 진짜 한 방에 다 자르더니만.
같은 구간을 칼이 한 바퀴 더 돌았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는 했다.
내가 훌륭한 외과 의사라는 걸 떠나서, 저런 수술은 진짜 여기 와서 처음 보는 거니까.
물론, 왜 저렇게 하는지 정답을 모르고 있다는 건 아니었다.
정형외과적 절단 수술이 어찌 이루어지는지는 대강이라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그 정답을 향해 달려가는 건가?’
우여곡절이 많이 생길 것 같았지만.
하여간, 이제 뼈가 잘려 나가고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혈관과 신경을 묶고 있었는데, 확실히 이전보다는 시간적 여유를 두고 있었다.
‘아…… 붕대가 막 붉게 물드는 사람이 적다 싶더니만. 지혈도 훨씬 잘하고 있구나.’
뭔가 진보를 이룬 느낌이었다.
그래 봐야 여전히 끔찍한 절단술이긴 했지만.
난 눈치가 빠른 사람인 데다가, 비위를 맞추는 데 있어서도 전문의지 않나.
해서 재빠르게 다가가 칭찬을 해 댔다.
“수술법이 바뀌셨네요, 형.”
“오, 역시 넌 알아보는구나. 그럴 줄 알았어. 이게 더 결과가 좋을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잘 왔네. 마침 얘기할 게 있었거든.”
“오.”
이 인간이 역시 훌륭한 의사긴 하다니까.
보라고.
벌써 환자들 걱정하고 있잖아?
“어…… 절단 병동으로 안 가세요?”
“절단 일이긴 해. 근데 거기 얘기는 아냐.”
“아.”
아니네?
“아파하는 환자가 있어.”
맞나?
알쏭달쏭한 얼굴로 서 있었더니, 리스턴 박사가 입을 열었다.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원래도 이런 경우가 없던 건 아닌데…… 자른 지 벌써 몇 주나 지난 환자들이 팔이 아프다고 온다네. 있지도 않은 팔이 아프다고 온단 말이지. 근데 최근에 좀 많이 잘랐더니, 수가 많이 늘었어. 이거 문제야. 문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