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62)
검은 머리 영국 의사-62화(62/505)
62화 환상통 [3]
“백퍼?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조선 말인가?”
“아…….”
너무 당황했나.
그랬나 보다.
이상한 말을 한 걸 보면.
근데 그래도 되는 상황 아니냐?
세상에…….
아파할 때마다 팔을 계속 잘라서, 게다가 마취도 소독도 안 한 상태에서 잘라서 사람이 결국에는 아프단 말을 못 하게 만들어 놓다니.
심지어 그러고도 모자라 다른 사람까지 잘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잖아.
“네, 그렇습니다. 무조건 맞다, 뭐 이런 뜻입니다.”
“그래, 나도 무조건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네. 따로 불러서 물어보고 싶군.”
“제대로 된 답을 하긴 할까요?”
원래 저 환자는 진짜 강한 사람이었을 거다.
내가 비록 사전 정보라고는 단 한 개도 없는 상태이긴 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안 그랬으면 지금까지 살아 있겠냐?
소독도 안 하고 팔을 네 번이나 잘랐는데 살았잖아.
어쩌면 리스턴 박사보다 더 강한 사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망가진 지 오래였다.
그 눈을 나는 잊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르지. 하지만 해 봐야지.”
“어떻게요?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의사를 처리하지. 그사이에 환자를 빼돌려 보게. 길을 잃었다고 하면 될 거야.”
“처리……요?”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나도 인도적인 방식을 떠올렸을 텐데, 이 사람은 리스턴이지 않나.
아닌 게 아니라 방금도 다리 자르고 왔을걸?
아니, 잘랐다.
아까 봤어.
그렇게 의사를……?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난 법과 도덕을 따르는 신앙인이야.”
“아, 네네.”
“따로 뭐 물어볼 게 있다고 하면서 꼬실 테니까, 그때 환자를 빼돌리게.”
“네, 형님.”
“그래.”
다행히 리스턴은 이런 오해를 한두 번 받아 본 게 아닌지 능숙하게 말로 풀었다.
하지만 ‘네, 형님’을 할 때 내 기분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쁜 짓에 뛰어드는 그런 느낌이었다.
하여간, 리스턴은 자신이 예고했던 것처럼 의사에게 다가갔다.
“여어.”
“아, 네.”
상대는 말이 의사지, 대양을 누비는 선의였다.
진또배기 뱃사람이란 얘기였는데, 아마 이런저런 위험한 일도 많이 겪었을 터였다.
이 시기 바다엔 해적이라는 것이 출몰한다고 들었거든.
상륙해도 도시가 아니라면, 원주민들은 언제든 도적 떼가 될 수 있다고 들었고.
문제는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상선의 선원들도 경우에 따라서는 해적도 되고, 도적도 될 수 있었다.
선의가 아까 경력이 10년이라 했으니 그만하면 아주 훌륭한 깡패란 얘기였는데, 그래 봐야 다 소용없었다.
“할 얘기가 있으니, 따라오게.”
“어…… 네.”
리스턴의 머리는 남들 머리보다 하나둘 위에 놓여 있었다.
어깨도 두 배 정도 되었고, 무엇보다 다년간 칼질을 하면서 단련된 상완근은 그 누구라도 겁을 집어먹을 정도로 우람했다.
결국, 선의는 무슨 얘기인지도 묻지 못한 채 끌려갔다.
리스턴은 어깨 위에 슥 팔을 걸치곤 마치 모란시장 깡패처럼 좌우도 못 보게 그를 끌고 가면서, 내게 신호를 보냈다.
‘좋아.’
이제 내가 나설 차례지.
어려운 일은 교수님이 했으니 이 정도는 내가 하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이 환자는 불쌍한…….
“후, 제기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혼자 남게 된 환자가 인상을 팍 썼다.
개무서웠다.
과연 뱃사람…….
절단술을 네 번이나 견딘 사나이.
“조지프, 앨프리드. 같이 가자.”
“어딜?”
“의학의 진보를 위한 일이야.”
“그렇다면 얼마든지 가야지.”
겁먹은 나는 부하들을 동원해 환자를 에워쌌다.
그때까지도 환자는 그저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자기 손을, 그러니까 잘린 손을 들여다보면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허공이었는데 진짜로 뭔가 보이는 듯했다.
역시…… 치료는 안 된 모양이었다.
“저기, 환자분.”
“히익.”
그렇게 강해 보이던 사람이, 내가 말을 걸자마자 바르르 떨었다.
없는 손을 당기면서였다.
역시나 불쌍한 사람 맞았다.
대체 얼마나 잘렸으면 저러겠냐고.
“잠시 이쪽으로 오시죠.”
“아, 안 돼!”
그게 좀 지나치기는 했다.
갑자기 발악을 해 대는데, 진짜 나 혼자 왔으면 난리 날 뻔했다.
전반적으로 쇠약해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조지프와 앨프리드 그리고 나까지 전부 달려들고 나서야 제압할 수 있었다.
‘잠을 못 자나 본데…….’
하여간 가까이서 보니 환자 상태는 더더욱 엉망이었다.
수염이야 오른손이 잘려서 제대로 못 깎아 이렇다고 하더라도, 그 수염에서 진동하는 술 냄새와 밑으로 내려앉은 다크서클 등은 이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를 파악하는 데 있어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하긴…… 통증이 있다면 그럴 수 있지. 게다가…….’
통증만 문제일까?
수술 과정 자체도 문제였을 터였다.
트라우마.
이 시대 사람들은 다 부정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은 얼마든지 사람을 좀먹을 수 있었다.
물론 어떤 트라우마는 극복이 가능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도 하기 마련이지만, 글쎄…….
그것도 어느 정도껏 해야 하지 않을까?
누가 시벌 마취도 안 하고 팔을 몇 번이나 자르면, 그게 극복이 되겠어?
“어디, 안 돼! 안 돼! 살려 줘!”
하여간 우리 셋은 그렇게 발악하는 환자를 데리고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병원이라는 곳이 기본적으로 사람이 많은 데다가, 이 시대에는 보호자 면회 제한 같은 것도 없어도 어마어마하게 붐비는 편이었다.
다시 말하면 살려 달라고 외치는 환자를 목격한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는 얘기였는데, 개중에는 단 한 명도 도움의 손길을 보내는 이가 없었다.
시대가 망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안 돼!”
“으아악!”
“이, 이 미친놈이! 머리를 태워?”
“아파! 아프다고!”
이 시기 병원이라는 곳이 원래 이랬다.
내가 얘기를 안 해서 그렇지…… 복도에서는 대화를 이어 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비명이 울려 퍼질 때도 있었다.
소아과처럼 애들이 울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동네 소아과에서 애들 우는 건 기껏해야 주사 맞거나 뭘 코에 쑤시는 것 때문이잖아?
여기는 인두로 사람을 지지기도 했다.
덜커덕.
의술인지 고문술인지조차 헷갈리는 곳이었다 보니, 환자가 난리를 쳤음에도 우리는 별다른 방해 없이 빼돌릴 수 있었다.
빼돌린 곳은 리스턴의 연구실이었다.
그 어떠한 곳보다 안전한 곳이라고 보면 되었다.
리스턴하고 마주치고 싶은 사람이 적어서 그렇기도 했고.
“으아아!”
이렇게 비명이 울려 퍼져도 그런가 보다 하는 편이었다.
리스턴은 연구실에서, 연구를 위한 수술을…….
그러니까 고문을 할 때가 있어서 그랬다.
요즘에는 마취제도 나왔겠다, 수술의 진보에 대한 고민을 보다 진중히 하게 되어서 좀 줄었다고는 하지만.
“어이구, 오늘 또 뭔가 하는 모양인데.”
“내일…… 내일 오는 게 좋겠네.”
지금도 봐라.
왔다가 다 가잖아?
그 누구도 이 비명을 수상히 여기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평소 어떻게 지내는지가 이렇게 중요하다.
“해치려는 게 아니에요. 몇 가지 물어보기만 할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리가 시끄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애가 작정하고 울어도 난청이 올 것 같단 느낌을 받는데, 다 큰 성인이 고함을 치고 있으니 어떻겠나.
가뜩이나 공간이 그리 넓은 것도 아닌 데다가 쓸데없이 층고는 또 높아서, 소리가 더더욱 울렸다.
모르긴 해도, 병원 사람들을 대상으로 청력 검사를 해 보면 일반인에 비해서 난청 유병률이 높을 것 같았다.
이 시대에선 나도 건강하고 오래 살고 싶으니, 우선 귀를 지켜야 했다.
난청은 치매의 원인이 되는데, 그때까지 보청기가 만들어질 리 없잖아?
“으아아!”
“조용, 조용. 진짜로 물어보기만 할 겁니다.”
“거, 거짓말! 저건…… 저건 뭔데!”
해서 조용히 시키려고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았다.
왜 그런가 하고 보니, 환자의 시선 끝에 걸린 칼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아…… 맞네. 우리 형님. 칼 모으는 취미가 있지.’
정확히 말하자면 저 칼은 리스턴의 역사와도 같았다.
아무리 체격과 손기술을 타고났다고 해도, 절단술을 처음부터 잘했겠나.
애초에 칼부터가 진화를 거듭해 온 참이었다.
자르다 보니 뭔가 불편해서 바꿔 보고.
또 바꾸고.
해서 탄생한 것이 지금의 리스턴 칼이었고, 저기 걸려 있는 건 그전에 쓰던 칼들이었다.
나야 자초지종을 알고 있으니 그냥 그런가 보다 할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그냥 끔찍한 광경일 뿐이었다.
“저건 그냥 장식품이에요.”
“거짓말치지 마! 개새끼들아!”
그래, 쌍욕이 나올 수 있지.
나올 수 있어.
하지만…….
덜커덕.
리스턴 박사님이 돌아왔다면?
“어, 그 선의분이 환자 안 찾아요?”
“난 모르는 일이라니까 그냥 가던데?”
선의고 나발이고 뭐라 말하긴 어려웠던 모양이다.
하긴 런던 뒷골목 접수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인데 뭐 개길 수 있겠어?
덜덜덜.
선의만 겁을 먹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어…… 환자분?”
“왜 이러셔? 너 뭐 때렸어?”
“아, 아뇨?”
환자도 리스턴과 마주치자마자 벌벌 떨었다.
이 방을 메우고 있는 칼과 피 냄새에 제일 잘 어울리는 몰골이 바로 저 사람이지 않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봐요.”
“네네. 제발…… 살려 주십쇼.”
“아니, 나 의사예요.”
“그러니까 하는 말입니다!”
의사가 사람 죽인다고 하면 참 억울한 말이긴 할 텐데, 이 시기에는 그렇지도 않기는 했다.
솔직히 의사만큼 사람 많이 죽여 본 사람도 드물지 않을까?
전쟁 영웅이라면 또 몰라도…….
아니면 수배된 해적들이나.
“진짜로 뭐 좀 물어보려고 온 겁니다.”
“흐으…… 진짭니까?”
“네, 진짜예요. 칼 안 댈 테니까 걱정 마세요.”
“후우…….”
하여간 몇 분 정도 더 설득하고 나니, 환자는 협박당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네 명의 의사에 둘러싸인 채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정말 불안해 보였다.
이만한 인원의 의사라면 환자가 거부해도 결박하고 팔 정도는 자를 수 있어서 그랬다.
“그 팔 말입니다.”
“어…….”
“벌써 떨지 말고. 진짜 안 자르니까. 하여간. 그렇게 자르고 나서 좋아졌습니까?”
리스턴은 불안에 떨고 있는 환자에게 물었다.
그러자 환자는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긴장한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아프다고 할 때마다 잘렸을 테니.
“사실대로 말해 주셔야 합니다. 이게 효과가 있으면 곧 런던에 있는 절단 환자들도 죄다 더 잘릴 거예요.”
그때, 내가 나섰다.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서야만 했다.
왜냐?
난 알거든.
환상통이 신경이 뭉쳐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는 걸.
머리의 착각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는 걸, 지금 이 시점에서는 나만 알지 않겠나.
시대적 책임감과 같은 거창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니었다.
다만 알량한 양심이 나를 충동질하고 있었다.
“그…….”
“만약 신경이 뭉치는 이론이 맞다면, 잘랐을 때 잠깐이라도 통증이 사라졌겠죠. 근데 제 생각에는 그러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겠지만…… 환자분, 무의식적으로 없는 손을 계속 보고 있어요.”
“그…… 한 번도…… 한 번도 좋아진 적은 없습니다. 아직도 아파요. 네, 아픕니다.”
내 말에 환자는 고해성사라도 하듯 말을 내뱉었다.
눈물도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