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63)
검은 머리 영국 의사-63화(63/505)
63화 머리의 전문가들 [1]
“역시…….”
리스턴 박사는 탄식인지 뭔지 모르겠는 소리를 내뱉으며 환자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럼 무서워서 안 아프다고 한 겁니까?”
조지프와 앨프리드는 경악에 빠져 있는 듯했다.
그럴 터였다.
이 시기 의사들은 이상하게 확신에 차 있었거든.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사람 팔을 마취도 안 하고 네 번 토막 낼 생각을 할 수 있었겠나?
악마도 ‘교수님 이건 좀……’ 내지는 진도가 너무 빠르다고 할 만한 일인데,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다는 건 이게 정말 환자를 위하는 길이라 믿었던 거라고 봐야 했다.
“아휴…….”
나?
나야 애초부터 말이 안 되는 이론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리 놀라진 않았다.
다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나마 강인한 선원 같아 보였던 환자가 비로소 너무나 불쌍하게 보이기 시작해서 좀 놀랐을 뿐이었다.
해서 환자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어흐흑.”
그래도 이렇게 울 줄은 몰랐다.
아니, 우는 게 당연한 일이려나.
하긴 그럴 수 있었다.
보는 의사들마다 팔부터 자를 생각이나 하지 않았나.
아마 아까 방에서는 진짜로 피실험체가 된 느낌이었을 터였다.
‘이 시기 의사들…… 아니, 사람들이 인권 의식이 좀 없긴 하지.’
애초에 신분제 사회다 보니 더더욱 그럴 터였다.
예전처럼 귀족의 피는 푸르고 정말 고귀한 사람들이란 생각까지는 없겠지만…….
그렇다 해도 약자를 다루는 방식이나 태도는, 현대인의 사고방식을 지닌 내게는 이해가 어려운 면이 있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팔 안 자를 테니까…….”
“귀한 일 해 주신 겁니다. 하마터면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될 뻔하지 않았소?”
해서 나는 계속 위로를 해 주었고, 리스턴 박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치하라 해야 할까?
하여간 잘했단 뜻으로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그때마다 환자는 ‘히익’이라든지 ‘살려 주십쇼’라는 말을 입에 담긴 했지만.
리스턴에게는 이런 반응이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별다른 태도를 취하진 않았다.
“자, 그럼…… 이 팔이 없는데 그 팔을 아파하는 사람들을 대체 어찌 치료해야 하는지…… 그 문제가 남는구만그래.”
게다가 리스턴의 머릿속을 메우고 있는 건 자기 환자들이었다.
마취도 하고, 심지어 그 막강한 면역력을 토대로 불결한 수술까지 견뎌 낸 강인한 환자들이 없는 팔을 아파하고 있지 않나.
심지어 환자 수는 늘어만 가고 있었다.
앞으로는 줄어들까?
그럴 거 같지도 않았다.
아직 통계니 뭐니 하는 것들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시대이긴 하지만, 하여간 절단한 환자가 늘면 이 이상한 증상을 가진 환자들도 늘어나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이걸 어쩐다…….”
리스턴의 입장에서는 한숨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후우…… 정말 어쩌죠.”
나도 따라서 한숨을 쉬었다.
방법을 몰라서는 아니었다.
내가 명색이 21세기 대한민국 의과 대학 교수였는데 이런 걸 모르겠나.
환상통에 대한 비밀이 밝혀진 게 얼마나 오래됐는데.
‘문제는…… 이게 일종의 뇌과학이란 말이지…….’
설명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뇌과학이라는 게…….
21세기에서도 그리 쉬운 건 아니었지 않나.
그 어려운 개념을 여기서……?
“더 깊이 자르면…… 아니, 환자분을 자른다는 건 아니었는데.”
리스턴 좀 봐라.
그나마 깨어 있는 의사인데 지금 하는 짓을 보라고.
환자 졸도했잖아.
가뜩이나 겁먹은 사람한테 더 깊이 자른다니…… 그게 할 소리냐.
“일단 환자분부터 모셔 놓고 오겠습니다.”
“어, 그래. 이게 뭐 여기서 이런다고 밝혀질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게다가…… 흠.”
“말씀하시죠, 형님.”
나는 환자부터 살릴 요량으로 몸을 일으켰다.
혼자서 옮기는 것은 무리다 보니 조지프, 앨프리드와 함께 일어났다.
그렇게 있으려니 리스턴이 뭔가 말을 하다 말았는데, 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해서 마저 말하라고 했다.
다행히 우리 둘 사이가 보통은 넘다 보니 리스턴은 딱히 무례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아니, 환자의 증언은 있지만…… 신경이 뭉치지 않는다는 증거도 없지 않나?”
“아.”
이 병신이?
하마터면 내가 진짜로 결례를 범할 뻔했다.
생존 본능 덕에 입을 처닫았던 나는, 간신히 욕이 아니라 다른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었다.
“절단술을 받았고, 환…… 아니, 이런 종류의 통증이 있던 사람 중에 사망한 사람이 있다면, 해부를 해 보면 되지 않을까요?”
“오.”
리스턴은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혼절할 거 같은 얼굴의, 우리 불쌍한 환자를 바라보았다.
미쳤나 싶었다.
죽여서 해부할 작정인가.
“그…… 형님. 이 환자분을 보시면 심각한 오해를 하게 될 거 같은데요?”
“아, 그렇지. 그래, 그건 내가 찾아보지.”
찾아본다는 말도 소름 끼쳤다.
그럼에도 다행이다 싶었다.
하여간 이 사람을 죽여서 들여다보겠단 생각은 접은 거 같았으니까.
시바…….
19세기…… 망할 19세기.
“환자분, 도망가세요.”
“아, 네네. 감사…… 감사합니다.”
하여간 나는 욕을 하다 말고 나와서 환자를 보냈다.
나도 모르게 도망가라는 말을 했는데, 환자가 워낙에 자연스럽게 받아 줘서 다행이었다.
잠시 환상통을 연구하는 시늉이라도 하려면 환상통 환자가 있어야 하니, 저 환자를 붙잡을까 싶었지만…….
‘진짜 창궐할 거야…….’
21세기에서 팔다리 절단 환자를 보는 건 사실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절단술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절단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드물어져서 그랬다.
일단 물리적인 손상 자체가 잘 없지 않나.
물론 21세기에도 험한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이 시기에 비하면…….
여기는 진짜 노상 그랬다.
‘절단 환자의 절반 이상이 환상통을 앓는다고 되어 있었지…….’
21세기는 여기와는 달리 이런저런 치료가 있지 않나.
일단 절단술도 그렇게까지 미친 듯이 자르진 않았다.
다 절차가 있었고, 자르고 난 다음에도 이런저런 재활이 있었다.
여기?
여기는 목발이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그냥 뭉툭한 나무 쪼가리를 갖다가 박아 넣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어릴 때 봤던 만화에 나오던 해적이 진짜였다는 걸…… 여기 와서 알았다.
“근데 이거……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우리가 어떻게…… 아니, 아니지. 평이라면 할 수도 있어.”
내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조지프와 앨프리드도 이러쿵저러쿵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그러곤 나를 기대감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답은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설명을 어찌해야 할지, 그리고 치료를 어찌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일단…… 원인부터 설명하도록 해 봐야겠지?’
후자에 대한 고민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치료부터 하자고 하면 이상하게 보일 거 아닌가.
물론 딱히 원인을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어도 일단 치료부터 해 보는 이상한 풍조를 지닌 이들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나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이야 할 수 없다고 쳐도, 나중엔 진짜 내 한마디면 모든 사람이 자지러지게 만들고 싶어서 그랬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지금부터도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 나가야만 했다.
“나라고 뭘 알겠어? 다만…….”
“다만?”
“역시. 다르구나, 너는. 뭔가 알 것 같은 거지?”
“일단 환자를 봐야지. 머릿속으로 상상만 한다고 뭐가 되겠냐?”
“과학은 원래 공상에서 출발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자칭 과학자들은 과학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과한 오해를 하고 있어서 그랬다.
과학이 공상에서 출발한다니…….
이게 어느 정도는 또 맞는 말이라는 게 날 환장하게 했다.
실제로 여러 가설이나 이론들이 상상에서 시작된 것은 맞잖아?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만으로 이루어져선 안 될 일이었다.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니까…… 남의 팔을 채 썰듯 하지…….’
미친놈들아!
진짜 쌍욕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참았다.
대신 말로 천천히 조지기로 했다.
“상상만으로는 안 되지…… 너 이 증상이 정확히 어떤지는 알아?”
“팔이 없는데 아픈 거.”
“그거 말고.”
“이게 다 아니야?”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말이 통하려면 기본적으로 아는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의과 대학에 입학한 애들한테 괜히 죽도록 의학 용어를 가르치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된다.
다시 말하면……
“후…… 이게 다겠냐? 그런 증상이면 너무…… 너무 마법 같잖아.”
“마법이라니, 그런 비과학적인 말이 어딨어.”
“네 말이 그렇다고!”
“왜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문명인답게 행동하라고.”
똑똑한 사람이 바보처럼 취급당할 수 있단 얘기였다.
“하여간…… 가자. 가서 물어보다 보면 다른 게 나올 수도 있어.”
“아니, 그래도…….”
“너 여기서 머리 굴리면 뭐라도 할 수 있어?”
“아니, 그건 아니지.”
“그럼 따라와.”
“어…… 응.”
다행인 것은 이 무리에서 내 말빨이 좀 선다는 점이었다.
안 그러면 이 새끼들이 사람인가?
벌써 몇 번이나 위대한 발견을 한 마당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 아니었으면 아직 마취도 안 한 채로 사람 팔다리 자르고, 해부하고도 손 안 닦고 환자 만지고…….
무엇보다 장갑도 안 끼고 해부하다가 감염되어서 뒈졌을 테니까.
“흐음…….”
그렇게 도착한 곳은 대기실이었다.
말이 대기실이지, 숫제 도떼기시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찾는 환자들을 찾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나는 언제 볼 수 있소?”
“나는!”
혼란스럽긴 하지만, 절단술을 당한 환자들은 워낙에 눈에 잘 띄어서 그랬다.
보장구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지금, 후크 선장처럼 갈고리라도 달고 있으면 다행이었다.
대개는 그냥 헐렁헐렁한 소매를 나풀거리며 다니고 있었다.
다리 잘린 사람은?
목발을 짚었다.
규격화된 것도 아닌, 개발새발 본인이 만든 것 같은 목발을.
“어이쿠!”
그렇다 보니 넘어지는 일도 잦았다.
가뜩이나 몸이 약해져 있을 텐데, 넘어져?
다른 이유로 또 죽어 나갈 수 있단 얘기였다.
‘나중에 돈 좀 만지게 되면 보장구도 만들어 줘야겠네…….’
지금까지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눈여겨보니 이 또한 심대한 문제였다.
과연 19세기였다.
문제가 끊이질 않아!
여기서 잘도 발전했다 싶을 정도로!
“환자분.”
하여간 나는 그런 환자들을 불러 모았다.
가뜩이나 의사를 만나고 싶은데 못 만나고 있던 이들이라 그런지, 모으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절단술에 당한 사람들은 리스턴 교수님의 환자들이 태반이라 더더욱 그랬다.
다른 환자에게 나는 이상하게 생긴 놈일 뿐이지만, 이들에게 나는 리스턴 교수님의 총애를 받는 조수였다.
“혹시 잘린 팔이나 다리가 아픈 분 계십니까?”
그들은 내 질문에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을 짓고는 멀쩡한 쪽 손을 들었다.
5명을 찾아서 데려왔는데, 5명 모두 환상통 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