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64)
검은 머리 영국 의사-64화(64/505)
64화 머리의 전문가들 [2]
5점 만점에 5점도 아니고…….
5명이 왔는데 5명 전부 환상통이라니.
잠시 유병률이 설마 100%가 싶었지만, 침착하게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까…… 아픈 사람이 왔겠지.’
그렇지 않나.
21세기 대한민국이야 확인을 위해, 또는 가벼운 질환으로도 병원을 오가곤 하지만.
여기 병원은…….
시발…….
오겠냐?
안 아픈데 오겠어?
혹시라도 병원에 놀러 오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진짜 머리라도 열어 봐야 할 판이었다.
“으아아아아!”
“살려 줘!”
지금도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마취제가 있는데 왜 그러나 싶을 수도 있을 테지만, 마취는 진짜 대놓고 수술일 때만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주의를 주기도 했고, 리스턴 역시 나중에 끼어들긴 했는데.
마취제 때문에 사람이 죽었더라고.
내가 근거로 대준 논문에, 무려 1700년대에 나온 논문에 마취제 그거 잘못 쓰면 사람 죽는다고 찰떡같이 쓰여 있었는데도 막 써 가지고…….
심지어 틀어 놓고 그냥 하다가 지도 마취가 되어서 쓰러진 경우도 있었다.
결국에는 원장님이 나서고 나서야 수술 중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원칙을 정해 두었다.
하여간 미친놈들투성이야…….
“자자, 좀 조용한 곳으로 갈까요?”
나는 고개를 털어 어두운 생각을 저기 저편으로 내던진 후 걸음을 내디뎠다.
환자들은 그런 나를 수상쩍게 여기지 않고 그저 따라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난 리스턴 박사의 제1조수이자 마취제를 같이 발명한 동양에서 온 신비로운 천재 의사니까.
끼이익.
그렇게 도착한 곳은 리스턴 박사의 연구실이었다.
여길 이렇게 막 쓰게 된 것은 당연히 허락이 있어서였는데, 아마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진짜로 막 쓸 줄은 리스턴 박사도 몰랐을 터였다.
다들 어려워했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어렵긴 한데…….
이 양반이 생각보다 더 싸돌아다닌다는 걸 알게 되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아마 제대로 된 광장에서 수술 중일 터였다.
오가는 데만 1시간은 걸릴 텐데, 심지어 한 건이 아니었다.
와…….
‘광장에서 팔다리 4개를 자른다니.’
어마어마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는데, 그 때문에 원장은 기가 막힌 계책을 냈다.
오늘 거기 가려면 입장료를 내야 했다.
엄청나게 싸기는 한데, 남의 수술 본다고 돈을 낸다는 발상 자체가 대단했다.
하여간, 그렇게 벌어 낸 시간을 허투루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해서 나는 부리나케 환자들을 앉혔다.
중간중간 칼도 있고 해서 앉을 데가 마땅치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환자들은 바닥에라도 앉았다.
그만큼 절박해 보였다.
‘하긴…… 잘린 팔이 아프다니.’
21세기에서야 환상통이라고 하면 다들 이해해 주고 걱정해 주고 또 치료도 해 줄 생각을 하겠지만, 여기는 미개한 19세기 아닌가.
잘린 팔이나 다리가 아프다고 하면 아마 주변에서 코웃음부터 쳤을 터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면서.
솔직히 그렇게 보이긴 하지 않나?
과학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세상에, 뇌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던 세상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도 당연하긴 했다.
“일단 이름부터 묻죠.”
나는 앉은 순서대로, 내 기준 우측부터 물었다.
이 환자는 대강 기억도 났다.
부두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녹슨 못에 찔린 후 방치되어 파상풍이 왔고 그 때문에 팔을 잘랐다.
하아…….
파상풍…….
그것도 어떻게 하긴 해야 할 텐데.
“네, 저는 조지입니다.”
“네, 조지. 다음은?”
그렇게 소개를 이어 나갔고, 그 결과, 나는 5명 모두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이렇게 많은 절단술에 참여했을 줄이야.
거참…….
하여간 다들 가슴 아픈 사연으로 인해 절단술을 시행했던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다들 가난하기까지 했다.
더 큰 문제는, 이 시기의 런던은 인권 따위 개만도 못하게 다루고 있다 보니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배려도 없다는 점이었다.
안 그래도 가난한 나머지 험한 노동에 내몰리던 사람들인데 팔이나 다리가 잘렸고, 거기에 더해 환상통까지 앓고 있다는 얘기였다.
‘와…… 진짜 어떡하지.’
뭐라도 해야 했다.
의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이라면.
조지프와 앨프리드도 사연을 자세히 듣고 나서 그런지, 조금 전과는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얘들도 다른 많은 직업 두고 하필이면 의사를 꿈꾸게 된 애들이니 마음이 착하지 않겠나.
특히 이 시기 영국에는 돈 있고 지위 있는 이들에게는 할 일이 넘쳐난다는 것을 감안해 보면 더더욱 그럴 터였다.
“우선 증상을 묻겠습니다.”
“그게…… 좀 이상한데. 저도 제 손이 없다는 걸 알거든요. 근데 이게…….”
“네, 이상하다고 얘기하는 놈 있으면 무시하세요. 그럴 수 있어요. 지금 보셨다시피 여기 모인 다섯 분 모두 같은 증상입니다.”
“그, 그렇군요.”
“그럼 다시 묻죠. 주로 그 손에 어떤 감각이 있습니까?”
“아, 그…… 간지러울 때도 있고요. 아플 때가…… 아무래도 많습니다. 술을 먹어도 그렇게 좋아지질 않아요.”
“아, 술을…….”
알코올이 환상통에 어떤 영향을 줄까.
잘 모르겠는데, 딱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진 않았다.
환장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달리 줄 게 없다는 점이었다.
‘옛날 문헌이라도 좀 뒤져 봐야겠구만…….’
생각보다 진통제나 항생제 발견에 있어서 옛 문헌들의 도움이 꽤 되지 않던가.
말라리아 신약도 옛날 문헌에 나와 있던 걸 토대로 만들어서 노벨상까지 받았던 것을 본 기억이 있다.
그때는 보고 ‘아, 내가 할걸’ 하며 아쉬워했지만, 이제는 혹 내가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노벨상이 지금 있나 싶기는 한데…….
뭐 역사책에 어느 정도 이름을 남길 수는 있겠지.
“다음 분은요?”
하여간, 나는 질문을 이어 나갔다.
다들 대답은 비슷했다.
나한테는 그랬는데,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면담이라고 해도 꽤 시간이 지나서 잠시 쉬려고 나온 사이, 조지프가 말을 걸어왔다.
꽤 놀란 얼굴을 하고서였다.
“평아.”
“응?”
“진짜로 손이 있는 것처럼 느끼는 거 같지 않아?”
“아, 그렇지.”
“그렇지가 아니고! 5명 모두 그렇게 얘기하잖아.”
처음엔 왜 이렇게 오버하나 싶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만하긴 했다.
“그러니까. 아니…… 진짜 이게…… 손이 있는 것처럼 구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던데.”
“그니까요, 선배. 저도 약간 소름이…… 무슨 환상을 보는 것도 아니고…….”
“다섯 명이 다 그러니까…… 진짜로 존재하는 통증이라는 생각도 들었어.”
“그, 그렇겠죠. 그러니까 아까 그 환자도 팔을 더 잘랐겠죠.”
“아, 그렇구나. 아무튼, 너무 그렇게 구니까…… 이게 뭔가…… 확실히 신경이 뭉치거나 해서 생기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둘은 단지 놀라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놀랍게도 나름 꽤 정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문진이 괜히 기본이 된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진짜 물어보는 것만 잘해도 어지간히 답이 나온다니까?
나도 레지던트 때 진짜 죽도록 혼나면서 배우긴 했는데, 해 보니까 진짜 그랬다.
“그럼 대체…….”
“글쎄. 환영을 보는 것 같았어. 손이 아니라 손가락도 있다고 느끼고 있고. 어쩌면…….”
“어쩌면?”
“아니, 음. 모르겠어.”
잠시 감탄하고 있는 사이 둘은 대화를 더 나누었고, 드디어 더 나올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는지 거의 동시에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를 무슨 도라에몽 주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는 모양인데…….
‘사실 그렇게 틀린 생각도 아니긴 하지.’
적어도 의학에 국한한다면, 난 진짜 이 시대의 도라에몽이 아닐까?
그러고 보니 도라에몽도 20세기에 22세기 로봇이 간 거였잖아.
나도 19세기에 21세기 의사가…….
아니, 아니지.
“환영만 보는 게 아니잖아.”
둘 다 날 쳐다보기 시작한 지 대략 30초가 넘어가기 시작했을 무렵, 그러니까 슬슬 이 새끼 뭐지 싶을 때쯤 나도 입을 열었다.
여기서 더 끌면 진짜 좀 이상해질 거 같았다.
“응?”
“무슨……?”
“감각도 느끼잖아.”
“감각……?”
“무슨 소리야?”
“통증만 느끼는 게 아니라, 간지럽다는 감각도 느끼고 있잖아. 촉감을 느끼고 있는 거야.”
하여간 나는 화두를 툭 던졌다.
받아먹을 수 있을까?
못할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어…….”
“음…….”
둘 다 혼란스러워졌다.
이것만 해도 됐다.
기존에 있던 개념이 모두 산산히 조각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원래 진보는 이렇게 이루어지는 법 아니겠나?
사실 나도 몰랐는데, 와 보니까 그런 거 같았다.
그냥 말로 해서 될 게 아니야, 이거.
다 때려 부숴야…….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이 혼재되어 있잖아. 이건 단지 신경의 착각은 아닐 거야.”
“왜?”
“신경이 있어 봐야 근육밖에 더 움직이겠어?”
“아…….”
물론 난 부술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지니진 않아서, 눈높이 교육에 들어갔다.
이미 이 둘의 개념은 박살이 나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았다.
입 벌려라 이놈들아, 지식 들어간다.
“이걸 다 종합해서 사고하는 곳이 어디야.”
“어…….”
“머리……?”
“그래, 머리. 머리의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나는.”
그냥 지식이 아니라 세기를 넘나드는 지식이었다.
뇌과학이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는 시기에 뇌과학의 정수를 펼치려 하고 있다, 이 말이었다.
“머리라고?”
“좀 뜬금없지 않나……?”
너무 뛰어넘어서 그런가, 이런 말을 해도 마녀처럼 보이진 않는 모양이었다.
그냥 황당하다는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하긴, 팔다리에서 머리로 튀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게 정답인데.
“생각해 봐. 이게 사실상 착각이잖아. 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건 팔이나 다리는 없는 게 분명하다고. 단지 그렇게 느끼고 있을 뿐이지. 그럼 그 착각은 어디서 일어나는 거지?”
“팔 아니면 다리……?”
“팔이나 다리가 자기들 마음대로 생각을 할 수 없지. 결과적으로는 머리가 착각하는 거 아닐까? 일단 생각을 하는 곳은 머리잖아.”
“아니, 근데 저 사람들도 팔다리가 없다는 건 알잖아. 그것도 같은 머리 아니야?”
“아.”
무의식과 의식을 언제 구분했더라.
아니, 이건 사실 그런 것도 아닌데…….
‘우리는 음식을 먹을 때조차 머리가 착각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
뇌라는 게 생각보다 멍청한 기관이라는 것 정도는 이미 밝혀진 지 오래 아니던가.
허나 이 시기에는 이상하게 이성에 집착하는 풍조가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뇌에 대한 우상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다.
‘아. 그래. 그래!’
다행히 나는 아주 쉽게 착각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공군에 있을 때 받은 훈련 덕분이었다.
일부 군의관들은 파일럿 심사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자격을 따내기 위해서는 나름 초보적인 비행 훈련을 받아야 했다.
조종사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때 겪은 것 중 하나가 비행 착각이었다.
“조지프. 앨프리드 선배 여기다 태우고 빙빙 돌려.”
“응?”
“돌려.”
“어…… 돌리면 안 되게 생겼는데.”
“아, 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