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65)
검은 머리 영국 의사-65화(65/505)
65화 머리의 전문가들 [3]
왜 비행기가 위아래를 구분하지 못하고, 특히 바다 위를 날아갈 때 간혹 바다에 추락하는지 아는 사람 있는가?
파일럿이나 비행 군의관 또는 관련 종사자가 아니라면 알 수가 없을 터였다.
비행 착각이라는 개념 자체가 일반적인 의사에게도 낯설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쉽게 말하면, 너무 빠른 가속도를 인체 내 기관이 따라잡지 못해 생기는 일종의 착각이었다.
제일 흔한 건 몸이 거꾸로 뒤집힌 것처럼 느껴지는 건데…….
“으아아아아! 살, 살려 줘!”
내 충직한 종 아니, 친우 조지프는 거대한 몸집과 완력을 이용해 앨프리드를 태운 통을 빙빙 돌려 대고 있었다.
이게 정도 이상으로 빨라지게 되면 비행 착각이 발생하게 되는데, 지금 딱 그런 모양이었다.
“살려 달라고! 나 떨어질 거 같아! 거꾸로! 거꾸로 매달렸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조지프는 과연 리스턴 박사를 제외하면 이인자가 될 만큼 강한 용력의 소유자라 그런지, 사람을 빙빙 돌리면서도 여유가 넘쳤다.
녀석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물론 돌리는 사람도 어지럽지 않은 건 아니다 보니 어느새 움직임은 멈춰 있었다.
“조선에서는…… 이런 놀이가 있는데, 사람에 따라 빨리 돌면 이런 식의 착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
미안하다…….
조선…….
말을 할수록 뭔가 신비로운 나라가 되어 가고 있어…….
하지만 어쩌겠나.
이런 걸 그냥 깨우쳤다고 할 수는 없잖아.
“그래? 난 너 하는 거 못 봤는데.”
“아버지가 가끔 나 들고 돌렸는데, 못 봤구나? 하긴 우리가 더 친해진 건 큰 다음이니까. 그땐 못 드셨지.”
“그런가……?”
어린 시절부터 속속들이 알고 있는 조지프라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녀석은 날 의심할 생각 자체를 잘 안 하는 놈이었다.
“그런가 보네.”
그냥 이러고 넘어갔다.
“아…… 아…….”
하여간, 우리는 앨프리드에게 다가갔다.
통 안에 가만히 앉아서 돌기만 했던 주제에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정작 사람 돌렸던 조지프는 멀쩡해서 앨프리드는 민망해했다.
그런다고 당황했던 가슴이 쉬이 가라앉는 건 아니어서, 앨프리드는 어정쩡한 얼굴로 여전히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머리로는 안 뒤집힌 걸 알고 있는데, 뒤집힌 느낌이 들었죠?”
“어…… 어…… 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혹시 몰라 맥을 짚었더니 심박수가 거의 130은 되는 것 같았다.
의사하길 다행이었다.
뭔가 순발력이 있어야 하거나, 돌발상황에 끊임없이 대처해야 하는 직업을 택했다면 죽었을 테니까.
가령 뭐…… 해적이나 군인 있잖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을 텐데 영국에선 군인, 특히 장교를 안 거치고 출세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대가 그런 시대니까.
하여간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머리가 안다고 해서 착각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 아셨죠?”
“어, 어…… 확실히…… 와…… 나 아직도 아까…….”
“진짜로 거꾸로 뒤집힌 느낌이 들었어요? 나도 해 볼 수 있나?”
앨프리드는 내 말에 넋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지프는 그런 앨프리드가 신기하기도 하고 부러운 모양이었다.
그러곤 자기도 해 볼 수 있냐고 하면서 우리 둘을 바라보았다.
나는 대답하는 대신 내 가는 팔뚝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조지프의 우람한 팔뚝과 목을 바라보았다.
체격 자체가…….
되겠냐, 이게.
“리스턴 박사님 오시면 부탁해 보자.”
“아…… 그건 무서운데.”
“왜.”
“칼 휘두를 거 같아.”
“그런 이미지이긴 하지만 안 그럴 거야.”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우리에겐 괴물 아니, 리스턴 박사님이 있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그 양반이 돌려달라고 할 때인데…….
체면도 있으니 설마 그럴 리는 없을 거라 믿기로 했다.
만약 고집을 부린다면, 그때는 기계라도 만들어야지 뭐.
‘아니면 그 말도 안 되는 두통 치료 기기를 좀 고쳐서 돌리라고 하든가…….’
실험을 하느라 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가, 연구실로 돌아왔을 땐 환자들 모두 살짝 지겨워하는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의미는 있는 시간이었다.
“확실히…… 머리 문제일 수 있겠어.”
“그럼 어떻게 하지?”
조지프와 앨프리드 둘은 설득이 되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두 놈을 설득한 게 뭔 대수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혼자 떠들어 대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셋이 같이 말하는 게 더 나을 터였다.
끼이익.
그때 문이 열리고, 리스턴 박사님이 안으로 들어왔다.
“히익!”
“살려 줍쇼!”
“저, 저희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 사람이! 이 사람이!”
우리는 문을 등지고 있었고, 환자들은 문을 보고 있었다.
그 말은 곧 환자들이 리스턴 박사님을 정면에서 마주하게 되었다는 건데, 반응이 아주 볼만했다.
‘미쳤나.’
왜 그러나 하고 뒤를 돌아봤더니 과연 그럴 수 있겠다 싶어졌다.
미친 건 이 사람이었다.
광장에서부터 칼을…….
그것도 아직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들고 왔다.
‘아…… 저놈의 연륜 저거 언제 닦게 하지.’
현미경으로 세균부터 찾아야 어떻게든 해 볼 텐데.
아쉽게도 조지프가 들고 있던 현미경은 진짜 장난감 수준이라 세포 단위의 관찰은 아예 불가능한 지경이었다.
망할.
“아, 뭐지?”
리스턴은 여유롭게, 진짜 중세 기사라도 된 것처럼 칼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물었다.
뭔지 말 안 하면 벨 거 같았다.
그럴 리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것도 참 재주였다.
“교수님, 팔이나 다리가 없는데 그쪽이 아프다고 하는 환자들을 외래에서 데려와 문진 중이었습니다.”
“아…… 문진을 했어? 뭐 알아낸 거라도 있나?”
이 시기 문진은 진료 목적이 아니라 대개 연구 목적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었다.
다시 말해, 지금껏 진료할 때는 문진을 안 했다는 얘기였다.
말이 되나 싶을 텐데, 의사들은 개뿔도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증상만 들으면 다 아는 척을 하면서 치료를 해 댔다.
하여간 나는 알아낸 것을 말씀드렸다.
“머리……?”
그랬더니 리스턴 박사가 역시나 말이 되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까 살짝 흔들리기는 하는 것 같았다.
그로서는 드물게 동공이 떨렸다.
“네, 머리요. 가능성이 있습니다.”
“으음…… 앨프리드. 아까 거꾸로 매달렸다는 착각이 든 게 진짜인가?”
“네네. 제가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그래, 나한테는 거짓말을 잘 안 하긴 하지.”
리스턴은 알 만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동시에 머리라는 단어를 중얼거렸다.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차라리 팔이나 다리를 한 번 더 자르는 것이라면, 자신 있다 못 해 런던 최고의 칼잡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리스턴 자신 아니던가.
하지만 머리는……?
이쪽으로는 진료해 본 경험도 많지 않거니와 지식도 별로 없었다.
오죽하면 자기가 머리 아프면 토마스 박사를 찾아갔겠나.
“흐음…… 이건 골치가 아프겠는데.”
게다가 리스턴은 호쾌하게 생긴 얼굴과 마찬가지로 호쾌한 수술과는 달리, 나름 신중한 사람이었다.
다른 놈들 같았으면 벌써 ‘머리? 머리라고!’ 하면서 머리를 열 생각이나 했을 테지만, 이 사람은 그래도 그 전에 뭔가 확인할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머리를 열어도 되나?”
“네?”
물론 고려도 안 해 본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아니, 아니지. 그래도 물어보고 해야지.”
물어보고 할 생각을 한다는 뜻이었다.
“휘유.”
나야 놀라고 말았지만, 환자들은 진짜로 당황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긴, 나라도 방금 피 떨어지는 칼 들고 온 놈이 머리를 열까 하면서 자기 머리를 보고 있으면 식겁하지.
솔직히 마음먹고 열려고 하면 몇 분 걸리지도 않을걸.
죽는 데까지도 몇 분 안 걸릴 거라는 게 문제긴 한데…….
“이럴 게 아니라, 전문가들을 모아야겠군. 여기 모인 환자들 다 눈에 익은 걸 보니 최근에 자른 사람들인데…… 이 추세면 확실히 이 기묘한 증상을 앓는 환자들이 런던에 득실득실할 거야.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하면 다들 말을 들을 테지.”
“네네. 그래야겠죠.”
나는 고개를 굽실거리며 생각했다.
당신이 말을 한다면 그럴싸한 이유가 없어도 일단 듣기는 할 거라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뭐라? 그 증상이 머리가 원인일 수 있다고?”
“그게 정말인가?”
“그렇다면 내가 빠질 수 없지!”
내 착각이었다.
이 미친 19세기 의사들은 실험 정신이 지나치게 투철하지 않나.
그 와중에 최근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거 전염병이 아니냔 말까지 나오고 있는 환상통의 원인이 머리일 수도 있단 말 한마디에 소위 말하는 머리 전문가들이 모였다.
문제는 그 전문가들의 수준이라는 것이…….
“다들 알겠지만, 내 소개를 하지. 난 방혈의 전문가 제멜일세.”
“미개한…… 피는 그냥 돌려서 줄이면 될 것을. 알지? 토마스일세.”
일단 피가 몰려서 두통이 생긴다는 학파의 제멜과 토마스가 있었다.
그 둘이 먼저 소개를 하자, 다른 병원에서 끌려온 둘이 끌끌 혀를 찼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희망을 품었다.
그래, 이래선 안 된다고 해!
“나는 전기 치료의 전문가일세. 매튜라고 하네.”
“나는 진동 치료의 전문가일세. 매튜랑은 가끔 협력을 하고 있지. 제임스라고 하네.”
아…….
주여.
전기 치료와 진동 치료는 대관절 무엇입니까…….
‘이 새끼들 설마 사람한테 전기 튀기고 진동 준답시고 막 흔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끔찍한 생각이 자꾸만 오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여기 와서 치료랍시고 봤던 것들이 죄다 그랬잖아.
악마 새끼들.
“좋아. 이분들이야말로 런던 아니, 영국 전역에 이름을 날리는 머리 전문가들이지.”
내 좌절과는 별개로 리스턴 박사님은 흐뭇한 얼굴이었다.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껄껄 웃었다.
말 한마디에 전문가 넷이 모였으니까…… 그럴 수도 있나 싶었다.
내 눈에야 전문가가 아니라 돌팔이 내지는 인간 백정으로 보일 뿐이지만,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전문가가…… 맞지.
“일단 그 착각이라는 걸 보여 줄 수 있겠나? 말은 들었고, 리스턴 박사가 허튼소리를 할 사람도 아니니만큼 신빙성도 있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과학자인데, 두 눈으로 봐야 하지 않겠나.”
먼저 나선 것은 토마스였다.
저 새끼는 그냥 사람 빙빙 돌리는 걸 좋아해서 저런 말을 하는 거 같기는 한데, 명분도 있는 상황이었다.
어쩌겠나.
돌려야지.
“저, 저를 돌려 주실 수 있나요?”
다행인 것은, 나름 끔찍하고도 괴로운 경험일 수 있는 비행 착각을 갈망하는 사람이 여기 있다는 점이었다.
아까 사람 돌리느라 정작 자기는 돌지 못했던 조지프가 나섰다.
그리고 돌릴 사람 역시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다.
“음, 그러지.”
조지프는 한눈에 봐도 덩치가 커서 돌려지기에 적합해 보이지 않았지만, 리스턴 박사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섰다.
그러곤 통 안에 든 조지프를 인정사정없이 돌리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 몸이! 몸이!”
신성한 병원에서 익숙한 비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