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67)
검은 머리 영국 의사-67화(67/505)
67화 거울 치료 [1]
손을 만드는 일은. 원래 같았으면 진짜 어려운 일일 터였다.
뭐로 만들겠어.
철로?
대장장이들 솜씨가 썩 괜찮기는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금방금방 만들어 내질 못했다.
무엇보다 장갑 만들던 시기가 아니지 않나.
중세 시대 기사를 위한 야금술은 이미 전 세대 기술이 된 지 오래였고, 대다수의 대장장이들은 다른 걸 만들어 대고 있었다.
“고무로……?”
하지만 내가 누군가.
선견지명의 대명사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오늘만큼은 진짜 그렇게 믿어도 될 거 같았다.
“네. 고무로 손 모양을 만들 수 있을까요?”
“속 비워서 만드는 것보다야 채워서 만드는 게 더 쉽긴 하지. 아무래도. 왜 그게 필요하다는 건지는 이해가 안 가지만 만들어 줄 수 있네.”
“얼마나 들까요?”
“뭐, 돈?”
나는 아이디어를 떠올리자마자 즉시 콘돔 공장으로 왔더랬다.
위험한 곳에 있다 보니 당연히 앨프리드와 조지프를 대동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리스턴 박사도 끼어 있었다.
이 양반이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진짜 별일 아닌 건가, 화학자는 굉장히 긍정적이었다.
“네. 얼마나…….”
“하하. 이거…… 이제 곧 시판될 거야.”
듣다 보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화학자는 전과 비교하면 용 됐다고 해도 좋을 만큼이나 깔끔해진 고무 콘돔을 집어 들었다.
여전히 두껍긴 했지만, 이만하면 쓸 수 있을 거 같았다.
오히려 피임이나 성병 예방 목적에는 이렇게 두꺼운 게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하여간, 그거 때문인지 기분이 되게 좋아 보였다.
“이건 무조건 대박이야. 벌써 관심 보이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다네.”
“이게 뭔데…… 그러나?”
콘돔이 널리 통용되는 시기가 아니지 않나.
아니, 콘돔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더군다나 돼지 창자를 이용한 원시적인 콘돔이 아니라, 고무를 이용한 건 내가 최초일 터였다.
그렇다 보니, 리스턴 박사는 대체 이 사람이 뭘 보고 대박이네 어쩌네 하는 건지 궁금해 보였다.
하긴 이미 여기 온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나.
화학자의 허락 아래, 환자 손 크기와 비슷한 크기의 장갑 제작이 의뢰되었으니까.
한국 사람이었으면 아마 오늘 안에 완성품을 받을 수 있겠지만, 여기는 영국이라 느긋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 이거 콘돔입니다.”
“콘돔……? 아…….”
그러니 리스턴 박사님이 좀 엉뚱해 보이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느린 곳이었다, 이곳은.
“근데 이렇게 작아도…… 되나?”
네?
뭐라고요?
나는 귀를 의심했다.
지금 화학자가 들이민 건…… 어떻게 봐도 작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크기라 그랬다.
솔직히 저거보다 좀 줄여야 시판이 가능할 거 같았다.
‘영국 사람이라…… 큰가……?’
설마 다 이런가?
남들도 다 작다고 생각하고 있나?
위기의식이 부리나케 치솟고 있을 무렵,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화학자와 조지프 그리고 앨프리드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이게…… 작다고요……?”
“그럼 큰가.”
“아니…… 교수님 너무 허세를.”
“허세라니?”
“아니, 진짠가?”
화학자는 적잖이 당황한 채 물었다.
살짝 걱정도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내가 평균인 줄 알고…… 그렇게만 만들고 있었는데……?”
아니, 너도 크거든?
나는 하마터면 이런 말을 할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괜히 이런 말을 했다가 조선인의 자부심이 무너지면 어쩐단 말인가.
닥치고 있어야 할 때를 제대로 아는 사나이, 그게 나였다.
“아니, 아뇨. 이것도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허나 그런 걸 모르는 애도 있었다.
조지프도 그랬다.
덩치가 커서 따라 클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정확히 같은 생각을 했는지 화학자가 갑자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에이, 이건 큰 게 아니지.”
“아니…… 저도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앨프리드도 나서자 화학자는 더더욱 기분이 좋아 보였다.
리스턴 박사님은?
아까보다 어쩐지 허리를 내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설마 그렇게까지 상스럽게 어필할 거 같진 않았지만.
실제로…… 그런 거 같았다.
형님…….
“아. 이거 야단났는데.”
내가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는 동안 앨프리드는 상인의 아들다운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화학자는 감도 못 잡고 왜 그러냐고 했고, 앨프리드가 본격적으로 답하기 시작했다.
“사이즈 말입니다. 제일 잘 팔릴 사이즈를 알아야 그에 맞춰 생산량을 정할 텐데…….”
“아. 아이고.”
그 말을 들은 화학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도 그랬다.
확실히…… 이거 평균에서 너무 엇나가게 만들면 헛돈 쓰게 될 게 뻔했다.
제품이 좋으면 뭐 하나 안 팔리면 돈을 못 버는데.
“그 전에…… 조사를 좀 해 봐야겠군요. 일단 급한 대로 저희끼리라도 재 보겠습니다.”
“응?”
근데 얘기가 그렇게…….
그렇게 튀어?
“그게 좋겠군. 나도 협조하겠네.”
교수님은…….
교수님은 협조 안 해도 되는데요?
그냥 집에 가시면 안 됩니까?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감히 이 자리에서 그런 말을 꺼낼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가만히 있었다.
게다가 얼굴 보니까 지금 광장에서 수술하기 직전이랑 똑같았다.
미친 사람인가?
그걸 그렇게 남들한테 보여 주고 싶다고?
‘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저러지?’
나는 의문을 뒤로하고, 최대한 많은 수의 표본을 조사하기로 약속한 후 공장을 빠져나왔다.
내 입장에서는 딱히 마음에 드는 제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상만 쓰고 있을 정도는 또 아니었다.
손 모형 제작에 한 일주일 정도 걸릴 줄 알았는데, 사이즈 알아내기 전까지는 생산이 중단되게 되는 바람에 당장 내일 얻을 수 있게 되어서 그랬다.
그래, 의사가 말이야 의술 잘 펼치는 게 중하지 다른 게 중요하겠어?
어?
이 새끼들아.
다그닥.
내 생각과는 별개로 마차는 병원으로 다시 향했고, 안에서 이루어지는 대화 또한 내 생각과는 별개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나…… 대단하시다고요?”
“대단하다니. 난 내가 보통이라고 여겼네.”
“아니…… 팔뚝을 보여 주면서 그러시면…… 저희는 어떻게 삽니까, 앞으로.”
“허허…… 뭐. 얘기가 그렇게 되나?”
사춘기 애들도 아니고…….
아니구나.
우리 십 대지.
그럼 리스턴 당신이 대화를 잡아 줘야 할 텐데 오히려 조장을 하고 있으면 어쩌냐.
‘내가 나서야겠구만…….’
점점 불편해진 나는 결연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예 딴소리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 봐야 화제가 바뀔 거 같진 않았거든.
그래서 대충 비슷한 얘기를 꺼냈다.
“근데, 런던의 성병 유병률은 어떻게 됩니까, 형님?”
관련 있지?
근데 자세히 파 보면 아예 다른 소리였다.
하지만 일행은 속아 넘어갔다.
일단 리스턴이 그랬다.
이 양반도 뭐가 되었건 간에 의학에 미친 사람 아닌가.
시대의 한계로 인해 지식이 덜 쌓였거나 잘못 쌓여서 그렇지 열정만큼은 어마어마한 사람이었다.
“모르지.”
아닌가……?
모른다는 걸 저리 당당하게 말할 일인가?
“하지만 만연할 거라는 건 알고 있네. 뭐…… 딱히 예방법이 없지 않나. 수술할 수도 없고.”
듣다 보니 아예 모르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중간에 뭘 자르는 시늉을 하긴 했는데, 그건 넘어가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너무 무섭잖아.
“역시 그렇군요.”
“흐음…… 근데 저 콘돔이 상용화된다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될 수도 있겠군, 그래. 확실히…… 도움이 되겠어.”
“게다가 원치 않는 임신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빈민층 중에는 엄청나게 많다네. 당장 우리 병원에서도 자살하는 산모들이 더러 있지 않았나.”
“거참…….”
리스턴의 말을 들으며 나는 마차 주변을 돌아보았다.
런던이 그렇듯 참 지저분하고 더러웠다.
그와 더불어 자살한다는 말을 떠올리니 새삼 비참한 현실이 떠올랐다.
하긴…… 진짜 엉망진창이긴 했다.
여기는…….
“그런 걸 방지할 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힘이 될 테지. 문제는 빈민층에 저런 걸 살 여력이 있는가 여부일세.”
“아…… 그렇군요. 가격이 얼마나 되려나.”
“손해를 보진 않겠지. 딱 봐도 꽤 좋아 보였으니 싸지 않을 거 같던데.”
“잉…… 가져오셨어요?”
“가져와야지. 비교를 해야 할 거 아닌가.”
“아.”
리스턴은 가지고 온 것을 쭉 늘렸다가 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저 무지막지한 힘에도 불구하고 얼마간 버티는 것을 보면 확실히 대단한 발명품이었다.
좋아.
아주 좋아.
“하여간…… 자네 그 고무손이 도움이 되면 좋겠구만.”
“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병원이 가까워져서 그런가, 리스턴은 슬슬 자기 환자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거 꽤 심각한 문제 아닌가.
그게 더 실감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외래 접수실을 지날 때 보니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더 늘어나 있었다.
진짜 일각에서 하는 전염병설이 그냥 나온 건 아니겠다 싶은 수준이었다.
하나가 다섯이 되고, 다섯이 열이 되고…….
문제는 마취제 자체가 나온 지 오래된 물건이다 보니, 딱히 우리만 그걸 쓰는 게 아니란 점이었다.
아니, 이건 문제라기보다는 잘된 일이지만 그러다 보니 절단술이 여기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게 문제라고 봐야 했다.
그 말은 곧…….
“런던 전체에 곧 몇천 명은 되겠구만그래.”
리스턴 박사의 말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였다.
지금까지 잘라야 사는데 겁나서 못 자르고 있던 사람들이 다 잘라 대서 그랬다.
그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죄 상경해서 잘라 대고 있었다.
수천 명의 환상통 환자가 허언이 아니란 얘기였다.
세상에 무슨 전쟁통도 아니고…….
“자네 고무손이 정말 효과가 있길 바라야겠어.”
“네, 그러니까요.”
나는 실로 오랜만에 기도를 올렸다.
그러곤 다음 날 고무손 네 개를 들고 병원에 왔다.
환자가 워낙 많지 않나.
한 번에 치료를 많이 해야 할 거 같았다.
“자, 이쪽으로 오시고요.”
“네.”
“이걸 이쪽에 달죠.”
“어…… 네.”
나는 그 고무손을 환자의 소매에 고정했다.
모양이 막 리얼하거나 그렇진 않았다.
누가 봐도 고무장갑이었다.
이 시대에 뭘 기대하겠나.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이라고 봐야 했다.
하여간, 그렇게 없어진 손에 고무손을 낀 환자들을, 나는 차분히 지켜보았다.
‘정확한 절차 자체는 나도 몰라…….’
이럴 줄 알았으면 기사 떴을 때 좀 더 자세히 볼 걸 그랬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개념을 알고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실제로 환자들은 그 손이 신기한지 이리저리 만져 보고 있었다.
좋은 일이었다.
만져 봐야 느낌은 없을 테니.
그렇게 머리가 자신의 착각을 자각하고, 헤쳐 나오길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