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68)
검은 머리 영국 의사-68화(68/505)
68화 거울 치료 [2]
“이것 신기하구만그래.”
리스턴 박사는 꽤 만족스러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방금 다른 사람 다리 자르고 왔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살짝 소름이 끼치는 장면이었지만 굳이 티 내진 않았다.
게다가 신기한 장면인 건 내가 보기에도 맞아서 더더욱 가만히 있었다.
“진짜로…… 안 아픕니다. 네. 이제 이 손이 괜찮아요!”
일명 고무손 치료.
굉장히 없어 보이는 이름의 이 치료를 시작한 지도 어느새 열흘이 지났는데, 드디어 첫 완치자가 나왔다.
물론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거짓말일 수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표정을 보면 아닐 거 같았다.
적어도 전에 선의가 데려왔던, 팔을 무려 네 번이나 잘려야만 했던 환자에 비하면 천국에라도 다녀온 듯한 얼굴이지 않나.
“이게 정말로 효과가 있단…… 말인가?”
사람 된 도리로 저런 표정을 봤으면 덩달아 기뻐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인지상정일 텐데, 우리의 자칭 머리 전문가 여러분들은 어딘지 모르게 불만 어린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우연 아니겠나……?”
“원래 이게 그냥 둬도 낫는다는 얘기도 있던데?”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정말이지 천인공노할 얘기들까지 꺼내 들고 있었다.
미친놈아.
그냥 둬도 나을 수 있는 병이면 왜 마취도 안 하고 사람 손을 또 잘랐냐!
그런 방법이 있었으면 새꺄 그냥 뒀어야지!
“전기를 흘려보내야 하는데.”
그 와중에 우리 전기 의사 놈은 역시나 튀는 소리를 해 댔다.
전생에 전기 뱀장어라도 되었던 모양인지 몰라도, 하여간, 눈만 뜨면 사람 튀길 생각만 하고 있었다.
미친놈 같으니라고.
“아니, 아닐세. 내 경험상…… 치료를 진행하지 않으면 거의 치료되는 경우가 없어.”
다행한 일은 리스턴이 우리 편이라는 점이었다.
막강한 중세 기사 리스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니까 이 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뜻이지.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무래도 좀 치료율이 낫다는 건데. 적어도 절반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절반.
그러니까 반 정도는 치료가 되어야 한다는 뜻인데, 현대 의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터무니없이 낮은 수치였다.
허나 이 시기에 절반이면 대단한 것이었다.
낫기는커녕 치료 때문에 죽는 사람이 더 나오잖아.
엄청 낮은 거라는 건데…….
‘그렇군. 열에 하나 정도인가?’
지금 이 치료의 성공률은 그것보다도 더 낮다는 게 문제였다.
물론 치료 시기도 내가 잘 모르는 만큼, 여기서 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공산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내가 봐도 좀 어설프긴 하단 말이야.’
고무손을 달아 놓고 그거 쓸어 주고 하는 게 좀 그렇지 않나?
그렇다고 더 폭력적인 수단을 쓸 생각은 없었다.
우리 19세기 의사분들은 과학이라는 이름하에 보다 그럴싸한 치료를 하려고 애를 무던히도 쓰고 계신단 말이지.
그러다 사고를 엄청 치고.
내가 명색이 대학교순데 그럴 수야 있나.
해서 좀 더 좋은 방법을 내내 고뇌하고 있었더랬다.
“우리 닥터 평. 다른 의견은 없나? 미안하네. 지금 물어볼 만한 사람이 자네뿐이야.”
“음…….”
“정 어려우면 고무손 치료와 함께 전기를 흘려 주면…….”
“그것도 고려를 해 보지. 생각해 보니, 뇌를 다시 시작하게 하는 치료니까…… 아무래도 감각이 더 잘 돌아올 거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면 피도 뽑지.”
“돌리기도 하고.”
“진동도 하세!”
서둘러야 될 것 같았다.
뭔가 더 뾰족한 수를 재빨리 내지 않으면 이 새끼들이 또 환자 잡을 거 같아.
‘밖에 저 환자들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지.’
지금도 병원 밖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환자들이 진짜 어마어마하게 몰려들고 있었다.
그중에는 최근에 잘린 환자도 있지만 벌써 꽤 오래된 환자들도 섞여 있었다.
아직 이렇다 할 치료 결과를 보이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몰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지금 진행 중인 고무손 치료는 병원에서 하는 치료 중에서는 실로 드물게도 아프지 않고 치료하다가 골로 가지도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환자들이 온다는 것이 좀 슬프긴 한데 하여간.
“자자! 의견을 통일해 보기 전까지는…… 각자에게 온 환자들에게만 각기 하고 싶은 치료를 하는 것으로 합시다!”
문제는 그렇게 몰려오는 환자가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리스턴 박사와 나 이렇게 둘로는 도저히 대처가 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절단술은 시행 중이지 않나.
전염병은 분명히 아닌데 마치 전염병이라도 된 것처럼 계속해서 환자가 늘어나고 있었다.
팔다리를 자르면 그 부위가 아프다는 말이 번져 나가고 있음에도 당장 죽겠고, 마취도 된다고 하니 용기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아…….’
그래서 나눠서 보고 있었는데, 그래선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환자들 중 일부는 고무손을 단 채로 전기의자에 앉거나 피를 뽑거나 원심 분리기에 돌거나…… 그나마 나은 머리통에 추를 달게 되거나 할 터였다.
대체 어떤 교육을 받았길래 저렇게 천차만별로 다른 이상한 치료를 하나 싶어서 봤더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여기부터 그랬다.
나랑 조지프, 앨프리드는 상대적으로 딱 달라붙어 다니는 편이고 콜린도 이상하게 낑겨 다니고 있지만 나머지 인간들은 아예 따로 다니지 않나.
좋아하는 교수에 따라 배우는 게 전혀 달랐다.
‘돌아라, 머리야!’
나는 인간들이 나간 후에도 더 맹렬하게 고민을 이어 나갔다.
별 소용은 없었다.
나는 신경과나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외과 의사여서 그랬다.
차라리 손 한 번 더 자르라고 하면 그게 쉽다는 얘기였다.
“이봐, 평.”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말을 걸어왔다.
밝은 표정이었다.
“네?”
“한 명이라도 좋아졌으니, 잘된 일 아닌가. 밥이나 먹으러 가세.”
“아…… 네. 어디로……?”
병원 식당?
그런 것은 없었다.
도시락 싸 와야 했는데, 영국이라 그런가 진짜 더럽게 맛이 없는 게 전부였다.
먹다 보면 자연스레 엄마가 보고 싶어지는 맛이랄까?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조지프도 그랬다.
업턴에서 가족들과 다 같이 지내고 있을 때는 그나마 우리 엄마가 해 주는 맛난 한식들을 먹을 수 있었거든.
“요새 돈을 워낙 잘 벌어서 말일세. 고기나 먹으러 가지.”
“오.”
여기서 고기란 소 아니면 양이었다.
처음 다시 태어났을 때만 해도 영국은 섬나라니까 해산물을 질리도록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 사람들은 소에 진심이었다.
들어 보니 북해 인근은 어업이 엄청 어렵긴 하다더라고?
하여간 잘된 일이었다.
소고기는…… 영국인이 구워도 대강 먹을 만하니까.
“오…… 여긴…… 호텔이잖아요?”
“그렇지.”
“여기는 진짜 비싸지 않나요……?”
“괜찮네. 나 돈 많아.”
마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호텔이었다.
19세기에 뭔 호텔인가 싶을 텐데, 대영제국은 대영제국이었다.
이 자식들 초보적인 수준이긴 해도 하수도 설비도 있잖아?
이 시기의 영국은 우리 상식보다는 훨씬 더 발전해 있다고 보면 되었다.
“잉.”
하여간 메뉴판을 받아 든 나는 되게 놀랐다.
메뉴판을 가져다준 종업원도 동양인인 나를 보며 놀랐었지만, 나만큼은 아닐 터였다.
우리가 있는 곳이 런던이니만큼 이국적인 사람들이 그래도 호텔이나 그 주변에는 꽤 있었거든.
하지만 이건…….”
“메뉴판에 가격이 없습니다, 형님.”
사석이니만큼 형이라고 불렀다.
다급하게 불렀다.
“어…… 그렇네?”
그렇다고 해도 알고 왔나 하고 부른 건데 고개를 들어 보니 엄청 당황한 얼굴이었다.
이 양반…….
뭐지……?
“그래도, 뭐. 우리 둘이 먹을 정도는 돈이 있어. 게다가…….”
“게다가요?”
“날 상대로 사기 칠 거 같나?”
“아.”
사기라니.
강도당할까 봐 무서워할 텐데.
확실히 마지막 말을 듣고 보니 좀 든든해졌다.
여유가 돌아온다는 얘기였다.
그제야 주변이 눈에 좀 들어왔다.
19세기에 지내고 있다 보니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는 이제 슬슬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호텔이라 그런가, 확실히 달랐다.
뭐랄까…….
고급스러워.
“오.”
“왜?”
“저기 거울이요. 엄청 잘 비치네요.”
“하하. 요새는 거울 잘 나오지.”
선배 집에 있는 것도 유리 거울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깨끗하지는 않아서 퍽 신기했다.
그렇게 보고 있으려니, 다른 직원이 와서 말해 주었다.
아무래도 날 신문물에 관심 많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귀족으로 소개받아서인 듯했다.
“요새는 저거보다 작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그보다는 도자기나 그림들이 아주 귀한데 둘러보시겠습니까?”
그러면서 뭐라도 사 달란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너무 친절해서 살짝 미안해졌다.
그러지 말라고.
개털이라고.
‘아…… 콘돔 팔면 부자 되려나?’
선배 아버지가 꽤 공정하게 계약을 해 줘서 순이익의 몇 프로라도 먹게 생겼던데…….
“아니, 일단 좀 보죠.”
“네, 실례가 많았습니다.”
하여간 리스턴의 말에 종업원은 물러가고, 이내 음식이 나왔다.
나름 고기만 시킨 건 아니었고 이것저것 시킨 마당이라 순서대로, 그러니까 전채부터 나올 줄 알았는데 한꺼번에 다 나왔다.
무슨 한식도 아니고 한 상 차림 느낌이었다.
“이잉……?”
“왜 그러나?”
인종 차별인가?
아니, 미리 조선에서 먹던 것처럼 먹으라고 배려해 준 건가?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저 양반도 아주 부유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런 곳에 몇 번은 왔을 테니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늘 이렇다는 뜻일 터였다.
‘아니, 이렇게 하면 메인 요리가 식잖아…….’
하여간 영국 놈들…….
미각에 관심이 없어도 이렇게 없나.
구시렁대면서 고기부터 씹었는데 역시 소고기 기본의 맛을 제외하면 그 이상의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쯤 되면 신이 영국인들에게 저주를 내렸나 싶을 지경이었다.
“어!”
“아니…… 왜 그래, 자꾸.”
저주 생각을 하다가 거울을 봤는데 그때 하필 내가 씹으려 했던 고기가 떨어지려고 해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거울에서 떨어지는 걸 잡으려 했다는 얘기였다.
“죄송합…… 어?”
하마터면 리스턴의 고기를 엎을 뻔했기에 사과부터 했다.
아니, 하려고 했다.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없었더라면 그랬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애초에 음식의 맛이 날 황홀경에 끌어올려 놓거나 음식 생각만 하게끔 만들어 줄 만한 것도 아니다 보니 아이디어에 집중하기가 한결 쉬웠다.
“왜 그러지?”
나뿐만이 아니라 리스턴도 그런 모양이었다.
원래 영국 음식은 인테리어와 상대와의 대화에 집중하기 위한 배려라는 말도 있지 않나.
여기도 기본에 충실해서 딱히 우리 둘 사이를 방해하는 요소는 없었다.
“거울…… 저거.”
하여간 난 거울을 이용한 착각을 써 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했다.
그러자 리스턴이 옳거니 하고 손뼉을 쳤다.
“확실히! 고무손보다는 이게 훨씬 손 같아 보이겠구만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