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69)
검은 머리 영국 의사-69화(69/505)
69화 거울 치료 [3]
거울을 이용하기로 결정하는 데까지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리스턴 박사가 나름 신중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한번 뭘 하고자 하면 팍팍 해내는 실천가이기에 그랬다.
애초에 그래서 머리 전문가 새끼들도 낑겨 들어오게 된 거 아닌가?
문제는 놈들도 만만찮은, 아니 오히려 너무 심한 수준의 실천가들이라는 점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해서는 안 될 치료를 시도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특히 그…….
전기 의사 놈.
그놈이 환자 튀기기 전에 뭐라고 해야 했다.
“일단 빨리 형태를 정해서 주문을 해야 합니다.”
“응, 그렇지. 근데 그렇게까지 빨리할 게 있나. 지금 하는 고무손 치료도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지 않나.”
아니, 이놈이…….
우리는 문제가 아니라고.
다른 새끼들이 뻘짓 할 거 아냐.
남들이 다 같이 있는 상황이라면야 더 말을 안 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둘뿐이잖아?
그나마 리스턴은 나를 진짜 아우로 대해 주고 있고.
해서 용기를 내어 입을 좀 털어 보기로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시내에 나온 참에 뭐라도 해야지. 들어가고 나면 또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릴 게 뻔했다.
“다른 그 새…… 아니, 그분들. 머리 전문가들이 시도해 보겠다는 치료가 저는 좀 불안해서요.”
“불안? 왜?”
“전기를 괜히 흘려줄 필요가…… 있을까요?”
“아, 하하. 그게 너무 생소한 개념이긴 하지. 나도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는데, 그렇다 해도 근거가 없지는 않아.”
없다고, 인마!
전기 치료는…… 우울증에는 효과가 있다고 듣긴 했는데…… 거기도 전기 뱀장어를 쓰진 않는다고!
하필 내가 본 유튜브 중에 뱀장어 잡으려다가 감전사하는 악어 영상이 있다 보니 자꾸 그 영상만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물론 리스턴에게 그런 얘기를 할 수는 없으니, 다른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저희에게 환자가 몰리는 이유가 많아서도 있지만 일단 안 아픈 치료를 한다는 것도 커다란 이유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앞으로 환자의 고통을 좀 더 염두에 둬야 한다고 봅니다.”
“아…… 으음. 그건…….”
환자가 아파하지 않아도 되는 진료.
이게 저렇게 고민할 일인가?
내 충격과는 별개로, 리스턴도 그 말에 꽤나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긴 병원만이 아니라, 온 사회가 고통에 무감한 시대이긴 하지 않나.
예컨대 우리 노동자분들…….
그분들 어떻게 지내는지 내가 자세히 아는 것도 아니고 정말 대강 아는데도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었다.
“하긴…… 수술에만 마취를 쓰고 있긴 한데…… 안 아플 수 있으면 그것도 좋겠군.”
다행히 리스턴은 본인이 가장 많은 고통을 준 사람답지 않게 생각은 열려 있는 사람이었다.
해서 우리는 극적인 타협점을 찾았다.
‘빨리 뭔가 하자!’는 생각을 공유하게 되었다.
물론 머리를 굴려야 할 사람은 나 뿐이었다.
리스턴도 나름 고민은 하겠지만, 뇌를 착각하게 한다는 콘셉트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는 건 나밖에 없지 않나.
‘가장 중요한 것은 손을 보기는 보되…… 아무 느낌도 없다는 걸 확실하게 알게 하는 거야. 그러려면…… 우선 음…….’
솔직히 말하면 난 내가 머리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금세 뭔가 나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19세기의 야만성에 내 머리도 그만 영향을 조금 받게 된 것일까?
그럴싸한 결과물은커녕 별생각이 나지 않았다.
심지어 거울을 뒀을 때 어떤 모습이 될까 하는 시뮬레이션조차 제대로 나오질 못했다.
“일단은 거울을 보면서 생각을 해 볼까요, 교수님?”
“어…… 그럴까. 그래, 그게 좋겠네.”
해서 우리는 거울 가게로 향했다.
한국에서는 거울 가게라는 게 참 생소했는데, 이 시기에는 거울이 나름 있어 보이는 가구인지라 그것만 따로 파는 곳도 있었다.
하여간 그렇게 도착한 가게에는 정말이지 각양각색의 거울이 들어 있었다.
나도 교수도 이리저리 흩어져 거울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 오니까 생각이 막 나는 거 같어.’
자신 있었다.
금세 뭔가 해낼 자신이.
“아…… 이보게, 닥터 평.”
그때 리스턴이 나를 불렀다.
종업원이 날 보고 시비를 걸었나 싶었다.
리스턴은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이 드는 이에게 함부로 대하면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이라 말리러 뛰었다.
허나 그 자리엔 리스턴 밖에 없었다.
하긴, 애초에 종업원이 하나 있기는 한데 본체만체한 채 저 멀리 떨어져 있긴 했다.
“무슨 일이에요?”
하여간 나는 별다른 기대 없이 물었다.
그런 나와는 달리 리스턴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19세기 사람이 애쓴다 싶었다.
“이거 보게나.”
물론 나도 덩달아 호들갑을 떨었다.
사람이 이렇게 나오는데 심드렁하게 있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무례도 사람 봐 가면서 범해야지, 리스턴 같은 사람에게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었다.
“잘 봐. 오른손이 없는 사람이라고 치자고.”
“네.”
“내 왼손을 거울에 비춰 보자고. 자 그럼 이게 어때 보이나.”
“오…… 오른손처럼 보입니다.”
“근데 그냥 이렇게 두면 좀 그렇고. 왼손은 아예 안 보이게 하면 더 그럴싸하겠지?”
“아…… 잠시만요. 오…….”
오…….
리스턴……
이 양반 혹시 역사에 이름 좀 남겼던 사람인가?
하긴 런던 최고의 명의긴 했지 않나.
뭘 모르는 시대라서 그렇지, 시대의 한계 안에서는 최고의 의사라고 봐도 무방했다.
기본적으로 머리가 좋다 이건데…….
‘이렇게까지 금방 이해해서 뚝딱 아이디어를 낸다고……?’
교수는 교수구나 싶어졌다.
시대가 개판이라도 지성은 살아 있어!
“자네, 뭔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나?”
“아니, 아뇨. 이거 너무 그럴싸해서요. 왼손이 안 보이게 하는 거야 뭐…… 상자라도 만들어서 그 안에 넣도록 하고. 거울만 보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럼 진짜 감쪽같을 거 같습니다.”
“아하. 그래, 상자로…… 그래. 좋군. 오히려 이게 고무손보다 제작도 훨씬 쉽겠는데?”
“네. 정말로…… 너무 대단하십니다.”
나는 원래부터 아부를 좀 잘 떠는 사람이었다.
병원 생활하면서 대단히 수련이 되어서 그랬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내가 상대를 아예 무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부가 가능했다.
헌데 그게 아니라 숫제 내가 감탄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저는 정말 이렇게 천재적인 발상은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허허, 그 정도는…….”
“아뇨, 아닙니다. 자부심을 가지셔야 합니다. 이제부터 교수님은 이 미지의 통증을 치료한, 의학의 아버지로 이름을 남기시게 될 겁니다.”
“애초에 거울을 쓸 생각을 한 건 자네인데……?”
“제가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있었으면 폐기되었을 아이디어일 수도 있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와…… 교수님은 의학계의 빛이십니다.”
“하하하. 이거야 원. 기분 좋구만그래!”
상대가 아예 정신을 차리지 못 하게끔 쉴 새 없이 딸랑거릴 수 있었다.
리스턴 박사조차 처음에는 좀 저어했으나 지금은…….
“하하하!”
가게가 떠나가라 웃고 있었다.
그러자 종업원이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다가왔다.
나야 생긴 게 무섭게 생긴 건 아니라지만, 일단 동양인 패시브로 이 시기 런던의 수상함을 담당하고 있지 않겠나.
리스턴은 시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냥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에 있어도 장수 또는 전국구 깡패 얼굴이었다.
이런 놈들이 웃고 있으니 불안하지 않겠나.
고개를 돌아보니 나름 무장도 했다.
그래 봐야 리스턴이 손짓 한번 하면 날아갈 몰골이긴 했지만.
“자, 거울을 가져오게.”
그런 종업원에게 리스턴은 여전히 호탕한 얼굴로 거울을 요청했다.
“도, 돈이 아니라요?”
종업원은 영 헷갈린다는 얼굴이었다.
“돈? 돈은 내가 내야지.”
“아…… 네네.”
물론 리스턴은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어 본 게 아니었기 때문에 딱히 성질을 내는 대신 그냥 해야 할 말을 했다.
다행히 종업원도 그런 리스턴을 보면서 오해에서 벗어나 안으로 내달렸고, 리스턴이 요청한 모양의 거울을 여러 개 들고나왔다.
“하, 할인하겠습니다.”
물론 오해가 완전히 벗어진 것은 아니라, 가격적인 면에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생기면 유리할 때도 있지.”
리스턴은 그렇게 거울 여러 개를 들고 마차에 타면서 씨익 웃었다.
때가 있는 게 아니라 대부분 유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그저 동조의 뜻으로 슬며시 웃기만 했다.
“자, 그럼 만들어 볼까. 망치랑 톱 좀 들고 오게!”
하여간 대학에 돌아온 리스턴 박사는 우선 공구부터 요청했다.
그러자 조수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
“네! 환자는 어디 있습니까?”
“어떤 사람 잡아 와야 합니까!”
“누구 다리를 자를깝쇼!”
말만 들으면 의사 조수가 아니라 조폭 똘만이들 같은데, 실은 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게 아니라는 말을 듣고도 뭐가 되었건 들고 왔다.
그렇게 들고 온 공구를 리스턴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익숙한 손놀림으로 나무를 조작해 손이 딱 들어갈 만한 물건을 여러 개 만들었다.
손이 확실히 좋은 사람이라 그런가, 물건 모두 자로 잰 듯 똑같은 크기를 보이고 있었다.
“와…….”
“왜 그러나.”
“역시 교수님은 대단하십니다!”
“하하하! 이 사람 이거!”
나는 일단 칭찬으로 사람 마음을 훅 띄워 준 후, 원래 치료 진행 중이던 사람들을 불렀다.
고무손을 이미 달고 있는 이들도 있었고, 이제 막 온 사람들도 있었다.
하여간 지금 런던에서 이 환상통은 거의 페스트 수준으로 번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세상 그 어떤 의사도 환상통을 주제로 이만한 사이즈의 환자군을 확보한 적은 없지 않았을까 싶었다.
논문도 쓸 수 있을 거 같았다.
NEJM(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의학 논문 학술지)이 언제부터 있었더라.
지금쯤이면 있을 거 같은데…….
‘그래 봐야 거기 들어가는 논문이 다 개판이긴 할 텐데, 아직은.’
이 시기가 나름 과학자 흉내 내는 시기 아닌가.
하여간, 고무손에 비해 훨씬 그럴싸해 보이는 거울 치료를 시작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머리 전문가 새끼들 불러다가 이렇게 하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놈들도 과학자를 자처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지들은 근거 하나도 없이 개짓거리하고 있는 주제에 그 행동을 수정하라고 요청하면 갑자기 대과학자가 된 것처럼 근거를 요청한단 말이지.
‘자…… 어떻게 되는지 보자.’
이게 너무 원하는 결과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쩐지 아까보다 환자들의 반응이 훨씬 좋아 보였다.
아니, 보이는 게 아니라…….
“방금 봤나?”
“네. 저도 봤습니다.”
“확실히 효과가 좋구만.”
“네네. 진짜로요.”
리스턴도 동의하듯, 환자들이 있는 손을 움직이면서 없는 손을 보는데, 진짜로 착각이 팍팍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왼손을 치는 시늉을 했더니 있지도 않은 오른손을 급히 상자에서 빼지를 않나…….
이쯤 되면 확실할 수 있었다.
100% 완치는 보장하지 못하겠지만, 뭐가 되었건 현재 상황에서 시도 가능한 치료 중에서는 원탑일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