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7)
검은 머리 영국 의사-7화(7/505)
7화 니들 그러면 안 돼 [1]
“으. 으으으으!”
아까 봤던 환자는 이제 침대 밑에 있었다.
식은땀과 함께 몸을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열이 엄청 나는 거 같은데.”
의사가 아닌 사람이 보면 덜컥 겁이 날 만한 상황이었다.
사람이 떨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달랐다.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이것보다 더한 환자도 여럿 봤다.
대한민국에서 외과 교수를 한다는 건 진짜 보통 일이 아니거든.
해서 차분하게 다가가려는데, 뒤에서 소란이 일었다.
“거기! 무슨 짓이야!”
아니, 호통을 쳤다.
뒤를 돌아보니, 살집이 있는 통통한 중년 사내가 한 무리의 사내들을 이끌고 서 있었다.
“아, 저는 여기 학생입니다.”
“학생? 못 보던 친군데?”
“오늘 입학했습니다.”
“입학. 아, 그렇지. 신입생 오는 날이 오늘이었구만. 그래, 뭐 해 보려는 생각은 가상한데 일단 비키게. 진짜 의사가 봐야 하는 상태니까 말이야.”
“아, 네.”
제멜인지 나발인지 하는 의사인 모양이었다.
파리에서 유학을 하고 왔다고 했나.
21세기에는 프랑스보다 대한민국의 의학이 월등히 앞서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떨까?
‘런던보다는 나아라, 시발놈아.’
나는 간절한 눈으로 제멜을 바라보았다.
제멜은 능숙한 의사답게 당황하지 않고 환자에게 다가갔다.
“땀이 많이 나네. 좋은 징조야.”
그러곤 침착한 어투로 개소리를 시전했다.
‘땀이 나는 게 왜 좋은 징조야……?’
지금 이 환자에게서 관찰되는 땀은 운동을 해서 나는 땀도 아니고, 더워서 나는 땀도 아닌 식은땀이었다.
당장 생각나는 식은땀의 원인만 해도 여럿이었다.
암, 말라리아와 같은 심각한 감염 질환, 대사 질환 등등.
좋게 보려 해도 좋은 징조일 수가 없다, 이 말이었다.
“배가 아프다고 했지?”
“네.”
하여간 제멜은 여전히 침착한 얼굴로 조수에게 물었다.
환자가 앞에 있는데, 환자한테는 안 묻고 조수에게 묻다니.
참 참신한 진료 방식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아픈가?”
“으아아악!”
그러더니 환자 배를 그냥 냅다 눌렀다.
자세를 취하고 눌러야 정확히 알 수 있을 텐데.
아직 그런 상식이 보편화되진 못한 모양이었다.
“아주 단단해. 살이 뭉쳤어.”
하여간 제멜은 휘유우 하고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내저었고.
“그거 가져오게.”
조수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조수가 나는 듯이 달려가더니, 뭔가 흉악해 보이는 기구를 들고 왔다.
바가지 같은 것도 같이 들고 왔는데, 아무리 봐도 좋은 목적으로 만든 물건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술 도구도 다 저렇게 생겼었기 때문에, 나는 혹시 모른단 생각으로 일단 지켜보았다.
조지프도 그랬다.
“와…… 멋지다.”
생각은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
안 된다, 조지프.
저런 소리 하는 건 멋진 게 아니야.
지금 제멜이라는 작자가 한 말 중에 의학적인 게 있었니?
그냥 개소리를 침착하게 하고 있을 뿐이라고.
“이쪽에 피가 너무 많이 뭉쳐서 이렇게 된 거니까. 일단 피를 좀 빼지.”
잘못 들었나 싶었다.
피를 빼다니?
아픈 사람 피를 왜 빼?
검사가 가능한 시대도 아닌데?
“자, 여기 찔러.”
설마설마하고 있는데 제멜이 삐죽한 기구를 들고는 환자의 배를 가리켰다.
딱히 해부학적인 고려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 데나 가리켰다는 얘기였다.
“안 되는데.”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뭐가 안 돼?”
다행히 들은 건 조지프뿐이었다.
제멜과 조수들은 환자를 죽이기 위해 아니, 살리기 위해서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부산스럽게 움직이느라 중얼거림은 듣지 못했다.
“아니…… 피를 왜 빼.”
“상식이잖아.”
“응?”
“아픈 데가 있으면 피를 빼야지. 거기 피가 몰려서 그런 거니까.”
“아니…….”
그 상식이 뒤틀린 거라고.
이제 저 환자 죽는다고…….
푹-
내 생각과는 관계없이 제멜은 환자의 배를 푹 찔렀다.
그 와중에 저 바늘은 닦았을까 싶었다.
‘안 닦았겠지. 또 시벌 그놈의 연륜이니 뭐니 개소리하려고.’
그러니까 저 환자는 지금 배 안에 뭔가 염증이 있는 상태에서, 오염된 바늘에 배를 찔렸단 소리였다.
이걸 달리 말하면 살인 아닐까?
“아, 오늘은 운이 좋지 않았네.”
“술을 안 마셔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사이에 절단이 완전히 끝났는지, 복도 쪽도 소란스러워졌다.
맨 앞에는 칼을 든 로버트 리스턴 박사가 서 있었다.
옆에선 조수가 종알거리고 있었고.
“하여간 기증받은 김에 그 환자분도 조만간에 해부하지.”
“네. 가족분들께는 위로금을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하라고.”
아, 죽었구나.
아까 그 환자는 죽었구나.
사실 이게 당연한 일이긴 했다.
사람이 저만한 수술을 마취도 없이 견딜 수 있을 거라 기대를 한다는 것부터 잘못이었다.
“음? 저기 두 친구는 내 학생인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로버트 리스턴이 말을 이었다.
하필 우리 둘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아, 닥터 제멜.”
혼나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는 우리를 지나쳐 제멜에게 향했다.
나름 친한 모양이었다.
“닥터 리스턴.”
“사혈인가?”
“그렇소.”
“그렇군.”
두 대가는 환자가 죽어 가고 있는 와중에도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 나갔다.
“배가 아프다고?”
“그렇네. 한 일주일째 입원 중인데…… 낫질 않아서.”
“아…… 그럼 사혈을 해 봐야지.”
“그렇지.”
아니, 저런 건 일상적인 대화가 아니었다.
제대로 된 말이 하나도 없지 않나.
일단 이 상태로 일주일 동안 여기 있었다는 것부터가 안 될 말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지금이 링거가 불가능한 시대라고 하자.
그럼 약초라도 먹였어야지?
“아편은 썼나?”
“물론. 근데 약효 떨어지면 아파해서.”
“아하.”
아, 먹였구나.
아편을…… 먹이셨어.
어쩐지, 환자 동공이 좀 풀렸다 싶더라니.
이런 망할 놈들.
“사혈도 중요한 치료 과정인데…… 우리 학생들이 좀 봐도 되나?”
“물론이지! 근데 저 노란 친구도 자네 학생이 맞나?”
“어, 맞네. 리스터 집안이 보증한 친구야.”
“아아. 그 리스터. 그렇구만. 그 집 술맛이 좋지.”
두 망할 놈들은 우리에게 살해 현장을 정식으로 구경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선사하셨다.
고맙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나는 이게 너무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으…… 으으.”
환자는 계속 아파하고 있었다.
아니, 아까보다 더 아파 보였다.
가뜩이나 뒤질 것 같은데 피까지 빼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참아야겠지?’
나서고 싶었다.
물론 내가 나선다고 해서, 저 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보장은 없긴 했다.
나도 마취 없는 세상에서, 항생제 없는 세상에서 진료해 본 경험은 없었으니까.
‘근데 아무리 그래도 저건 아닌데…….’
허나 눈앞에서 끔찍한 살해 장면이 벌어지는데 언제까지고 침묵을 지킨 채 서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 서양 애들이 뭔가 토의 같은 걸 잘한다고 하지 않았나?
미국 연수 갔을 때 보니까 학생이 주머니에 손 넣고 질문도 하더만?
“저기…….”
그렇다고 해서, 나도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질문하진 않았다.
최대한.
진짜 최대한 공손하게 나섰다.
“응, 뭐지?”
다행히 리스턴 박사는 마음이 좀 열린 사람이라 그런지, 아니면 우리 아저씨에게 돈을 많이 받았고 또 받을 예정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하여간 질문을 받아 주었다.
“그. 저도 한번 환자를 봐도 될까요?”
“응? 자네 오늘 입학했는데?”
네가 뭘 아냐는 말도 저렇게 부드럽게 돌려 말해 주었다.
생긴 것에 비해 참 부드러운 사람인 모양이었다.
아니면 아저씨가 돈을 진짜 많이 줬거나.
“그…….”
시발 뭐라고 핑계를 대지?
“제가 있던 조선에서는 말입니다…….”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입이 트였다.
아니, 여기서 왜 조선 얘기가 나와?
“응?”
나도 의문이었으니 저 양반들은 오죽할까.
특히 제멜은 조선이라는 이름조차 처음 듣는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기도 나름 600년이 된 나라다 보니까 의학이라는 게 있긴 하거든요.”
“오호. 동양의 의학이라.”
“미개한 놈들 아닌가.”
중간에 좀 무례한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하여간 나는 말을 이었다.
“청나라와 교류를 해서…… 나름 수준이 아주 낮지는 또 않습니다.”
“오, 청.”
“거기는 꽤 그래도 어?”
그래, 옛날 고등학생 때 주워들었던 말이 맞는 모양이었다.
벌써 청나라는 병신 된 지 오래지만, 오랜 편견 때문에 유럽에서는 청이 대단한 곳이라 생각한다고 들었던 것 같아서 청을 팔았더니 좀 먹혔다.
“사실 그 정도가 아니라…… 인삼 아십니까?”
“모르지.”
“진셍?”
“그게 조선의 약인데. 청에선 없어서 못 씁니다. 의학은 조선이 청보다 나아요.”
아마 그렇지 않았을까?
우리는 허준 선생님도 계시고 말이야.
아무튼, 어?
내가 니들보다는 낫다고.
“아, 그렇습니다. 사실 평이가 해부도 잘합니다. 사람은 아니고…… 새우나 개구리였긴 하지만. 얘가 어디서 배웠나 저도 궁금했는데…… 조선에서 배운…… 아닌데? 여기서 태어났는데?”
조지프도 나를 거들고 나섰다.
막판에 좀 이상해지긴 했는데, 그건 상관없었다.
“저희 아버지가 조선에서 의원 보조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확인할 방법이 없는 구라는 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법.
“한번 보라고 하죠. 본다고 환자가 닳는 것도 아닌데.”
뒤이어 리스턴 박사의 허락이 떨어졌고.
“그래, 뭐. 지적할 사항이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
제멜은 입을 삐죽였지만, 하여간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다.
건방진 놈.
사혈이나 하는 주제에 입을 삐죽여?
속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일단 공손한 태도로 앞으로 나섰다.
그러곤 환자에게 말했다.
“환자분, 잠깐 누워 주실래요?”
“꺼져! 이 노랭이!”
와…….
선 넘네…….
살려 주려고 하는데 이렇게 나와?
“저기, 환자분 누워 주세요. 이 친구가 괜히 하는 말은 아닐 겁니다.”
“으, 으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조지프가 나서기 전부터, 환자는 너무 아파서 제대로 된 반항조차 못 하는 상황이었다.
해서 나는 내 멋대로 환자를 바닥에 눕히고, 무릎을 세웠다.
그러곤 옷을 까서 배를 관찰했다.
‘시벌…….’
그러고 보니까 이 새끼들 이거, 사혈 결정하기 전에 배도 안 까 봤네.
배를 푹 찔러 놓은 다음에도 딱 찌른 부위만 보고 있었고?
너무 엉망이다 보니까 진짜, 어디부터 엉망이었는지 지적하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아직 불그죽죽하진 않아.’
하여간 배를 보고 있자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육안으로 복막염을 확인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손도 못 써 볼 정도로 번진 건 아니었기에 그랬다.
“어디가 제일 아프죠?”
“배! 몇 번을 말해!”
“아니, 배에도…… 아래, 중간, 위가 있죠. 그중에서 어디가 제일 아파요?”
“어…… 아래?”
“아래라고 하면 우측, 좌측?”
“어…… 우측?”
하여간 나는 질문을 이어 나갔다.
환자를 보고 있느라 다른 이들의 얼굴을 확인하진 못했다.
달리 말하면, 그때는 조지프와 리스턴 박사의 눈동자에 기이한 열기가 깃들기 시작한 것을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