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70)
검은 머리 영국 의사-70화(70/505)
70화 결석 [1]
“으아아아!”
“사, 살려 줘!”
“나, 난 아냐! 나 환자 아냐!”
“일로 와! 너 환자 맞아!”
선배네 아버지가 마련해 준 호화스러운 마차를 타고 내린 곳은 병원 입구였다.
조지프나 앨프리드는 여전히 학생 신분으로 강의실을 들락거려야 하지만, 난 사실상 닥터 평으로 통하고 있기 때문에 그랬다.
사실 이 둘도 내 전속 조수 느낌인 데다가, 필요한 강의는 리스턴 박사님이나 블런델이 해 준다는 핑계로 여기서 부려 먹힘 당하고 있었다.
“오늘도 평화로운 병동이구만, 그래.”
나는 뭐 하는 건지 제대로 알아보기 싫은, 그러나 고통스러울 것은 확실한 치료를 받느라 이리저리 도망치는 환자들 사이를 통과해 리스턴 박사가 있을 곳으로 향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려고 했다.
딱히 뭐 약속이 있는 건 아닌데…….
하여간 그 진료실에서 거울 치료가 진행 중이거든.
환상통이라는 이름 명을 오늘이나 내일쯤 슬슬 말해 볼 생각이기도 했고.
“으, 으아아아아아!”
허나 환자 하나가 눈에 딱 들어왔다.
솔직히 고통에 찬 비명은 여기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외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허나 저 사람의 비명은 뭔가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제일 아파 보였다.
‘저건…… 저거 찐인데?’
사실 어지간히 아프지 않고서야 병원에 올 수 있겠나.
대한민국에서야 시골 가면 의사가 ‘환자분 어제 왜 안 오셨어요’ 하면 어제는 아파서라는 답이 돌아온다고 하지만.
여기는 의사 아니고서야 매일 오는 사람은 절대 없었다.
그중에서도 찐으로 느껴질 만큼이나 환자는 아파하고 있었다.
“잠깐만.”
“응?”
“야! 우리 아직 학생…….”
“조용히 해 멍청아. 우리 여기서 진료하고 있는데, 인마!”
“아, 네네. 근데 그래도 평이가 저기…… 저거 진짜 처음 보는 환자인데.”
해서 나는 둘에게 양해를…… 딱히 구하지는 않고 일단 환자에게로 향했다.
아닌 경우도 있지만 대개 이런 경우엔 수술이 필요한 질환이지 않겠나?
그렇다면 나 말고 다른 의사에게 걸리면 무조건 삽질을 할 거란 얘기였다.
소독의 문제인지 뭐의 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배는 수술을 안 하고 피만 뽑더라고.
미친놈들…….
왜 멀쩡한 피를 뽑냐고.
가뜩이나 아프다는데 피를 뽑으면 사람이 죽지, 살겠어?
“환자분.”
하여간 나는 환자에게 말을 걸었다.
“으, 으아아아!”
당연하겠지만 제대로 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도 기대하진 않았다.
아플 거 아냐.
대신 가까이서 관찰하는 것으로 족하기로 했다.
‘허리…… 약간 뒤. 아…… 거기에 이런 통증이면…….’
딱 보니까 답이 나왔다.
별로 어려운 질환도 아니었다.
전문의 아니라, 응급실 인턴 한 달만 돌면 명의처럼 진단을 할 수 있게 되는 질환이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더럽게 아픈 질환이기도 했다.
바로…….
요로결석.
“환자분 소변볼 때 더 아프죠!”
원래 같으면 소변보고 오라고 컵 하나 쥐여 주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게 소변 받아 오면 진통제 때리고, 동시에 소변 검사해서 혈뇨인지 확인하고.
다음?
다음은…….
나도 잘 모르겠다.
비뇨기과에 의뢰하고 잊어버리니까, 보통은.
‘쇄석술을 할 텐데…… 여기는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초음파 쇄석술.
그런 게 있다면 벌써 쓰지 않았겠나?
솔직히 시대가 시대다 보니 어느 미치광이 과학자의 지하 연구실 구석에 있을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하여간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 건 1900년대의 일일 터였다.
“어, 어어어! 아파요! 으아아아!”
하여간 내 질문에 환자는 굉장히 열정적으로 답해 주었다.
내가 보통 보던 결석 환자들보다 훨씬 그 정도가 더했는데,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아마 어지간했으면 병원에 안 오고 자가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이 시기라고 해도 소변보다 보면 나온다는 건 알 거 아냐?
“저, 저 결석입니까? 설마? 결석이에요?”
“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놀랍게도 환자가 진단명을 말했다.
이 시대에 맞게 말도 안 되는 진단명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진단명이었다.
“결석 같습니다.”
“아, 안 돼! 악! 안 돼!”
말이 그냥 그래서 그렇지, 솔직히 말하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그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하여간 환자는 뭔가 나보다 더 아는 사실이 있는지 안 된다고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을까?
일련의 무리가 우르르 달려 나왔다.
“결석?”
“결석 맞군그래.”
“자, 그럼 이쪽으로!”
몇 번 얼굴을 마주친 적 있는 무리였다.
다만 나는 로버트 리스턴 박사 쪽이어서 더 깊숙이 알거나 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결석은 저쪽에서 보는 듯한데…….
“어어, 안 돼! 살려…… 살려 줘!”
그들을 보자마자 환자가 경기를 해 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도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마취하면 안 아파!”
“그래, 마취가 나왔어!”
하필 내가 발견한 마취제가 그들의 핑계가 되어 주고 있었다.
망할…….
일말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해서 난 용기를 내 나섰다.
솔직히 말하면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리스턴 박사님 덕이었다.
병원이 제아무리 소란스러운 곳이라지만 오늘은 정도가 심해서 그랬을 터였다.
“잠시, 잠시만. 이 환자…… 제가 먼저 본 환자분입니다만?”
“응?”
“뭔 소리야? 결석이 확실한데! 결석은 우리.”
“그보다 이 새끼…… 누구야?”
셋은 날 보고 우선 언짢은 얼굴이 되었다.
동양인이지, 싫은 소리 하지.
나 같아도 그럴 터였다.
“누구라니. 댁이 말한 마취제 발견한 사람이 바로 닥터 평인데.”
리스턴 박사한테까지 갈 것도 없이 일단 조지프가 나서 주었다.
덩치가 큰 편인 데다가 업턴에서는 나름 원펀치로 날렸던 놈이다 보니 놈들도 주눅이 들었다.
거기에 마취제를 발견한 사람이라지 않나.
동양인 의사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 텐데 여기 그런 사람이 나밖에 더 있나.
“으, 으음.”
“그래도, 결석은 우리 교수님이…….”
“무슨 일인가, 자네들?”
그렇게 기가 살짝 죽은 놈들과 실랑이가 막 벌어지려는 찰나, 리스턴 박사가 끼어들었다.
별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뭔 일이냐고 물은 건데도 놈들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이해는 갔다.
“아니, 그.”
“무슨 일이냐고.”
“그……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렇게 도망치는 건 좀…… 이상한 일인데.
하여간, 환자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으. 으으으. 안 돼…….”
물론 환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아마 그의 눈에는 동양인 괴인과 리스턴 괴물이 자기를 확보하게 된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죽음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있을 거다, 이 말이었다.
“무슨 일이냐는데 왜 도망을 가. 뭔 일인가?”
리스턴 박사는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 놈들을 보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리스턴 박사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음…… 결석은 저쪽이 보는 게 맞기는 한데…… 아무튼, 이렇게 됐으니 잠깐 볼까.”
“어어.”
“왜. 어디 곤란한 일이라도 있어요?”
“아니, 아닙니다.”
리스턴 박사는 그렇게 말하며 환자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놀랍게도 환자는 공포에 통증마저 잊었는지 고개를 황급히 저었다.
원래 같았으면 대답은커녕 아프다고 비명이나 질렀을 텐데…….
덜커덕.
진료실에 들어와 문을 닫으니, 환자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그렇긴 할 터였다.
생각해 보니까 진통제도 없는 시대지 않나.
병원에서 결석 치료를 대체 어떻게 했을까.
‘차라리 소변으로 나온다는 걸 몰랐으면…….’
안타깝게도 소변으로 나온다는 걸 아는 거 같았다.
‘와…… 대체 무슨…… 무슨 수술을 했으려나……?’
시벌…….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너무 끔찍해…….
뭐 어떻게 생각을 해 봐도 죽음의 공포만 떠올랐다.
그런 내 표정을 읽어 낸 건지 뭔지 리스턴 박사가 입을 열었다.
“주로 절단술을 하는 입장에서 할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결석술은 내가 볼 때 수술이 아니라 살해의 기술이야. 너무 끔찍해서 나는 해 볼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네.”
“아…….”
리스턴이 끔찍하다고 할 정도면…….
말 다 한 셈 아닌가?
“그나마 마취제가 나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똑같은 수술을 해 대고 있더군. 나도 비슷하니 이것 또한 할 소리는 아니긴 하네만.”
“으음.”
“아, 자네는 어떻게 수술하는지 모르겠군? 여기 어디 뒀는데. 아, 그래. 여깄네. 한번 보게.”
리스턴은 내게 책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리 두껍지는 않았다.
“아.”
그러면서도 그림 위주로 구성된 책이었는데, 덕분에 금세 볼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금방 수술이라는 게 말도 안 되는 수술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미친놈들 아냐……?’
사실 결석이 끔찍하게 아픈 병이긴 하지만…….
의사들 사이에서도 3대 통증으로 일컬어지는 질환이긴 하지만…….
뭐가 되었건 결석 자체는 작지 않나.
아무리 커도 손톱 만한 게 다일 거 같은데 여기를 이렇게 다 짼다고?
이러니까 사망률이 50%가 넘어가지…….
‘아니, 근데 사망률이 50%가 넘는 수술을 한다고……?’
내 의문이 고개를 쳐들 때쯤, 환자의 통증이 공포심을 서서히 이겨 내고 있었다.
잠시나마 고요했던 그는 이제 숫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으, 으아아아!”
그걸 보니까 이 사망률도 이해가 갔다.
‘하긴…… 치료 안 하면 죽을 때까지 저렇게 아프지.’
그러느니 뭐라도 해 보고 죽자 싶지 않았을까?
새삼스럽게 19세기였다.
이 시기 환자들에게 이유 없이 미안해지는 가운데, 아무리 그래도 이런 수술을 하라고 등 떠밀 수는 없을 거 같았다.
“환자분.”
“네, 네!”
“제가 방법을 떠올려 볼 테니…… 하루만 좀 기다려 볼 수 있습니까?”
“하, 하루?”
와, 시바.
돌아보는데 눈에 핏발이 다 서 있네.
살인마도 그렇게까지 무섭게 눈을 부라리지는 않겠다.
‘하긴…… 이해는 가.’
엄청 아픈데 하루씩이나 참으라고 한 거 아닌가.
내가 생각해도 살짝 선 넘은 거 같긴 했다.
응급실 생각해 보면 고작 몇 분 기다린 걸로 의료진 패고 그러잖아.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도 맞아 본 적이 있었다.
술 취한 사람이었고, 당시엔 의료법이 의료진을 보호하지도 않아서 유야무야 넘어가긴 했는데…….
‘여긴 더 없겠지.’
이러다간 칼에 찔려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거 같았다.
가뜩이나 어떤 의과대학에서는 승마술을 같이 가르친다고 하지 않았나.
잘못되면 일단 말 타고 튀라고.
“그럼 오늘 저녁이요. 제가 이것보다는 나은 수술을 찾아보겠습니다.”
“으…… 으음!”
환자는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졸도했다.
나는 멋대로 승낙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 준비를 해 볼까요?”
“무슨 말인가. 아까 그 책을 보고도 하겠단 생각이 드나. 난 사람으로서 그런 수술을 같은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네.”
“그러니까요. 바꿔 봐야죠.”
“수술 방식이라는 게 그렇게 뚝딱 나오면…….”
리스턴 박사님은 날 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는 그게 맞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21세기에서 온 사람.
가장 진보된 형태의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있었다.
그걸 이 시대에 맞게만 이식하면 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