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73)
검은 머리 영국 의사-73화(73/505)
73화 결석 [4]
꺼내고 보니 더더욱 황당한 크기의 결석이었다.
이런 미친.
이런 게 방광 안에 있었다고?
나는 존경을 담아 기절해 있는 환자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참았지, 이걸.’
이 시대 사람들이 고통을 잘 참기는 했다.
아프면 참는 게 병원 가는 것보다 어찌 보면 생존율이 더 높으니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하지만…….
“이건…….”
나는 기가 차서 결석을 집어 들어 보았다.
단단했다.
얼마나 오랜 세월 이게 쌓인 걸까.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져 나올 거 같았다.
물론 칼 들고, 환자를 보면서 웃으면 진짜 사이코패스가 따로 없을 거 같아서 참았다.
“어마어마하네.”
“이런 게…… 이런 게 결석이구나.”
나처럼 나머지 사람들도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살짝 결석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여기서 원래 결석은 손톱만 한 거라고 하는 것도 웃긴 상황이지 않겠나.
그런 말을 해 봐야 들릴 거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럴 때도 아니었다.
언제까지고 놀라고만 있기엔 내가 열어 놓은 방광과 복막이 마음에 걸렸다.
‘이제부터는 사람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라고 봐도 좋아……’
원래 같으면 안쪽 방광은 녹는 실로 꿰매 주고, 겉에 살도 근육은 녹는 실로 꿰맨 후 겉에는 나일론 실로 꿰매는 것이 원칙이었다.
딱히 원칙이라는 말을 꺼내 쓰는 것도 민망한 일이었다.
당연한 일이니까.
안에는 풀어 줄 수가 없잖아?
그러니 녹는 실로…… 그러니까 바이크릴(Vicryl)로 꿰매야 하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되었다.
‘나일론이…… 틈이 없어서 감염률을 엄청 줄여 주는 거라고 했지?’
외과 하면 보통 손재주부터 떠올리겠지만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언제나 감염 관리였다.
물론 현대 의학에서 수술방 내 감염은 거의 100% 조절되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많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그게 어디 저절로 되는 일이겠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짜 유난 떨고 자빠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철저히 관리 되는 것이 바로 수술방 멸균 체제였다.
‘명주실로 꿰매면…… 그 자체가 위험이야.’
그런 곳에 있다가 온 몸이다 보니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문제는 오직 나만이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놈들은 이 부족한 처치를 과하다 여기고 있었다.
“근데 이걸 뭐 하러 삶은 거야?”
“그러니까. 실 다 풀어져 가지고…… 이러면 단가가.”
특히 앨프리드는 상가의 자제답게 돈에 좀 밝은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고 있었다.
여기는 수가 책정도 뭣도 없고 그냥 의사 배알 꼴리는 대로 돈 받는 곳인데도 그랬다.
돈이 많이 들면 많이 받으면 되지.
‘하긴…… 이 양반이 돈이 많아 보이진 않지.’
물론 저렴하게 좋은 치료를 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긴 했다.
하지만 돈 아끼려다 사람 죽으면 말짱 꽝이었다.
“조용히 하고. 이거나 봐. 어떻게 꿰매는지 보라고.”
“어…… 알았어.”
“근데 꼭 바늘을 그렇게 둥글게 해야 했나. 이것도 따로 만드느라 돈이…… 응, 닥치고 있을게.”
내 지엄한 뜻을 몰라보는 앨프리드를 죽일 듯 노려본 후, 내게 딱 맞춰 제작한 바늘에 실을 꿰었다.
‘이거 나이 들기 전에 제자를 키워야겠구만.’
원래는 바늘에 실이 붙어 나오는 법이었다.
바늘을…… 아무래도 재사용한다는 게 좀 그렇지 않나?
하지만 여기서는 이 둥근 바늘 하나 만드는 데 드는 품이 장난이 아니었다.
해서 꿰맬 때마다 일일이 실을 꿰어야만 했다.
아직은 젊어서 잘 보이니 다행인데, 나이가 들면 큰일일 듯했다.
푹.
하여간 나는 그렇게 꿰어 낸 바늘로 방광을 푹 하고 떴다.
원래 같으면 레이어에 맞춰서 해야 할 터였다.
쉽게 말해 근육은 근육끼리, 연결조직은 연결조직끼리, 피부는 피부끼리 다 따로 봉합을 해 줘야 한다는 뜻이었다.
허나 명주실로 그랬다가는 감염 위험이 치솟을 것이 뻔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판단했기에 한 방에 모든 레이어를 꿰매고 있었다.
“흠…… 삐죽한 바늘보다 오히려…… 이게 더 잘 떠지는 것도 같구만그래.”
옆에서 보고 있던 리스턴이 내 봉합을 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그래야 할 터였다.
비록 레이어를 무시하고 봉합하는 건 잘못된 처사긴 하지만, 그럼에도 스킬이 어디 가겠나.
또 하필 내가 모셨던 교수님이 한 땀 한 땀 봉합하는 걸 중시하셨던 분이다 보니 같은 경력의 외과 의사보다도 더 잘했다.
‘바늘 바꾼다고 바로 나만큼 할 수 있는 건 아니랍니다, 박사님.’
나는 속으로만 할 수 있는 말을 떠올리면서 순식간에 방광 봉합을 끝내고 곧장 배 닫는 작업에 돌입했다.
살짝 내적 갈등이 있었다.
배는…….
장력이 꽤 많이 작용하는 곳이라 그랬다.
다시 말해 대강 꿰매고 나면 벌어질 수 있다, 이 말이었다.
‘실제로 기록을 보니까 배가 터져서 죽었다는 말이 있더라고…….’
괜히 배는 건드리는 게 아니라는 속설이 있겠나.
감염 때문만은 아니었다.
갈라 놨던 배가 터지면 진짜 끔찍했을 터였다.
실제로 현대 의학에서도 바로 닫지 못하고, 그러니까 열고 나오는 경우가 있지 않나?
장을 포함한 다른 장기들이 부어 버린 상황에서 배를 열고 나면 도저히 닫을 수가 없어서 그랬다.
부기가 빠질 때까지 열어 둔 채로 두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물론 쌩으로 열어 두는 건 아니고, 멸균 비닐로 덮어 두긴 했지만, 아무튼.
푹.
그런 고민 끝에서도 나는 결국, 한 번에 뜨는 길을 택했다.
‘좀 여러 개 뜨지 뭐…… 그리고 명주실이 이게 엄청 두껍잖아.’
실이 이게 보통 두꺼운 게 아니었다.
게다가 여러 개가 꼬여 있다 보니 장력에 견디는 힘도 보통이 아니었다.
물론 그 때문에 틈새에 균이 끼어 들어갈 여지가 많고, 감염 위험이 팍 올라가는 거긴 한데…….
장점이 있으면 그건 이용해야 하지 않겠나.
세상에 나일론이라는 소재가 대체 언제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때까지는 이렇게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와…….”
“이야…… 감쪽같네.”
나는 열린 그대로 상처를 당겨 꿰맸다.
애들이 괜히 놀라는 게 아니었다.
애초에 절개부터 지금 시대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우수하지 않았나.
봉합의 절반은 절개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절개가 중요한데, 이 시기 사람들은 그냥 째고 보는 편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가운데는 근육도 없어서 더 깔끔한 법이지.’
의학 드라마 보면 그냥 ‘메스!’ 하고 째는 거 같겠지만, 그게 다 해부학적인 고려가 있었던 결과다 이 말이다.
그런 고려가 있을 턱이 없는 시대 사람들이 보기엔 살짝 마법 같을 수도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되지?”
“으음…… 큰소리칠 만한 솜씨가 있긴 했구만그래.”
리스턴은 그렇다 치더라도 케인마저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 않나.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태어나서 이런 수술은 처음 봤을 테니.
애초에 해부학이 머릿속에 통째로 틀어박힌 채 칼 드는 경우도 드물었을 테고.
“좋아, 끝났습니다. 후우.”
물론 나는 잘난 척을 하기 전에 일단 눈부터 감았다.
“뭐 하는 건가?”
“기도했습니다. 이 환자를 살려 달라고.”
“허어. 참 신실하기도 하지.”
리스턴은 그런 나를 보며 껄껄 웃더니, 따라 기도를 올렸다.
아주 연기는 아니었다.
수술 자체는 잘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환자가 100% 살아날 수 있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
이제부터는 하늘에 달렸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란 얘기였다.
“닥터 케인, 어떤가?”
“으음. 배를 열고 빼다니…… 이건……”
“이단이라는 말은 하지 말게나. 적어도 그대가 하던 수술보다는 훨씬 인도적이지 않았나?”
케인은 기분이 매우 나빠 보였다.
팔다리 맨날 자르던 놈이 인도적이니 어쩌니 하고 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뭐라고 하기도 애매하긴 했다.
확실히 환자 자세부터 해서 잘려 나간 것까지, 모든 것이 그가 행하던 수술에 비하면 인도적이어서 그랬다.
‘성기를 자르지 않아도…… 되었단 말인가?’
충격받은 얼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딴 생각이나 하고 있을 게 뻔했다.
미친놈이.
애초에 성기를 왜 잘라…….
거기도 감염에 취약한 곳으로 치면 만만치 않은 곳인데…….
게다가 수술받은 사람이 잘린 성기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겠어.
아무리 심리적 충격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시대라 해도 너무 심하잖아.
“이건 내가 좀 더 결과를 지켜봐야겠네.”
“그러도록 하게나. 뭐가 되었건 자네보다는 나을 거 같으니 잘 보라고.”
“끄응…….”
케인은 몹시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뭐라 할 말은 없어서 조수들을 데리고 방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불청객들이 빠져나가자, 원래 리스턴의 무리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콜린도 낑겨 있었다.
“대, 대단하네.”
녀석은 좀 머뭇거리긴 했지만 칭찬했다.
‘뭐…… 받아 줘야지?’
나는 그런 콜린을 보며 웃어 보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이미 콜린을 후드려 까기도 했고,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하여간 시신 보고 놀라 자빠지기도 했고 또 생니도 뽑고…….
‘용서 안 해 주면 내가 개쌍놈이 되는 거 아닐까?’
뭐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험악한 의과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지 않나.
게다가 전에 뭐 잘못을 좀 하긴 했더라도 이렇게 실력을 보고 개과천선하는 걸 보면 싹수가 아주 노란 놈은 아니었다.
-콜린은 진짜 귀족이야. 우리랑은 또 달라.
게다가 앨프리드가 인정한 금수저였다.
런던에서 신분은 여전히 중요하지 않나?
물론 후계 구도에서는 완전히 밀려났으니 의사를 꿈꾸고 있긴 하겠지만.
나중에 내 원대한 꿈…… 그러니까 병원장이 될 때 어지간히 도움이 되긴 할 터였다.
“뭘. 너도 충분히 할 수 있어. 손 좋잖아.”
“그, 그래? 그럼 다행이고.”
새끼.
좋아 죽네.
“자, 그럼 병실로 가지.”
“네. 그…… 근데 제가 마련한 병실에 둘 수 있을까요?”
“응? 그게 의미가 있나?”
그렇게 관용을 보여 주고 있을 때, 리스턴이 말을 걸어왔다.
합당한 요청이기는 한데…….
‘병실……’
이 병원 병실은 병실이라는 이름을 딴 지옥이었다.
진짜…….
아니, 뭔 병실 침대에서 구더기가 자라냐고.
심지어 그걸 보면서도 의사들은 딱히 별생각이 없는지 지나갈 따름이었다.
어차피 침구류는 환자가 구비해야 하는 건데, 그걸 안 가져왔으면 남은 거라도 쓰면 된다 뭐 이런 식이었다.
‘감염이 안 그래도 걱정이 되는데 그건 안 되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배를 연 건 저로서도 도전이니까요. 할 수 있는 건 모든 해 보고 싶습니다.”
“흐음…… 뭐 이해는 가네만, 자네 칼 쥘 때랑 아닐 때랑 너무 차이가 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심약한 사람이 어찌 칼 쥘 때는 또 그렇게 잘하는지.”
“그…….”
위생에 신경 쓰는 게 심약하다는 거랑 어찌 이어지는 건지…….
“아무튼, 그렇게 하게.”
다행한 건 리스턴이 내게 호의적이라는 점이었다.
덕분에 나는 나름 깨끗한 침대에 환자를 누일 수 있었다.
“이거 다 내 돈으로 하는 건 알고 있지?”
앨프리드의 도움을 받아서 그랬다.
“아, 그럼. 콘돔 나오면 갚을게.”
“아, 말 나온 김에 사이즈나 재지.”
시벌.
말을 잘못 꺼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