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74)
검은 머리 영국 의사-74화(74/505)
74화 매독 [1]
“이거야 원.”
“괜찮아. 인마.”
“어깨 펴, 동생.”
잠시 후 나는 그리 달갑지 않은 위로를 받아야만 했다.
미친놈들이 왜케 다…….
특히 리스턴 형님은…….
진짜 큰 형님이었다.
“이게 생각보다 사이즈가 천차만별이구만그래.”
아까 뭘 봐서 그런가 자꾸 이런 사소한 말 하나하나가 폐부를 찌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요. 아주 작은 사람부터 아주 큰 사람까지…….”
“뭘 타겟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아니, 약간 날 먹이는 건가?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긴 했다.
리스턴 박사야 별 불만이 없었겠지만 나머지 둘은 내가 좀 부려 먹고 있긴 하잖아.
특히 앨프리드는 선배임에도 그래서 그런가, 방금 ‘아주 작은’을 발음할 때 날 힐끔 바라본 느낌이 일었다.
“평. 자네는 왜 갑자기 말이 없나.”
리스턴은 그런 나를 관짝에서 꺼냈다.
이 사람들 이거 아주 악랄해?
응?
그리고 저질이야.
콘돔 하면 어떻게 사이즈만 생각하냐고.
물론 그게 장사하는 입장에서 중요하긴 한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잖아.
“피임하고 성병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 정말인가?”
“무슨…… 뜻인지.”
“아니, 아냐. 하하하.”
리스턴은 기분 나쁜 미소를 함부로 짓다가, 이내 진중한 얼굴이 되었다.
“확실히 피임도 그렇지만 성병은 문제지.”
“매독 말씀이시죠?”
그런 리스턴의 말에 앨프리드가 끼어들었다.
매독.
아닌 게 아니라, 진짜 무서운 병이었다.
얘네들이 왜 이렇게 안 씻는지가 참 궁금했거든?
특히 집에 욕조가 없는 사람들은 진짜 기를 쓰고 안 씻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매독이었다.
매독은 성병이지만 전염력이 너무 강하다 보니 드물게 대중목욕탕에서도 감염이 되기는 하거든.
그래서 목욕하면 죽는다는 속설이 16세기쯤에 생겼고, 그게 무려 19세기까지 이어지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래, 매독. 치료는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해.”
“네, 그렇죠. 신의 징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요.”
신실한 조지프도 말을 보탰다.
살짝 불만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실 성병이라는 게 여러 파트너가 있으면 더 걸릴 가능성이 높지 않나.
상대적으로 무척 엄격한 교리를 따르는 퀘이커 교도인 그로서는 성병이라는 게 진짜로 신의 징벌처럼 여겨질는지도 몰랐다.
퀘이커 교도는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의사인 조지프는 그래선 안 됐다.
“그런 말은 하지 말게. 설령 원인이 환자에게 있다고 한들, 아픈 이상 환자는 환자야. 의사는 누굴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나?”
“아…… 죄송합니다.”
놀랍게도 리스턴은 저런 면에서 진짜 의사였다.
지식만 쌓으면 현대 기준에서도 명의가 되지 않을까.
“아무튼…… 그런 고로 예방이 중요하네. 예방이.”
“네, 근데 그러자면 이게 예방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봐야 하지 않을까요?”
리스턴은 사과하는 조지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걷다 대고 앨프리드가 살짝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말을 했다.
예방이…… 당연히 되는 거 아닌가?
성병이잖아.
밀접 접촉 중 점막 접촉을 막아 주는 게 콘돔이잖아.
임신도 막아 주는데 성병을 못 막겠냐……?
“아, 그런가. 그렇겠군. 확실히…… 아주 좋은 지적이었네.”
뭐라고?
너가 거기서 동조를 하고 있으면 어쩌냐, 이 미친 인간아.
황당하단 얼굴로 리스턴을 보고 있으려니, 리스턴도 나를 돌아보았다.
‘제발…… 매독 걸린 사람이랑 안 걸린 사람이랑…… 시켜 놓고 걸리는지 안 걸리는지 보자는 말만 하지 말아라…….’
그렇지 않아도 좀 무섭게 생긴 얼굴이라서 똑바로 보기 어려운데 진짜 악마의 말이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그건 확인하기 쉽지. 이거 어차피 제조 원가가 얼마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아…… 네. 그렇죠.”
내 예상과는 달리 리스턴은 꽤 합리적인 말을 내뱉었다.
직접 집안의 돈이 얽혀 있는 앨프리드에게는 달갑지만은 않은 말이었겠지만, 하여간 의학적으로 보나 인간적으로 보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근데 나름 비싸게 팔 거고.”
“네…… 그렇습니다.”
“마침 곧 여름이지. 교외에 사교 모임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열릴 거야.”
“아…….”
런던은 빈말로도 행복한 도시라는 말이 나오기는 어려운 도시였다.
빈민촌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냥 하늘만 봐도…….
시커멓잖아.
구리구리하고.
대기질이 엉망진창이라는 얘기였다.
이 사람들이야 악취만 나지 않으면 만사 오케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문제는 냄새도 났다.
저기 템스강에 가면 진짜 미친 거 같은 냄새가 난다고.
“사교 모임 동안에는 별일이 다 생기는 법이지.”
“교수님도 가시나요?”
“나? 나는 집안끼리 뭘 할 만한 집안 출신이 아닐세. 그렇다고 해서 귀부인 하나 잘 꼬셔서 인생 피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렇다 보니 돈 있고, 지위가 있는 이들은 런던 대신 근교에 있는 별장에서 모였다.
나야 당연히 가 본 적은 없고 다 들은 것뿐인데…….
화려하기 그지없는 모임도 있다고 했다.
무슨 코끼리도 있다더라고?
아직 인도가 식민지화되지는 않았다지만, 그래도 꽤 힘을 행사하는지 거기서 공수를 한다던데.
하여간 그 사교 모임이라는 것이 동성끼리의 사교라기보다는 짝 찾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진짜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고도 들었다.
“하지만 아는 친구 중에 그런 목적을 품고 있는 사람은 있지.”
“누구요?”
“블런델.”
“네? 블런델 교수님, 미혼이에요?”
“무슨 실례되는 말인가. 당연히 총각이지.”
“와…….”
“나름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매년 간다네. 이번에도 가겠지. 갈 때 콘돔을 좀 주고 이리저리 뿌리라고 해 볼 생각이야. 예방이 되는지 안 되는지 봐야지. 사실 피임만 돼도 되지. 거기서 제일 우려하는 게 그거니까.”
리스턴의 말에 나도 무릎을 딱 때렸다.
이게 그 마케팅 아닌가.
판촉 행사가 따로 있나.
살 거 같은 사람들한테 미리 체험하게끔 하면 되지.
문제가 있다면 이게 일회용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는 건데…….
‘설마…… 상식이 있겠지.’
나는 굳이 입을 놀리고 싶지 않아 침묵을 지켰다.
사실 의도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고, 누가 와서 그랬다.
블런델이었다.
우리 콘돔 전도사…….
“마침 잘 왔네. 사이즈 좀 재지?”
“응?”
그는 일단 한차례 수모를 겪었다.
“대체 이게 무슨 몰상식한 짓이란 말인가!”
“매년 가는데 잘 안 되는 이유를 알겠군그래. 더 작은 사이즈도 있을 줄이야.”
“무슨…… 무슨…….”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시근덕대던 그의 어깨를 나는 가만히 두드렸다.
‘더…… 라고 했지.’
불쌍한 사람.
머리도 한두 가닥씩 빠져 가는 거 같은데 여러모로 어렵게 생기지 않았나.
“뭐, 뭐 하는 겐가.”
“그보다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당황한 그에게 온 연유도 물었다.
괜히 저 얘기 더 질질 끌게 되면 상처만 받을 게 뻔하거든.
내가 당해 봐서 알아.
“아, 그 매독 때문에.”
“걸린 건가?”
“아니! 내 얘기가 아니지!”
“아, 하긴 그렇겠지.”
“이것도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내 노력은 별 소용이 없었다.
지가 알아서 아주 함정을 파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어휴…….
“그게 아니라!”
아무튼, 그는 의사답게 자연스레 환자 얘기를 꺼냈다.
리스턴이 아니라 나를 향해서였다.
“매독 환자가…… 요새 너무 느는데. 아무래도 한 놈이 좀 문제가 되는 거 같네.”
“네? 뭔 소리예요?”
나도 이쪽으로는 좀…….
차라리 리스턴이나 앨프리드가 나을 거 같았다.
조지프는 종교 때문에 나는…… 아니, 나도 종교 때문에 이런 건…….
“요새 내 환자 중에 매독 환자가 마구 늘고 있어. 전부 초기 환자들인데…… 자세히 캐물어 보니까, 한 놈이 원인 같아서.”
“그거 흥미로운데.”
말을 듣고 있던 리스턴이 끼어들었다.
고개를 돌아보니 진짜 흥미롭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흥미라니! 매독은 약도 없는 병인데. 빨리 잡아서 어떻게 해야지, 이거. 멀쩡한 여자들이 지금…… 응?”
“잡는 거면 평이 아니라 경찰한테 가야지.”
“경찰은 안 되네. 환자들 중엔 유부녀도 많아.”
“이런.”
일이 좀 복잡해 보였다.
중간중간 얘기가 비기는 했는데, 정리하자면 한 바람둥이 놈이 여러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데 그놈이 매독 환자라는 거 아닌가.
헌데 경찰에 신고하기에는 피해자들이 오히려 더 곤란해질 수도 있고…….
“남편들은 어떻지?”
“어떻긴. 난리가 났지. 옮은 사람도 있고…… 다행히…… 아니, 다행은 아닌데. 하여간 이미 걸렸던 사람은 모르고 넘어가지만 말이야.”
“근데 대체 몇 명이길래 그래?”
“캐물어서 확인한 사람만 열이 넘어.”
“아유…… 이건 보통 일이 아닌데?”
증상이 생긴 사람이 다 병원에 왔을까?
그럴 리가 없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이 시대는 병원 오면 뒤진다는 인식이 있었으니까.
심지어 매독에 발생하는, 그러니까 1기에 발생하는 궤양은 대개 통증이 없다.
‘몇 배는 있을 수도 있는데…… 이런 미친놈이…… 일부러 퍼뜨리고 다니는 건가?’
의학 지식이 여러모로 부족한 시대이긴 해도, 매독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외였다.
왜냐?
매독이 유럽에 전파된 것이 15세기 말이라고 추정이 되는데 16세기부터 이미 전 유럽에 번져 버렸거든.
게다가 이게 성병이다 보니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걸려서 연구가 꽤 되었다.
그래 봐야 뭐…… 치료법은 어불성설이긴 했지만.
하여간 경과에 대한 지식은 있었다.
‘1기…… 또는 2기 환자일 텐데. 2기는 손발에 구진이 생기지……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1기일 가능성은 적어. 성기에 궤양이 있다면 당연히…… 뭐라고 했을 테니까.’
있을 거라 믿었지만,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헌데 매독 환자를 말만 듣고 어떻게 찾지? 특징이 뭔데?”
“낡은 감색 정장에 구두를 신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났다더군. 아일랜드 말투를 쓴다던데…… 술 냄새가 난다는 걸로 미루어 볼 때 뱃사람 같아.”
“요새는 그런 남자가 인기가 있나?”
“아, 아주 잘생겼대.“’
“그렇군.”
둘은 열심히 토론을 하긴 하는데 진짜 중요한 특징을 말하지 않고 있었다.
구진에 관한 얘기가 빠져 있다는 얘기였다.
아무리 봐도 모르는 거 같았다.
“근데 런던에 아일랜드계 뱃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걸 어찌 찾지. 환자들에게 부탁하면 안 되나?”
“돌았어? 해 주겠어? 물론 어디서 만났는지는 알아냈지만…… 장소만큼은 중구난방이야.”
“이거 문제로구만.”
이대로 두고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 시기 매독은 진짜 약이 없다고…….
예방이 최선인데, 작정하고 퍼뜨리는 미친놈이 있지 않나.
사이코패스인 거 같은데…….
안타깝게도 이 시기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딱히 사람 심리에 관심이 없었다.
“저기.”
“응?”
해서 나는 지식을 좀 풀기로 했다.
핑계?
생각해 뒀다.
“조선의 이웃 나라 일본의 별명이…… 아무튼 매독이 아주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