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75)
검은 머리 영국 의사-75화(75/505)
75화 매독 [2]
“일본?”
“재팬, 재팬.”
“아…… 거기가…… 그래?”
“왜 얼굴이 벌게져?”
나는 앨프리드를 나무라고는 말을 이었다.
아주 거짓말은 아니라 믿으면서였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 하여간에 조선보다는 일본이 매독이 많았던 거 같았다.
아마 개항 시기가 훨씬 빠르고 교류도 많이 해서 질병이 퍼질 기회가 많았을 거 같기는 한데…….
‘억울하면 런던 오시든가…….’
물론 진짜로 오면 진짜 많이 화를 낼 거 같기도 하고 양심의 가책도 있어서, 원래 하고자 했던 말을 재빨리 내뱉었다.
“아무튼. 매독의 경과를 기록한 게 있습니다.”
“오호…… 거기가 그만한 수준의 의학을 갖추고 있나?”
“그냥 뭐…… 많으니까요?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하여간, 어떤데 그러나?”
다행히 다들 의사라 딱히 별명이 무엇인지보단 매독에 관심을 두었다.
솔직히 더럽게 놀라고 작정만 하고 나면 런던에서도 충분히 놀 수 있는 시대라 그럴 터였다.
그만큼 성병이 창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에, 매독을 어떻게든 예방하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모두의 이목을 끈 채로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우선 다들 아시다시피 매독에 걸리면 성기 부위에 궤양이 생기죠. 이 궤양은 통증이 없는 게 특징입니다. 다른 종류의 성병과 가장 큰 차이가 바로 이 무통 궤양이죠.”
“그러고 보니…… 그렇구만.”
“그래, 그렇지. 아프지 않지. 그래서 진단이 늦지.”
블런델의 말에 나는 이 매독이야말로 전형적인 악순환의 고리를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 매독 때문에 목욕을 하면 죽는다는 속설이 생겼다고 하지 않았나?
잘 안 씻는다 이 말인데…….
그 때문에 사람이 자기 성기를 눈여겨볼 기회도 거의 없었다.
씻을 때 아니고서야……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면 막 성의 있게 살피진 않지 않겠나.
아프다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다 보니 확실히 진단이 늦어지거나 아예 놓쳐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알고 있네.”
“그래, 알고 있어. 문제는 길 가는 사람이나 주점에 있는 사람을 뒤집어 까 볼 수는…… 아, 자네 그럴 생각이었군?”
블런델은 고개를 가로젓다가, 진중한 리스턴의 얼굴을 보고는 뜨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생각해 보면 리스턴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어서 그랬다.
“칼은 왜 챙겼어!”
“수술할 일이 있을 수도 있어서 그랬네.”
“이걸 누가 수술칼이라고 생각해! 너 그러다 경찰한테 잡혀가!”
“몇 번 다녀왔는데 별일 없더군.”
“이런 미친놈이.”
그 정도가 아니라, 벌써 전력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을 후려 까진 않았지만.
하여간 위험인물로 찍혀서 감방 비슷한 곳에 다녀온 적이 있단 얘기였다.
“괜찮아. 얼마 전에 경찰서장 엄마 다리 잘랐어.”
“보통은 그럼 원한을 갖거든?”
“아니, 아냐. 감사해했어. 죽다 살았으니까.”
“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백이 생기긴 한 모양인데…….
“저기, 그게 다가 아닙니다.”
블런델도 그렇겠지만, 나도 경찰서 왔다 갔다 하는 건 사양이었다.
나는 심지어 조선 사람이라고…….
운 좋게 여긴 인종차별주의자가 콜린밖에 없고, 그마저도 개과천선한 지 오래지만 경찰은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높잖아?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기마 경찰이 범인 하나 잡아가는 거 봤는데 그냥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말에 질질 끌고 갔다.
경찰서에 도착하고서도 살아남았을까?
알 수 없었다.
해서 말을 빨리 이어 나갔다.
“아, 더 있긴 하겠지? 뭐지?”
“사실 궤양은 저절로 좋아지는 경우가 태반 아닙니까?”
일반 성인은 거의 뭐 100% 좋아진다고 봐도 무방했다.
치료를 해서가 아니라, 치료를 안 해도 애초에 경과가 그랬다.
물론 증상이 좋아진다는 말이지 병이 고쳐진다는 말은 아니었다.
매독 1기는 그렇게 균이 몸에 숨어드는 과정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환자에서…… 이걸 우리는 2기라고 불렀습니다.”
“2기?”
“네. 다른 양상의 증상이 시간 차를 두고 나타나니까요.”
“허어…… 그래, 합리적인 말이로군그래. 우리도 참조하는 게 좋겠어. 그래서?”
1기, 2기란 말을 입학하자마자 했으면 진짜 수상쩍게 봤을 터였다.
아니, 이 사람들 아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떠들어 댄다면, 이상하게 볼 게 뻔했다.
하지만 리스턴도 그렇고, 블런델도 그렇고, 조지프나 앨프리드는 말할 것도 없이 이미 내 의학적인 능력에 매료된 지 오래 아닌가.
적어도 이들 머릿속에서만큼은 19세기 조선은 의료 선진국이었다.
21세기로 가면 대한민국이 의료 선진국이라는 말이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긴 하다는 말로, 그러니까 되도 않은 말로 합리화를 시전하며 말을 이었다.
“네, 2기는…… 손발의 구진을 특징으로 합니다.”
“구진이라…… 그러고 보니…… 그런 환자도 본 거 같군그래. 우리는 매독을 전문으로 보지는 않지만 말이야.”
리스턴은 굳이 ‘우리는’이라고 하긴 했지만, 이 시기에 매독을 전문으로 보는 의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치료 자체가 안 되는 병인데 전문으로 본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
사실상 사기꾼이나 보는 병이란 얘기였다.
21세기라면 설령 치료가 아직 안 된다고 해도 진단과 경과를 알기 위해 연구를 진행하겠지만 이곳은 그렇게 의사들이 생을 허비하기엔 아직 정복하지 못한 질환이 너무 많았다.
“3기부터는 사실상…… 너무 아파서 뭔가 하기가 어려울 겁니다. 지금 블런델 교수님 말을 들어 보면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는 모양인데, 2기에 그쳐 있을 가능성이 커 보여요.”
“그렇군. 3기가…… 입원해 있는 그 사람들 수준이라면 뭐…… 당연하지. 그런 사람이 누굴 유혹할 수 있을 거 같진 않군.”
3기부터는 한센병과 헷갈릴 정도로 경과가 심각해지는 수준이라고 보면 되었다.
게다가 신경을 침범한 경우에는 치매 증상을 동반한 정신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20세기 이전 유명인 중에 말년에 정신 증상을 보였던 사람들은 전원 매독인가? 하는 의심을 받기도 했었고.
이건 다분히 내 개인적인 의견인데 워낙에 창궐했던 질환이니만큼 아마 맞을 거 같긴 했다.
하여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저기 매독을 뿌리고 다니는 놈은 높은 확률로 2기에 해당할 거란 점이었다.
1기와 2기 사이에 있는 놈이라면 전염력이 없을 테고, 3기라면…… 리스턴의 말대로 누굴 유혹할 수 없을 거라 그랬다.
“손발에 구진이 있는 수염이 덥수룩한 뱃사람. 이 정도면 찾을 수 있겠군그래.”
리스턴은 자신의 칼, 그러니까 리스턴 칼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이가 무려 30cm가 넘는 장검을 등에 걸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가죽으로 만들어진 칼집에 싸여 있다는 점인데…….
아무리 봐도 칼 같아 보인다는 건 문제였다.
“그, 휘두르시면 안 됩니다?”
“하하.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야지.”
“없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휘두르면 안 되죠!”
좀 걱정이 되어서 말했더니 이 미친 양반이 이딴 말이나 하고 있었다.
“아니, 아닐세. 평. 자네가 런던 뒷골목을 몰라서 그래. 총 꺼내 들면 칼이라도 휘둘러 봐야지.”
“네? 우리 뒷골목으로 가요?”
“그럼 아일랜드계 뱃사람이 비싼 술집에라도 있을 줄 알았나?”
“아…… 그럼…….”
안녕히 다녀오시라고 하려고 했더니, 리스턴이 내 손목을 잡았다.
“들어 보니 자네가 제일 전문가인데 빠져서야 되겠나.”
“하.”
내가 왜 1기, 2기 지랄을 했을까.
그냥 찾으라고 할걸.
“가세.”
“하…….”
정신을 차려 보니, 그러니까 기이한 냄새에 정신이 퍼뜩 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뒷골목이었다.
어딘지 정확한 지명은 모르겠는데…….
하여간 이런 데를 앞골목이라고 하진 않을 거 같았다.
“똥을 쌌나……?”
“그럴 테지.”
“네?”
“화장실이 드물지 않나.”
설마 하며 말했더니, 리스턴이 뭐 그런 걸 묻느냐는 얼굴로 대꾸했다.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아, 이게 똥 냄새구나.
거리 냄새에 섞이면 이따위 냄새가 되는구나.
“일단 저길 가 보세.”
“그러지.”
리스턴과 블런델은 무슨 탐정이라도 빙의한 것처럼 신나서 허름한 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뒤를 보니 조지프와 앨프리드가 불만 어린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아니, 자세히 보니까 불만 어린 게 아니라 그냥 냄새 때문인 듯했다.
“두근거리네.”
“역시 의사 되길 잘했어.”
“그러니까!”
미친놈들.
세상 어떤 의사가 병 고치겠다고 뒷골목을 다니냐…….
이게 정상이냐?
덜커덕.
물론 그런 생각을 해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나는 두꺼운 리스턴의 손에 손목을 잡힌 채였으니까.
“음?”
그런 나를, 그러니까 모자를 쓰고 있어도 이질적인 외모가 티가 나는 나를 주점 안에 있던 이들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그리 오래 보진 못했다.
중간에 리스턴이 끼어 들어가서 그랬다.
그제야 안에 있던 이들은, 게슴츠레 뜬 눈으로 비로소 리스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수술하다 생긴 상처지만 누가 봐도 칼빵 뜨다 생긴 듯한 흉터가 진 얼굴.
어지간한 성인 여성 허벅지보다도 굵은 목.
그에 걸맞게 거대한 팔뚝.
그리고 주먹.
응? 주먹?
“주먹은 왜 쥐고 계세요?”
“째려보잖아.”
“저희…… 누구 찾으러 온 거지 싸우러 온 게 아닌데요.”
“아, 그렇지, 참. 술집 들어왔더니. 하하. 하여간.”
그는 껄껄 웃더니, 아무 데나 털썩 앉았다.
진짜 아무 데나인 게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탁자 앞에 앉았다.
“무슨…….”
불만을 표하진 못했다.
무서워서이리라.
“물을 게 있는데.”
“아, 경찰이십니까?”
“뭐…… 그렇지.”
리스턴은 탁자 위에 등에 메고 온 칼을 올려 두며 말을 이었다.
세상 어떤 경찰이 시발 칼로 위협을 하며 탐문을 하나 싶긴 했지만.
워낙에 법보다 폭력이 우선시되는 시대라서 그런가, 바로 답이 돌아왔다.
“아무튼, 손발에 반점이 난, 수염 덥수룩한 아일랜드 놈 본 적 있나?”
“아…… 얼마 전에…….”
“얼마 전?”
“네. 근데 최근엔 도통 못 봤습니다.”
“뭐 특이한 점은 없었고?”
“특이한 점…… 아.”
“아?”
“여자를 기가 막히게 꼬시던데요.”
“그놈이네. 또 딴 데서는 못 봤나?”
“그게…… 어?”
“뭐. 딴청 피우게 하고 도망가려는 거면 사람 잘못…….”
“그게 아니라 방금 밖에 지나갔어요!”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사람이 너무 덜덜 떨고 있었다.
만약 저기서 거짓말을 할 수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재주로 인정을 해 줘야 할 거 같았다.
하여간 우리는 그의 손가락을 따라 밖으로 나갔고, 한 남자의 뒤를 밟을 수 있었다.
“아, 소매가 길어 가지고 저거.”
손을 봐야 했다.
손을.
“아, 방금.”
하필 내가 제일 먼저 봤다.
리스턴은 어땠냐는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구진이 있었습니다. 확실해요.”
“좋아. 야, 너 일로 와 봐.”
답을 들은 리스턴은 훌륭한 깡패가 되어 그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