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76)
검은 머리 영국 의사-76화(76/505)
76화 매독 [3]
“뭐, 뭐야?”
과연 뱃사람.
이 시기 뱃사람이라는 건 그야말로 거친 사람의 표본이라고 해도 좋았다.
앞서가던, 그러니까 손바닥에 구진이 난 채로 걷던 이는 리스턴이 부르자마자 훅 하고 뛰며 뒤를 돌아보았다.
무기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흉포한 기세가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구만…… 리스턴 교수님이…… 질 거 같지는 않지만.’
증기선이 개발되기는 했다.
정확히 말하면 18세기 말쯤에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건 단지 실험실에서의 얘기였을 뿐 상용화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아직은 증기의 힘이 좀 모자란지 돛을 같이 쓰는 기범선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들었다.
그 말인즉슨 뱃사람들은 여전히 바람이 불 때 일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설령 그게 새벽이라고 해도.
“뭐야, 너. 뒤질래?”
“으음…… 골 아파졌는데?”
게다가 먹는 것도 개판이었다.
식수의 저장은 늘 어려운 일이다 보니 대개는 도수가 약한 술로 때우기 마련이었다.
그 말인즉슨 이 시기의 항해란 17, 18세기처럼 괴혈병의 염려는 없어 좀 낫긴 하더라도 다소 끔찍한 부분이 있다 이 말이었다.
심지어 풍토병에 대한 정복은 꿈도 꾸지 못할 시기다 보니 아프리카 중앙 쪽은 언감생심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있다 들었다.
-거기 들어갈 수 있으면 엄청난 수입과 명성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앨프리드의 아버지가 콘돔 이후로 은근한 기대를 내게 보내고 있지만…….
말라리아가 원인이라고는 들었는데, 나도 뭐 그거 어떻게 치료하는지 몰라서 그냥 다물고 있었다.
“뭐야, 너. 우리 동료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행색이 점잖은 게…… 여기 어울리지 않는 놈 같은데?”
“이봐, 저기 뒤에 놈. 시계가 있는데?”
“오호…….”
하여간 그 거친 풍랑을 거치고 살아가는 놈들이라 그런가, 동료 의식이 장난이 아니었다.
따로 가는 줄 알았던, 앞서가던 놈보다 훨씬 앞에 있던 놈들까지 주르륵 달려왔다.
그 수가 모두 일곱.
사실 이쪽도 숫자만 보면 리스턴 박사에 나, 블런델 교수 그리고 조지프, 앨프리드까지 다섯이지만…….
나, 블런델, 앨프리드는 전력으로 보기에 상당한 무리가 있었다.
아니, 조지프도 저런 진또배기들 앞에서는 애송이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7 대 1이라는 건데…….
“거참. 진료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리스턴 박사는 긴장한 기색조차 없이 등에 매고 있던 칼을 풀었다.
그렇다고 칼을 빼 든 건 아니었다.
살짝 긴장했는데, 다행히 칼집째로 든 채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리스턴 박사다. 매독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왔으니…… 다들 비켜.”
그러곤 진짜 씨알도 안 먹힐 만한 소리를 해 댔다.
칼 들고 저런 말 하면 뭐가 되겠냐……?
아니나 다를까, 그 말을 듣더니 사람들이 비켜 주기는커녕 화만 내기 시작했다.
“미친놈이.”
“뱃사람치고 매독 없는 사람이 어딨다고?”
“치료? 지랄하지 마. 사람 죽이는 게, 그게 치료냐?”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방향이 다르긴 한데, 아무튼, 엄청 분노했다.
한 가지 특이한 건, 정작 동료들을 부른 놈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 새끼…… 지가 퍼뜨린다는 걸 알았구만?’
한두 명 만나고 다닐 때는 몰랐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벌써 몇 명인가?
블런델이 확인한 것만 열 명이 넘으니, 이 런던에 수십 명은 넘게 창궐하고 있을 터였다.
그중에는 유부녀도 있다고 하니 남편에게도 옮길 것이고…….
이 시기 런던의 도덕성을 감안할 때 남편도 또 옮길 것이고…….
사실상 저놈 하나가 런던 전역에 팬데믹에 준하는 병을 퍼뜨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야, 쳐!”
“아…… 진료하기가 참.”
이건 내 생각이고, 뱃사람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름 칼을 빼 들고 있는 이도 있었다.
그럼 우리도 뽑아야 하지 않나 생각하던 그 순간, 쾅 하는 소리가 났다.
‘이 시대에 트럭이 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제야 리스턴이 눈에 들어왔다.
칼집째로 사람 하나를 반대편으로 날려 버리고 있었다.
“어어! 경찰 불러!”
어느새 따라붙은 구경꾼 중 몇몇이 달려 나가고, 또 몇몇은 환호하기 시작했다.
진짜 환호할 만도 한 게…….
‘와…… 이 양반. 수술할 게 아니라 그냥 싸움꾼 했으면 런던 접수했겠는데?’
벌써 세 명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나머지 넷도 기세에 눌려 멈칫거리고 있었고.
아무래도 상황이 여의치 않자, 애초에 타겟이 되었던 놈도 칼을 빼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칼집째로 빼 들었는데, 그걸 보더니 리스턴이 물었다.
그 또한 칼 손잡이를 잡으면서였다.
내가 감히 말하건대, 리스턴만큼 칼이 잘 어울리는 사람도 없을 터였다.
타고나기도 그런데 매일같이 칼을 쥐고 사는 사람 아닌가.
중세 기사 저리 가는 위용과 함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거 뽑을 건가?”
뽑으면.
나도 뽑을 거고.
그럼 너는 뒤진다.
뭐 이런 말이 메아리치는 듯했다.
“아, 아니요.”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는지 상대는 얌전히 칼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나머지 셋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튀었다.
그렇지 않아도 질려 가던 참에 잘됐다 싶었던 모양이었다.
“좋아. 이리 와.”
“네, 네. 근데…… 매독…… 이걸 왜……?”
“왜? 왜라고 했나?”
상황이 완전히 정리되고 나서야 블런델이 나섰다.
태도만 보면 싸울 때 뭐라도 한 거 같았지만, 실은 나보다도 뒤에 숨어 있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뒤로 물러나려는데 뭐가 걸려서 보니까 블런델이 있더라고.
“자네 때문에 지금 환자가 급증하고 있어! 그중에는 산모도 있네. 이 짐승 같은 놈!”
“어어. 무슨 그런 말을 이런 데서.”
그런 주제에 지금은 여포가 따로 없었다.
물론 대체적인 분위기는 화난 치와와 같긴 한데…….
이미 리스턴에게 기세가 눌린 매독 환자는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저기, 저기야!”
“킬리언이 잡혔다고?”
“어떤 새끼지?”
그때 소란이 이는가 싶더니만 구경꾼들을 헤치고 뱃사람들이 동료를 데리고 들이닥쳤다.
그래 봐야 수는 7명이었는데, 리스턴은 귀찮다는 듯 칼을 뽑았다.
그런 얼굴로 의사가 칼을 뽑으면 안 될 거 같긴 한데…….
-삐이익.
동시에 경찰들도 왔다.
“멈춰! 이 미친놈들이 대낮에 뭔 짓들인가!”
말이 경찰이지 사실상 군인들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한국에서 온 내가 볼 때는 그랬다.
일단 총이 있어.
해서 별로 잘못한 것도 없이 팍 쫄았는데, 리스턴 박사는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총을 보고도 별반 놀라지 않았다.
도리어 껄껄 웃었다.
“이것 보게. 내가 자네 서장 어머니 다리도 자른 사람이네.”
“저 미친 흉악한 놈이!”
그런 주제에 저딴 말을 하다니.
정말로 미친 흉악한 놈이었다.
“아니, 가만. 리스턴 박사 아냐?”
“리스턴? 광장에서 수술하는? 아…… 그렇네?”
근데 놀랍게도 그 말이 먹히기 시작했다.
“아…… 얼마 전에 서장님이 어머니 수술 부탁했다고 들었어. 그때 봤어. 확실해.”
“어…… 아니, 그럼 저놈들은?”
“이놈들은 진료를 방해하고 있는 나쁜 놈들이지.”
리스턴의 말에 경찰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방금 도착한 뱃사람들을 후려 까기 시작했다.
“이놈은 어떻게 할까요?”
“저는 매독 환자입니다…….”
그 와중에 당연하게 킬리언이라는 놈도 머리를 맞았어야 했는데, 놀랍게도 녀석은 매독 환자라고 고백하면서 리스턴 박사의 품으로 안겨 들어왔다.
“네? 맞습니까? 환자예요?”
암만 봐도 공범인데.
뭐 이런 말이 오가고 있을 때쯤, 리스턴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네. 환자네.”
“그렇습니까? 수고가 많았습니다.”
“그래, 그래. 누구 팔다리 자를 일이 있으면 부탁하라고.”
“어…… 네. 말이 좀 이상하긴 한데…… 환자를 자른다는 거죠……?”
“그럼 그렇지. 아무나 자르면 안 되지 않나.”
“그렇죠. 네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덕분에 경찰은 킬리언을 두고 애먼 사람들만 잡아갔다.
“어찌 될까요? 저 사람들?”
미개한 놈들이 설마 교수형에 처하진 않겠지, 하는 걱정이 들어 물었더니 블런델이 웃었다.
“누가 죽은 것도 아닌데 별일이 있겠나. 기껏해야 한 소리 듣고 풀려나겠지.”
“아…….”
그래도 칼 빼든 놈도 있는데 한 소리 듣고 풀려나는구나.
사형은 좀 과해도 며칠 갇혀 있지 않나 했더니 너무 널널해서 또 놀랬다.
“휴…… 살았다.”
하여간 그 꼴을 보고 있던 킬리언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블런델이야 남의 일이니 풀려나네 어쩌네 했지만, 경찰이 이게 참 시대를 막론하고 무서운 존재 아닌가.
심지어 지금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을걸.’
기분 풀이로 때려죽일 수도 있긴 했다.
모든 것이 근대화를 이룬 것 같으면서도 또 동시에 야만이 남아 있는 시대라 그랬다.
대영제국이 그럴 리가 있냐고?
와서 살아 봐.
개판이야, 여기!
“한숨을 쉴 땐가?”
하여간 리스턴은 한숨을 쉬고 있던 킬리언을 보면서 말했다.
여전히 칼집째로 들고 있던 참이었기에 느낌이 참 묵직했다.
“어…….”
“일단 가지. 감염된 환자가 몇이라고?”
“열 명도 넘어.”
“치료제도 없는 병을 그렇게 옮겼으니 사형에 처해도 되지 않나?”
“힉.”
살벌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아니, 오간다기보다는 리스턴이 일방적으로 하고 있었다.
블런델은 적어도 리스턴에 비하면 훨씬 안온한 사람이었다.
“아니, 사형이라니. 그건 법관들에게 맡길 일이고…… 애초에 환자들 중에 기소까지 나설 만한 사람이 없다니까. 그래서 우리가 잡으러 온 거 아닌가.”
“아, 그렇지. 그럼 어쩐다?”
“일단 잡아 둬야지. 배 언제 뜨지?”
블런델은 리스턴을 안심시킨 채 환자를 돌아보았다.
그로서는 참 다행인 일일 텐데 어째선지 되게 곤란해 보였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한참이 지나도 말을 안 했다.
“언제 뜨냐고요.”
참다못한 내가 묻자, 그제야 답을 했다.
“은…… 은퇴했습니다.”
은퇴…….
이 눈치 없는 새끼.
블런델도 한숨을 쉬더니 물었다.
“은퇴? 아일랜드로 안 돌아가고?”
“런던에 산다고?”
“네. 배…… 힘들어요.”
“그럼 다른 여자 만나지 않겠다는 맹세할 수 있나?”
“그건…… 그건 어렵습니다.”
“하긴 내가 자네처럼 생겼어도 그러고 싶지는 않겠네.”
블런델은 어쩐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런 블런델을 보면서 리스턴이 말했다.
“역시 죽여야 하지 않겠나.”
“아니, 왜 의사가 자꾸 사람을 죽인다 만다야?”
“어차피 많이 죽었잖아?”
“그…… 그래도 그렇지. 우린 의사야…….”
“그럼 치료를 시도해야 할 텐데. 치료가 안 되지 않나.”
리스턴의 말에 블런델은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왜인지 나를 바라보았다.
문제는 정신을 차려 보니 리스턴도 나를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아냐, 그러지 마. 나도 매독은…….
‘아니…… 아예 할 수 있는 게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