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78)
검은 머리 영국 의사-78화(78/505)
78화 진통 [1]
킬리언.
아일랜드 출신의 거친 뱃사람은 어린애라도 된 듯 마구잡이로 비명을 질러 댔다.
딱히 겁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상대는 옷을 완전히 입고 있고 또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알몸이 된다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 않나?
게다가 저 수은…….
‘어우…… 난 더 못 보겠는데.’
수은 온도계는 내가 그래도 본 적이 있긴 있었다.
내가 딱 돌아오기 직전에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 어릴 때만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수은 온도계를 쓰긴 썼거든.
하지만…….
저건…….
“으, 으아아아! 살려 줘! 이걸…… 이걸 먹으라고?”
“주사하는 방법도 있네만, 추천하고 싶지는 않군.”
제멜은 무감해 보이는 얼굴로 수은을, 정말로 물로 된 은처럼 보이는 중금속을 컵에 담은 채 환자에게 건네고 있었다.
말이 좋아 건네는 것이지 거의 뭐 아가리 벌려라 수은 들어간다, 이 수준이었다.
“으, 으아! 으아! 이 미친놈들!”
“누가 할 소린지 모르겠구만. 매독인데도 다른 사람들과 마구 잔 놈이 누군데. 잡아!”
대체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이 시기의 조수란 사람들은 전생에 포졸이라도 했는지, 사람 결박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프로 그 자체였다.
아주 그냥 뭐 중환자실에 있는 섬망 환자들도 문제가 없겠어.
“흡, 읍!”
“코 잡어. 입 벌리게.”
곧장 발버둥 치던 킬리언은 사지가 결박된 채 무릎이 꿇렸다.
여기서 이제 리스턴이 단칼에 목을 베면 참수형 완성인데 다행히 누구도 그렇게 하지는 않고, 대신 입을 억지로 벌린 채 수은을 넣었다.
다행히…….
‘내가 미쳤나…… 19세기에 뇌가 절여지고 있네.’
다행은 취소.
아무튼, 아까 환자보다는 사정이 나은 것이 양이 확연히 적었다.
아무리 봐도 아까 그 환자는 말기 매독, 즉 3기였고 이 환자는 2기였으니 나름 경감을 시도한 모양이었다.
딱히 그게 뭐 효과가 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까 환자보다는 시간이 있단 생각이 들었다.
‘오늘 퇴근은 콘돔 공장으로 가야겠구만…….’
나름 사이즈도 모아서 줬으니 결과도 슬슬 볼 때가 되지 않았나?
게다가 블런델도 사실 오늘쯤 가 봐야 하긴 할 터였다.
사교 모임에 가려면 준비물이 있어야지.
물론 내 목적이 죄 콘돔에 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는 화학자가 그 사람뿐이니…… 비소 화합물에 대해 논의를 해 봐야겠어.’
별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더 크긴 했다.
고무는 어찌어찌 조정을 해서 진짜 그럴싸한 물건을 만들어 내긴 했지만, 비소 화합물은 이게 완전히 다른 얘기 아닌가.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비소 화합물 606번 즉 살바르산을 만들어 낸 에를리히는 세균도 확인했을 터였다.
실험 자체를 매독균이 죽나 안 죽나를 보면서 했을 거야, 아마.
아니면 다른 균 죽이려다가 소 뒷걸음질 치듯 매독을 죽인 걸 수도 있는데, 하여간에 시대가 좀 어긋나 있다고 보면 되었다.
‘그리고 빵도 좀 사서 썩혀 보자. 푸른 곰팡이…… 만들어 보자.’
아울러 페니실린도 실험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사실 내키지 않는 일이긴 했다.
왜냐?
곰팡이라는 게 사실 외부에 있는 게 들어가면 감염체잖아.
면역력 떨어져 있는 사람은 잘못 쓰면 뒤진다고 그거…….
그런 짓을 내가 직접 할 수는 없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뻔히 21세기에는 그리 귀하지도 않은 약 쓰면 나을 사람한테 눈앞에서 막 수은을 주고 있으니까 안 되겠어.
어차피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야 할 테니 지금부터라도 해야 할 거 같았다.
“우, 우우우우!”
그사이에 킬리언의 목구멍 안으로 수은이 기어코 흘러 들어갔다.
와…… 중금속 들어간다…….
우리 때는 어? 소량만 검출돼도 난리였는데…….
진짜 이 미치광이 19세기 의사들 같으니라고.
“우우우우!”
“소용없네. 수은은 무거운 데다가 액체거든, 일단은. 이미 다 들어갔을 거야. 하하.”
킬리언은 뒤늦게, 술 많이 먹는 뱃사람 짬밥을 이용해 손가락으로 구역 반사를 시도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그리고 토하면 또 먹일 거야.”
제멜의 엄포가 너무 무서운 데다가 동시에 현실감이 지나치게 넘쳐서 그랬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새끼 몇 번이라도 더 먹일 수 있는 놈이었다.
기본적으로 이 시기 사람들이 고통에 무감한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되겠지만…….
이 환자의 경우에는 사실상 범죄자로 인식하고 있어서 더했다.
제네바 선언이라도 나온 다음이라면 설령 적군이라 해도 선언에 의해 치료를 해야겠지만 이 시기에는 전쟁 범죄라는 말도 없었잖아?
“일단 매일 먹나?”
“네? 안 됩니다! 이건…… 이건 독살……!”
“닥쳐.”
저거 봐, 저거.
나름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키려는 생각에 리스턴 칼을 발명해 낸 리스턴 박사조차 닥치라잖아.
“어…… 경과를 봐야지. 보면서 결정할 건데, 왜 그러나?”
“아, 묶어 놔야 해서. 이대로 도망치면 이놈 또 어디 가서 함부로 굴지 몰라.”
“차라리 그걸 잘라 버리면 어떤가?”
“아.”
솔깃한 표정 짓지 말라고!
뭘 잘라, 이 미친놈들아!
전혀 관계없는 나조차 소름이 오소소 돋아날 정도였으니 킬리언은 어떻겠나.
“아…… 안 돼…….”
이미 살짝 공황이 온 것 같더니만 알아서 기절해 버렸다.
나 같아도 시발 대놓고 수은 먹이고 고추 자른다고 하면 기절하지.
나는 몰래 위안의 뜻을 담아 킬리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러게 왜…… 매독 걸린 놈이 함부로 놀려 가지고…….’
물론 두드리다 보니까 환자가 잘못한 게 생각나서 좀 세게 때리게 되었다.
미안해, 킬리언.
나도 어쩔 수 없는 19세기 의사인가 봐.
드르륵
하여간 우리는 리스턴의 명에 의해 킬리언을 질질 끌고서, 절단 병동으로 향했다.
“으, 으아아아!”
“살려 줘!”
언제나 그러하듯 비명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이제는 많이 들었는데도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다.
이봐, 이거.
또 소름 돋잖아.
“헙. 지옥…… 지옥인가?”
“병원이다, 이 새꺄.”
당연하게도 환자도 일어났다.
그러고는 경황없는 얼굴이 되어 주변을 돌아보았다.
지옥이라는 다소 무서운 단어를 내뱉으면서였는데, 리스턴은 왜인지 모르게 억울해 보였다.
지가 다 잘라서 그런가…….
‘내가 볼 때는 여기 악마 몇 마리만 풀어 두면 게네 아무것도 안 해도 지옥 그 자체긴 하지.’
병실 앞에는 ‘이곳을 지나는 자 희망을 버릴지어다’라는 문구 딱 박으면 진짜 단테도 천로 역정 다시 쓸 게 뻔했다.
그 천로 역정은 감히 말하건대 지금 나와 있는 것보다 몇 배는 훌륭하게 될 터였고.
진짜 지옥을 보고 쓰는 거니까……?
“이봐, 평. 뭐 해? 묶어야지.”
“아…… 네네.”
어떻게 하다 보니 나도 저승사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
“살려 주십쇼. 제가 이렇게…… 이렇게 빕니다. 제발…… 여기에 날 두고 가지 마!”
애원하는 환자의 팔과 다리를 그렇게 넓지도 않은 침대 위에 묶어 놓다니.
심지어 아까 봤는데 감염 환자가 쓰던 곳인지 고름이 군데군데 있었다.
“재갈도 물릴까, 시끄러운데.”
“네……?”
그 와중에 리스턴은 재갈 운운했다.
미친놈아.
그럴 거면 여기 있는 사람 다 물려 놔.
솔직히 말해서 제일 조용해, 킬리언이!
“아무튼, 가세. 우린 영웅이야.”
“살려 줘어어어어!”
네?
영웅이요?
어떻게 봐도 지금 모습은 악당 그 자체인데……?
“아, 블런델 교수님.”
물론 나는 이제 19세기 의사 다 된 마당이다 보니, 병실을 빠져나오자마자 잠시 킬리언에 대한 생각은 접을 수 있었다.
“응? 왜 그러나?”
내가 특별히 나쁜 놈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
블런델도 봐.
진짜 평온한 얼굴이잖아.
리스턴은 재갈 얘기를 아직도 하고 있으니 논외로 치고…….
“콘돔 받아 가셔야죠.”
“아니…… 무슨 그런 소리를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하나…….”
“공짜로 드리는 건데, 싫습니까? 교수님한테 딱 맞춰서 사이즈도 작…… 아니, 적당하다고 합니다. 다른 사이즈도 몇 드릴 테니 거기서 만나는 분들에게도 주시죠.”
“이 사람이 점점?”
블런델은 불쾌해했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떠나진 않았다.
“아무튼, 그래서 언제 가나?”
오히려 내게 되물었다.
하여간에 참 욕망에 솔직한 시대였다.
리스턴 박사도 뒤에서 험험 하고 있는 것이 본인 것도 원하는 모양이었다.
아마 사이즈별로 만들어 놨으니 어려운 일도 아닐 터였다.
“이제 가려고요. 어차피 저 환자 수은……도 먹었으니 달리 할 게 없지 않겠습니까?”
급성 수은 중독에 의해 구토나 두통이 나타날 수도 있기는 할 텐데, 그걸 알면 뭐하나.
치료 못 하는 건 이 양반들이나 나나 마찬가진데.
그러니 내 말대로 지금 여기서 할 게 없긴 했다.
블런델도 그랬다.
응급이 있으면, 그러니까 산모가 있으면 죽이러 아니, 살리러 와야 하긴 할 텐데 이 시기 응급 의학이라는 게 그렇게 체계가 잡혀 있질 못했다.
술에 떡이 된 양반이 인술을 펼치겠답시고 오고 막 그러더라고…….
‘진짜 소송만 있었어도 니네는 다 죽었다.’
그럼에도 별일이 없는 건, 아직 인명은 재천이라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어서 그랬다.
그게 일견 맞기도 했다.
치료가 돼야지 뭘 살린다는 말을 하든가 말든가 하지.
거의 러시안룰렛처럼 환자를 보고 있으니, 소송하기 시작했다간 병원을 다음 날 정도에 감옥으로 바꿔도 좋을 터였다.
“하긴 그렇지.”
“재갈을 물리고 갈까.”
“그건 좀 너무…… 아무튼, 형님도 가시죠.”
“나? 아, 내 거도 나왔나?”
나는 몸은 솔직하게 바랬으면서 내숭 떨고 있는 리스턴에 우리 물주 아니, 선배까지 줄줄이 달고서 공장으로 향했다.
예의 그 험악한 골목을 지나니, 안쪽에 있던 화학자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이제 시제품이 나올 정도로 일이 진척되었지만 여전히 거지꼴이었다.
아직 안 팔았으니 그럴 만했다.
하지만 이제 곧 부자가 될 터였다.
너무 돈 많이 벌어서 돈 더 벌 생각이 들기 전에 일 하나 해야 했다.
“하하, 이게 그…… 하하.”
“그럼 우리는 먼저 가 보겠네.”
“걸어서요? 위험…… 아니, 아닙니다. 가 보십쇼.”
리스턴과 블런델은 시제품을 말 그대로 시연해 보고 싶은 생각에 안달이 났는지 먼저 사라졌다.
어린 우리는 남았다.
나야 딱히 관심도 없었다.
난 한국 사람이 좋은데, 여기 한국인은 나밖에 없잖아.
게다가 나는 이제부터 인류의 위대한 진보를 해 나갈 생각이었다.
과연 그 진보를 언제 내딛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비소……? 비소를 사람한테 먹이겠다고?”
당연한 일인데, 처음부터 쉽지만은 않았다.
비소란 그야말로 무색무취의 약물로, 오래전부터 독약으로 쓰여 왔기에 그랬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21세기의 비소 또한 살충제로 쓰였다.
“네. 그게 매독을 치료합니다.”
“그걸 어떻게 아나?”
“조선에서는 비소를 좀 써요. 물론 위험한 일이긴 합니다만…… 제가 봤을 때 비소는 좀만 그 성분을 바꾸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차라리 수은을…… 아니지, 수은은 오랜 역사 동안 뭘 했는데 안 되긴 했지. 근데 비소라고? 조선에는 용감한 사람들이 많구만.”
“혹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곤란하시면 다른 분이라도 소개를…….”
“아니, 아닐세. 덕분에 부자 될 기회를 잡았는데 그냥 내칠 수야 없지. 내 짬을 내 보지.”
“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