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80)
검은 머리 영국 의사-80화(80/505)
80화 진통 [3]
미안하지만…….
“괜찮아요?”
“괜찮겠어? 괜찮아 보여요?”
해 줄 수 있는 게 이 노래밖에…….
아니, 노래도 못 해 주겠다.
나 음치야.
“안 괜찮아 보여요.”
“아니, 그럼 풀어 줘!”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됩니다. 풀어 주면 나가서 또 여자 만날 거잖아요.”
“안 되는 겁니까?”
“매독 걸린 사람이 그럼 당연히 안 되지.”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요.”
“지랄…….”
대화를 좀 나누다 보니까 내가 2am처럼 노래를 잘했어도 안 해 줬을 거 같았다.
이 새끼…… 이거 약간 정신 나간 새끼 아냐?
“으아아아아!”
“으어어어!”
“살려 줘어어어어!”
하여간 내가 너무 평온하게 얘기하긴 했는데, 알고 보면 비명 가운데 둘러싸여 있었다.
당연하게도 둘 사이의 대화 또한 거의 고함에 가까운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단 좀 계셔 봐.”
“네? 아니, 나를! 나 데려가야지!”
“계셔 보라고. 다른 환자들도 봐야 되니까.”
“아니, 저…… 저 개놈의 새끼가.”
나는 급기야 욕설을 내뱉기 시작한 킬리언을 두고 다른 이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마 어제의 킬리언이었다면 아무리 손발이 묶여 있었다고 해도 감히 무서워서 이렇게 대하지 못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킬리언은 비 맞은 강아지 같은 느낌이었다,
욕을 하는데 무섭기는커녕 약간 치와와 같어.
사람이 기가 죽으면 생긴 것과 관계없이 약해 보인다는 걸 지금 깨달은 느낌이랄까?
하여간 나는 주변에 아파하는 사람마다 찾아가 끓여 온 물을 들이밀었다.
‘용량은…… 일단 한 컵 정도로 줘 보자.’
버드나무 껍질 추출물이 무엇이 되는 줄 아는가?
다름 아닌 아스피린이 된다.
아스피린.
21세기에서도 계속 쓰이는 희대의 명약 아닌가.
심지어 미국에서는 딱히 어디 아픈 게 아닌데도 저용량의 아스피린 섭취를 뇌경색이나 심근 경색을 예방할 수 있어 권장하고 있지 않나.
물론 우리나라는 뇌경색보다는 출혈이 주를 이루고, 아스피린을 먹으면 오히려 출혈이 더 생길 수도 있어서 딱히 권장하는 느낌은 아니긴 하지만…….
“이걸 먹으라고!”
하여간 희대의 명약이라는 생각과 함께 권했더니 방금 전까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던 이가 내 손을 팍하고 쳤다.
아휴 깜짝이야.
냄비 떨어뜨릴 뻔했다.
그럼 이 귀한 버드나무 껍질 까러 또 교외로 나가야 되잖아.
마차가 내 것도 아니고 앨프리드 건데.
“먹으면 안 아파진다니까요?”
“내 평생 그런 말은 못 들어 봤어!”
“네네. 그럼.”
그렇다고 나도 맞서 싸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무서운 건 아니었다.
솔직히 눈이 벌게져 있는 건 좀 그렇긴 한데…….
이 사람 팔 잘려 가지고 명백히 죽어 가고 있다고…….
하지만 설득은 포기했다.
왜냐?
대화가 가능하다는 건 아직 참을 만하다는 얘기고, 그 말은 곧 내가 들이미는 이 수상쩍어 보이는 약을 마시지 않을 거란 얘기가 되거든.
“도와드립니까?”
“아니…… 아뇨…….”
물론 리스턴의 조수들이 도와준다면야 버드나무 껍질 우린 물 아니라 껍질 자체도 먹일 수 있을 거 같긴 했다.
이 양반들은 결박하고 무언가 강제로 하는 것의 달인이거든.
거의 뭐 괴물이랄까?
그렇다 해도 써먹을 생각은 아직까지는 없었다.
이게 항생제라 안 먹으면 죽을 것도 아니고 통증을 경감시키는 용도잖아?
게다가 아직 용량도 모르는 상황에서 강제로 먹이는 건 좀 윤리에 어긋나는 듯했다.
“살려 줘…… 나 풀어 줘…… 여자 안 만날게…….”
뭐 킬리언을 보면 이미 내가 윤리 운운하는 게 우스워진 상황이긴 한데.
좀 다른 얘긴데 저 새끼 지금 100% 거짓말 치고 있다.
아니, 어떻게 이 상황에서도 간호사를 힐끔거리지?
진짜 리스턴 말대로 잘라야 되나.
“나, 나 주게! 나!”
그렇게 잠깐 딴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너무 아픈 나머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있던 환자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보아하니 약간 정신이 나간 거 같았다.
그러니까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데.
이 약을 먹기에 최적인 상황이었다.
“드릴게요.”
“으어어.”
“일단 이거. 어어, 천천히. 사레 걸려.”
“으어어어어어. 이게 동양의 비술인가.”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이게 마녀의 주술인가. 읍.”
진짜 미쳐 버리기라도 했나,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해 쌓아서 뒷목을 툭 쳤다.
반신반의한 상황에서 후린 건데 통했다.
와…….
나도 리스턴 따라 다닌 짬밥이 어디 가는 건 아니구나 싶었다.
한 방에 사람을…….
“왜 때려?”
아, 기절한 게 아니라 그냥 놀란 거였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튼, 나는 멀쩡한 의사의 얼굴로 돌아와 말했다.
“때린 게 아니라 소화를 도운 겁니다.”
“으응……?”
“일단 좀 기다려 보세요. 통증이 덜해질 테니까.”
“으…… 아직 너무 아픈……데…….”
“기다려야죠.”
그 꼴을 보고 난 후에도 통증에 정신이 나가 버린 사람들 몇이 내 비약을 청해 마셨다.
당연하지만 끝까지 거부한 사람들이 절대다수였다.
허나 그러한 이들조차 일단 약을 먹은 이들을 힐끔거리고 있기는 했다.
진짜로 효과가 있으면 당장 달라고 할 기세랄까?
‘아스피린조차도…… 약 먹으면 10분 정도는 지나야 효과가 돌지.’
정작 나는 벌써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다.
21세기에 유통되고 있는 약들은 그 용량이 딱딱 정해져 있을뿐더러 제형 또한 흡수에 용이하게끔 변화에 변화를 추구한 궁극의 약들 아닌가.
그걸 내가 얼렁뚱땅 끓인 게 이긴다고?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용량은 차치하고, 효능과 그 시간 면에서조차 하나같이 밀릴 터였다.
해서 나는 남는 시간에 내가 수술해 놓은 환자들을 보러 갈 생각이었다.
지금껏 별 얘기가 없는 걸 보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우리네 속담을 적용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새끼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대로 묘지행이거나 해부해 버리잖아……?’
놀랍게도 19세기의 사람 목숨값은 진짜 별 게 아니었다.
병원에서 예정된 수술을 하고 사람이 죽어도 그랬다.
지체 높은 사람이라면 얘기가 완전히, 심지어 21세기에서보다도 더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람이 사람한테 이래도 되나 싶을 지경이었다.
그 말은 곧 내 환자가 막상 갔더니만 나도 모르는 새에 죽어 나갔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이것도 최악의 상황은 아닌 게, 이놈들은 안 죽은 사람도 죽었다고 하면서 묻는 놈들이었다.
“어, 선생님.”
“오셨습니까?”
다행히, 의사가 병실 갔는데 환자가 멀쩡히 있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 좀 비참하기는 한데, 환자는 있었다.
그것도 꽤 멀쩡해 보였다.
“좀 어때요?”
나는 질문을 던지면서 동시에 환자를 살폈다.
‘피도…… 뭐 안 넘어가고 있고. 거즈가 온통 빨갛긴 한데……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목 뒤로 넘어가는 피가 둘 다 거의 없었다.
있기는 있단 얘긴데 이 정도면 출혈 때문에 뭐가 어떻게 될 거 같지는 않았다.
물론 거즈가 너무 새빨갛기는 한데, 그건 처음부터 그래서 넘어가기로 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역시 감염이었다.
당장 어제부터 빵 썩히기 시작한 마당인데 어느 세월에 항생제가 완성되겠나.
이런저런 실험을 거치다 보면 몇 개월 아니, 몇 년은 후다닥 지나갈 테니 적어도 지금 여기 있는 환자들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는 일이었다.
“열도 없고…… 이쪽이 아프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나는 양측 뺨과 이마 등을 두드려 봤다.
이걸 막 심도 있게 공부한 건 아닌데 어디서 들었던 거 같아서 그랬다.
이 근처에 축농증이 심해지거나 봉와직염이 생기면 아프다고 하더라고?
“아뇨.”
“저는 코안이 좀?”
코안?
잠깐 불안해졌다가 이내 괜찮아졌다.
생각해 보니까 수술하고 그 흔한 진통제 한번 안 줬잖아.
지금 이렇게 멀쩡한 얼굴로 앉아 있는 게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여간 코안을 칼로 헤집어 놨는데 아픈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터였다.
‘휴.’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겉으로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플 수 있어요. 많이 아프진 않죠?”
나는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하면서 절단 병동을 돌아보았다.
거리가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도로 이어져 있어서 그런가, 비명이 울려 오고 있었다.
오히려 애매한 거리라 그런가, 더 무서운 느낌이랄까?
환자도 그 비명을 내내 듣고 있었는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저런 사람들에 비하면 자기는 아픈 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을 터였다.
“아, 네네. 괜찮습니다.”
“좋군요. 좋아. 그럼 일단은 더 지켜보고…… 내일 오후쯤에 이 거즈를 빼겠습니다.”
“아.”
내일 오후 얘기를 했을 때야 비로소 환자 둘의 얼굴에 절망이 서렸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한쪽 코라 다른 쪽으로 숨을 쉴 수는 있을 텐데…….
수술한 쪽 코는 진짜 완전히 틀어막아 버렸거든.
이렇게 되면 반대편도 눌려서 숨쉬기 쉽지는 않을 터였다.
‘생각 같아서는 더 넣고 싶은데…… 이것도 결국 외부 물질이라 내일 빼는 겁니다…….’
그럼에도 빼지 못하는 건 순전히 출혈 때문이었다.
피 많이 나면 뒤져…….
수혈…….
나라면야 가능하긴 하겠지만, 그것도 피 줄 사람이 동의를 해 줄 때 얘기였다.
블런델처럼 이미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아니라 나 같은 초짜가, 그것도 동양인이 피 달라고 하면 어쩐지 좀 영험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필요한 상황이 되면야 망설임 없이 하겠지만 될 수 있으면 뒤로 미루고 싶은 게 수혈이었다.
“그럼, 이만.”
하여간 나는 인사를 마치고 다시 절단 병동으로 향했다.
복도를 따라 걸으면 걸을수록 그라데이션으로 커져만 가는 비명 소리가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길 같았다.
이런 길을 리스턴 일행은 잘도 매일 걷는다 싶었다.
그 일행 중에 내가 끼어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놀라웠고.
“어때요?”
킬리언은 날 보자마자 애걸복걸했지만 정작 눈은 또 간호사를 향해 있었기 때문에 무시로 일관했다.
대신 아까 약 먹인 사람에게 물었는데, 그는 뭔가에 홀린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왜요.”
“아픈 게…… 아픈 게 사라졌어요. 이게…… 대체 어떻게…….”
“약 줬잖아요. 그거 약이라니까요.”
“사실 죽으려고 먹은 건데. 죽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아니, 이 양반이 사람을 뭐로 보고…….
이런 생각을 하다가 냄비 안을 들여다보니 확실히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하단 생각이 들긴 했다.
이거 어떻게 봐도 좀 위험해 보이긴 해.
까맣고…….
아니, 까맣기만 한 것도 아니고…….
“환자분은 어때요?”
“저도…… 아프긴 한데, 견딜 만합니다.”
“그렇군요.”
다른 이들 또한 호전을 보이고 있었다.
운이 좋았던 듯했다.
한 컵을 그냥 준 건데 용량이 맞은 거 같잖아?
물론 위장관 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약이니만큼 더 지켜보긴 해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뭐가 되었건 간에 팔다리 잘린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다면, 이 약은 기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성싶었다.
“어, 어이!”
“나도!”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병동 안 비명이 어느새 ‘나도!’로 통일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