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81)
검은 머리 영국 의사-81화(81/505)
81화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냐? [1]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절단 병동에서의 소란은 이내 병원 전체로 번져 나갔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 비명이 온 병원의 악몽이 된 지가 꽤 되었거든.
이전에도 딱히 통증 완화에는 관심이 없던 병원이긴 한데, 마취가 안 되었던 탓에 수술 자체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용기 낸 이들 중 태반이 통증으로 인한 쇼크로 인해 사망했기에 문제 제기가 되지 않았더랬다.
허나 마취가 통용되면서 급격히 환자가 늘어나는 통에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는데, 원장은 속된 말로 돈미새다 보니 절단 수술로 인한 수입을 결코 포기하지 못했고 그 덕에 모든 병원 사람들이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걸 내가 끝낸 셈이었다.
“으으으으…….”
“흐어어…….”
아니, 완전히 끝낸 건 아니었다.
이제 보니 아스피린, 그러니까 내가 기억하는 아스피린은 나름 위장 장애를 어느 정도 조절한 모양이더라고?
내 약을 먹은 이들은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속 쓰림을 호소하고 있었다.
효과가 좀 모자라는 이들도 많았고.
하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아까보다는 나아서 그랬다.
환자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여기 온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헐레벌떡 달려온 리스턴도 그랬다.
“조선에서는…… 아파하는 사람이 있으면 버드나무 껍질을 달여 먹입니다. 혹시 그게 효과가 있을까 해서요.”
조선…….
이제 의학의 선진국으로 영원히 기억될 이름.
나는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으면서 리스턴을 바라보았다.
자기네 나라 말고는 딱히 아는 게 없는 사람들이다 보니 당연하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기론 아니던데, 뭐 이따위 말은 절대 없었다.
“그렇구만. 조선이 참 대단한 나라야.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가 보고 싶군.”
나도 그렇긴 했다.
가게 된다면 따로 가야 할 거 같긴 한데…….
‘갔다가 다 들통나면 나를 반으로 갈라 죽이지 않을까? 아니, 아니지. 그때는 또 그때대로…….’
생각해 보니까 조선말을 배울 턱이 없으니 같이 가도 될 거 같았다.
하여간 조선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거의 세상의 끝이나 다름없었고, 언제 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일이다 보니 나는 얘기를 돌렸다.
“아무튼, 그게 효과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래, 그래 보이네. 절단 수술을 한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구만.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좀 아프려고 했는데 다행이야.”
리스턴은 그런 나와 대화하다 말고 머리를 짚었다.
두통이 온 모양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버드나무 껍질 우린 물, 이제는 살리실산이라 부르기로 정한 것을 주려 했는데 어느새 고개를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 어디 가세요?”
저 양반이 아프다더니 왜 저래? 싶어서 물으니, 뭘 그런 걸 묻느냐는 얼굴로 날 돌아보았다.
“당연히 토마스에게 가지. 한 바퀴 돌리면 되네.”
“아니…… 이게 진통 효과가 있다는 걸 보시지 않았어요?”
“음? 절단 환자한테 효과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아닙니다. 모든 통증에 효과가 있어요. 환상통에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다른 통증에 대해서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오오. 그럼 내 두통에도?”
“네. 근데 보니까 빈속에 먹으면 속이 아픈 거 같으니 뭐라도 먹죠.”
“응? 속 쓰린 것과 그게 상관이 있나?”
“아.”
아!
위에서 위산이 나오고 그게 통증의 원인이 될 거란 걸 모르나……?
그건 알 거 같은데…….
하지만 약이 위산 분비를 자극하거나 또는 점막의 보호 작용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까지는 모르는 게 당연하긴 할 거 같았다.
뭘 먹으면 그게 보호 효과를 갖는다는 것도 모를 거 같고.
심지어 식후 30분에서 식후 직후로 대개의 약 복용 지침이 변경된 지도 얼마 안 되었었잖아?
“그냥 뭐…… 그럴 거 같습니다.”
“조선에서 그리 하나 보지?”
“아, 네.”
“그럼 따라야지. 하여간, 신통방통하군. 난 대영제국이 모든 면에서 세계 최고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의학 분야는 조선이라는 나라에 배울 점이 있었구만.”
리스턴은 그런 말을 하며 딱 봐도 진짜 맛없어 보이는 빵을 우걱우걱 씹으면서, 살리실산을 마셨다.
커피라도 되는 양 먹는데, 참 대단하다 싶었다.
아무리 환자들 좋아지는 걸 봤다고 해도 이렇게 바로 먹을 수 있다니.
과연 실험 정신이 넘쳐나는 19세기였다.
“오…… 정말 좋아지는군그래.”
“그렇지 않아도, 저도 아버지에게 이번에 꼭 기회가 되면 조선에 가 보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통증이 좋아져 기분도 좋아진 리스턴에게 앨프리드가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녀석을 째려보았다.
아버지에게 왜 말을 했니…….
그랬다가 뽀록나면 어쩌려고.
“오, 그래? 언제쯤 가실 수 있다던가?”
“지금은 콘돔 사업 때문에 항해 계획이 없으시더라고요.”
“아아.”
아, 다행이로구만.
그래…….
최대한 늦추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어차피 내 명성은 빠르게 번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설렁설렁해 온 거 같은데 벌써 내가 해결한 질환이 적지 않았다.
이 추세면 아마 몇 년 후에는 나와 대적할 만한 의사는 존재하지 않게 될 터였다.
“절단 병동 일도 해결이 되었고, 우리 평이 한 건을 올렸으니 오늘은 이만 피크닉이라도 가는 게 어떤가. 마침 고기도 좋은 게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고기요?”
“그래. 하인들 데리고 가세나.”
“하인도 있으세요?”
“이보게나. 나 부자야, 이제. 절단술을 하루에 몇 개나 하는 줄 아나.”
“아.”
남들 팔다리 자르고 돈을 많이 버셨구나.
킬러라는 말과 별반 차이가 없을 거 같긴 한데…….
하여간 잘된 일이었다.
고기라니.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바비큐를 먹을 거 같은데…… 영국 음식에서는 순수하게 고기 구워 먹는 게 제일이었다.
하여간 이놈들은 뭔가를 하면 더 맛이 없어지기 마련이었다.
신기하게도…… 늘 그랬다.
“그럼 언제 갈까요?”
“바로 가지. 자네들도 할 일 없지?”
리스턴의 말에 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다니던, 앨프리드와 조지프가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할 일 없냐는 말이 어쩐지 추궁처럼 들렸지만 사실이라서 그랬을 터였다.
다그닥.
하여간 우리는 부자가 된 리스턴 박사의 돈으로 마차 두 대에 나누어 탔다.
한쪽은 우리 일행이 타고 다른 한쪽은 우리의 피크닉을 도와줄 사람들이 탔다.
“이랴, 이랴!”
우리가 탄 마차는 아주 빠른 속도로 런던을 빠져나가 교외로 향했다.
생각보다 런던에서 조금만 빠져나와도 풍경이 되게 좋았다.
진짜 아무 데나 돗자리 펴고 앉으면 될 정도랄까?
물론 부자가 된 리스턴 박사님은 아무 데나 펴지는 않았고, 우리는 작은 별장에 당도했다.
“이것도…… 사셨어요?”
나도…… 해 볼까, 절단…….
“아, 아니. 빌렸지. 요새 주말에 여기 와서 책 보고 쉬고 한다네.”
“아.”
아니, 그래도 아닌 건 아니었다.
내가 갈 길은 정도지 사파가 아니란 말이다.
나는 겨우겨우 주화입마에서 벗어나서 별장을 둘러보았다.
파티를 연다고 하면 좀 작나 싶은 사이즈였지만 혼자 지낼 거면 차고 넘치는 곳이었다.
심지어 고기 굽는 곳은 뒷마당이었다.
땔감이 놓여 있었는데, 같이 온 하인들이 좀 곤란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 교수님?”
“왜 그러나?”
“부싯돌이 없습니까?”
“아아. 부싯돌. 하하하핫. 이것 참. 자네들 어지간히 구식이구만그래.”
가스레인지가 있는 시대가 아니지 않나.
토치도 없고.
결국, 부싯돌이 불 피우는 데 있어서는 최선의 방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 상식도 그러했다.
오죽하면 이제 나도 불 피울 줄 알게 되었겠냐고.
그러나 리스턴은 시대의 상식을 비웃고 있었다.
그야말로 껄껄 웃었다.
그러고는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이거 성냥이라는 건데.”
“성냥? 아니, 그건 엄청 비싼 물건…… 아닙니까?”
“하하하하.”
성냥이 있었어?
그런 시대였어?
‘아, 그러고 보니까 성냥팔이 소녀가 19세기 소설이었지…….’
있기는 있을 거 같았다.
근데 비싸다고?
하인들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어도 내가 살던 시대에는 단 한 번도 성냥이 비싼 물건인 적이 없어서 그랬다.
심지어 성냥팔이 소녀에서도 딱히 비싼 물건으로 묘사된 적은 없는 거 같았다.
“예전에는 그랬지. 하지만 이젠 아니라네. 이게 오스트리아산인데, 신상이야. 생각보다 아주 싸. 물 건너온 물건인데도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만들기 시작하면 더더욱 싸지겠지.”
아, 뭔가 이전 시대의 성냥은 만들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과학의 발전으로…….
치익.
리스턴은 그렇게 말하다가 말고 접지면에 성냥을 슥 하고 그었다.
그 순간 나는 그야말로 영롱한 불빛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할 말을 잊게 만드는 불이었는데, 뭔가 더럽게 위험해 보였다.
“조심하게. 이 불은 붙으면 잘 안 꺼져.”
“네?”
“백린을 써서 그래. 이 생각을 전에는 왜 못했을까? 백린은 싸고 불도 잘 붙는 물질인데 말이야.”
백린…….
백린…….
내가 어디서 저 말을 많이 들었던 거 같은데…….
“연기가 엄청 하얗게 나네요?”
“그래서 백린일세. 하여간 자, 이걸 이렇게 던져두면?”
와.
진짜 화르륵 이라는 수사를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단지 성냥에서 발화한 불빛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격하게, 불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와…….”
“신기한가?”
“네, 무척 신기합니다. 이게 더 들어오게 되면 이제 더 이상…… 부싯돌은 쓰지 않아도 되겠군요?”
“그렇지.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좀 줄까? 여깄네.”
“이 귀한 걸…… 받아도 됩니까?”
“그리 비싼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하하. 근데 조심하게 바지 안에 넣었다가 마찰이 일어나면 불이 붙어.”
“네네. 이 기세를 보니까 조심히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저 심상치 않은 불길.
하얀 연기.
어디서 봤다.
뉴스에서…….
‘전쟁 범죄…… 백린탄…….’
이 미친놈들이 금지된 폭탄 만드는 거로 성냥을 만들었어?
‘이봐…… 신. 역시 여기 내가 있던 지구가 아닌 거지……? 그렇지……?’
나는 하늘을 우러러보다가 이내 백린에 대한 지식을 조금 더 떠올리고는 몸서리를 쳤다.
나도 모르게 코를 막게 되었다.
백린.
이거 인 화합물 중에 유일한 맹독이잖아.
내가 알기론 저 연기도 꽤 독할 터였다.
‘가만…… 가만있자. 이걸 어떻게 만들까?’
하늘에서 뚝 떨어지진 않았을 거 아닌가.
누군가 만들고 있다는 건데, 그 만드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백린에 중독이 될 터였다.
장기적으로는 뼈가 녹아내리게 될 텐데…….
주로는 턱이 그렇게 될 터였다.
진짜 고통스럽게 사망할 거란 얘기.
심지어 치료법은, 아래턱을 절제하는 것뿐인데 이 시기에 플랩이 가능할 리도 없으니 그것 또한 사망 선고나 다름없었다.
‘이건…… 이건 막아야 된다…….’
나는 시원하게 붙어 버린 불을 보며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