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82)
검은 머리 영국 의사-82화(82/505)
82화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냐? [2]
“이거 진짜 신기하네요…….”
나야 경악에 빠져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경악이고 나발이고 그저 신비한 불에 빠져 있을 따름이었다.
사실 나도 모르고 봤으면 아마 넋 놓고 보고 있기는 했을 거 같았다.
그냥 북 하고 긁었더니 화악 하면서 불이 나고…… 그걸 장작에 옮겨 붙이자마자 막…… 막…….
“이렇게 하얀…… 하얀 연기는 처음 봅니다요.”
활활 타는 것도 모자라서 응?
진짜로 이게 왜 백린 즉 ‘White Phosphorus’인지 알게 해 주겠다는 듯 흰 연기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잖아.
나 같아도 구경은 했겠다 싶은 순간, 산업의학 시간에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우리 병원에 급성 중독 센터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중독이라는 게 되게 드물 거 같지만, 의외로 산업 현장에서는 심심치 않게 벌어지기도 하는 일이거든.
“어어, 잠시만! 잠시만!”
아니, 그런 걸 배우지 않았다 해도 저렇게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해로울 거 같다는 생각은 들었어야 정상이었다.
‘기억났다, 기억났어! 시발…… 성냥팔이 소녀…….’
교수님들 중에는 진짜 와 이걸 이렇게 가르친다고? 싶은 사람들도 있는 반면, 수십 년이 지나도 관련 내용이 선명하게 떠오를 정도로 재미나게 가르치는 분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중 산업의학과 교수님은 명백히 후자에 속했다.
그는 전달력이 되게 좋은 편이었는데, 특히 예를 들어 설명하는 데 있어 능한 사람이었다.
그중의 하나가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였다.
-이게 사실은 사회 고발 동화야. 백린 성냥…… 말도 안 되는 물건을 단지 싸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십 년 넘게 팔아먹었거든. 이 백린 성냥이라는 게 어떠냐면 말이야.
모두가 다 아는 동화이지 않나.
어린 시절 한 번도 그거 하나 안 읽어 본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명한 동화인데…….
그래서 여전히 기억에 남았다.
-거기서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 피우고 그 불빛 속에서 여러 가지 상상을 보잖아. 가령 난로, 화려한 저녁 만찬,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것들? 그게 의학적으로 보면 결국 뭐야?
그래도 애들 보라고 쓴 동화인데 해석이 너무 삭막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더욱 그랬던 거 같기도 했다.
지금 떠올려 보니까 확실히 동심 파괴 강의였어…….
-망상 또는 환각이지. 이걸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는데, 당시 성냥팔이 소녀가 처해 있던 상황을 떠올려 보자구. 일단 추웠지? 신발도 뺏었잖아, 동네 불량배들이. 그랬으면 저체온증이 올 텐데…… 저체온증의 증상 중에 그러한 것이 있지. 환각이나 환청 말이야.
그 따뜻한 얘기에 환각이니 환청이니…….
하지만 나도 결국, 의대생이었고 그 후로도 더 훈련을 받아 언제고 차가운 사고가 가능하게 된 의사가 되었다 보니 지금은 나도 모르게 고개가 막 절로 끄덕여진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아마 그랬겠지.
그게 합리적인 판단이자 추론이지…….
-하지만 저체온증보다 훨씬 이러한 증상을 잘 일으키는 게 있는데…… 그게 바로 백린이야. 먹어도 비슷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데…… 사실 섭취로 인한 중독에서는 대개 간 기능 부전을 일으켜. 그보다는 연기를 흡인했을 때 주로 환각, 환청 등을 일으킬 수 있지. 이건 꽤 흔한 부작용이야.
우리는 흔히 백린을 떠올렸을 때, 60도라는 낮은 발화점과 쉬이 꺼지지 않는 불꽃을 생각하기 마련이었다.
한 번이라도 그 참상을 본 사람은 잊을 수가 없을 만큼이나 끔찍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괜히 이걸 쓰면 전쟁 범죄로 처벌받는 게 아니란 얘긴데…….
사실 폭탄이 아니라 중독에 초점을 맞춰 보면 오히려 연기 흡인이 진짜 무서웠다.
-게다가 동화를 잘 보면 마지막엔 남은 성냥을 다 태워서 돌아가신 할머니 환영을 보지? 이 정도로 세게 백린 성냥을 불태우게 되면 갑자기 막대한 양이 흡인되게 되고…… 그럴 경우 구토 및 혈변 등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겪게 돼. 종래에는 호흡곤란과 함께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뭐…… 우리나라 사업장은 중대재해법이 백린에 대해서는 그래도 꽤 세게 적용이 되고 있어서 대개는 괜찮긴 할 텐데. 하여간 알아는 두라고. 언제 어떤 환자를 만나게 될지 모르는 게 의사 인생이다.
정말…….
참된 스승 아닌가.
마지막 말까지 하나하나 가슴을 울리지 않는 구절이 없었다.
세상에 언제 어떤 환자를 만나게 될지 모르는 게 의사 인생이라니.
“자네 왜 그러나? 얼굴이 창백한데?”
하여간 온전한 기억을 떠올린 나는 급하게 달려가, 사람들을 뒤로 물렀다.
다행히 연기가 요란했을 뿐, 사용한 백린 성냥은 하나뿐이다 보니 사방으로 뻗어 나간 유해 물질이 아주 많은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당신은 좀 나와요!”
“왜 그러나. 의사가 이러면 사람들이 보통은 좀 무서워한다네.”
난 아까부터 신기하네 어쩌네 하면서 연기 주변을 얼쩡거리고 있던 이를 잡아끌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리스턴이 나를 말렸다.
그러면 무섭네 어쩌네 하면서였다.
사람들 팔다리 자른 돈으로 돈을 이만큼이나 번 리스턴이 하는 말이다 보니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지만…….
하여간, 나는 그런 말을 하는 대신 약을 팔았다.
-이걸 처음 발견한 사람은 17세기 연금술사 헤닝 브란트야. 그가 소변을 모아다가 증발시키던 중 발광하는 물질, 즉 인(燐)을 발견했지. 대체 왜 그런 짓을 했을까는 의문이긴 한데…… 하여간 나름 위대한 발견이지? 물론, 이미 그 전부터 사람들은 뼈에 불을 붙이면 특이한 불빛이 날 때가 있다는 걸 알았어.
약을 팔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조금 필요한 법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되는 건 아니긴 했지만…….
난 조선인이었다.
신비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에서 온 천재 의사 김태평.
“형. 이거…… 이 불빛. 어디서 많이 봤다 했는데…….”
“어디서 봤나, 이런걸?”
“사람 소변 모아다가 증발시키고, 거기에 불붙이면 이런 식으로 탑니다.”
“어엉……?”
“근데 그 연기 너무 많이 마시면 사람 죽어요!”
“어어엉?”
리스턴은 그야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다른 이들도 그랬다.
내 말이 좀 어이없게 들려서 그럴 터였다.
솔직히 나도 뭣 모르고 그냥 들었으면 이 새끼가 뭐라는 건가 하지 않았겠나.
이해는 가지만 이해 간다고 거기서 납득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이 죽게 생겼잖아!
“일단 이리로!”
“어어. 네.”
다행히 연기 마시고 있던 사람은 내가 이끄는 대로 끌려 나오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제 나도 아는 사람은 아는 나름 유명한 의사가 되지 않았나.
그런 내가 하는 소리를 허투루…….
“속이…….”
하…… 시발.
그게 아니네.
이 양반 벌써 살짝 증상을 보이고 있는 듯했다.
“우웁.”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치료제가 있던가?
있어도 별도리는 없을 터였다.
여기 있겠냐?
‘중화제도 없어, 이거…….’
설상가상으로 딱히 떠오르는 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 없었던 거 같은데…… 그렇다면 그나마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신선한 공기 쐬어 주는 것 외에는 없을 터였다.
일단 농도를 낮추는 게 우선이거든.
“이쪽으로! 여기 누워요.”
해서 나는 조지프의 도움을 받아 환자를 밖으로 끌고 나와 눕혔다.
주변을 돌아보니 온통 숲이었다. 다행히 신선한 공기 하나는 충분해 보였다.
‘휴우…… 불은 딴 걸로 다시…… 아니, 이 미친놈들이.’
그렇게 응급처치를 하고 돌아가니, 리스턴의 주도로 고기를 굽고 있었다.
방금 사람 하나 쓰러지는 걸 봐 놓고도…… 저럴 수 있다고?
무신경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 이리 오게, 이제 연기 색도 괜찮고. 뭐 이왕 붙인 불이니 먹어야지. 저 친구도 좀 저러다 나을 거네.”
아니, 그건 아니었다.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연기 색이 일반적인 색으로 변해 있었다.
양도 확 줄었고.
하긴, 성냥 한 개비 가지고 여기 있는 사람이 다 중독될 거란 걱정하는 것도 좀 우스운 일이었다.
그래도 그렇지 여기서 고기를…….
“일단 무 봐라. 이거 진짜 맛있다니까?”
리스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할 내게 고기를 쥐어다 주었다.
기름이 자글자글 올라온 것이 애초에 꽤 좋은 고기를 쓴 듯했다.
아무리 대영제국이라 해도 이만한 상등품의 고기를 구하는 건 아직 그리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네, 형.”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그 마음이 고마워서 먹었다.
진짜야…….
한낱 고기에 넘어간 건 아니라고…….
“좀 어때요?”
당연하지만 중간중간 환자를 찾아가 용태를 살피기도 했다.
다행히 흡인한 양이 아주 많은 건 아니었는지, 헛구역질을 끝으로 증상이 더 진행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안심하기엔 이른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급성 백린 중독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어…….
‘그냥 좀 시원하게 칼로 째서 해결할 수 있는 병을 보고 싶다…….’
오죽하면 이런 생각까지 들겠어?
그렇다고 이미 발생한 환자 두고 딴생각을 할 수 있을 만큼 정신 나간 의사는 아니어서, 환자를 우선 데리고 병동으로 돌아왔다.
온 김에 내 환자랑 절단 병동에 들렀는데 확실히 비명이 줄어들어 있었다.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흐어어어!”
“으아아아!”
일단 이게 속이 쓰려지잖아?
게다가 아스피린도 아니고 그 전 단계 약이다 보니 진통 효과도 꽤 처질 터였다.
그럼에도 환자들과 의료진 모두는 대만족이라 나는 꽤나 성대한 환영 인파를 볼 수 있었다.
“자네가 정말 우리 병원의 보배로구만!”
그중에는 원장님도 끼어 있었다.
따지고 보면 오늘은 업무 시간에…… 아니, 난 아직 학생이니까 그건 아닌가?
아무튼, 중간에 튀어서 고기까지 구워 먹고 왔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엄지를 추켜세운 채 껄껄 웃고 있었다.
뭔 생각하고 있을지는 뻔했다.
보나 마나 돈인데…….
무작정 욕하기도 어려웠다.
내가 그냥 치료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
‘연구하려면…… 돈이 많아야겠지.’
내가 막 이런저런 지식을 싹 다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을 테지만, 아쉽게도 가지고 있는 지식은 알량한 의학 지식뿐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각계각층, 그중에서도 특히 화학자들이 필요했다.
콘돔 같은 걸로 꼬신다면 모를까, 다른 걸로 꼬시려면 역시 돈이 필요했고.
“네네. 제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좋아, 좋아!”
“그래서 말씀인데…….”
“뭐든지 말하게.”
원장은 마취술과 진통제를 독점한 병원이 앞으로 대체 얼마만큼의 절단술을 독점할 수 있을까 하는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해서 내 말을 허투루 넘기지 못했다.
뭐니 뭐니 해도 난 벌써 2연타석 홈런을 친 몸이잖아.
“오늘 백린 성냥이라는 걸 봤는데…… 그거 너무 위험한 물건입니다. 혹시 원장님이 그걸 막아 줄 수 있을까요?”
“어……?”
“공장에 가서 말만이라도 전해 주십쇼. 그거 위험하다고. 아니면 저랑 같이 가 주시거나요…….”
“아…… 뭐…… 그래, 그러지. 그건 어려운 일은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