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83)
검은 머리 영국 의사-83화(83/505)
83화 해도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냐? [3]
다그닥다그닥.
마차에 타고 가는 동안, 그러니까 원장과 리스턴을 대동하고 가는 동안 나는 생각했다.
뭔 생각을 했냐?
백린 성냥 공장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백린 그거…… 성냥에 묻힐 때 뭐라도 쓰겠지?’
방독면 같은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왜냐.
그런 게 있을 세상이 아니거든.
아니, 있다고 해도 이 시기 공장장들이 그런 걸 노동자들에게 허할 거 같지 않았다.
진짜로 돈에 미쳐 버린 놈들이라, 사람 생명보다도 돈을 훨씬 중시하지 않던가.
아니, 내가 진짜 노동자들 겨드랑이가 왜 쓸려 있는지 물어보다가 너무 놀랐다니까.
밤에 자라고 로프를 걸어 둔다잖아…….
거기 몸 걸어서 자라고…….
별 미친…….
‘마스크라도 하려나?’
마스크.
이건 진짜 아무것도 아닌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 병원도 마스크 안 하긴 해.
해부할 때는 하는데 수술하거나 진료할 때는 아예 안 하더라고?
수술할 때 나는 하는데…… 남들은 그걸 비위가 약해서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거따 대고 달리 뭐라 말을 해 주기가 어려워서 그냥 있었고.
‘남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안 해도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하지 않을까……?’
각종 희망이 섞인 생각들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공장에 도착하는 순간 박살 났다.
“아니…… 이건…….”
공장은 런던 근처에 위치해 있었는데, 말이 공장이지 그냥 허름한 건물이었다.
안에 오가는 이들은 대부분 여자들이었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라면 저거 본다고 전혀 알 수 있는 게 없었겠지만…….
이제 나도 나름 런던 사람이다, 이 말이지?
‘이 새끼들…… 돈도 얼마 안 주는구나?’
이 시기 여성 인권은 그냥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일단 산부인과 병실만 봐도 대강 예상이 가잖아?
근데 돈을 제대로 주겠어?
안 주려고 여자 쓰는 게 뻔했다.
그나마 백린 성냥 만드는 데 힘이 막 들지는 않을 테니, 돈미새들이 떠올릴 수 있을 만한 방법이기는 한데…….
“음. 냄새가 좀 나는구만그래.”
“원장님. 공장에서는 어떤 공장에서건 이 정도 냄새는 납니다.”
“아, 그런가.”
“원장님은 그런데 가 볼 일이 없으시니까, 모르는 것도 당연하죠.”
“자네는 왜 가나?”
“미수금 받으러요.”
“아…… 그래…… 사람 쓰는 거보다는 그게 더 효율적……이겠군그래.”
하여간 언제까지고 충격받았다고 밖에 있을 수는 또 없는 노릇이다 보니 나는 두 의사와 함께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사실 공장 밖에서부터 냄새가 막 나고 있긴 했는데 안으로 들어서자 역한 냄새가 코를 푹 하고 찔렀다.
문제는 이게 뭔 냄샌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백린 냄새라고 해도 큰일이고, 백린 냄새가 아니라고 해도 큰일이었다.
유해한 게 아니었던 무언가가 대체 얼마나 방치가 되었길래 이렇게 유해할 거 같은 냄새를 풍기게 되었냐구…….
끼익.
언제나처럼 앞장서는 것은 리스턴이었다.
수술 미수금 떼먹히면 본인이 직접 나서고, 그것을 주변에 있는 그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의 피지컬을 지닌 그로서는 누구 뒤에 서는 게 익숙지 않을 게 분명했다.
“뭐, 뭐야.”
“다, 당신 누구야……?”
물론 그 말이 그가 앞장서서 오는 걸 다른 이들도 당연히 여길 거라는 말이 되진 않았다.
눈을 마주친 몇 안 되는 남자 직원들은 일단 그들의 수부터 헤아리는 듯했다.
그리곤 우리가 다 힘을 합치면 맞설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듯했고.
100% 안 될 거 같은데…… 라는 느낌을 나도 받을 무렵, 리스턴이 입을 열었다.
“나 리스턴이라는 사람이네. 여기 공장장 아버지 다리도 잘랐는데.”
“어어.”
“접수하러 왔다.”
“큰일 났다! 경찰 불러!”
솔직히 나는 기대했다.
이 양반이 그래도 정상적인 말을 할 거라고…….
그러니까 어?
상대를 좀 다독여 줄 수 있잖아.
나 의사고, 교수고 니들이 그렇게 무서워할 만한 사람 아니라고 할 수 있잖아.
근데 다짜고짜 아빠 다리를 잘랐어?
그게 어떻게 사람 소개 문구가 되냐…….
“자네,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여기서 원장님도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면 정말 좌절할 뻔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이 사람은 다분히 상식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지엄한 얼굴이 되어 리스턴을 꾸짖고, 물론 눈을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앞을 보며 말했다.
“나, 저기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병원 원장일세.”
이쪽도 솔직히 도긴개긴이었다.
리스턴 같은 사람 옆에 서서 원장이라고 하면 그게 설득력이 있겠냐.
하필이면 생긴 것도 약간 깡패 중에 머리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고…….
실제로 그렇게 생겼다는 게 아니라 리스턴 옆에 일행으로 보이면 무조건 깡패라고 생각한다고…….
나는 아마 동양에서 온 신비로운 칼잡이 정도로 보이겠지.
“아, 원장님!”
그러한 내 예상을 깨고 누군가 손을 흔들어 보였다.
딱 봐도 살집이 있어 보이는 것이 잘 먹고 잘사는 사람 같아 보였다.
“아…… 미리 연락을 하긴 했는데 들었구만그래.”
“네. 들었죠. 오랜만입니다, 리스턴 박사님.”
“하하. 아버지는 잘 계시고?”
“가끔 다리가 아프다고 하는 데 없는 다리를 아프다고 하시는 거니…… 이제 가실 때가 되신 거겠죠.”
무식해서 내뱉는 것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섬뜩한 말을 하고 있었다.
원장은 뭐가 되었건 간에 좋은지 허허 웃고는 말을 이었다.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였는데, 그렇지 않아도 이미 공장 사장으로 보이는 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이쪽은 닥터 평. 얘기 들었을 수도 있는데, 마취제를 개발하는데 일조한 친구일세. 진통제도 그렇고. 우리 병원의 보배라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내가 전에 들었던 기억이 나서 말이야. 오스트리아산 백린 성냥, 그거 자네가 여기서 제작해 보겠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 만들고 있는 거 같은데?”
“아…… 그렇죠. 기억력이 진짜 좋으시네요? 그렇지 않아도 만들고는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습니다.”
“쉽지가 않아? 어떤 것이?”
“아시잖습니까, 노동자들. 하는 것도 없으면서 불만만 많고…….”
사장은 마취제와 진통제 얘기를 듣고 날 호의 섞인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인상을 쓰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주변이라기보다는 사방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노려보았다.
“이게 냄새가 좀 난다고 일을 못 하겠다는 놈들이 좀 있어서요. 이렇게 가끔 나와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아하. 그 냄새가 난다 이 말인가.”
원장은 아마 내가 이 자리에 없었으면 동조했을 거 같은 얼굴로, 그러나 지금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섞어 지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이 친구 말이 백린 이거 위험할 수 있다던데?”
“네에?”
그 말에 사장이 방금 전보다도 더 험악해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생긴 건 푸근하게 생겨 가지고 어찌나 야무지게 노려보는지, 나는 나도 모르게 리스턴 박사의 두꺼운 팔 뒤에 몸을 숨겨야만 했다.
팔 뒤에 숨는다는 게 좀 어색한 표현일 수도 있는데 실제로 그게 가능했다.
리스턴은 어마어마한 거구였다.
“위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왜 그러고만 있나?”
그리고 자신이 위협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아는 인간이기도 했다.
그는 상대보다 머리 하나 이상 더 큰 키를 이용해, 위압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사장은 뭔가에 홀린 듯 일단 사과부터 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말을 해 보지.”
상대가 누가 되었건 사과부터 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니.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마법이나 초능력도 실은 이런 광경에서 탄생한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다.
하여간 사장은 어떻게든 이 위기를 회피해 보겠다는 일념하에 빠른 속도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 네네. 백린이 불이 붙어서 사람 몸에 묻으면 위험한 건 사실입니다. 이게 진짜 끔찍하더라고요.”
“우리 얘기는 냄새일세.”
“하지만 냄새 얘기는 금시초문입니다. 이것보다 독한 냄새 나는 것들도 많지 않습니까? 그런 공장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를 저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으음.”
아닌 게 아니라 리스턴은 미수금 문제로 이런저런 공장에 방문해 본 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분자라는 존재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아 냄새로 유해성을 판단하고 있기도 했고.
그 결과, 확실히 사장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인 모양이었다.
저도 모르는 새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형…… 안 돼.’
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의 팔뚝을 잡았다.
다행히 전달되었는지, 그의 얼굴이 다시 험악해졌다.
“이 냄새 얘기하는데 왜 다른 공장 얘기가 나오지?”
“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오면 제가 어찌하면 되는지.”
솔직히 말해서 이딴 물건은 만들면 안 될 것이었다.
백린 성냥이라니.
뭐 이런 걸 만들어서 팔고 자빠졌냐고…….
아무리 싸고 쉽게 만들 수 있어도 그렇지…….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떠한 증거도 없는 마당 아닌가.
듣자니 이제 막 생산을 하기 시작한 모양인데, 그 말은 곧 만성 중독으로 인한 피해자가 나오기 전이라는 뜻이었다.
급성 중독은 알지도 못할 테니 그냥 괴질로 죽었다고 생각할 게 뻔했고.
자기 작업장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그런 태평한 소리를 할 수 있나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얘들은 진짜 그랬다.
“저기…… 저기 작업이 제일 위험해 보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백린에 성냥 대가리를 담그는 곳을 가리켰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더 끔찍했다.
여러 여공들이 어떠한 보호 장치도 없이 백린 앞에 그대로 노출이 되어 있었다.
“어찌…… 어찌하면 되오?”
사장은 내가 처음 입을 열 때는 노려봤지만, 그 즉시 리스턴이 어깨를 감싸 쥐었기 때문에 태도를 바로 달리했다.
여차하면 어깨가 부서질 수 있단 느낌을 받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저 작업에 투입되는 사람들은 계속 교대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꺼운 천으로 코와 입을 가리도록 해 주세요. 저기서 나오는 입…… 아니, 냄새는 위험해요.”
“그…… 네.”
이해하는 얼굴은 아니었다.
공기 중에 백린 입자가 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 테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반드시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 것이 아니듯,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행동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리스턴 앞에 있다면 그러했다.
“내가 종종 오지.”
거기에 더해 리스턴이 이런 말까지 남겼기 때문에 사장은 경황없는 얼굴이 되어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네네. 알겠습니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거기에 더해 사과까지 하고 있었다.
그 주절거림에 가까운 사과는 우리가 공장을 빠져나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 맞다.”
그러다 리스턴이 다시 공장에 들어가자, 사장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모르긴 해도 아마 욕이라도 하고 있었던 게 뻔했다.
“살려 주십쇼.”
“뭔 소리야. 조만간에 아버지 데리고 병원 와.”
“네?”
“그거 환상통이라는 거야. 갈 때가 된 게 아니라. 내가 그것도 치료해 주지.”
“아…….”
이러니저러니 해도 리스턴이 나름 좋은 의사라는 걸 모르고 있을 테니 그럴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