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84)
검은 머리 영국 의사-84화(84/505)
84화 이거 수술해야겠는데? [1]
마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백린 성냥에 빠져 있었다.
연기 마시고 있었다는 얘기는 아니고…….
걱정에 빠져 있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터였다.
이게 걱정이 안 되면 말이 되냐고…….
‘마스크…… 그거 쓴다고 예방이 되나……?’
다른 성냥을 만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내가 그걸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니 그게 참 문제였다.
심지어 다른 성냥이 이름이 뭔지도 몰라.
그러니 어떻게 만드는지 어찌 알겠냐.
대안 없는 반대는 공허할 뿐이다 보니 아예 만들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물론 내가 힘이 있고 돈이 있으면 어떻게든 막았겠지만…….
‘백린에 만성적으로 노출이 되면…… 뼈가 녹을 텐데…….’
백린은 급성 중독이 되어도 참 위험한 독이지만 만성 중독이 되는 것도 위험한 물건이었다.
아니면 중대재해법에서 다루겠나.
딱히 주요 과목에서 다뤘던 것도 아닌데 여전히 기억에 남는 것을 보면 이거 진짜 보통 독이 아니었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하냐?”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다 보니 앨프리드가 말을 걸어왔다.
그는 그야말로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백린 성냥에 의해 발생한 흰 연기가 위험하다는 건 아까 봤으니 알겠는데, 그렇다고 성냥 공장에 가다니.
‘나 같으면 원장한테 다른 대단한 걸 바랐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앨프리드를 보며, 나는 대꾸했다.
“아니, 그냥…… 백린이 걱정이 되어서요.”
“아직 뭐가 어떻게 된 것도 아닌데, 왜 그래?”
그래.
그럴 수 있지.
예방 의학이라는 말조차 없는 세상이잖아?
병이 생겨야 치료를 하지, 아니면 아예 신경도 쓰지 않던 시대다웠다.
아니, 아예 병을 병으로 인식하지 않는 놈들도 많잖아.
나는 애써 웃으며 다른 생각을 떠올렸다.
“그렇죠. 그렇긴 해요. 근데…….”
그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보니까 앨프리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늘 그렇듯 좀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살짝 아파 보였다.
연인 사이도 아닌데 어찌 아냐고?
내가 이 인간 생명의 은인이잖아.
손가락 썩어들어 가는 걸 예방해 준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때는 마취도 없이 그냥 막 해 가지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앨프리드의 아파하는 얼굴만큼은 내가 제일 잘 알아볼 터였다.
“어디 아파요?”
“어? 어어. 아니…… 이게 속이 좀.”
“속? 어디.”
“여기.”
앨프리드는 명치를 가리켰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백린이었다.
급성 중독의 증상 중의 하나가 구토와 복통이잖아…….
‘아니지. 지금 고기 구워 먹은 지 벌써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게다가 앨프리드가 약간 겁쟁이거든?
대체 어떻게 이런 시대에 외과 의사가 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겁쟁이라구.
수상해 보이는 것이 있으면 뒷걸음질 치는 놈답게 아까도 좀 그랬다.
그러니 이건 아예 다른 원인이라고 보는 게 옳을 거 같았다.
그 말은 희망이 있다, 이 말이어서 나는 좀 얼굴을 풀고 물었다.
“언제부터 그래요?”
“어…… 한두 시간? 근데 참을 만해서 그냥 있었지.”
“한두 시간이요? 꽤 오래됐네? 위염인가?”
“그런가 봐. 그냥 뭐…… 괜찮아. 참지 뭐.”
위염이라.
흔한 질환이기는 했다.
현대인에 있어서는 거의 뭐 동반자라고 해도 좋을 수준인데, 사실 이 시대라고 해서 딱히 유병률이 낮았던 건 아니었다.
아무거나 집어넣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뭐든지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이니만큼 위산도 강한지 진짜 많아.
“참긴 뭘 참어. 양배추라도 먹어요.”
“양배추? 그게 효과가 있나?”
“조선에서는 그랬어.”
뭔가 양배추라는 이름이 서양에서 온 배추라는 뜻일 거 같긴 한데…….
이미 쳐 놓은 구라가 산더미만큼인데 뭔 상관이란 말인가.
“아, 그래?”
게다가 내 조선 썰에 대한 신빙성은 이제 아무렇게나 말해도 통하고 있었다.
진짜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거 같어.
“응.”
하여간, 나는 위염이 괴롭긴 해도 구멍만 나지 않는다면 당장 뭐가 어떻게 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잖아?
장기적으로 생각해 보면 방치된 위염과 궤양이 위암의 원인이 되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대의 사람들은 암 걸릴 만큼 오래 사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자, 이거 드셔.”
해서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양배추를 우려다가 물을 마시게 하고 혹시 몰라 양배추도 먹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뭘 먹이면 안 됐다.
“으어어…….”
나와 앨프리드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는 사이였다.
원래는 완전 별관에서 자게 했었는데 아들 살려 줬지, 콘돔도 만들고 있지, 거기에 더해 내가 어지간해서는 나갈 거 같지 않아 보이자 뭔가 포기를 했는지 아저씨가 본관에서 지내도록 조치를 취해 준 덕이었다.
되게 좋았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선배, 아파요?”
게슴츠레 눈을 뜨고, 창밖을 보니 희뿌연 달이 보였다.
늘 하늘이 엉망인 런던임을 감안하면 진짜 한밤중이란 얘기였다.
“죽을 거 같아…… 너무 아파.”
너무 아프다.
이건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선배가 비록 겁쟁이고 살짝 엄살이 있긴 한데, 그것도 19세기 기준 얘기이지 않나.
21세기 기준으로 보면 여기 사람들은 다 관우였다.
아픈 거 진짜 잘 참아.
근데 그런 사람이 너무 아프다고 한다는 건, 잘 봐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 들어가요?”
“어, 어…….”
해서 나는 덩달아 깬 조지프와 함께 선배 방으로 향했다.
선배 방에는 시계가 하나 있어서 살펴보니 벌써 새벽 1시였다.
‘아프다고 한 지가…… 이제 거의 10시간. 양배추즙 먹인 지도…… 벌써 5시간.’
위염일까?
아닐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 인간 양배추만 먹은 게 아니라 수프도 먹었거든?
단순 위염이라면 그로 인한 진정 작용이 있었을 테니 지금쯤 꽤 좋아졌어야 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이 정도로 아파하면 안 되는데…….
“어…… 거기가 아파요?”
그런 생각을 하며 선배에게 다가가니, 선배는 배를 짚고 있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가 아픈 곳을 짚기 마련이거든?
아까까지만 해도 명치를 짚고 있었다.
근데 지금은 우측 하복부를 짚고 있었다.
“어…… 어어.”
이런 시발.
나는 나도 모르게 오랜만에 욕설을 내뱉고는 앨프리드 선배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누워 봐요.”
“으…….”
가까이서 본 선배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범벅이었다.
더럽게 아픈 모양인데…… 이 정도면 진짜 맹장염일 가능성이 높았다.
해서 나는 본능적으로 앨프리드를 똑바로 눕게 한 후, 무릎을 굽혔다.
“어으으으…….”
“평아, 이거 어찌 되는 거냐? 선배 죽어?”
그런 내게 앨프리드는 뭔가 말도 못 했다.
너무 아플 거거든.
중간에 조지프가 좀 이상한 소리를 하긴 했는데, 시대상을 감안해 보면 아주 이상한 일도 아니긴 했다.
이 시기의 죽음이란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존재였거든.
심지어 나이를 가리지도 않았다.
물론 앨프리드 나이 정도 되면 좀 드물긴 한데…….
뭔 아예 안 죽을 거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일단 있어 봐. 선배. 내가 배를 눌러 볼 거예요. 아프면 말해요.”
“어으. 응.”
해서 나는 조지프에게 뭐라 하는 대신 일단 진료를 이어 나갔다.
어차피 다른 말을 할 여유도 없었다.
“여기 어때요.”
“더 아프진…… 으…… 않은데.”
일단 명치를 눌렀다.
처음엔 여길 아파했지만, 압통은 없는 모양이었다.
‘진짜 맹장인가 본데……?’
이쯤 되니 나도 약간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맹장염. 보다 정확히 말하면 충수돌기염은 방사통이라고 해서 명치부터 아프다가 좀 더 진행하면 염증이 직접 복막을 건드리면서 충수돌기가 있는 부위가 아프게 되거든.
다시 말해 명치에서 우측 하복부로 통증 부위가 넘어가게 된다는 건데…….
“여기는?”
“으아악!”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측 하복부를 눌렀더니만 선배가 비명을 질렀다.
용케 움직이지는 않았는데, 잘된 일이었다.
“뗄 때는?”
“으어억!”
반발 압통을 확인할 수 있었거든.
사실 압통 자체는 수술이 필요하지 않은 질환에서도 보일 수 있는데, 지금처럼 손을 뗄 때 발생하는 반발 압통은 대개 수술이 필요한 질환임을 암시했다.
이런 망할.
망할!
‘이거…… 이거 어쩌지…….’
앨프리드.
내가 좀 무시하고 가끔 놀려 먹기도 하고 돈도 후리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여기 와서 조지프 말고 유일하게 내가 정을 준 사람이잖아.
근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사람이 죽게 된다면 너무 상처가 남을 거 같았다.
‘방치하면 죽어…… 그렇다고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어…….’
당장 떠오르는 건 역시 제멜이었다.
방혈의 달인, 제멜.
그 새끼가 지금의 앨프리드를 본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배부터 푹 찔러서 피를 뺄 것이었다.
배를 수술하는 건 금기네 어쩌네 하면서 리스턴 박사도 동조할 거고.
그러니까 지금 앨프리드를 죽이기 위해 모두 합심해서 달려들 거란 얘긴데…….
‘시부랄. 역시 여기서……?’
정신을 차려 보니, 앨프리드가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일단 통증부터 좀 어떻게 해야 할 거 같았다.
“무, 무슨 일인가?”
마침 놀란 얼굴의 아저씨, 즉 앨프리드 선배의 아버지가 들어왔다.
다른 하인들과 함께였는데, 당연하지만 데굴데굴 구르는 앨프리드를 보고 기함했다.
약간 나와 조지프를 잠시 의심하는 듯했지만, 말 그대로 잠시였다.
“배가…… 배가 아파요, 아버지!”
앨프리드 덕이었다.
“병원! 아니, 의사를 부르지!”
아저씨는 대번에 하인들을 불렀다.
그러자 하인 중 발이 날랜 사람이 부리나케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실로 든든하게 보였겠지만, 내가 볼 때는 그저 저승사자로만 보였다.
누굴 불러오든 맹장염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건방진 게 아니라 시대의 한계야, 그게.
“잠깐!”
오직 나만이 앨프리드의 질환을 알고 있고, 또 치료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앨프리드는 남이 아니라, 내 친구였다.
심지어 내게 은혜를 준 사람이기도 했다.
오해를 살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볼 수는 없었다.
해서 나는 우렁차게 외쳤다.
“응?”
“네?”
아저씨도 그렇지만, 하인들도 이미 나를 조선의 귀족이자 막내 도련님의 절친한 친우이며 저명한 의사로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효과는 있었다.
달려가던 이도 멈춰 선 채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제가 보겠습니다. 기구가 필요해요. 지금 즉시 나랑 병원에 가서 기구 들고 옵시다. 그사이에 너는 버드나무 껍질 우려 가지고 좀 먹여. 그럼 통증은 좀 나을 거야.”
“아니, 아니. 잠깐.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자네가 치료를 하겠다고?”
“네. 제가 볼 겁니다.”
“배가 아픈 건데? 이건 내과야. 제멜 박사를 부를 참이었는데.”
안 돼.
제멜만은 안 돼.
그 새끼 신나서 와 가지고 씻지도 않은 바늘 뭉치로 배 찌른다?
거의 무슨 범죄도시야.
아프다는데 사람을 담가…….
“아뇨. 외과적인 질환이에요. 배를 열어야 해요.”
“으응……?”
하지만 이어지는 내 말에 도리어 사람들이 나를 범죄도시 장첸 대하듯 하고 있었다.
하아.
어쩐다, 이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