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85)
검은 머리 영국 의사-85화(85/505)
85화 이거 수술해야겠는데? [2]
“아버님.”
앨프리드가 아니었다면 이쯤에서 물러났을 터였다.
솔직히 무섭다구.
19세기 사람들은 지들이 과학자라고 우길 뿐, 사고방식은 거의 중세 그 자체인 놈들이 태반이었다.
그 말은 엄청나게 보수적이고 심지어 고집쟁이라는 건데…….
그래서 새로운 사실을 잘 받아들이질 않았다.
심지어 그게 동양에서 온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터였다.
“제 말을 한 번만 믿어 주십쇼. 이 손…… 이 손도 저 아니었으면 못 고쳤을 겁니다.”
“으으으…….”
하지만 지금은 달라야 했다.
게다가 언제까지고 죽어 가는 사람들을 단지 무섭다는 이유로 외면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제 나도 꽤 명성이 있어.’
합리화를 시전했지만 그럼에도 겁이 안 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아까 낮에 나를 바라보던 원장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탐욕에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사람 얼굴이 그런가 싶었지만, 이용할 생각을 해 보면 마냥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런 놈이 내가 조금 공격받는다고 내칠까?
솔직히 지금의 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윈데.
아니, 앞으로는 더할 터였다.
“제 의학적 지식이나 실력이 여느 교수보다 못하다고 생각지 않아요. 앨프리드 선배가 괜히 저를 따라다니는 게 아니에요.”
“그…….”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저는 그래요.”
“음…….”
“배…… 열지 않으면 죽어요. 시간이 지나도 죽을 가능성이 크구요.”
맹장염, 그러니까 충수돌기염이라는 게 21세기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건 수술 기술과 항생제 덕분이었다.
생각보다 균은 너무나도 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존재였다.
아예 잡아먹힌다고 해도 좋았다.
진짜로…….
지금은 아직 터진 거 같진 않았다.
터졌다면 잠깐 증상이 호전되는 구간이 있을 거거든.
우측 하복부에만 통증이 국한되는 게 아니라 사방으로 뻗쳐서 본격적인 복막염이 생겼을 거고.
“빨리 열어야 합니다. 물론 선택은 본인과 아버님이 하는 거지만, 약조 드려요. 다른 누가 와서 하는 것보다 제가 나을 겁니다.”
“으음. 음.”
다행히 아저씨는 흔들리고 있었다.
앨프리드 덕일 터였다.
19세기 아들답지 않게 꽤 사근사근한 아들인 앨프리드는 매일같이는 아니더라도 꽤 자주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 편이었거든.
그 대화에 나에 대한 칭찬이 다분히 섞여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자신과 비슷한 증상으로 사망에 이르렀던 선배 얘기가 심금을 울렸는지 그때 아저씨가 내게 작은 반지도 선물해 주었다.
“아, 아버지. 저는…… 저는 평이를 믿습니다…….”
거기에 더해 고통에 몸부림치던 우리 앨프리드 선배의 말까지 더해지자 더 볼 것도 없어졌다.
“이런 제기랄…… 진짜 죽을 수 있는 건가?”
“네.”
“으…… 으아아아!”
게다가 어떠한 진통제도 없이 맹장염을 견디고 있는 앨프리드의 비명 또한 아버지의 마음을 초조하게 하기엔 충분했다.
내가 비록 부모는커녕 결혼도 못 해 본 몸이지만, 간접 경험은 차고 넘치게 하지 않았나.
부모의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는 건 반드시 합리적이기만 할 수 없는 법이었다.
아무리 내가 하는 말이 시대상에 비쳐 볼 때 받아들이기 어려운 종류의 일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 알겠네. 그럼…… 그럼 부탁하네.”
“네, 마차를 대기시켜 주세요. 빨리 병원에 갔다 오겠습니다. 그동안 조지프가 끓인 물을 먹이세요. 증상이 좀 좋아질 겁니다.”
“아아, 알겠네.”
“명심하세요. 증상이 좋아지는 게 통증이 줄어드는 것일 뿐, 뭐가 낫는 건 아닙니다. 그냥 너무 힘들어해서 먹이는 거예요.”
“어…… 알겠네.”
아저씨도 그렇지만 조지프나 앨프리드도 방금 내 말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픈 게 좋아지면 병이 낫는 거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이 시기 사람들에게 진통제란 너무도 귀하거나 또는 상상 속의 존재이니만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21세기에서조차 진통제가 귀한 지역에서는 진통제가 치료제로 통용되지 않았나.
거의 반쯤 억지로 끌려간 의료 봉사지에서 그런 걸 많이도 느꼈더랬다.
“가시죠!”
하여간, 나는 발이 날랜 하인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잠에서 덜 깨 보이던 마부도 함께였는데 술을 마셨나 진짜 미친 듯이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아마 여기 다니는 사람 하나라도 있었으면 죽었겠다 싶을 정도로 내달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경찰이 왔다.
“아…… 상회의…… 실례했습니다. 가시죠.”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 시기에는 음주 운전이라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돈 있고 힘 있는 사람이면 법을 좀 어겨도 괜찮았다.
덕분에 우리는 경찰의 호위까지 받아 가면서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생긴 가방! 그거 들고 와요!”
“네네.”
“해부실은 내가 갈 테니까 걱정 말고요.”
“아, 네. 감사합니다.”
병원에 딱 들어서자마자 발이 날랬던 하인의 몸이 굳어 가는 게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단 냄새부터 압도적이거든.
특히 강의실 가까이에 있는 곳은 해부실습실도 있다 보니 사시사철 역한 냄새가 이리저리 풍겼다.
-으아아아.
거기에 더해 복도 너머로 전해져 오는 비명 또한 익숙지 않은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엔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거기에 더해 해부실습실을 가라고 한다?
치료해야 할 환자가 둘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어쩌면 그 자리에서 송장 치워야 할 수도 있었다.
“어디…… 옳지.”
솔직히 말하면 나도 무서웠다, 여기는.
시신이 일어날까 봐는 아니었다.
내가 그런 쪽으로는 겁이 없는데…….
“에이, 시발. 이놈의 쥐새끼 이거!”
나름 밀봉을 해 놓는 편인데도 어디서 뚫고 들어오는 건지 밤에는 쥐가 있었다.
간혹 해부해 놓은 시신을 훼손하기도 했다.
내가 이거 너무 심각한 문제라고 고쳐야 한다는 건의를 여러 번 했는데…….
별 소용이 없었다.
위에서도 인지는 하고 있지만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긴, 시신을 완전히 밀봉해야 할 텐데 그럴 만한 기술이 없잖아.
아니, 밀봉은 할 텐데 다시는 못 열게 될 터였다.
“옳지. 여깄네.”
그래서 나는 일부러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그러니까 쥐와 벌레들에게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리면서 실습실을 뒤졌다.
기구가 일부 담긴 가방이 있었다.
나름 한번 끓인 물에 담가 두긴 했지만…… 그대로 쓸 수는 없을 터였다.
‘이제…… 한 2시쯤 됐겠지? 복막에 닿기 시작한 지 한 3시간…… 아직 터지려면 시간은 있어. 항생제랑 제대로 된 소염제를 쓰고 있지 못하니 많이 남은 건 아닐 텐데…….’
원래 병원에서 했던 걸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진짜 앨프리드 죽을 터였다.
‘진짜 평소에 내과 놈들 약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했었는데…… 이 시대에 뚝 떨어졌는데 내과였으면 난리 났겠네.’
외과라서 다행이었다.
나는 그래도 칼 한 자루 차고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
막말로 맹장 이것도 내과는 치료 못 할 게 뻔했다.
“찾았어요?”
“네, 이것 맞습니까?”
“어…… 맞네. 그래, 갑시다.”
“네네.”
내가 해부실습실에서 최대한 빨리 가방을 들고나오는 사이, 하인도 강의실에 두었던 내 기구 일부를 들고나왔다.
솔직히 말하면 부족했다.
진짜로 배를 열려고 만들어 둔 게 아니어서 그랬다.
그나마 전에 아저씨가 준 금반지를 팔아서 뭘 만들어 뒀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또 이상한 칼로 째고 숟갈로 배 당기고 할 뻔했다.
“가시죠!”
그렇게 나오자 경찰과 마부가 우리를 데리고 다시금 저택으로 향했다.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촛불과 등불이 여기저기 켜져 있어서, 저택 안은 제법 훤했다.
‘다행이야, 부잣집이라서.’
불이 모자라서 수술 못 하는 일은 없을 거 같았다.
하인도 많다 보니 불 들고 있을 손도 많잖아?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생각을 이어 나가면서, 일단 기구를 한번 삶으라고 지시했다.
그러곤 나는 곧장 앨프리드가 있는 2층 침실로 향했다.
“흐으…….”
버드나무 껍질 달인 물을 마셨는지, 확실히 아까보다는 훨씬 조용해져 있었다.
‘아니, 아니지. 어쩌면 터졌을 수도…….’
안 좋게 생각하면 질환이 좀 진행했을 수도 있었다.
원래 맹장염이라는 게 터지면 당장 증상이 좋아지거든.
근처를 누르고 있던 것들이 사라지니까.
중이염이랑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 쉬웠다.
그것도 고막이 팽창할 때는 막 아프다가 오히려 구멍이 나서 고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아픈 건 좋아지거든.
“좀 어때요?”
“아까보다는…… 아까보다는 나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부리나케 환자 용태를 살폈다.
확실히 안색은 편안해 보였다.
맥도 잘 뛰고.
아직 혈압계가 없어서 혈압을 재진 못하지만, 감으로 미루어 볼 때 적어도 수축기 혈압이 100은 넘는 듯했다.
“잠깐 배 좀. 아까처럼.”
“그럼…… 그럼 아픈데.”
“진행 정도를 봐야 해서 어쩔 수 없어요. 미안해요.”
“으…… 그래. 너 원래 아프게 치료하지…….”
“말을 그렇게 해. 살려 줬더니.”
“미안…… 너무 아파서 그래. 너무…….”
그래, 뭐.
환자가 갑이지.
의사가 되어 가지고 환자한테 뭐라고 할 수는 없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재차 선배를 똑바로 눕히고, 다리를 접어 배가 제일 부드러워지는 자세를 취하게 했다.
“자, 누르면 아픈지 말해요?”
“어…….”
“여기 어때요.”
“으음…… 전이랑 비슷한데?”
그러곤 명치 주변을 눌렀다.
터져서 넘어갔다면 여길 눌러도 자지러지게 아파했을 텐데 다행히 아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여기는?”
“으아아!”
“뗄 때는?”
“으어어어!”
그리고 우측 하복부 근처 또한 비슷했다.
아들이 우린 물을 먹고 좀 나아져서 마음이 풀어져 있던 아저씨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그러곤 얼마 안 있어 하인 하나가 달려 나갔는데, 나는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누가 와도 어차피 연 상태에서는 뭐라 못 할걸.’
이런 생각을 하면서였다.
대신 하인이 들고 온 가방에서 웃음 가스를 꺼냈다.
마침 한번 끓인 물에 담갔던 기구도 올라왔겠다, 하인이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기도 했겠다, 아직 앨프리드의 질환 경과가 심하지 않음도 확인했겠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끼이익.
나는 우선 가스를 틀어 놓고, 주문 제작한, 그러나 조악하기 그지없는 철판 마스크를 앨프리드 얼굴에 올렸다.
이게 가스가 새면 나도 좀 어지러워서 수술을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고.
“으, 으음.”
앨프리드는 곧 정신을 잃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조지프를 돌아보았다.
“너 장갑 끼고, 이거에 손 담가.”
“어…… 어어.”
그러곤 나도 장갑을 끼고 가져온 염화칼슘에 손을 담갔다.
같은 소독약으로 앨프리드의 배도 문댔다.
바로 빨개지는 게 역시 뭔가 다른 소독제를 찾아야 할 거 같긴 한데…… 지금은 그런 걸 고민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이제, 수술 시간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