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86)
검은 머리 영국 의사-86화(86/505)
86화 이거 수술해야겠는데? [3]
“메스.”
“아…… 이거 말하는 거지? 칼?”
“어. 이제 메스라고 하면 알아들을 때도 되지 않았냐?”
“어, 그래. 미안.”
“배나 당겨.”
“어. 근데 이건 왜 당기는 거야?”
이게 수술인지 교육 시간인지 모르겠네…….
진짜 조지프 이 새끼 이거 친구 새끼 아니었으면 한 대 후려 깠을 텐데…….
‘교수님…… 이런 심정이었습니까?’
그거 어떻게 참았냐, 진짜.
생각해 보면 나 학생 때는 진짜 개념 없이 돌아다녔는데…….
억지로 억지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해 보려고 애를 쓰다 보니 그래도 용납이 되기 시작했다.
아니, 합리화가 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무엇이라고 부르건 간에 하여간…….
“배를 당겨야 절개가 똑바로 되지. 해부할 때도 봤잖아?”
“아…… 그런가.”
“잘 봐.”
게다가 나는 어지간한 방해는 방해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수술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외과 교수였다니까?
정식으로 발령받고 얼마 안 되어서 죽긴 했지만.
원래 교수가 되기 위해 수련받는 시기가 진짜 혹독한 법이었다.
지이익.
하여간, 나는 곧 메스로 앨프리드의 맥버니 포인트(McBurney`s Point)를 사선으로 그었다.
조지프는 좀 놀란 얼굴이었다.
애초에 거길 당기라고 했음에도 그랬다.
그럴 수 있는 일이긴 했다.
해부할 때는 호탕하게 명치부터 털 나는 부위까지 쭉 쨌으니까.
그에 비하면 이건 거의 뭐 짼 것도 아니라 느껴지겠지?
심지어 가로로도 긋잖아.
“으음…… 이래서 되나?”
“더 열면 환자 죽어.”
“그래? 언제는 시야가 중요하다더니.”
“물론 잘 보이는 것도 중요하긴 해. 하지만…… 무작정 잘만 보이게 하려고 하면 안 돼. 지금 선배는 여기가 아픈 거라고. 근데 뭐하러 여기를 다 째냐.”
“그런가…….”
“일단 이걸로 당겨. 아니…… 위로 말고. 그래, 양옆으로. 조금만 위로. 그래 그렇게.”
나는 조악하게 만들어 둔 리처드슨(Richardson Retractor, 의료용 개창 기구)을 조지프에게 건네주었다.
솔직히 리처드슨이라기보다는 아미(Army Retractor, 의료용 개창 기구)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뭐가 되었건 당겨지긴 하니까.
“거기, 불 좀. 아니, 시벌. 얼굴 타겠네. 좀 적당히. 그래요, 거기.”
당겨지긴 했는데, 안이 잘 보이진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 뭐 천장에 등이 없잖아.
수술방에는 무영등도 있고, 심지어 헤드라이트도 끼고 들어오니 불이 문제가 될 일이 없는데…….
21세기에서는 당연했던 모든 것이 이곳에서는 사치 수준도 아니고 그냥 꿈도 꿀 수 없는 무언가였다.
‘후.’
나는 등불을 시벌 얼굴에 바짝 댔던 하인을 잠깐 노려보고는 이내 배안을 들여다보았다.
‘생각보다…… 더 어려운데, 이거.’
불.
이게 생각보다 되게 크리티컬했다.
무엇보다 내가 워낙에 좋은 환경에서 수술을 해 온 탓도 있기는 할 터였다.
수술방에서만큼은 직급에 상관없이 무조건 칼 든 놈이 갑이란 말이 있지 않나?
덕분에 나는 교수 달기 전에도 제대로 된 환경에서 수술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헌데 여기는 아무것도 되는 게 없었다.
‘천천히…… 침착하게 하자. 그래도 이건 맹장일 뿐이야. 어려운 수술이 아냐…….’
나는 심호흡을 하고는 검지를 배 안에 집어넣었다.
어려운 수술이기는커녕 기본 수술이지 않나.
과마다 초집도식에 쓰이는 수술이 다른데, 외과는 맹장 수술이 대개 초집도식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그 말인즉슨 레지던트 3년 차 때부터 뻔질나게 해 온 수술이란 얘기였다.
그 후에는 빈도가 줄기는 했지만, 그보다 훨씬 어려운 수술을 해 온 몸이었다.
복부의 해부학적 구조는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잡힐 정도였다.
“옳지.”
나는 회장(Ileum)에서 상행 결장으로 이어지는 부위를 우선 손으로 찾은 후, 맹장 주변을 짚었다.
충수돌기란 다름 아닌 이 맹장에서 꼬리처럼 빠져나온 돌기 같은 구조를 말하는 것이라 그랬다.
‘오동통해…… 엄청 부었네.’
말단 조직인데 맹장과 통하는 부위가 있다 보니 간혹 변 찌꺼기나 단단한 음식물이 그곳을 틀어막으면서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게 자체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고 땡땡 부어 버리는 것이 바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충수돌기염, 보다 흔하게는 맹장염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웃차.”
나는 본래는 홀쭉했어야 할, 그러나 지금은 오동통하게 부어 버린 충수돌기를 배 밖으로 꺼냈다.
덜컥.
딱 그때 문이 열렸다.
고개를 굳이 돌리진 않았다.
중요한 순간이라 그랬고, 이쯤 되었으면 감히 방해를 하지 못할 거란 예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저, 주인님. 모시고 왔습니다!”
“쉿. 조용히.”
“네?”
“닥터 피영이…… 잘하고 있는 듯하니 일단 있게.”
역시.
그 어떤 행위도 일정한 경지 위에 다다르면 문외한이 보기에도 뭔가 달라 보이게 되는 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내 맹장 수술은 일종의 예술 아니겠나.
칼 쥔 후로 단 한 번의 막힘도 없이 일사천리로 쫙쫙 해내 온 참이었다.
게다가 방금 내가 배 밖으로 빼낸 거.
이거…….
딱 봐도 이상하잖아?
이게 원인일 거 같잖아?
핑크빛이 감돌아야 할 내장이 검붉게 변해서 터질 것처럼 부어 있으니, 모르는 사람이 봐도 저건 없애야 할 거 같단 생각이 들 터였다.
“난 그럼 왜 데려온 거요?”
늙수그레한 목소리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외과 의사면 리스턴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혹시 몰라서. 이것 죄송하게 되었소.”
“죄송이라니! 그런 말로 넘어가려고? 저기 저 꼴을 보게! 배를 열다니! 이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하지만 저걸 보세요.”
물론 계속 쳐다보고 있진 않았다.
서둘러야 하거든.
선배가 지금 당장 위험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항생제가 없는 게 크나큰 문제일 뿐이었다.
배 열고 시간 끌어서 좋을 게 있겠나?
균 들어갈 시간이 늘어난다고 봐도 무방했다.
지이익.
나는 충수돌기를 뿌리에서부터 실로 묶었다.
원래 같으면 바이크릴이나 또는 멸균 실크로 묶어야 할 텐데…….
지금은 그냥 일반 실밖에 없어서 그걸 쓰고 있었다.
그냥 쓰는 건 아니고, 한번 삶기는 했지만 이게 문제가 될 수 있을 터였다.
‘그래도…… 우리 선배는 강하니까.’
솔직히 죽으려면 전에 손가락 다쳤을 때 죽었어야지.
시신에서 묻은 균도 이겨 냈던 사람이 설마 맹장 따위로 죽겠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꾹 묶고는 손을 내밀었다.
“가위.”
“어? 어.”
조지프는 이제 아까와는 좀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저씨도 심상찮음을 느꼈을 지경인데, 그래도 의대생인 조지프는 뭘 느꼈겠나.
아마도 묻고 싶은 것도 많아졌을 터였다.
왜냐?
이건 단순히 천재라는 걸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거거든.
시대를 100년 이상 뛰어넘은 술기는 제아무리 조악한 기구로 이루어진 것이라 해도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너…… 그러다 까딱하면 기도하겠다?’
다행이라고 할까?
녀석은 어쩐지 신성한 무엇을 목도한 듯한 눈을 하고 있었다.
이걸 뭐라고 하더라?
아, 그래.
은혜받은 얼굴이었다.
뚝.
하여간 나는 그렇게 건네받은 가위로 충수돌기를 잘랐다.
그러곤 충구돌기를 옆에 철제 기구 위에 올려놓았다.
원래 수술방에서는 이걸로 끝이었다.
검체는 그대로 병리과로 갈 테니.
허나 여기 병리과가 있나?
아니, 의심쟁이만 있을 뿐이었다.
아저씨는 이미 감명받은 지 오래고, 보호자가 저러고 있으니 딱히 문제 될 일이 없기는 할 텐데…….
‘저 의사인지 뭔지 좀 거슬리네…….’
늙수그레한 놈이 좀 마음에 걸렸다.
“메스.”
“응? 또 째?”
“이거. 어떻게 생겼는지 안 궁금하냐?”
“아…… 궁금하긴 해.”
“냄새날 테니까, 주의해.”
“어? 어어어.”
조지프는 내 말에 메스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 메스를 들고 잠시 의사를 돌아보았다가, 이내 슥 하고 그었다.
“으읍.”
“아우.”
“이게 뭔…….”
잔뜩 부어 있던 충수돌기가 갈라지자마자 냄새가 방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솔직히 그전에도 약간의 피비린내 때문에 빈말로도 좋은 냄새가 난다고는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비린내 따위는 생각도 안 날 만큼 심한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저게 몸 안에 있었다니. 제거하길 잘했구만.”
“으, 으음.”
“아직도 배를 째는 게 잘못이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 커흠.”
의사는 아저씨의 말에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표정은 여전히 불만이긴 했지만 뭐 어쩌겠나.
아는 게 하나도 없을 텐데.
막말로 지금 내가 뗀 게 어디 부위에서 나온 건지도 모를걸?
복부는 금기의 영역이고, 이 시대에서만큼은 나름 해부학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리스턴조차도 연구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어서 지식이 짧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좋아. 이제 닫자.”
“어? 닫아?”
“배 열어 두려고?”
“아…… 그렇지. 닫아야지. 근데 어떻게……?”
“잘 봐.”
기본적인 바늘만 있던 때랑은 사정이 달라진 참이었다.
이젠 나름 내가 따로 주문 제작한, 그러니까 이 시기 상식으로는 그저 낚싯바늘 비슷하게 생긴 바늘이 생긴 참이었다.
이걸 이용하면, 확실히 제대로 꿰맬 수 있었다.
푹.
물론 실의 한계로 인해 레이어를 다 맞춰서 봉합하는 건 절대 무리긴 한데…….
그래도 전에 결석 환자 볼 때와는 달리, 이제는 나름 더 얇은 실을 쓰고 있어서 복막과 배 근육과 피부 두 부위는 나눠서 봉합할 수 있었다.
후후.
“와…….”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한 번에 당겨 꿰매면 절대 모양이 이렇게 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복막만 따로 당겨서 꿰매면,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거의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었다.
애초에 절개 자체가 깔끔하게 이루어진 덕이긴 한데.
하여간, 앨프리드 선배의 복막은 빗금 쳐진 실만 제외하면 건든 적도 없는 것처럼 깔끔하게 붙어 있었다.
푹.
나는 주변의 환호성에 어깨가 들썩이려는 걸 참아 가면서 배를 닫아 나갔다.
“와…….”
“넌 가위로 이거 잘라야지.”
“어? 어어.”
“너무 바짝 자르지 말고. 나중에 풀어야 하니까 1cm는 남기고 잘라.”
“cm?”
“아……. 손톱만큼.”
“어, 어어.”
툭툭 피부도 닫아 나가자, 주변의 환성은 더더욱 커져만 가고 있었다.
배를 크게 열고 닫을 땐 장력을 많이 견뎌야 하기에 모양을 전혀 고려하지 않지만 이런 식의 절개는 여유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피부 또한 빗금처럼 지나가는 실만 아니면 쨌나 싶을 정도로 깔끔하게 붙어 있었다.
일찍이 이런 식의 봉합은 본 적이 있기는커녕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이들이다 보니 환호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수술방에서 조용히 해야 한단 상식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저들이 입을 열 때마다 감염 위험도 올라가는 거라 거슬리긴 했지만, 아직 그런 얘기까지 하는 건 너무 이른 감이 있었다.
“자, 끝났습니다. 우선 지켜보도록 하죠. 수술은 잘됐습니다.”
여전히 나는 홀로 많은 것을 짊어지고 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