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87)
검은 머리 영국 의사-87화(87/505)
87화 수은. 염화수은 [1]
와…….
맹장 수술 하루 이틀 해 본 게 아닌데…….
아무리 나라고 해도 19세기의 수술은 너무 긴장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진짜 한숨도 못 잤어.
“피영. 자네 잠은 자야 되는 거 아닌가?”
어찌나 긴장했는지, 나는 보호자인 아저씨도 자는 와중에 선배 옆에 딱 달라붙어서 말 그대로 간호를 했다.
아니, 이걸 간호라고 할 수 있을까.
누누이 말했듯, 난 꽤 뛰어난 의사다.
이게 진짜 그냥 막 하는 소리가 아니라……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 뛰어난 의사라구.
그런 내게는 환자가, 선배가 보여 주는 모든 소견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선배…… 꽤 잘 버티고 있어요.”
“내가 봐도 어제보다는 훨씬 좋아 보이네.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지. 남은 평생 자네가 돈 걱정할 일은 없게 만들어 주겠네.”
“그…… 감사합니다.”
“뭐, 콘돔 때문에라도 돈을 벌기는 하겠지만. 하여간…… 내 정말 섭섭지 않게 해 주겠네.”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듣게 된 것은 정말 사소한 소득이었다.
나는 밤새 삼라만상을 느꼈다.
거의 뭐 득도해서 승천하겄어.
‘어…… 열난다. 설마 무기폐는 아니겠지?’
일단 선배는 꽤 열이 났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기는 했다.
열 내리는 수단이 딱히 없잖아.
게다가 마취도 개판이었다.
정말 통증 안 느끼고 수술할 수 있었던 거.
그것만 해도 감사할 정도.
“선배. 선배. 숨 쉬어. 숨 크게.”
“후…… 하…….”
무기폐.
쉽게 말해 폐에 바람이 안 가서 쪼그라든 상황이라고 보면 되었다.
이건 오히려 현대적인 마취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였다.
인공호흡기, 즉 벤틸레이터를 쓰면 원래 호흡기 용적 그대로 공기를 불어 넣지 못하거든.
그럼 그만큼 공기가 제대로 못 들어가는 폐의 부위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거기서 열이 나는 건데…… 이 원시적인 마취 가스 또한 의식을 날려 버리는 것이다 보니 숨이 온전하지 못해 더더욱 무기폐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리스턴 박사님 방식이…… 아직은 옳은 걸지도 몰라.’
절단 수술은 전보단 느려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분 단위 수술이었다.
그러다 보니, 무기폐가 발생할 일이 없었다.
허나 축농증 수술을 해 봤더니 그땐 달랐다.
확실히…… 열이 나더라고?
같은 원인일 거라고 생각한 나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같은 원인일 거라 생각하기로 한 나는 일단 선배에게 심호흡을 시켰다.
“후우…… 하아…….”
선배는 영문도 모르는 채로 심호흡을 이어 나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맹장염으로 엄청 아팠지…….
배는 열었지…….
열도 나지…….
정신이 있으면 그게 정상이겠어?
“옳지. 좋아.”
청진기가 있었으면 여기저기 소리를 들어 보면 좋으련만.
그게 없으니 귀로 직접 들어야만 했다.
“어맛. 죄송합니다.”
“어. 그런 거 아닙니다.”
“아뇨, 아뇨.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니라니까, 시발!”
이게 근데 선배도 성인이 다 되어 가는 남자라 그런가, 가죽이 두꺼웠다.
특히 가슴팍이 쓸데없이 두꺼워서 귀를 진짜 바짝 대고 이리저리 움직여야만 했다.
그 꼴을 하필 이때 방에 들어오던 하녀가 봤다.
그냥 흠흠 하고 들어왔으면 더 나았을 텐데…….
이 사람이 배려랍시고 뒤로 황급히 뒤로 나가다 보니 오히려 기분이 묘해졌다.
“하아, 후우.”
그 와중에 선배는 숨 몰아쉬고 있지…….
나는 어찌 되었건 귀는 대고 있지…….
“어휴, 어휴.”
하녀는 연신 놀란 가슴 진정시키고 있지…….
‘시벌…….’
다시 생각해도 열이 뻗치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난 시간이 딱히 후회가 되는 건 아니었다.
덕분에 선배가 일단 살아 있거든.
“쌔액…… 쌔액…….”
잠도 잘 자고…….
지금은 열도 내렸다.
간밤에 꽤 오랜 시간 깨서 숨을 몰아쉬었으니 무기폐는 완전히 해결이 된 모양이었다.
증상만 좋아진 것이 아니라 귀를 대고 들어 봐도 숨소리가 골고루 잘 들렸다.
“야, 학교는?”
옆에 있긴 했는데 어린놈답게 그대로 뻗어 자던 조지프가 졸린 눈을 비비며 내게 물었다.
이 새끼야 뭐 자고 지금 일어난 만큼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알지 못했다.
따지고 보면 교수는 밤새는데 인턴 아니, 실습 학생은 잠을 처잔 미친 상황인데…….
아는 게 없으니 어쩔 수 없긴 했다.
얘가 뭘 알겠냐.
배 수술이 얼마나 위험한지 어떻게 알아.
특히 지금처럼 제대로 소독도 못 하고, 마취도 제대로 된 게 아니고, 그렇다고 항생제도 없고…….
‘하, 시발.’
그런 상황에서 나는 선배를 일단 살려 뒀다.
목숨 줄을 이승에 붙들어 매 놨다고.
교수님 있었으면 진짜 칭찬 많이 해 줬을 텐데.
다른 놈들 있었으면 추앙했을 테고.
‘아는 게 없는 놈들밖에 없으니까, 추앙하는 놈들이 없네…….’
에이, 시바.
나는 속으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애써 던져 놓고는 조지프를 돌아봤다.
“그래, 가자.”
뭐가 되었건 해결은 되지 않았나.
무엇보다 병원에도 환자가 너무 많았다.
축농증 수술한 둘도 있고, 환상통 환자들도 있고, 절단 병동 환자들도 약 먹으면서 어찌 되는지 추이를 봐야 했다.
그래 봐야 통증 조절뿐이긴 하지만…….
이 시대에서 통증 조절은 치료 그 자체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선배는 괜찮은 거지?”
“빨리도 물어보네. 일단은 괜찮아. 근데…… 일단 잘 봐야 해. 전에 손이랑 비슷한 상황이라고 봐야 해.”
“아후…… 그럼 엄청 고생하겠네. 그럼 매일 배 열고 소독해야 해?”
“응? 무슨 그런 끔찍한…… 아냐. 그런 일은 없어야지.”
다시 배를 열어야 한다는 건…… 안에 아예 고름이 들이찼다는 얘기지 않나.
항생제가 있는 상황에서조차 만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근데 이런 상황에서?
다시 여는 것보다는 차라리 온전한 시신 채로 죽게 두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다그닥.
하여간 우리는 마차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어이, 왔냐. 환상통 환자들이 정말 좋아졌네.”
안에 들어서자 얼마 지나지 않아 리스턴 박사님이 다가왔다.
언제나 얼굴이 무서우면서도 유쾌해 보였는데 오늘도 그랬다.
‘이 얼굴도 자꾸 보니까…… 약간 변화가 느껴지기는 한데……?’
놀랍게도 그 안에서 나는 약간의 차이를 알아냈다.
“저기 봐. 저 환자도 좋아졌다고.”
“어……?”
“알아보겠나?”
“네, 그럼요. 그때 선의란 사람이 데려왔던 그 사람 아닙니까?”
“맞네. 하하, 요새 소문이 나서 그런가. 많이 오던데…… 저 친구도 와서 도움을 받고 있다네.”
“잘됐네요! 정말.”
왜 그런가 하고 봤더니, 팔 여러 번 잘려서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사람이 여기 와 있었다.
한결 얼굴이 좋아져 있었다.
거울 치료가 도움이 되어서 그랬다.
하여간, 팔 자르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나.
“아, 근데 앨프리드는 왜 안 보이나?”
“아…… 그게. 어제 아파 가지고요.”
“아파? 다쳤나? 팔다리는 괜찮고?”
오.
이제 보니까 우리 앨프리드가 팔 잘릴 뻔했네.
아무튼, 나는 대강 정리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맹장염이 생겨서 배 열고 뗐다는 말도 했는데, 그래도 될 만한 상대라 생각해서였다.
“오…… 역시 자네는 대단하구만.”
“감사합니다. 아직 상태를 두고 보기는 해야 합니다.”
과연 그랬다.
리스턴이 기분이 유독 좋아서 더 그랬다.
오늘만큼은 좋은 게 좋은 거다, 뭐 이런 느낌이랄까?
“아, 그리고 여기 절단 병동 환자들도 좋아졌네.”
“일단 비명이 크게 안 들리니까…… 그런 거 같긴 하네요.”
“그래, 그렇다니까. 확실히 응? 그 수상쩍은 물은 아무리 자네라도 내가 좀 그랬는데. 막상 먹어 보니까 좋더라고, 나도.”
“다행이죠. 근데 속 쓰려 하는 건 좀 어때요?”
“그건 좀 있긴 한데. 팔다리 아파하던 것보다는 훨씬 낫지. 당연하지 않겠나?”
리스턴은 껄껄 웃으면서 쿠키를 내게 건네주었다.
맛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냥 밀가루 느낌?
“이걸 같이 먹으니까 좀 낫다고 하던데. 차차 봐야지.”
“아…… 그거 썩 괜찮을 거 같네요.”
“하여간, 한번 보지.”
“네.”
거울 치료실을 지나 절단 병동 안으로 들어섰다.
확실히 조용했다.
전보다는.
물론 19세기 기준으로 조용하다는 거지, 실제로도 조용한 건 아니었다.
여기서 공부하려면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껴도 안 돼, 이거.
“괜찮아요?”
“네네.”
“괜찮죠?”
“네.”
“좋습니다.”
“네.”
리스턴의 회진은 진짜 거의 무슨 원장님 회진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얼굴로 괜찮냐고 묻는데,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대체 어디겠나.
당장 뒤질 거 같은 사람 아니면 무조건 고개 끄덕이지.
나도 아마 괜찮냐고 물어보면…….
영문도 모르고 일단 고개 끄덕끄덕할걸?
“어…….”
하여간, 그렇게 뒤를 졸졸 따라다니다 보니 텅 빈 침대 하나가 들어왔다.
원래 사람이 있던 침대였다.
누구더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가슴은 서늘해졌다.
왜냐…….
이 시기 병원에서는 병상이 비면 일단 사람이 죽은 거거든…….
“이거…… 킬리언 병상 아닙니까?”
“응? 아, 그 새끼. 어? 도망갔나?”
근데 이게 킬리언 병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병상 철제 기둥에 이리저리 결박용으로 매어 놓은, 더러운 붕대 같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죽은 걸까요?”
“죽어? 매독이라고 해도…… 딱히 죽을 거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혹시 모르는 일이죠.”
매독 때문이 아니라 치료로 쓰고 있는 수은 때문에 죽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까, 옆에 있던 환자가 다가왔다.
내가 준 약 아닌 약을 먹고 일단 통증이 가라앉은 환자였다.
“아까 사람들이 끌고 가던데요?”
그렇게 내가 들은 말은 꽤 어이없는 말이었다.
아니, 충격적이라고 할까?
“네? 끌고 가요?”
“뭔 소린가 그게?”
이게 나한테만이 아니라 리스턴 박사에게도 그랬다.
병원에서 사람을 끌고 간다는 게 뭔 말이야.
경찰인가?
“병원 사람들인 거 같은데…… 그…… 그래, 제멜 박사님이라고 하던데요?”
경찰이면 차라리 괜찮을 터였다.
그 사람들한테는 아무리 독하게 걸린다 해도 쥐여 터지기나 하지 죽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병원 사람들에게 끌려갔다는 건, 뭔가 치료를 하러 갔다는 얘기 아니겠어?
이상하게 이 시기 의사들은 치료에 진심일수록 사람이 죽어 나간단 말이야…….
“어디로…… 어디로 갔습니까?”
킬리언이 나쁜 놈인 건 맞았다.
치료제도 없는 병을 퍼뜨렸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개처럼 끌려가서 죽는 건 아니었다.
사람이 그렇게 죽어서는 안 돼.
“몰라요. 매독 치료하러 갔겠죠.”
하필 또 매독이야.
약도 없는 병을 어찌 고치겠다고.
나는 마음이 급해져 밖으로 향했다.
“자네, 어디 가나? 치료하러 갔다는데. 잘 낫겠지.”
리스턴은 뒤에서 저딴 소리나 하고 있으니 나라도 나서야지.
“으아아아.”
잘 들어 보니, 절단 병동의 반대편에서 아스라이 번져 오는 비명이 있었다.
킬리언의 목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사람 하나 잡고 있는 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