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88)
검은 머리 영국 의사-88화(88/505)
88화 수은. 염화수은 [2]
-흐아아아아!
복도를 따라 울리는 비명은 일견 스산하기까지 했다.
당연했다.
사람 잡는 소리였으니까.
19세기 의사들은 좀 게을러도 좋을 거 같은데, 쓸데없이 부지런한 게 탈이었다.
‘아니…… 환자 데려갈 거면 좀 물어보고…… 아닌가? 따지고 보면 우리 환자는 아니긴 해.’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것도 문제였다.
이게…… 일단 의료 소송이라는 말 자체도 없을뿐더러 이 환자를 대체 누가 어떻게 본 건지에 대한 기록도 제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방금도 옆에 있던 환자가 얘기해 주지 않았다면 엄연히 내부인이라 할 수 있는 나도 모르게 끌려가는 거잖아?
벌커덕.
하여간 나는 비명 소리를 따라 걸었다.
그 끝에는 정말이지 생전 처음 와 보는 방이 있었다.
딱 봐도 어딘지 모르게 음산해 보이는 곳이었다.
분위기만 봐서는 해부실습실이라고 해도 좋을 거 같았다.
애초에…… 병동 바로 옆에 해부실습실이 있는 게 말이 되냐.
이쯤에 있는 게 여러모로 옳지.
“오.”
“자네 왔는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밖에서 상상했던 것보다도 더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우선 제멜이 허허 웃고 있었다.
앞에서 킬리언이 두려움에 떨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마 결과가 어찌 되었건 간에 의도는 치료에 있어서 저리 당당한 거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수술한답시고 칼 휘두를 때 저렇게 웃진 않잖아.
저건 숫제 망나니의 광기 어린 미소 그 자체였다.
물론 이건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진짜는 따로 있었다.
“무슨…… 무슨 짓을 한 거예요?”
킬리언은 침을 질질 흘려 대고 있었다.
그 왜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이런 사람이 꼭 나중에 정신 멀쩡한 얼굴로 조언하고 죽는데…… 딱 그런 몰골이었다.
물론 그건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고 현실에서는 그냥 점점 더 힘을 흘리다 잘못될 공산이 훨씬 컸다.
“하하. 캘러멜(Calomel)이라는 약을 아는가?”
“캐러멜이요……?”
그건 약이 아니라 간식거리 아닌가?
갈색의 달콤하고 끈적한.
나도 몇 번인가 먹어 봤는데, 그거 먹는다고 절대 저렇게 되지는 않았다.
애초에 저런 몰골이 될 만한 음식이면 시발 어디에서도 팔면 안 되지.
“수은에 어떤 가공 처리를 한 건데……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는 약일세.”
“카타르시스……?”
나도 소싯적에 글깨나 읽어 봤던 몸이었다.
특히 소설을 좋아했다.
좋은 소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는 법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것이 조금 저열한 방식의 카타르시스건 혹은 고급스러운 방식의 카타르시스건 간에…….
“뭔 소리예요?”
나는 아까보다는 살짝 가까이 다가갔다.
부리나케 달려가 킬리언의 용태를 살피고도 싶었지만 너무 무서워서 그랬다.
나는 외과 의사라 이런 걸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란 말이야.
개무서워 진짜…….
“으, 으아아. 이거. 이거!”
“옳지. 변이 마렵나 보구만. 싸게. 마음껏 싸!”
“으, 으으으!”
안타깝게도 내 질문에 대한 답은 들을 수가 없었다.
상황이 급변해서 그랬다.
방금 전까지 의식이 온전치 않은 사람처럼 침을 질질 흘리던 킬리언이 돌연 엉덩이를 움켜쥐고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리고 있었다.
아니, 뭐가 마려운 게 맞았다.
“여기, 여길세.”
그런 킬리언을 향해 제멜이 말했다.
공개된 철판을 가리키면서였다.
순간 킬리언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지 오래다 보니 뭔가 의미 있는 말을 하진 못했는데, 그래도 상관없었다.
저 얼굴은 사람이라면 알아볼 수 있어.
이게 뭔 미친 소리냐는 뜻이지.
“여기에 싸라고.”
하지만 제멜은 사람이 아닌지 그저 멀쩡한 얼굴로 철판을 가리킬 뿐이었다.
“으허.”
결국, 굴복한 것은 킬리언이었다.
이름마저도 강해 보이는 킬리언, 강한 사람의 상징 아일랜드계 뱃사람 킬리언은 여럿이 보는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철판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곤 무언가를 마구 배설했는데, 색이 시커멨다.
“답즙이 나오는구만. 그래, 안에 안 좋은 것을 다 쏟아 내게. 그러다 보면 매독도 나을 거야.”
“아니. 이거…….”
“자네는 처음 보는 모양이로구만. 나도 자주 쓰는 방법은 아니네만, 하하. 효과는 확실하다네.”
“뭐가…… 이거…….”
이 미친놈이.
저기에 뭔가 많이 뒤섞여 있긴 할 터였다.
하지만 내가 단언하건대 매독균은 없을 게 분명했다.
아니, 저 색이 담즙 때문에 저렇게 된 것도 아니었다.
저건…….
저건 응급실에서 당직 서다 보면 많이 보는 색이었다.
‘멜레나(Melena)…….’
혈변이라고 하면 보통 붉은 것을 떠올릴 텐데, 그건 항문이나 직장 또는 대장에서 출혈이 있을 때나 그렇게 나타나는 법이었다.
상복부 위장관의 출혈은 이미 혈액에 있던 물은 흡수가 되어 버리고 또 철분은 산화되기 때문에 붉다기보다는 검게 나오기 마련이었다.
마냥 검다기보다는 약간 짜장면처럼 윤기가 도는데…….
“킬리언, 어지럽지는 않아요?”
“어지러워…… 으…….”
그 교과서적인 형상이 딱 여기 있었다.
캐러멜인지 나발인지 하는 약의 성분이 뭔지는 몰라도 그게 위장관 출혈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장의 활동을 증가시켜 이런 식으로 배출이 되는 모양인데…….
요약하자면 큰일 났다는 뜻이었다.
“얼굴 하얘졌구만. 좋아.”
그 와중에 제멜은 급성 출혈로 인해 얼굴까지 창백해진 킬리언을 보며 좋다고 했다.
뭔가 지령이라도 받은 건가 싶었다.
‘복수……? 그런 건가?’
치료를 빙자해 고문하다가 죽이려는 건가?
그렇다면 지금의 행동과 태도가 십분 이해가 되었다.
그렇잖아.
그게 아니라면 사람이 사람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평소와 같습니다, 교수님.”
“그래, 잘 기록해 두게. 캘러멜은 하제로써 효과가 아주 좋아. 이걸 아예 밖에다 팔아 볼까?”
“잘 팔릴 거 같은데요?”
아.
그냥 악마 새끼들인가?
나는 돌아가는 대화를 들으며 킬리언의 용태를 살폈다.
혹 캘러멜이라는 약이 다른 독약들처럼 내게도 악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품 안에 들고 다니던 장갑을 꼈다.
소독용이 아니라 나를 보호할 필요가 있을 때 쓰던 거라 살짝 지저분했지만 내가 킬리언이라면 이런 관심도 감지덕지할 거 같았다.
“괜찮아요? 일단 앉아. 여기. 아니, 그만 싸고…….”
“으…… 고마…… 고마워…… 날 여기서…… 제발…….”
다 큰 성인이 애원하는 걸 본 적이 있나?
그것도 누가 봐도 거칠어 보이는 사내가?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나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마음이 되게 묘했다.
뭔가…… 어떻게 해서건 돕고 싶어진달까?
“내가 빵 썩으면 잘 골라서 올 테니까 그때까지는 버텨요.”
그러다 보니 지금 선배 집 곳곳에서 썩고 있을 빵이 떠올랐다.
그중에 하나 정도는 페니실린의 원료가 되는 페니실리움이 있지 않겠어?
물론 뭔가 다른 나쁜 것들도 같이 먹게 되긴 하겠지만.
나쁜 것이라면 이미 충분히 먹고 있는 거 같았다.
“안…… 안 돼…… 죄다 개새끼들…….”
그런 내 말을 곡해한 킬리언이 절규했다.
하긴 썩은 빵이 어감이 딱히 좋은 말은 아니긴 해.
그래도 내 호의를 무시하다니 용서할 수 없…….
“좋아. 이 효과가 완전히 가시기 전에.”
내가 그렇게 킬리언에게 섭섭함을 느끼려는 찰나, 냄새도 안 나는지 씩씩하게 걸어온 제멜의 조수 하나가 킬리언의 바지를 끌어 올렸다.
“아니, 닦을 기회라도 주지.”
변 성상이 물렁해서 진짜 많이 묻을 텐데…….
이런 말은 해 봐야 소용이 없었다.
만약 청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여기 병상이 고름 천지겠나.
그 와중에 나와 조지프, 앨프리드가 손 열심히 닦고, 시트 갈고 하고 있는 건 어찌 보면 기적이라기보다 이단에 가까웠다.
이 시기는 위생이라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깨끗하면 안 된다는 믿음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태반이었으니까.
문제는 의사들도 그런다는 건데…….
“자아…… 들어가!”
내가 어버버 하는 사이, 그리고 킬리언도 어버버 하는 사이 킬리언은 어느새 방 안에 마련되어 있던 또 다른 방 안으로 등 떠밀려 들어갔다.
“어…….”
그 방 안에는 관 같은 것이 있었다.
아니, 관인가?
이제 집행인가?
이런 생각이 막 드는 찰나, 진짜로 조수들이 관짝을 열어젖혔다.
그 안에는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그냥 눈으로 보기만 했을 땐 나름 아름다운 무언가였다.
“이건…….”
“퀵실버…… 수은일세. 귀한 거야. 이만큼 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지.”
쉬운 일은 아닐 거 같았다.
퀵실버, 그러니까 빠르게 움직이는 은이란 별명이 붙어 있을 만큼이나 수은은 꽤 귀한 취급을 받았거든.
물론 21세기에도 어떤 산업에서는 그런 대우를 받았을 거 같긴 한데, 내가 봤을 때 수은의 전성기는 야만의 시대에 머물러 있을 게 뻔했다.
가령 지금과 같은……?
“들어가!”
“네? 어딜…… 지금 사람을 왜.”
“걱정 말게. 숨 쉴 수 있게, 얼굴 쪽은 저렇게 구멍이 나 있어. 몸만 담그는 걸세.”
“그러니까…… 왜……?”
“치료지. 나도 알아. 저놈이 나쁜 놈이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네. 하지만 의사라면 모름지기 환자를 봄에 있어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 아깝단 생각하지 말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아니…….”
말리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제멜과 나의 대화는 묘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 설득에 의미가 없어서 그랬다.
이런 망할.
내가 잠시 망설이는 동안, 킬리언은 관짝 안에 눕게 되었다.
“으, 으!”
“어…… 입 다물어. 아까운 수은 들어간다?”
“허…….”
몇몇 적절치 않은 협박이 있었다.
수은이 들어가면 안 되는 건 맞는데…… 그걸 사람 몸을 수은에 담그면서 해도 되는 거냐…….
‘어쩌면 사람 담근다는 말이 여기서 유래했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험악한 상황이었다.
하여간, 킬리언은 이미 며칠 동안 계속된 고문에 체력이 없기도 하거니와 방금 거하게 피똥까지 싸 놓은 탓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곧 고분고분하게 관짝 안에 눕게 되었다.
“이대로 좀 있지.”
“이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요?”
이쯤 되니 나도 좀 궁금해졌다.
치료 효과가 없다는 걸 몰라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부작용만 있겠지.
그래도 이 사람들은 뭔가 믿음이 있을 거 아닌가.
명색이 그래도 나름 의사랍시고 설치는 것들인데.
해서 물었다.
“효과? 당연히 있지. 침도 흘리게 되고…… 안에 균이 끓어올라 나오는 것일세.”
“네…… 그렇군요.”
“수은이라는 것이 땅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고. 나쁠 것이 없어.”
“네네.”
당연하게도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나왔다.
하긴.
산모들이 자꾸 죽어 나가는 걸 보고 공기니 우주의 기운이니 했던 것이 여기 의사들이지 않나.
‘오늘…… 집에 가면 당장 썩은 빵 찾아본다, 내가.’
나는 불쌍한 킬리언을 보며 녀석에게 줄 썩은 빵을 떠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