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89)
검은 머리 영국 의사-89화(89/505)
89화 수은. 염화수은 [3]
수은 치료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사실 1초만 담갔다 뺐어도 오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터였다.
저런 건…….
저건…….
사람한테 아주 잠시라도 해서는 안 될 몹쓸 짓이었으니까.
“우, 우에엑. 우웨에에엑!”
부작용이라고 불러야 하나 이걸?
수은에 사람을 담그는 새끼들이 이걸 과연 부작용이라고 부를까?
그냥 예견되어 있던 악몽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좋아, 좋구만.”
“좋군요, 교수님.”
“예상대로입니다.”
심지어 뒤에 줄줄이 서 있는 제멜을 비롯한 그의 졸개들 아니, 조수들은 웃고 있었다.
내가 진짜 이 살벌한 시대에 와서 지옥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는데…… 지금처럼 진심이었던 적도 없는 거 같았다.
정신 조금만 놓으면 기절할까 봐 꾹 참고 있다고, 지금…….
“자, 그럼 토할 만큼 토한 거 같으니 병동으로 가지.”
“네, 교수님. 다시 옮기겠습니다.”
“효과가 있는 거 같으면 일단 두고…… 상태 보면서 몇 번 더 하자고.”
그때였다.
나름대로 강인한 뱃사람답게 갖은 치료 아니, 고문도 견디고 있던 킬리언이 기절한 것이.
아무리 대서양을 오가던 사람이라도 이걸 몇 번 더 한다는 말에는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사실 단 한 번이라도 견딘 게 대단한 것이긴 했다.
나 같으면 벌써 죽었어…….
“웃차.”
하여간 밀어서 옮길 수 있는 침대도 없는 세상이다 보니 조수들은 들것 비슷한 것에 킬리언을 실었다.
그러곤 강인한 팔뚝을 뽐내며 병상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나는 킬리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거의 죽은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거 같은 몰골이었다.
창백하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라는 듯, 완전히 가 버렸다.
“아유, 치료 열심히 받았나 보구만.”
“그러게. 허허. 매독이 그거 독하지. 이 병원이 수은을 아끼지 않는다더니 소문대로야! 허허.”
“아는 사람 고생하던데 이리로 불러야겠네, 그려.”
그렇게 좀비 꼴이 되어 되돌아온 킬리언을 보면서 환자들이 다들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다들 팔다리 하나씩 잘랐거나 잘릴 예정인, 그러니까 참 참혹한 상태의 환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정이 흘러넘쳤다.
내가 만든 약을 먹어서일 터였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만상을 쓰고 있는 이들도 있긴 했다.
애초에 완전한 형태의 약도 아니고 극히 원시적인 진통소염제다 보니 대단한 효과를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으…… 으…….”
하여간 나는 내 환자들도 보고 중간에 잠깐 해부도 하고, 강의도 듣고 되돌아왔다.
킬리언은 깨 있었다.
죽지 않고 눈을 뜨고 있다, 이 말이었다.
새삼스럽게 대단한 놈이었다.
확실히…… 매독에 걸리고도 숱한 여인들을 꼬실 수 있던 사람답달까?
보통 독하고 끈질긴 게 아니었다.
-너도 인마 연애하고 싶으면 좀 독하게 굴어 봐. 매가리 없이 구니까 싫어하지.
언젠가 거의 모쏠에 가까웠던 내게 선배가 해 줬던 조언이 떠올랐다.
“괜찮아요?”
물론 나는 딱히 외국인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환자 보는 데 집중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킬리언의 몰골은 냉혈한이라고 해도 동정심이 샘솟을 만큼이나 끔찍했다.
“괜…… 괜찮겠어?”
“그래, 그렇진 않을 거 같아요.”
킬리언은 애꿎은 내게 성질을 냈다.
하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얘가 뭐 리스턴 박사님한테 화를 낼 수 있겠어?
그랬다가 매독 걸린 거 티 나는 손발 자르자고 덤비면 어쩔 건데.
무서운 얘긴데, 이게 아예 없었던 일도 아니었다.
피검사는커녕 잠복기니 나발이니 하는 걸 전혀 모르는 시대이니만큼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이렇게 구진처럼 형상화된 병변을 직접 제거하고자 하는 의사들도 많았다.
많을 거 같지 않나?
리스턴처럼 속으로나마 환자를 생각해서 자르는 놈은 양반이고, 그냥 궁금해서 자르고 보는 놈들도 있다니까?
“그래요, 뭐. 괜찮지는 않아 보입니다. 근데, 들으셨죠? 오늘 했던 치료를 몇 번 더 할 수도 있어요.”
“차라리…… 죽여 줘…….”
하여간 나는 너그러운 마음이 되어 말을 이었다.
그러자 킬리언이 나의 손을 향해, 묶인 손을 내밀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별 소용은 없었다.
어찌나 단단히 묶어 놨는지 고릴라도 탈출하지 못할 거 같았으니까.
사실 낮에 했던 그 치료를 받으면, 진짜 고릴라 아니라 코끼리도 뻗을 게 분명했다.
세상에 사람을 수은에 담그다니.
-뭐 그런 걸 가지고. 어떤 병원은 수은 증기를 뿜어낸다네. 사우나처럼 말이야. 얼마나 효과가 좋겠나. 부러운데…… 원장님이 허락을 안 해 줘.
그런 내게 제멜이 해 주었던 말은 진짜 충격이었다.
가만 보면 이 새끼들 사람 살리려고 골몰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충격적으로 죽일 수 있을까만 고민하는 거 같어, 아주.
-이제 그만 죽고 싶어요.
그것과는 별개로, 방금 킬리언의 말은 날 아주 해묵은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했다.
레지던트 때의 일인데, 자식 결혼식에 멀쩡한 얼굴로 들어가고 싶어 수술을 미뤘던 환자가 때를 놓쳤더랬다.
갖은 치료를 시도했지만 모든 치료는 시기가 사실상 제일 중요하지 않던가.
특히 암의 경우엔 더더욱 그랬다.
나는 아니, 교수님과 나…….
그러니까 우리는 결국, 환자를 잃었다.
그전에 환자는 삶에 대한 의지를, 마음을 잃었고.
“죽기는. 내가 뭐든 해 볼게요.”
그때 결심했다.
좀 지나쳐 보이는 치료라고 해도 필요해 보이면 하자고.
여기처럼 지나친 것을 넘어서 미친 수준의 치료라면 예외에 둬야겠지만, 하여간.
“하지 마…… 하지 말아 줘…….”
내 진심을 알 리 없는 킬리언은 손을 휘적거리려 했다.
양쪽 침대 난간에 묶인 손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데 내 마음이 다 아팠다.
하긴 오늘 당한 일을 생각해 보면 이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니, 치료에 협조적이면 그게 그것대로 문제지.
미쳤다는 뜻이잖아.
“다행이구만.”
“아니, 다행 아니야…… 살려 줘…… 아니, 죽여 줘…….”
미친 건 아니란 생각에 나는 일단 킬리언의 몸 중에서 그나마 똥과 토가 묻지 않은 1cm 정도 되는 부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려 주었다.
“히익.”
그게 뭔가 상서롭지 않아 보였는지 킬리언은 몸을 웅크렸다.
-다음 치료는 한 3일 후에 결정할걸세.
그런 킬리언을 보면서 나는 아까 제멜이 내게만 남겼던 말을 떠올렸다.
3일.
제멜은 그저 여상한 말투였지만…….
내게는 그게 마치 시한부 선고같이 느껴졌다.
내가 봤을 땐 킬리언이 오늘 당장 죽지 않은 게 기적 같다고.
“이따 봅시다.”
“하지 마…… 아무것도 하지 마, 제발…….”
킬리언의 애원 아닌 애원을 뒤로하고 나는 밖으로 나왔다.
“좋아졌어? 그 귀한 수은을 저런 놈에게 베풀다니. 진짜 닥터 제멜은 참된 의사야.”
그런 나를 반겨 주는 건 완연한 19세기 의사였다.
그 전에 절친한 친우 조지프이기도 했지만…….
하여간, 나는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채 녀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단 선배 보러 갔다가, 여기 다시 오자.”
“응? 집에 가서 안 쉬고?”
“킬리언…… 이대로 두면 죽어.”
“매독은 원래 죽어.”
“아니…… 그런 게 아냐.”
이 새끼들아.
니들이 죽이게 생겼다고, 여느 때처럼.
나는 간신히 마지막 말을 참아 내고는 마차에 올랐다.
다행히 조지프는 원래도 내게 순종적인 녀석이었고 어제 일을 겪으면서는 더더욱 그렇게 되었던 참이다 보니 더 말을 보태지 않아도 되었다.
“오, 왔는가?”
“네, 별일 없으셨죠?”
“그래, 별일이 있었다면 내 기별을 했을걸세.”
“일단 보겠습니다.”
선배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방으로 내달렸다.
앨프리드가 있는 곳이었다.
‘별일이 없어 보인다는 건…… 당장 넘어가진 않았단 뜻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21세기에서도 보호자 진술은 참고만 될 뿐이었다.
증상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나 경과 등은 당연히 도움이 되긴 하지만.
괜찮다, 안 괜찮다는 판단 자체는 의료진이 내려야 마땅했으니.
고등 교육이 보편화되기는커녕 그런 게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19세기에서야 두말하면 입만 아팠다.
“흠…….”
나는 일단 맥부터 짚었다.
혈압계가 있으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을 반복하면서였다.
어떻게 재는 법이 있다고는 하던데…….
대충만 들어도 상용화할 수는 없을 거 같았다.
일단 혈압을 재려면 바늘을 혈관에 꽂아야 한다더라고…….
정맥도 아니고 동맥에.
물론 우리도 동맥 혈압기가 있기는 했는데, 그건 진짜 중환자한테만 제한적으로 썼거든.
‘대강 봤을 때 나보단 약해도…… 그렇게 낮은 거 같진 않아.’
덕분에 지금 내가 재는 혈압이라는 건 정말이지 어림짐작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 시대 그 어떤 의사들보다 정확한 판단이 가능할 터였다.
“열도 없고…… 일단은 염증이 심해지진 않는 거 같은데…….”
나는 맥을 짚으면서 동시에 이마도 짚었다.
이것도 정확한 체온을 재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에 어림짐작으로 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 배도 봤다.
일단 딱 보기에 이상은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꿰맨 실이 의료용 실이 아니다 보니, 그 주변으로 해서 붉은 기운이 감돌고 있긴 하지만 이 정도 국소 염증은 넘어가도 될 거 같았다.
아니, 원래는 그러면 안 되는데…… 대안이 없어서 넘어갔다.
“흐으…….”
“정신이 좀 들어요?”
“어…… 정신은 멀쩡해.”
“멀쩡해 보이진 않는데…… 아무튼, 배는 좀 어때요.”
그렇게 선배를 살피고 있으려니 선배가 문득 눈을 뜨고 신음을 흘리다 입을 열었다.
말은 잘하는데, 얼굴은 솔직히 엉망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수액을 무턱대고 박기엔 모든 것이 걱정이었다.
바늘부터 대롱 그리고 수액까지 무엇 하나 믿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죽는 거 아니면…… 그런 건 하지 말자.’
무덤에서 발굴해 온 사람 정도로 나쁜 거 아니면 아무것도 하면 안 될 거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선배가 맹장염이라는 점이었다.
다른 질환이었다면 밥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는 데 시간이 무진장 걸렸을 텐데, 이건 단 며칠이면 되었다.
“여기 살짝 눌러 볼 거예요. 진짜 살짝이니까 벌써부터 경기하지 말고.”
“어어.”
“어때요?”
“음…… 좀 아픈 정도?”
“좋네. 경과는 좋아요.”
“어…… 고마워.”
“고맙긴. 의사가 환자 있으면 치료하는 게 당연하지.”
“그래도 살려 줘서 고마워. 너 아니었으면 벌써 두 번 죽었어.”
“아직 모르니까, 일주일만 있다가, 그 인사 다시 합시다.”
“어어.”
말은 방어적으로 했지만 솔직히 별일이 생길 거 같진 않았다.
하긴 누가 수술했는데 일이 생기겠나.
‘나는 진짜 천재일지도…….’
어깨 뽕이 한껏 올라간 채로, 나는 집 여기저기 숨겨 두었던 빵 조각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이걸로 일단 우뭇가사리에 자란 균 죽는지 보고, 효과 있는 놈들을 추려 하나씩 킬리언에게 먹이고, 괜찮다 싶으면 선배에게도 먹일 작정이었다.
약간 19세기에 동화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위대한 진보는 모험심에서 발로한다.’
족보에도 없는 말을 떠올리며, 나는 빵 조각을 소쿠리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