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9)
검은 머리 영국 의사-9화(9/505)
9화 니들 그러면 안 돼 [3]
“저기, 선배.”
“뭐야, 너는. 뭐야, 얼굴이 왜 그래. 아파?”
아픈 게 아니라 세상에는 백인뿐만 아니라 황인종도 있답니다.
“인도……. 인도 쪽은 아닌 거 같은데?”
용케 또 인도가 아닌 건 알아보았다.
사실 런던에서 내 안위가 위험한 건, 이 인간들이 날 인도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그런 거였는데.
물론 인도 내의 최상류층은 일찍이 영국에 충성하면서, 영국으로 유학을 오는 경우도 많기는 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당연히 어지간한 영국인보다 방귀깨나 뀌는 사람들도 많았고.
허나 난…… 어떻게 봐도 그렇게까지 보이지는 않잖아?
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손을 다친 선배는 의외로 얼굴 차이를 알아보았다.
“네, 조선인입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아, 우리 집이 무역을 해서. 정확히 말하면 우리 집은 아니고 큰아버지 집이지만. 하여간 뭐야, 갑자기 그럴 것 같았어.”
아하, 무역을 하시는구만.
그래서 그런가 편견이 좀 옅은 느낌이었다.
그냥 모르는 사람 대하듯 할 뿐, 사람이 아닌 무언가를 대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되면 살려 줘야겠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아, 네. 그런데 지금 실습하다가 다치신 거 아닌가요?”
“응. 근데 뭐…… 보면 별로 많이 다친 건 아니라서. 괜찮아.”
단언하지 말라고.
괜찮을 거라고 단언하지 말라고…….
죽어, 인마.
근데 뭐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이 사람이 진료를 받을까?
“저희 조선에서는 말입니다.”
“응?”
내가 사실 여기 오기 전에, 그러니까 그…… 충격적인 절단술을 목도한 후 아저씨나 기타 어른들에게 이 시점의 의술에 대해서 많이 물었단 말이지.
놀랍더라고.
상식이 없어서.
아니, 중세나 고대에 비해서도 어떻게 보면 퇴보한 것 같기도 하고.
자칭 과학자라고 하는 의사들이 어찌나 꽉 막혀 있는지.
괜히 어설프게 의학이 어쩌고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조선을 파는 게 나을 거 같다, 이 말이지.
“시신을 다루는 직업이 있습니다. 여기도 있지 않나요?”
“있기야 하지. 근데 왜? 우리는 그런 이들과는 목적이 달라.”
원래 아는 게 없으면, 시신을 만지는 직업을 좀 안 좋게 여기는 법이었다.
이 양반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인상을 썼다.
열받으면 더 큰 일이 날 것 같아, 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러한 직업을 가진 이들은…… 손 다치면 작업을 안 합니다.”
“응?”
“상처에 시신이 직접 닿으면 죽는다는 속설이 있거든요.”
“아, 난 또 뭐라고. 미신 아닌가! 저주라도 받는다는 얘기 하려는 거야?”
“아니, 아니.”
시발놈아.
사람을 한순간에 미신에 심취한 사람으로 만드네.
내가 인마, 21세기 과학의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머리 구조 자체가 니들이랑은 달라요.
“상처를 통해 시신의 그…….”
근데 이게 또 상대가 너무 아는 게 없다 보니, 뭐라 말을 해야 할지 어려웠다.
세균?
미생물에 대한 개념도 없는 시대에 그런 얘기부터 했다간…….
-사탄의 자식을 태워라!
-동양에서 온 사탄이다!
때아닌 런던 축제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그…… 안 좋은 기운이.”
“흐음.”
애써 찾은 단어가 ‘기운’이었는데, 말하면서도 아차 싶었다.
하지만 의외로 기운 얘기를 들은 선배의 얼굴이 살짝 진지해졌다.
병원에서도 진지하게 공기에 문제가 있거나 수맥이 안 좋으면 병에 걸린단 얘기를 하는 시기라서 그런가.
하여간 이게 먹혔다.
‘나 참…….’
이게 먹힌다고?
이 정도면, 한 번 더 트럭에 치이면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진지한 고민을 해 보았지만, 말도 안 되는 확률로 다시 살게 되었으니 일단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벌써 여러 바퀴 돌린 사고방식이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시신에서는 안 좋은 기운이 나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요?”
“으음. 듣고 보니 합리적이네.”
합리적이긴 새꺄…….
기운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쓴다는 것부터가 합리적이지 않다고.
나는 생각과는 달리 세상에서 제일 진중한 얼굴로, 동시에 동양의 신비를 간직한 검은 머리를 살짝 쓸어 넘기면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일단 빨리 씻으세요. 제가 한번 손 다친 상태로 시신 만지다 죽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데…….”
본 적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죄다 고등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알아서 조심조심 행동했으니까.
게다가 우리 킹한민국엔 항생제가 있다구?
페니실린을 보고 따위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주 강력한 녀석들이 즐비하다 보니, 시신 따위로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었다.
‘돌아라, 머리야!’
어떻게 설명할까!
“일단 그 상처 부위가 붉게 변하고 붓기 시작합니다.”
“으음.”
“그러다가 열이 나고…… 몸이 부으면서 의식을 잃어요. 결국에는 사망하죠.”
“아…… 그렇군. 그럼 어떻게…… 어떻게 하지?”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그냥 두었을 경우, 패혈증으로 번지면 이렇게 되지 않나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았다.
다행히도 자세한 구라는 잘 먹힌다는 만고의 진리가 19세기 영국에서도 통했다.
“일단 손을 닦고.”
“닦아?”
“아…… 그러니까, 흐르는 물에 문질러 봐요.”
손 닦다의 의미도 모르는 거 실화니.
너 이 새끼…… 의대 들어온 지 그래도 1, 2년은 된 것 같은데.
하여간 선배는 검은 머리를 가진 동양 사람이 기운 운운하니까 덜컥 겁이 났는지, 몸을 분연히 떨치고는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화장실 안 가고 어디…… 어디 가?’
아니, 사실 물 구하는 게 그리 쉬운 일도 아니긴 했다.
수돗물이 나오긴 하는데, 그게 막 아주 잘 나오는 건 아니란 말이지.
게다가 깨끗하지가 않아.
템스강 똥물을 그대로 끌어오거든.
업턴에서는 그냥 대충 강물을 마셔도 될 정도지만 여긴…….
‘끓여 먹고 있긴 한데 그걸로 되려나.’
나는 그런 걱정을 하면서 선배를 따라나섰고, 그 새끼가 아니, 선배가 대학 한복판에 있는 분수에 손을 집어넣는 것을 목격했다.
“선배……?”
“응?”
분수 물을 보면 느낌이 안 오니?
더럽잖아.
아니, 보기도 전에 알 수 있잖아.
냄새가 나잖아.
“흐르는 물. 이거 아니야?”
아, 내 잘못이네.
내 잘못이야.
흐르는 물…….
그래, 내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됐지.
“그…… 일단 좀 기다려 봐요.”
“응. 그래.”
나도 모르게 눈이 좀 돌아갔나 싶은데,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선배는 고분고분했다.
아니, 좀 무서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영문 모를 일이었다.
검은 머리 동양인의 힘이 이 정도까지는 아닐 텐데 말이지.
하여간 지금은 잘된 일이라 여기기로 했다.
자초지종이야 나중에 물어도 되지 않나.
사람 하나 살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실정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물을 끓여 불순물을 걸러 냈다.
“이걸 붓겠다고?”
“아니, 식혀서 부어야죠. 이대로 부으면…… 화상 입죠.”
“어, 그래. 그래.”
“근데…….”
“응?”
“왜 이렇게 적극적이에요? 막말로 오늘 저 처음 보시는 거 아닙니까?”
“아.”
내 말에 선배는 잠시 망설이다가 속삭였다.
“그게 말이야. 아까 네가 말했던 증상…… 내 친구가 그렇게 죽었거든.”
“네? 죽어요?”
“내 친구뿐만 아니라…… 매년 몇 명씩 그렇게 죽어.”
“무슨…… 그게 무슨 소리예요?”
“몰랐어? 의대생들 가끔 그렇게 죽어. 난 그냥 여기 공기가 안 좋나, 그렇게 생각했지. 우리 학교 의대생들이 꽤 많이 죽었거든.”
“아…….”
그렇구나.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는데도 실습을 그렇게 시키고 있었구나.
이 미친놈들…….
백번 양보해서, 지식이 부족한 시대라 전향적 사고가 불가능하다고 치자.
그래도 과학자임을 자처하고 있다면 후향적 사고는 가능해야 하는 거 아니냐?
자꾸 여기서 사람이 죽어 나가면, 그게 왜 그런지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근데 그게 공기가 아니라 기운 탓이었다니.”
“아.”
하마터면 선배 뺨 후리는 후배가 될 뻔했다.
하긴 뭐, 지금 분위기에서는 때려도 될 것 같긴 한데…….
“근데 이 정도 닦으면 될까?”
“음. 아뇨. 더 세게 해야 해요. 좀 아플 텐데. 괜찮겠어요?”
“기운을 빼는 건가?”
“그…….”
나는 아직 기운 말고 뭔가 그럴싸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끓인 물로 손을 박박 문질러 닦은 선배의 상처 주변을 쫙쫙 당겨 주었다.
“어…… 어어. 피가 나오는데.”
“피에 그 기운이 섞여 나오는 겁니다.”
“아. 와…… 그렇구나. 근데 그냥 빨갛기만 한데?”
“기운이 눈에 보였으면 사람들이 그렇게 무력하게 죽었을까요?”
“아, 하긴. 보이는 기운이면…….”
나는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 아는 사람이 보고 있으면 어쩌나 해서였다.
허나 이곳은 19세기 런던이었고, 내가 아는 사람은 태어나지도 않았다.
아니, 애초에 같은 지구인가 싶기도 했고.
평행우주니 뭐니 하는 이론들도 많잖아?
“그리고 술 있어요?”
“술? 술은 왜? 술 마시면 뭐가 더 되나?”
“그거 증류해서 만든 알코올로 닦는 게 좋아요.”
“알코올……? 불붙일 때 쓰는 거 말하는 거야?”
“아, 그 알코올이 있으면 더 좋죠.”
물론 알코올로 상처를 직접 문대는 건 그리 좋지 못한 생각이었다.
알코올이 소독을 잘하긴 하지만, 조직 부수는 것도 잘하거든.
아마 바로 문대면 저 주변 조직은 영구적인 손상을 입게 될 터였다.
하지만 그게 나을 게 분명했다.
안 그럼 뒤지니까.
아쉽게도 알코올은 지금 없어서, 끓인 물을 계속 끼얹어 가며 소독했다.
“으, 으아아아!”
“아파요?”
“아, 아파!”
“기운이 비명을 지르는 거라고 생각해요.”
“으아…… 이게 진짜 독한 기운이네!”
“그렇죠? 그래도 이러면 살 수 있어요. 한 번으로는 안 될 수도 있으니까. 매일 봐요.”
“이 짓을…… 매일?”
“네. 그리고 여기 뭐 아무것도 닿지 않게 주의하시고. 특히 저런 물은 안 됩니다.”
“어, 어어.”
친구가 죽은 게 충격이었는지, 선배는 말을 되게 잘 들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강의실에 돌아와서 조지프와 함께 공부나 하려는데도 잘 떨어지질 않았다.
이 새끼가 왜 이러나 싶어서 쳐다보고 있으려니, 돌연 입을 열었다.
“저기, 실례가 안 되면 둘 다 초대하고 싶은데.”
“초대요?”
“어, 집으로.”
어지간히 불안한 모양이었다.
동양인 퇴마사를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걸 보면.
“집이 어딘데요?”
“응? 아, 켄싱턴.”
“갑시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는 법.
해서 집이 어디요, 하고 물었더니 켄싱턴이랜다.
서울로 치면 강남 아니, 청담이나 압구정 수준?
아니지, 아니야, 이건 너무 서민적인 생각이다.
‘한남동…… 유엔 빌리지 정도지.’
우리 선배 부자였구나.
잠도 거기서 자고 싶다.
우리 하숙집은 지옥이라구.
“응? 가는 거야?”
순진한 조지프가 눈을 끔뻑였지만, 그건 별로 중요치 않았다.
“가자. 켄싱턴으로 가자.”
“그래, 뭐…… 그러지.”
이 녀석은 내가 하자면 하는 놈이거든.
애가 착해.
“그럼 지금 갈래?”
선배도 착해 보였다.
아니, 호구인가.
그것도 아니면 내 신비로운 동양인 컨셉이 먹히는 걸 수도 있고.
이참에 갓이라도 하나 만들어 볼까.
아니면 부채라도?
그래, 부채.
그거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