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91)
검은 머리 영국 의사-91화(91/505)
91화 항생제……? [2]
“후하하하!”
저 멀리 제멜의 광소가 울려 퍼졌다.
진짜 미친놈의 미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저 새끼, 저거…….
‘환자 중에 안 좋은 환자가…… 환자가…… 있지. 좋아도 안 좋다고 생각할 거야 저 새끼들.’
백 퍼센트. 진짜로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뭐라도 해 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할 터였다.
이 시기는 그런 시대였다.
대항해시대라서 그런가…….
특히 영국 놈들은 그 혐성 어디 안 가고 또 대영제국을 만들어 나가던 시기다 보니 더더욱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나라도 그럴 수 있을 거 같았다.
‘이제 곧 빅토리아 여왕이 나오겠지?’
내가 아무리 이과고 문과 교육을 쌈 싸 먹었다고 해도, 상식적인 건 알고 있지 않겠나.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고 그 유명한 빅토리아 시대가 열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이 말이었다.
최전성기 시기라는 건데…….
문제는 그건 나라 얘기고, 의학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뭐…… 의사들이 신중해진 계기가 되어 준 사건들이 아직 없긴 하지…… 아니, 충분히 있기는 할 텐데 알려지질 않는 거겠지…….’
의학의 흑역사야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지 않나.
의도가 좋다고 결과도 좋을 수는 없는 법이라는 걸, 의학의 역사만큼 잘 증명하는 사례도 없을 터였다.
사람 살리려고 한 짓이 도리어 사람 죽이는 데 일조하거나 오히려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게 좀 많아?
“저기, 블런델 교수님!”
아무튼, 제멜은 포기했다.
저 새끼는 좀…… 이상해.
설득될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솔직히 제멜도 내 실력은 충분히 본 거 같은데…….
여전히 마음은 닫혀 있었다.
“응? 아, 난 또 누구라고. 닥터 평. 아, 그래 자네도 저 킬리언 보고 있었지. 놀랍지 않나?”
그에 비해 블런델은 오픈 마인드였다.
이 인간은 내가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터였다.
동시에 안 그러면 사고 치고도 남을 놈이기도 했다.
세상에…….
피를 섞어서 줄 생각을 했던 놈이잖아……?
칵테일도 아니고 어떻게 피를 섞어 줄 생각을 하냐고.
“노, 놀랍죠. 근데…….”
“염화수은과 수은을 같이 쓰는 것이 이만큼이나 효과가 좋다니! 난 정말로 놀랐네, 하하. 이건 정말이지 세기의 발견일세!”
“아니…… 잠시만요. 근데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블런델은 내가 불렀고 그에 대해 답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걸음은 전혀 멈추지 않고 있었다.
불안했다.
바로 부인과 환자들 수은에 처넣을 기세잖아?
“어……?”
근데 따라 걷다 보니 길이 익숙했다.
이 길 끝에 있는 건…….
“여기 리스턴 교수님……?”
“아 몰랐나? 리스턴도 매독이야.”
“네……?”
아니…….
의대 교수가…… 매독?
미친놈이야?
“이 기쁜 소식을 알려 주려고 왔네.”
“아니…… 그럼.”
“누구보다 먼저 이 치료를 반길 이지. 하하.”
“아…… 그.”
리스턴이 매독에 걸렸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긴 했지만…….
그걸 내게 말해 주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하여간, 하나 확실한 건…….
리스턴 또한 실험 정신 미치는 사람이고, 이런 치료를 마다할 인간도 아니란 점이었다.
“그래? 흐음…… 그렇다면 해 봐야겠지.”
역시가 역시였다.
미친 새끼.
그 꼴을 다 알 텐데 저러네.
“잠깐, 잠깐만요!”
진짜 바로 수은탕에 들어가기라도 할 기세여서, 나는 손을 들고 외쳤다.
이게 뭐 결과를 알 수 없다거나 하는 정도였으면 내가 그냥 뒀어.
근데 수은이잖아.
미나마타병의 장본인이잖아.
중금속 중독이라고 하면 대표적인 사례로 나오는 놈이잖아.
심지어 저기 진시황도 불로장생하려다가 수은 중독으로 비명횡사했잖아?
무엇보다도 리스턴은 진시황하고 비견될 만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나랑도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 시대로 한정 짓는다면, 거의 절친이고 베프야.
“응?”
“왜 그러나?”
내 외침에 둘은 일단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뭐가 되었건 이제 이 둘은 내 말이라면 한 번은 듣게 되어서 그랬다.
특히 리스턴은 블런델보다도 더 자주 내가 펼쳐 낸…… 의술이라기보다도 이적을 봤잖아?
내가 천천히 선을 넘어가서 그렇지, 이미 마녀사냥당했어도 할 말 없을 만큼 시대를 뛰어넘었다구.
“제가 봤을 때는…… 킬리언 매독 치료에 효과를 보인 게 수은은 아닙니다.”
“그래, 그렇지. 염화수은을 같이 썼지.”
“그런 말이라면 뭐…… 뭐 하러 하나?”
그렇다고 해서 답답한 소리를 안 하는 건 아니었다.
이 새끼들…….
아휴.
나는 애써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참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 게 아니라요. 지금 수은을 왜 씁니까? 수은이 매독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이론적인 근거가 뭐예요?”
“근거……?”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과학자라면 그냥 넘기기 어려운 말일 터였다.
이론과 근거.
이 두 단어야말로 현대 과학의 근간이지 않나?
제아무리 실제 사례를 겪었다고 해도,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이론과 근거가 없는 이상 우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취급을 받아야만 했다.
의사들이 환자 개인의 경험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지 마시고 말씀해 보세요. 저도 좀 알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냐던 이들도, 이어지는 내 질문에는 인상을 쓴 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고민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럴 만큼 심오한 뭔가가 있는 게 아니잖아.
얘네 전에 감염 문제 다룰 때도 우주의 기운 운운했던 애들이라고.
이번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을 거 같았는데…….
“일단 수은은 전통적으로 장생과 연관이 있네.”
“그래. 땅에서 기원한 물건이지 않나.”
“그렇게 보면 모든 것이 땅에서…… 기원하지 않나요?”
“그런가?”
“듣고 보니 그렇긴 한데.”
너무 다를 게 없어서 어이가 없었다.
“구토를 하게 만들지 않나. 거기에 매독을 일으키는 놈이 섞여 나오는 게지.”
“똥도 많이 싸잖아. 안에 고여 있던 나쁜 것들이 다 나오는 거야.”
이어지는 말도 죄 비슷했다.
확실히 이 시대는 과학적인 척하는 야만의 시대였다.
대체 언제 적 하제를 쓰는 거냐고…….
산업혁명은 일어났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은 히포크라테스 시절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게 이유라면 다른 구토를 일으키는 약도 많고…… 설사를 일으키는 약도 많지 않습니까? 게다가, 구토와 설사는 장염의 증상이기도 합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거예요.”
“흐음…… 너무 지나친 해석 같은데.”
“그래. 그렇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 왔는지 아나?”
“그중에서 완치된 환자의 비율도 아십니까?”
“하하. 매독이 말이야. 자꾸 걸려서 그렇지…… 치료가 안 되진 않아. 반복이 여러 번 되면 치료가 안 되긴 하지만…… 처음엔 잘 낫는다고.”
“그래, 수은 단독으로도 낫긴 나아. 빨리 낫지 않아서 그렇지.”
낫는다고?
나는 이 둘의 말에 잠시 혼란을 겪다가, 이내 매독의 자연 경과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원래 매독은 1기 매독, 그러니까 궤양이 형성되었다가 없어지는 경과를 밟지 않던가.
안으로 숨어들었다가 2기 매독의 형태로 재발하고, 또 숨어들었다가 3기 매독의 형태로 재발하는 식이었다.
이 시기에는 균을 확인할 수 있기는커녕 간단한 피검사조차 할 수 없으니…… 저런 식의 경과를 이해하긴 어려웠을 터였다.
물론 제대로 관찰했다면 재발하는 매독이 다 비슷하다는 걸 알아냈을 테고, 그럼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
“아뇨, 아뇨. 이렇게 빨리…… 약을 쓰면서 반응을 보인 적이 있어요? 몇 개월씩 질질 끄는 거 말고요.”
“그건 없지.”
“말이 되나?”
“그럼 수은 말고 다른 원인을 생각해야지요.”
“뭔 이유가 있겠나.”
“설마 절단 병동에 매독 환자를 두면 나을 수 있을 거란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어지는 내 말에 리스턴은 도리어 너무 한심하다는 듯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하아.
개열 받네, 진짜.
내가 설마 저따위 얘기를 하려고 이러고 있겠냐?
‘심지어 나는 지금 댁 구하려고 이러는 거라고!’
나조차 수은탕에 한번 들어간 걸로 사람이 어찌 될는지는 알지 못했다.
사실 우리 때만 해도 수은 중독은 일부 산업체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고…….
일상에서는 절대 볼 수 없다고 해도 좋을 수준의 질환이 되었다.
근데 좋을 리는 없잖아.
일단 보기도 안 좋아.
그래도 명색이 런던이 자랑하는 명읜데 똥 싸고 토하고 그게 뭐냐고.
‘아, 상상했어.’
속이 울렁거릴 만큼이나 끔찍한 광경에 나는 아까보다 간절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하나 고백할 것이 있습니다.”
품 안에 넣어 두었던 썩은 빵을 주섬주섬 꺼내면서였다.
그런 나를 가만히 보던 둘은 조금 내게서 멀리 떨어졌다.
“나는 자네 취향을 존중하네.”
블런델은 빵을 보다 말고 헛구역질을 하면서 말했다.
“나…… 나도 그렇긴 한데. 그거…… 조선 전통 음식인가?’
리스턴은 간신히 헛구역질은 안 하고 있었지만, 거의 뭐 구역질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나는 부리나케 고개를 가로젓고는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이걸 사서 썩히고, 푸른곰팡이 부분을 갉아 내 킬리언에게 먹였단 얘기를 했다.
“세상에.”
“오, 하나님.”
둘은 갑자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사람을 수은탕에 꼴아박던 새끼들이 곰팡이 하나 먹였다고 이럴 일이야?
“제가 봤을 땐 이게 바로 매독 치료에 효험이 있었습니다. 이게 가장 큰 변수예요.”
“그…… 어휴.”
“이런 걸 사람에게 먹였다 이 말인가.”
“수은에 빠져서 똥 싸고 토하는 것보다는 인도적이지 않습니까?”
“아니, 그래도. 이걸……?”
“그럼 내게도 이걸 먹이려 했단 말인가?”
나는 리스턴의 얼굴을 보면서, 그러니까 짙은 근심 섞인 얼굴을 보면서 페니실린을 떠올렸다.
내가 만든 이 약은 사실 페니실린도 아니긴 했다.
이건 그냥 곰팡이야.
‘페니실린의 부작용은…… 간 수치 상승, 고나트륨혈증, 저칼륨혈증, 고칼륨혈증에 간질성 신염, 출혈성 방광염이 있지. 드물게 뇌병증이나 간질 발작도 있고…… 이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걸…….’
그 말은 곧 지금 당장 리스턴에게 먹일 수는 없단 얘기였다.
언젠가는 먹이겠지만…….
그게 이거랑 꼭 같은 곰팡이란 법은 없었다.
“아뇨.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은……?”
“일단 급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뭐 사귀는 사람 있어요?”
“없긴 한데, 그게 그렇게 확신을 갖고 말할 일인가……?”
“아무튼, 좀만 기다려 보세요. 제가 킬리언 경과를 보면서…… 이 곰팡이가 혹 부작용이 있지는 않을지 보고 형도 줄게요.”
“그럼 실험을 하겠다는 건가?”
리스턴은 여전히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간 실험이니 뭐…… 그럴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수은 치료를 떠올렸던 놈들이 이러는 건 좀 그렇긴 한데, 하여간.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거짓말할 이유도 없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자네…… 정말 악당이로구만?”
그랬더니 이따위 말이 돌아왔다.
무식한 놈들이라 그럴까?
은혜를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