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92)
검은 머리 영국 의사-92화(92/505)
92화 항생제……? [3]
악당 소리까지 듣게 되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가 없다고 하는 게 옳을 터였다.
이렇게 된 이상 사람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실험이라면 내가 또 빠질 수야 없지.”
“나도 동참하겠네. 나쁜 놈들이라면 많이 알고 있어.”
게다가 리스턴과 블런델 또한 신나 버렸다.
미친놈들.
그게 신날 일인가.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내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긴 한데…….
뭐라고 할까?
“먹어!”
“사, 살려 주세요!”
“으, 으아아아!”
감옥에서 끌고 온 죄수들이긴 했다.
누누이 말했듯 우리의 리스턴 박사님은 경찰서장님 어머님 다리를 잘라 준 사람이지 않나.
물론 보통은 원수가 되겠지만 다행히 마취도 했고, 소독은 안 했지만 멀쩡히 살아남아서 은인으로 남게 되었다.
보통의 의사라면 그렇게 은인이 되어 봐야 피치 못한 사정이 있을 때나 도움을 구하겠지만, 리스턴은 달랐다.
-죄수 중에 매독 심한 사람 있으면 보내 주시오.
그는 두 발로 당당히 경찰서에 들어가 이렇게 말했다.
제대로 된 서장이었다면 아무리 죄수라 해도 그런 대우를 받게 할 수는 없다고 길길이 날뛰었을 테지만, 서장도 살짝 이상한 사람이었다.
-얼마든지!
얼마든지라니?
지금 인체 실험을 하겠다고 공언을 한 마당인데 잡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왔다.
그 덕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병원엔 매독 환자들이 확 늘어 버렸다.
그리고 하나 같이 팔다리가 묶여 있었다.
“살려 주십쇼! 닥터 평! 살려 주시오!”
동시에 다들 나를 보며 외쳐 대고 있었다.
리스턴이야 살려 달라고 하기에 딱히 알맞은 사람은 아니지 않나.
아니, 얼굴 보면 이유 없어도 살려 달라고 해야 할 거 같긴 한데…….
그런다고 살려 줄 거 같지 않은 느낌?
블런델도 리스턴에 비하면 인상이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절대적으로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일단 어리고 또 작으니까 저러는 듯했다.
‘미안합니다…… 사실 이 얘기 꺼낸 게 나예요…….’
이딴 소리 하면 어쩐지 죽을 거 같아서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웁, 웁!”
그사이에도 몇몇 입에 썩은 빵 일부가 들어가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저 썩은 빵 생산에 들어간 내 심력이 떠올라 기분이 묘해졌다.
언젠가는 저기서 원료만 추출이 되고 대량 생산까지 가능해지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일로만 느껴졌다.
그저 동일한 조건이 되게끔 빵 늘어놓고 썩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면서 드문드문 그래도 나도 의사고 과학자인데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어떤가?
중간에 화학자도 찾아갔더랬다.
비소 화합물을 만들었을까 싶어서였는데,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실험이라는 건 기껏해야 비소를 굽거나 태우거나 산에 담그거나 하는 것들뿐이다 보니 당장 기대하는 건 어려운 일인 듯했다.
차라리 빵 썩히는 게 제일 치료 가능성이 높다고나 할까…….
“으…… 부디 자비를. 다시는…… 다시는 죄짓고 살지 않겠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눈앞에서 간절한 얼굴이 된 죄수에게 빵 쑤셔 넣는 데 죄책감이 덜어졌다.
게다가 이 인간 목에 매고 있는 푯말을 보니 살인범이었다.
검거율이 더럽게 떨어지는 이 시기에 살인범으로 잡혔다는 건, 어지간히 흉악한 짓을 저지른 놈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먹어요. 이게 약이야.”
“차라리…… 차라리 죽으라고 해!”
게다가 나는 치료 중이었다.
실험도 말이 실험이지, 일단 나는 킬리언을 통해 이 빵의 효험을 확인하지 않았나?
시기를 100년 이상 앞당긴 치료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 말이었다.
“읍, 읍!”
하여간 그렇게 모두 7명의 죄수의 입에 빵이 들어갔다.
살짝 서두르는 감이 있기는 했다.
‘킬리언은 우연히 나은 것일 수도 있어. 가능성은 낮지만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
이론적으로 뭐가 증명이 된 건 없지 않나?
물론 빵이 우뭇가사리에 있는 균을 죽인다는 것, 그리고 킬리언이 나았다는 건 확인했다.
하지만…….
그걸 현미경으로 본 것도 아닌 데다가, 지금 이 썩은 빵에 자라난 곰팡이가 다 같은 놈들일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다른 구역에, 그러니까 선배 집 중 다른 구역에 둔 빵에서 자란 것들은 우뭇가사리의 균도 죽이지 못하는 것들이 있더라고?
눈으로 봤을 때는 다 같은 곰팡이 같았는데, 그런 것을 미루어 보면…….
‘이게 다 같은 곰팡이일지 아닐지 모른다…… 이 말이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먹인 마당에 뭘 하겠나.
나는 그저 고개를 털어 낸 후 방을 빠져나왔다.
“개새끼들아!”
“천벌이 있을 거다!”
“죽어!”
그 뒤로 온갖 저주의 말들이 쏟아졌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흉악범들이고 사형이 예정되어 있는 놈들이다 보니 성격이 좋을 리가 없지 않겠나.
거기에 썩은 빵을 먹였으니 뭐…….
솔직히 좀 무서웠는데, 리스턴은 아니었다.
“재갈을 물릴까? 시끄럽네.”
“그럴까?”
블런델도 그랬다.
무서운 새끼들.
“아, 그러고 보니 그 환상통 환자들은 어떻게 됐어요?”
“환상통? 아…… 그 환자들? 그래, 이름 잘 지은 거 같아. 하하. 아주 좋네. 아주 좋아. 다는 아니지만 대개 반응이 좋아.”
“다행이군요. 좀 보러 갈까요?”
“그래.”
좀 잊고 싶기도 하고, 좋은 거 보고 싶어서 말을 돌렸다.
다행히 리스턴은 환상통 환자에 관한 관심이 더 커서,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환상통 환자를 양산하고 있는 사람이지 않나?
지금도 매일같이 자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팍.
팍.
엄청 자르고 있었다.
“흐으으…….”
“아파…….”
중간에 절단 병동을 지나쳤다.
내가 나름 버드나무 껍질 우린 물을 루틴으로 먹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뒀음에도 불구하고, 비명이 많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긴 했다.
절단이잖아.
제대로 된 아스피린을 먹었다 해도 완벽하지 않을 텐데 저건 그냥 우린 물이었다.
과용량을 먹었다가는 아예 대응이 안 될 거 같아 적게 먹이고 있으니 더더욱 효과가 약할 수밖에 없었다.
“조용해졌구만그래.”
같은 걸 봐도 사람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라는 말을 나는 여기 와서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리스턴은 같은 비명을 들으면서 껄껄 웃었다.
개선할 점을 찾는 나와는 달랐다.
자연스러운 일이긴 했다.
난 훨씬 편안해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울트라셋이나 페치딘이라도 있으면 진짜 편안해질 텐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일단 절단할 만한 환자들이 훨씬 적기도 하겠지만, 절단 가지고 저렇게까지 계속 아파할 만한 일도 없었다.
열거한 약물 아니더라도 척추 마취도 되잖아?
효과 면에서, 또 안전 측면에서 봐도 비할 수 없었다.
“전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고맙네.”
그에 비해 리스턴은 아파하는 것만 평생 보아온 탓에 지금과 같은 모습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도 좀 쓸까?”
블런델은 숫제 부러워했다.
뭐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니, 나는 딱히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 봐야 들을 만한 사람들도 아니다 보니 더더욱 그랬다.
“훨씬 낫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닥터 평이 고안한 방법이라고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여간 환상통 병동은 평화로웠다.
일단 거울 치료가 꽤나 효과가 있는 데다가, 약도 먹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자른 지는 일단 오래된 환자들이다 보니 통증 수준이 절단 병동에 비할 바는 아니긴 했다.
물론 일부는 여전히 그 날카로운 통증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어, 지금은.’
나는 이제 19세기에 익숙해진 마당이라 포기할 줄도 알게 된 몸이었다.
제아무리 내가 애를 써 봐야 시대의 한계까지 어쩌진 못한다는 걸 점점 머리만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이해하게 되었달까?
“휘유.”
그렇게 기분이 좋아진 나는 해부실습실로 향했다.
안에는 언제나 그러하듯 내가 내준 숙제에 열중하고 있는 조지프, 앨프리드 그리고 최근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된 콜린 또한 눈에 들어왔다.
“나 이게 잘 안 돼.”
“이건 썩어서 그래. 나도 어려워.”
“나도 그런가?”
“아니, 너는 네 손이 썩은 듯?”
“나, 나는?”
“음.”
의외로…….
제일 잘하는 놈은 콜린이었다.
귀족 출신이라는 자부심에 더해 옆에서 우쭈쭈 해 주던 놈들을 치우고 나니 비로소 실력이 늘기 시작했는데, 애초에 재능이 있었다.
‘손이 좋아.’
조지프는 힘이 좋고, 앨프리드는 열심이 있어 보조의로 쓰기 좋았다고 한다면…….
‘이놈은 제자로 키우고 싶어.’
물론 손이 안 좋은 놈들이라고 해서 외과 의사가 될 수 없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사실 아직 재능 운운하기엔 애초에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긴 했지만…….
그 말은 곧 콜린의 재능이 퍽 대단하다는 뜻도 되었다.
“잘…… 못한 건가?”
그걸 그는 몰랐다.
미친놈이.
한번 본 걸 거의 그대로 따라 한 주제에 우물쭈물하는 꼴이라니.
심지어 내가 했을 때보다 난이도가 아마 더 높았을 터였다.
좀 더 썩었거든.
어디서 시신이 무한정 공급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진짜 뭘 배우기도 어려웠을 터였다.
생각보다 시신이 되게 잘 썩는다는 걸 여기서 알게 되었다.
“아니, 잘했어. 넌 재능이 있어.”
“오……? 웬일로 그런 얘기를……?”
“난 언제나 솔직해. 넌 재능이 있어.”
“고…… 고마워.”
“고맙긴.”
사실을 말하는데도 녀석은 좀 쭈뼛쭈뼛이었다.
처음에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그럴 만하기도 한데…….
‘인종차별 안 하는 애들이 이 시점 영국에서는 오히려 특이한 거 아닐까……?’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안 하는 것들이 더 많잖아?
오히려 외국에 가 본 경험이 있거나, 하다못해 외국 귀족을 만나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낫지만 다른 놈들은 안 그랬다.
그런 와중에 그 정도면 사실 양호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지 말고. 일단 더 해 보자. 오늘은…… 손가락이야. 이쪽이 어떻게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지…… 해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때문에 나는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손을 움직여 보였다.
별건 아니고 그냥 피아노 치듯 꿈틀거린 게 다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허나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지 생각해 보면, 같은 움직임을 보이기 위해서는 로봇을 얼마만큼이나 정교하게 만들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이건 사실 기적이었다.
“하나님의 설계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자고.”
개인적으로 난 원래 무신론자지만…….
해부할 때만큼은 신의 섭리를 일부 느낄 수 있었다.
저절로 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신기했다.
일단 처음 배우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오…….”
“이럴 수가.”
“허어, 주여.”
게다가 이놈들은 진짜 신실한 사람들이지 않나.
자연히 신을 찾고 있었다.
‘내일 저기 죄수들 어찌 되었으려나.’
나는 그동안 아까 썩은 빵 먹였던 이들을 떠올렸다.
낫는 건 고사하고 일단 살아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