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93)
검은 머리 영국 의사-93화(93/505)
93화 항생제 [1]
“흐음…….”
“놀랍군.”
죄수들이 끌려오게 된 지도 벌써 3일이나 지났다.
그사이에 이들이 씹어 삼켜야 했던 썩은 빵은 하나뿐이었다.
내가 일부러 그렇게 설계를 했기에 그랬다.
‘다른 감염병이었다면 용법이 또 달라져야 할 텐데…… 매독은 일단 이걸로 충분하거나 지켜볼 수 있어.’
말 그대로 다른 감염병, 그러니까 다른 세균에 의한 감염병이었다면 이런 식의 경과 관찰은 퍽 위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왜냐.
약이 잘 듣는다 해도, 질환의 경과 자체가 만만치 않을 수 있거든.
항생제를 한번 먹는다는 건, 치료 용량에 도달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짧다는 걸 의미하는데…….
그 시간 동안 균이 다 죽어 주겠나.
어지간히 페니실린에 취약한 놈들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얘는 느리니까…….’
허나 매독은 아주 오랜 시간 인류를 괴롭혀 온 질환이니만큼 인류에 익숙해져 있는 질환이었다.
치명률을 낮추면서 숙주가 최대한 오래 살아 오래 감염력을 유지할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는 질환이라는 얘기였다.
덕분에 용량이 부족해 살짝 균이 남는다 해도 아주 급할 건 없었다.
만약 환자가 사망한다면 매독보다는 다른 원인일 터였다.
“좋아졌어.”
“흐음……. 흉터밖에 남지 않았군그래.”
내가 그런 고차원적인 의학적 사고를 거듭하고 있는 사이, 우리 19세기 의사들은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매독은 불치의 영역에 있는 질환이지 않나.
그게 썩은 빵 한번 먹은 걸로 나아 버렸거나 적어도 매우 커다란 차도를 보이고 있었다.
“평아…… 너 대체 이게…….”
“어떻게 한 거야?”
조지프와 앨프리드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그들만 그런 것도 아니었고.
“내가 자네를 정말 천재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건 정말…….”
“엄청나구만. 엄청나. 천재라는 말로는 부족해!”
리스턴과 블런델 또한 손을 치켜들고 있었다.
엄지를 번쩍 세운 채 껄껄 웃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적어도 이 자리에는 마녀 운운하는 놈은 없다는 점이었다.
하긴 내가 지금껏 보여 준 신실한 모습이 몇인데 그러겠나.
“너는…… 정말 대단하구나…… 주님의 은총을 듬뿍 받은 게 틀림없어.”
킬리언조차 이렇게 나올 정도니 말 다 한 셈이었다.
후후.
그래, 난 은총을 듬뿍 받았지.
그렇지 않았다면 다시 태어날 수 있었겠나?
좀 더 욕심을 부려 본다면 1950년대라도 되었다면 진짜 좋았을 테지만…….
19세기에서도 누릴 수 있는 건 많았다.
“자자, 너무 그러지들 마시고요. 치료가 되지 않은 사람도 하나 있긴 합니다. 이분을 잘 봐야 해요.”
물론 나까지 계속 껄껄 웃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딱 한 명이긴 하지만, 하여간, 치료가 되지 않은 이가 있었다.
‘아니…… 치료가 안 되었다고 하는 것도 좀…….’
그냥 거기에 그쳤다면 내 마음도 훨씬 나을 텐데.
이 사람은 곰팡이 감염이 생긴 것처럼 보였다.
곰팡이.
다른 말로 하면 진균.
‘진균 감염이라…….’
몇 가지 끔찍한 사례가 눈앞에서 휘리릭 돌아갔다.
진균은 대개 감염을 일으키지 못하지만, 한번 일으키고 나면 방법이 없다고 봐도 무방해서 그랬다.
항진균제가 있어도 결국에는 감염된 부위를 다 잘라 내야 할 지경이니, 항진균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아예 예상을 하지 못했냐?
그건 아니었다.
‘오래된 매독 환자들이…… 그중에서도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면역이 정상이었을 거라 기대하는 건 이상한 일이지.’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환자를 바라보았다.
열이 엄청나게 솟구치고 있었다.
동시에 혀와 입천장에 검은 반점이 돋아나 있었다.
말이 반점이지, 곰팡이균 감염의 증거라 할 수 있었다.
‘이건 못 고쳐…… 어쩔 수 없어.’
원래의 나였다면 죄책감에 사로잡혔을 터였다.
아니, 지금이라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 않은 건 아니었다.
허나 이전처럼 강한 건 아니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아서 그랬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을 수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 난 일부러 뒤를 돌아보았다.
다른 환자들, 그러니까 내 썩은 빵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이들이 있는 곳이었다.
“왜 이러지? 매독이랑은 양상이 다른데.”
“그러니까. 흐음. 뭐지?”
그런 나와는 별개로 리스턴과 블런델은 같은 환자를 보면서 입을 털기 시작했다.
이 시대라고 해서 진균 감염이 드문 것은 아닐 터였다.
오히려 많았으면 많았지, 적을 리는 없었다.
21세기처럼 오래 사는 건 아니겠지만, 당뇨가 있지 않나.
오래된 당뇨는 면역 결핍으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불결한 환경은 어떤 종류의 감염이라도 늘리기 마련이었다.
‘완전 처음 보는 것처럼 굴고 있네.’
허나 둘은 그저 미지의 질환이라도 발견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마 반쯤은 맞긴 할 터였다.
이렇게 감염이 시작되는 때에 환자를 발견하는 거 자체가 드문 일일 테니.
당뇨라는 병도 고대부터 이미 이상하다는 건 알고 있었겠지만 인슐린을 약으로 개발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못 하고 있지 않았나.
그러니 치료할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고, 입원도 시키지 않았으니 대개의 진균 감염 환자는 죽어서 발견되거나 또는 중증 이상의 상태가 되어서야 발견되었을 터였다.
“일단은 지켜보는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열이 펄펄 끓는데?”
“버드나무 우린 물이라도 먹을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의식이 없어서.”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하네. 왜 이러는 거야?”
나는 내게 물어 오는 리스턴의 말에 입술을 달싹거렸다.
허나 정작 입 밖에 낸 것은 바람 새는 소리뿐이었다.
곰팡이 때문이라고, 내가 먹인 썩은 빵 때문이라고 말해 주는 게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게 정확한 사실이기는 해. 하지만…… 그 때문에 이 약의 도입이 늦춰지게 되면…….’
지금이야 면역이 정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이들, 그러니까 이미 너무 진행해 버린 이들에게 썼으니 부작용 확률이 높지만.
보다 초기의 환자들에게 쓴다면 부작용 확률은 낮추고, 매독으로 인한 손해 또한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또는 없앨 수 있을 터였다.
‘하아…….’
나는 한숨 한 번에 고민을 어느 정도 토해 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렇지. 자네라고 어찌 다 알겠나.”
“그렇죠.”
“아무튼, 이건 학계에 보고하는 게 좋겠네. 앨프리드 집 2층 서재에 방치한 빵에서 자생하는 곰팡이가 매독에 효과가 있다니. 이런 걸 대체 어느 누가 상상이나 해 볼 수 있겠나.”
“그…… 그렇죠.”
“아무튼, 동일한 종류의 곰팡이를 대량 생산할 수 있다면 런던은 더 이상 매독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걸세.”
그것을 신호로 리스턴은 학계에 보고할 계획을 세웠다.
기실 그는 외과 의사고 매독과는 거리가 있는 의사지만 별 상관은 없을 터였다.
애초에 전문 과가 그렇게 의미가 있는 세상이 아니어서 그랬다.
당장 리스턴이 내일부터 나는 이제 산부인과 환자를 좀 보고 싶다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물론 정작 환자들이 올 것인지 아닌지는 좀 다른 얘기가 되기는 하겠지만…….
“제멜을 통해서 연통을 넣지. 학술지에 제출하려면 미리 얘기해 놓는 것이 좋거든.”
“제멜…… 근데 그 사람이 과연 동의해 줄까요? 지금 수은, 염화수은 동시 요법에 완전히 빠져 있던데.”
“우리가 증명했지 않나. 그게 원인이 아니라는 걸 말일세.”
“그러니까요. 언짢아하지 않을지…….”
“하하하! 무슨 상관인가!”
리스턴은 내 말에 하하 웃었다.
말도 안 되는 말이라서는 아니었다.
누구라도 지 말 틀리다고 면전에서 대놓고 얘기하면 기분이 나쁘지 않겠나.
더군다나 너 틀렸으니까 우리 말 사람들이 듣게 좀 도와 달라고 하면 더더욱 나쁘긴 할 터였다.
하지만 괜찮았다.
똑똑.
리스턴은 그 길로 제멜에게 향했다.
평소 같았으면 이 시간 즈음엔 연구실에 있어야 정상이겠지만, 그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전능감에 도취되어 있다고 봐야 할 터였다.
하긴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역사상 그 누구도 치료해 내지 못했던 질환인 매독을 자신이 치료했다고 생각한다면 뭐…….
“으아아아!”
“사…… 살려 주세요!”
하여간 그래서 우리는 연구실이 아니라 고문실 아니, 수은 치료실로 향했다.
당최 어떤 연유로 해서 수은과 치료를 한데 묶어 놨는지 모르겠는데…….
“으, 으읍.”
“으아아아!”
안에서는 비명과 신음 그리고 무언가 쏟아지는 소리가 연신 들려오고 있었다.
“안 들리나 보네.”
“어쩌죠? 잠겼는데.”
이게 누군가에게 함부로 보여 주기엔 좀 너무한 일이다 보니 잠가 둔 모양이었다.
나는 문을 열려다 철컥거리는 느낌에 리스턴을 바라보았고, 리스턴은 열쇠공을 불러오는 대신 자신이 문고리를 잡았다.
뿌각.
그러더니 문고리를 돌렸는데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열리네?”
“아.”
이런 건 보통 부쉈다고 할 텐데.
“뭐야? 응? 자네……?”
그런 말 비슷한 것도 꺼내기 전에 리스턴은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안에는 각종 고문의 흔적이 널브러져 있었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사람들.
구토하는 사람들.
설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쏟아 놓은 배설물들…….
“에이.”
리스턴은 그 사이를 조심스레 걸어, 제멜에게로 닿았다.
언제나 그러하듯 남들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있는 그는 위압적인 표정을 지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왜…… 왜 그러나.”
일부러 인상을 더 쓰고 있을 텐데, 안 그래도 냄새 때문에도 인상이 자연적으로 쓰여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 친분이 있는 제멜조차 말을 더듬었다.
아마 나도 그럴 터였다.
저 사람은 진짜 무서운 사람이었으니까.
“왜 그러긴. 일단 이 말도 안 되는 헛짓거리는 관두게. 자네 설마 정말로 구토와 설사로 매독균이 사라질 거라고 믿는 건 아닐 테지?”
“아니…… 갑자기 왜. 자네도 어제 그럴싸하다고 여기지 않았나?”
“그럴싸하다니?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했지.”
“아니…….”
“왜. 자네 생각은 다른가?”
“아니, 아닐세. 그랬던 거 같네.”
리스턴은 자기 생각만이 아니라, 남의 생각도 조작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면서 동시에 말을 이었다.
“하여간, 우리가 실험을 해 봤는데 이거 말이 안 돼.”
“아니…… 무슨. 이보게. 나 혼자 있는 것도 아니고.”
제멜은 자신의 조수들과 환자들을 돌아보았다.
조수들이야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지만, 환자들은 그야말로 죽일 듯한 기세가 되어 제멜을 노려보고 있었다.
뭘 잘못해서 잡혀 온 사람들도 아니고 그냥 아파서 온 사람들이라서 그랬다.
“상관이 있나?”
“어, 없지.”
하지만 리스턴이 주먹을 들이미는 순간 다른 건 시야 밖으로 나가고, 오로지 주먹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들어 봐. 이거 보게.”
“이건…… 썩은 빵 아닌가?”
“인상 쓰지 말고. 보라고.”
“아, 알았네.”
그렇게 심도 있는 논의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