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94)
검은 머리 영국 의사-94화(94/505)
94화 항생제 [2]
의도적으로 곰팡이 감염은 배제한 덕에 논의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살짝 죄책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환자를 저 꼴로 만드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무의미한 치료에 환자를 고통에 떨다가 죽게 하는 것보다야 무엇을 가지고 와도 더 낫기는 하지 않겠나.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 않겠어?
진짜…….
저건 살인이라고.
그것도 아주 잔인한 방식의.
‘아후.’
나는 나도 모르게 고문실에 널려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고 있었다.
리스턴도 같은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보게, 이게 치료인가? 이렇게 고통에 떨게 하는 게 치료냐는 말일세.”
솔직히 리스턴이 하기엔 좀 과한 면이 있는 말이긴 했다.
이 사람이야말로 환자의 고통을 극한으로 이끌었던 사람이잖아.
진짜 개무서운 사람이라고…….
“이런 무의미한 짓은 그만두고. 따라오게.”
물론 그런 사람이 하는 말이라 더 효과가 있긴 했다.
언제든 리스턴 칼로 명명된 칼을 휘두를 거 같잖아.
아니, 주먹만 휘둘러도…….
하여간, 그런 리스턴의 손에 이끌려 제멜은 경황없는 얼굴이 된 채 끌려갔다.
조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뒤로는 이제 살았단 얼굴이 된 환자를 남겨 둔 채였다.
나는 그중 한 명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나왔다.
“가, 감사합니다.”
그는 내게 감사를 표했다.
끝까지 그럴 수 있을지는 두고 보긴 해야 했다.
‘좀 있음 썩은 빵을 먹어야 한다는 걸 알아도 저럴 수 있을까?’
온갖 저주 섞인 말을 다 하지 않나.
뭐 과하다 여겨지진 않았다.
그럴 수 있지 않겠어?
썩은 빵인데.
이 시기 런던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아무리 개판이라고 해도 썩은 걸 주진 않더라고.
“보게. 이거 다 매독 환자들이야. 교도소에서 보내온 사람들이고, 다들 상태가 안 좋았지.”
“으음. 근데…… 지금은……?”
“흉터만 남았지? 다 나았다고.”
“저, 저 사람은?”
“아, 다른 문제로 죽어 가고 있네.”
우리 치료실에 도착한 리스턴은 슬그머니, 그의 그 거대한 몸으로 말 그대로 균에 잡아먹혀 죽어 가고 있는 환자를 가렸다.
그러곤 입으로 내게 말했다.
-치워.
허.
환자한테 치우라는 말을 하다니.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말 진짜 싫어하는데…….
‘지금은…… 이 수밖에 없어.’
보다 과학이 발전하고 그에 따라 정제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일단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
-해부하지.
그래도 저건 좀 아닌 거 같았다.
어떤 삶을 살면 사람 죽자마자 칼로 째 볼 생각부터 할까.
나는 그런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환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거의 찰나라고 해도 좋을 만한 시간 동안에도 환자 상태는 안 좋아져만 가고 있었다.
혹시 몰라 장갑을 낀 채로 입안을 들여다보니 이미 입천장이 새카맸다.
코안은 내시경도 없고 불도 여의치 않고 해서 들여다보지 못했지만 안 봐도 뻔했다.
아마 죄 썩어 들어가고 있을 터였다.
“서, 선생.”
쯧 하고 혀를 차고 있으려니 환자가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어째 모양새가 좀 이상했다.
내가 아니라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이유가 뭘까.
알 거 같았고, 그래서 기분이 엿 같아졌다.
“눈이…… 눈이 이상한데…….”
코를 침범한 이상 눈으로도 가지 않겠나.
아마 눈 자체를 침범하진 않았을 것이고, 눈을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근육을 먹은 듯했다.
양 눈의 방향이 달라져 있었다.
다시 말해 복시가 발생했을 터였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어요. 아프진 않습니까?”
“아파…… 아파요.”
환자의 말에 내 옆을 지키고 있던 조지프가 입을 열었다.
“어찌 되는 거야?”
이미 죽음의 징후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만했다.
뭘 모르는 게 당연시되는 세상이니까.
아니, 뭘 모르는지 모르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나는 고개를 다시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일단……. 기도나 드리지…….”
기도.
한 사람의 신자에겐 대단히 훌륭한 방편일 수 있겠지만, 의사에겐 무력함의 증거이기도 했다.
비단 19세기에 와서야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21세기에서도 어찌할 수 없는 죽음은 충분히 많이 보았다.
인류는 여전히 죽어 가고 있었으니까.
그때마다 내 스승은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았다.
유물론자인 그는 대체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그래, 기도하지.”
“다 눈을 감지.”
나를 제외한 모두는 아마도 하나님을 떠올리고 있을 터였다.
의사이기 전에 신도인 이들은 진심으로 환자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 시기 의사들이라고 해서 순 나쁜 놈들인 건 당연히 아니지 않겠나.
오히려 살리겠다는 의지는 더 강했다.
단지 지식과 경험이 뒤따르지 못할 뿐.
“주여, 주의 어린양이 이제 주의 품으로 돌아가나이다.”
나는 아니, 우리는 환자를 둘러싸고 일단 기도를 올렸다.
이미 환자의 초점은 흩어져 버린 지 오래였다.
의식이 남아 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벌써 두 번이나 경련도 했다.
한번 침범하기 시작한 진균이 얼마나 무섭게 잠식하는지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었다.
‘청각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고들 하지.’
썰이 아니라, 뇌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었다.
괜히 호스피스 병동을 비롯한 여러 병동에서 임종을 앞둔 이의 귓가에 대고 마지막 말을 해 주라는 언질을 주는 게 아니라는 얘기였다.
해서 나는 환자의 귀에 대고 축복의 기도를 해 주었다.
목에 걸린 푯말을 보면, 정상참작의 여지조차 없을 만한 살인범이지만 난 벌을 주는 법관이 아니라 의사이기에 그랬다.
-인간에 대한 가치판단은 우리 몫이 아냐. 일단 살리고 본다.
내 스승이 해 주었던 말이다.
인간적으로도 존경할 만한 사람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의사로서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었다.
애초에 그에게 내 모든 의술을 배웠다 해도 과언은 아니고.
“아멘.”
해서 나는 최대한 고인이 될 환자의 마음에 위안이 될 만한 말을 하고서 기도를 마쳤다.
돌아본 곳엔, 이제 그냥 봐서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감별조차 어려운 상태가 된 환자가 있었다.
이따금 있던 경련도 잦아들었고, 오르내리던 흉곽도 멈춰 있었다.
미약한 숨이 새어 나오고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서글프구만.’
21세기였다면…….
죽지 않아도 될 정도가 아니라, 별문제 없이 지낼 수 있었을 터였다.
‘별 의미가 없지.’
내가 두 발을 디디고 선 이 땅은 19세기 런던이지 않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알고 지내던 직원에게 반드시 묘지로 보내라고 일러두고는, 다시 리스턴에게 돌아갔다.
“이게 약이라고?”
“그래!”
“킬리언이라는 이도 그걸 먹은 건가?”
“그렇지. 먹었지. 그래서 나은걸세! 자네의 그 개떡 같은 치료 때문이 아니라!”
“으음…… 확실히…… 이렇게까지 좋아진 걸 보니…….”
“그러니 학계에 발표를 해야 하지 않겠나?”
“음…… 그렇군. 알겠…… 알겠네. 알겠으니까 일단 그 주먹 좀 내려놓는 게 어떤가.”
“하하하! 내 자네가 알아줄 줄 알았네! 좋아!”
“히익.”
그렇게까지 긴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멜은 썩은 빵 약 이론에 이미 넘어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주먹에 넘어간 건지 아니면 말에 넘어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이 썩은 빵 항생제 이론이 학계에 발표가 될 거라는 점이었다.
‘뭐…… 발표한다고 다들 한 방에 받아들이진 않겠지만…….’
학계에 대한 신뢰라는 게 쌓이는데 대체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 거 같나.
‘지들도 개판이다 보니 남들도 개판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너무 크지.’
원래 사람을 믿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여부가 필수적인 소양이라지 않나.
사기꾼은 절대로 남을 믿을 수 없는 법이었다.
같은 이유로 지금 이 시점에서 학회지에 대한 신뢰는 바닥이었다.
데이터 조작은 다들 하는 것이니 차치해 두고서라도 그냥 상상으로 논문을 쓰는 새끼들도 있다고 들었다.
세상에 의학 논문을 상상으로 쓴다니.
말이 되나 싶을 텐데, 당장 고개를 돌려 병원을 보면 말이 안 되는 치료들을 실제 환자에게 하고들 있으니 그것도 무리는 아니긴 했다.
‘그럼에도…… 일단 발표가 된다는 건 중요한 일이야.’
뭐라도 있으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나.
게다가 매독에 한해서는 한 방만 치료하면 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터였다.
이걸로 박멸까지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어찌 되었건 전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게 될 터였다.
“그래. 좋아. 닥터 평!”
리스턴은 그렇게 제멜을 협박하고서 나를 불렀다.
눈에 은은한 광기가 있어서 좀 무서웠지만, 이 인간이 나를 이제 와 어떻게 할 리는 없기에 당당히 다가갔다.
“왜 이렇게 쫄았어. 이 빵 말이야. 최대한 키워 보세나. 앨프리드. 자네가 희생을 좀 해 줘. 그 방 하나는 아예 빵 썩히는 곳으로 쓰자 이 말일세.”
“아, 네네.”
“네, 그러문요. 그렇게 해얍죠.”
나는 앨프리드와 함께 굽신거리기 시작했다.
“으, 으악!”
그때 어디선가 비명이 들려왔다.
수은 치료는 중단시켰으니, 또 다른 이상한 짓을 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뭐지?’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어 비명이 들려왔던 곳을 돌아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그랬다.
특히 환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일명 명의병의 대가인 리스턴은 이미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벌써 누구 다리 자를 생각에 싱글벙글이었다.
미친놈.
“어, 자네도 가는가?”
물론 나도 미친놈이라 같이 걸었다.
아니, 이렇게만 말하면 좀 그렇고.
다른 미친 짓을 하기 전에 말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이 시기 의사는 대부분이 돌팔이면서 동시에 너무 용기가 넘치거든.
어떤 질환으로 와도 기상천외한 짓을 해 버리니까 너무 무서웠다.
“으, 빨리! 빨리 어떻게 좀!”
하여간 최대한 빨리 달려갔더니, 환자 하나가 날뛰고 있었다.
말이 응급실이지 현대적인 설비는 아예 없는 곳이다 보니 그냥 방에서 날뛰는 느낌이었다.
그래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리스턴의 조수들까지 갈 것도 없이, 상황은 곧 정리될 듯했다.
이 시기 의료진들은 반쯤 깡패거든.
“어허! 가만히 있어!”
“묶어!”
저 봐, 저거.
벌써 묶이잖아.
어, 어어.
재갈 물리는 건 선 넘었…….
“광견병 걸린 개한테 물린 모양이야.”
누구보다 먼저 그걸 말려야 할 위치에 있는 리스턴은 여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광견병……?”
“처음 보나?”
“그…….”
처음 봤다.
개물림 사고 자체가 거의 없을뿐더러 광견병은 이제 대한민국에서는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했거든.
여기선 얘기가 다른 모양이었다.
“저기 잡혀 온 개가 입에 거품 물고 있지 않나. 해 볼 수 있는 건 해 봐야겠지.”
나에 비하면 능숙하다 못해 프로로 보였다.
‘어떻게 치료하더라?’
내가 여전히 기억을 헤집느라 바쁜 와중에도 병원 사람들을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개짓거리를 하고 있었다.
“이, 인두?”
사람을 지지려고 하고 있었다.